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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7

     [그 시각, 구 세이레네 백작령 백작성 응접실.]

     

     제국의 그림자, 프란츠는 자신의 손에 들고 있던 단검에 묻은 붉은 피를 천으로 닦아냈다.

     황금색으로 빛나던 천은 금방 피로 젖어들었다.

     “노스트럼은 정말 사치스러운 곳이야. 국기에도 황금으로 자수를 놓다니.”

     “…….”

     프란츠의 맞은편에 앉은 검은 드레스의 여인, 세이레네 백작 영애는 다소곳하게 허벅지에 손을 올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쁘지 않나? 그렇게 복수하기를 갈망하던 아버지를 죽였는데.”

     “딱히.”

     세이레네 백작 영애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버지만 죽은 것도 아니고 모두가 다 죽었는데, 제가 좋아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제야 깨달은 건가?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걸.”

     “아니요. 제가 당신들을 이용한 겁니다.”

     “이용했다?”

     “아무런 힘도 없는 여자의 몸으로는 백작을 비롯한 이 저주받을 땅의 인간들을 죽일 방법이 없었거든요. 후후후….”

     세이레네 백작 영애는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분의 희생 덕분에 제국과 바다를 통해 교역을 하면서 왕국의 누구보다도 더 많은 돈을 벌어들였지만, 누구 하나 그분의 동상을 향해 참배하러 가는 이들이 없었죠.”

     “그렇겠지. 하이레딘 장군의 동상은 제국령 카사블랑카에 있으니까.”

     “그런 물리적인 거리를 말하는 게 아니예요. 정신적인 거리. 그러니까, 최소한 제국의 바다 방향을 향해 기도하는 이들은 누구도 없었죠. 오히려 조롱했어요. 그분이 잘 죽은 덕분에 세이레네가 이렇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거라고.”

     꽈아악.

     “누구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 줄 알았다면, 적어도 죽은 이를 향해서 모욕은 하지 말았어야지.”

     세이레네 백작 영애가 강하게 허벅지를 움켜쥔다.

     “그거 아시나요? 아버지는 말이에요, 제가 제국인이 취향인 줄 알고 새로운 제국인과의 만남을 주선했답니다.”

     “그게 세이레네 백작을 죽이려고 한 계기인가? 제국에 군사 기밀을 넘겨준 대가인가?”

     “그걸 넘겨준 건 집사죠. 저는 그저 아버지께서 평소에 사용하시던 집무실 서랍을 살짝 열어뒀을 뿐이랍니다.”

     세이레네 백작 영애는 그 말과 함께, 자신의 아래에 놓여있던 약병 하나를 움켜쥐었다.

     “집사장과의 약속을 어긴 것처럼, 저 또한 당신들의 멋대로 써먹히게 되겠죠.”

     “맞아. 하지만 약속하지. 적어도 ‘세이레네 백작 영애가 아버지를 팔아넘겼다’라는 끝은 없을 테니까.”

     “그러면 어떻게 끝내려고요?”

     “황제께서는 ‘스토리’를 좋아하지. 한 인간이 발버둥을 치든 화려하게 끝맺음을 장식하든, 이야기가 마련되기를 바라셔.”

     “이야기라….”

     “배신자는 집사장이었던 걸로 끝내지. 백작 영애께서는 제국군에게 희롱당하기 전에 자결하신 걸로 정리하고 말이야.”

     “……그러도록 하죠. 상관없어요. 저는 이미 그분이 돌아가신 그 날 죽었고, 지금은 죽은 채로 살아왔을 뿐이니까.”

     딸칵, 하는 소리와 함께 약병이 열렸다.

     안에는 백은빛의 하얀 가루가 설탕처럼 가득 들어있었고, 프란츠는 백작 영애를 향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셔라. 그리고 취하는 거다. 수면제도 같이 섞었으니, 네가 바라는 꿈 속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거지.”

     “정말 이거면….”

     “간절히 바라면 백은이 이루어줄 것이다. 부디 하이레딘 장군과 다시 만나기를 바라도록 하지.”

     “…….”

     세이레네 백작 영애는 백은을 통째로 들이켰다.

     그리고는 옆에 놓여있는 유리잔을 벌컥벌컥 들이킨 뒤, 그대로 자신이 앉아있던 소파에 몸을 뉘였다.

     “……유언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주시겠어요?”

     “뭔데?”

     “왜 인생은 불공평한 걸까요.”

     “그야 당연히,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불공평하게 태어났으니까.”

     프란츠는 다리를 꼬며 피식 웃었다.

     “난 또. 갑자기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그야, 부러우니까요.”

     “누가?”

     “…그레이 지브롤터.”

     세이레네 백작 영애가 서서히 잠결에 들며 웅얼거리듯 말한 순간, 느긋하게 무릎에 손을 올리고 손가락을 두드리던 프란츠의 표정이 굳었다.

     “왜?”

     “그 자는, 국경을 넘어선 사랑을 하고 있으니까. 살아있는 사람과….”

     “…아아, 그런가. 뭐, 그렇긴 하지.”

     프란츠가 꼬아둔 다리를 풀고 몸을 일으켰다.

     “마지막 가는 길에 하나 선물을 주도록 하지. 세이네레 백작 영애.”

     프란츠는 세이레네 백작 영애의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배에 올린 뒤.

     “영애의 죽음은 우리 제국이 아주 멋지게 이용할 거야. 실제로 일어난 일이 어떻든,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곧 진실이지.”

     “……?”

     “자신이 그렇게 될 건데도, 아직도 모르겠어? 역시나 머리가 꽃밭인 노스트럼의 영애라서 그런지, 이런 것도 직접 말해줘야 깨닫는 건가.”

     서서히 눈이 감기던 걸 부르르 떨며 버틴 세이레네 백작 영애를 향해 다가간 프란츠는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하이레딘 장군을 죽인 건 말이지, 네가 도움을 받았다고 기뻐한 황제 폐하시거든.”

     “……?”

     몽롱하던 눈동자가.

     “……!!”

     부릅떠지며, 세이레네 백작 영애는 그대로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어허.”

     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한 손으로는 두 손을 붙잡고 상반신 전체를 누르고, 남은 한 손으로는 입을 우악스럽게 틀어막는 프란츠-‘마스터’의 힘을 고작 백작가의 영애가 넘어설 수는 없었다.

     “읍, 으읍, 으으읍!!”

     “하여튼 노스트럼의 평균이란.”

     꿈틀, 꿈틀.

     “그래도 좋은 꿈 꾸게 해줬잖아. 안심해. 꿈 속에서는 누구랑 사랑을 하든, 누구를 죽이든 그건 자유니까.”

     

     추르륵.

     거칠게 몸을 움직이던 세이레네 백작 영애는 그대로 움직임이 멈췄다.

     눈을 감는 순간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으나, 프란츠는 그것을 보며 인상만 찌푸리며 몸을 일으킬 뿐이었다.

     “자…그러면.”

     프란츠는 히죽 웃었다.

     “역사에는 기록으로 남을 거야. 세이레네 백작 영애는 정절을 지키기 위해 죽었다고.”

     스륵.

     “진실은 누구도 모르겠지만.”

     * * *

     세이레네 백작령에서 선물이 도착했다.

     무인기.

     마도자동선에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철도를 따라, 마도공학 기계의 바퀴가 굴러가고 마도엔진의 마나가 다 닳을 때까지 달려 우리가 있는 간이역에 도착했을 뿐이다.

     사람은 없다.

     선수에 알몸으로 묶여있는 게 하나 있더라도, 저건 사람이 아니다.

     “저런 극악무도한…!”

     사람이었던 것.

     이루 말할 수 없을만큼 몸에 상처가 가득한 것.

     심지어 머리는 어디 오다가 흘린 건지 아니면 잔인하게 참수라도 한 건지, 목 아래 부분만 묶여 이곳까지 실려왔다.

     “대공. 나리아 여왕께서 결코 보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아아, 알겠네. 하지만 저건….”

     “세이레네 백작이겠죠. 저런 체형이 노스트럼 중년 귀족 평균이기는 하지만, 저렇게 유의미하게 보내질 사람은 그 자 뿐이니.”

     나는 기사들이 멈춰세운 마도자동선의 위로 뛰어올랐다.

     역시, 사람은 없다.

     혹시나 흡혈귀가 있나 싶어 제법 길게 내부를 마력으로 훑었지만, 흡혈귀로부터 느껴지는 특유의 알싸한 흙냄새는 나지 않는다.

     나는 것이라고는 오직 피냄새 뿐.

     

     ‘의외네.’

     덜커덩 거리는 속도가 조금 무겁다 싶었더니, 안에 무게가 좀 나간다.

     

     “카를로스 경. 자네, 비위 좋은가?”

     “저는 좋습니다만, 도련님, 안에 도대체 무슨 일이….”

     “나는 끔찍하고 잔인한 것들을 봐도 구토 한 번 하고 끝낼 수 있다. 그런 자만 올라와서 확인하도록.”

     “…….”

     카를로스 경이 뒤에 있는 기사들에게 손을 흔든뒤, 자신이 가장 먼저 훌쩍 뛰어 내 옆에 섰다.

     “…우욱!”

     그리고는 바로 갑판 안쪽, 배의 안을 확인하고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비위 약하네.”

     “도, 도련님. 지, 지금 이게 대체….”

     “조금 돌려서 표현해줄까, 아니면 의미가 담긴 그대로 표현해줄까?”

     “……도련님 편하신대로 말씀하셔도 됩니다. 배려는 괜찮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답하지.”

     나는 뻥 뚫린 갑판의 안쪽에 가득 쌓여있는 시신들을 가리켰다.

     “쓰레기야.”

     “……예?”

     “어허.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게 아니고, 제국이 그런 의도로 우리에게 보냈다는 거지.”

     “…….”

     

     순간적으로 카를로스 경에게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을 뻔 했지만, 그는 내가 편한대로 말하라고 했다.

     “제국은 노스트럼의 인간을 전부 죽이고 그 땅을 자신들이 활용하려고 하지. 그러면 그 죽은 시신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겠는가? 눈 앞에 있는 오염물질은 처리해도, 그걸 일일이 묻어주거나 그럴 예의는 없다는 거지. 그러니 그걸 처리할 사람에게 보내는 수밖에.”

     그러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는 수밖에.

     “이게 제국의 방식이야.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져내려오는 전술이기도 하지. 적진에 시신을 강제로 보낸다.”

     “이런….”

     “사실 우리도 딱히 뭐라고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긴 해. 협곡에서 죽은 시신들이 바람을 타고 흘러가서 무조건 제국 쪽으로 굴러가게 만들었으니.”

     “아.”

     당장 내가 10살 때, 아버지가 썰어버렸던 오크들만 하더라도 그렇다.

     “물론 우리 탓은 아니야. 다 따지고 보면 근원은 제국 탓이고, 우리는 그저 피해를 당했을 뿐.”

     “도대체, 왜 이런 잔인한 짓을…? 자기들이 치우기 귀찮다고 이러는 게 말이나 되는 겁니까?!”

     “진정하게. 전술적인 효과도 여럿 있으니, 그걸 노리고 보낸 경우이기도 하지. 자네가 이렇게 분노하는 것처럼.”

     “…….”

     살아있는 이들을 향한 도발.

     남아있는 적들에 대한 공포.

     “우리가 일일이 시신을 수습하면 노동력을 사용하게 되지. 그러면 우리는 자연히 체력을 쓰게 되고, 정신도 피폐해진 상태로 만전의 적과 싸워야 할 거야.”

     “그런 비인간적인….”

     “전쟁 자체가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행동인데 뭘. 그리고 그냥 가만히 놔둬서는 안 되지.”

     나는 나와 카를로스 경을 번갈아 가리켰다.

     “이건 전략병기야. 제 때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부패하고 구더기가 끓어서, 결국 그 땅에 역병을 뿌리는 역병수레지.”

     “으으….”

     “처리 방법 자체는 간단해. 약간의 마음 속 부채감과 인간에 대한 예의, 그리고 무조건 선해야 한다는 생각을 ‘산 사람을 위해서’라는 생각으로 처리하는 수밖에.”

     나는 손가락 끝을 가볍게 비볐다.

     “태워야 해. 비행선 주변에 구덩이를 파도록 하지. 그리고 불을 지르지. 다행히 대공의 용기병 중에 마법사가 있으니, 그에게서 불을 빌리면 될 거야.”

     “…….”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네, 카를로스 경. 제국과의 전쟁은 바르셀 후작령에서 있었던 그런 영지전과는 결이 달라. 인간을 도구로 알고, 특히 노스트럼의 사람은 지배해야 하는 어리석은 하등한 것으로 보는 제국을 상대해야 하거든.”

     “도련님.”

     카를로스 경이 묻는다.

     “도련님은 이런 제국을 품으려고 하셨습니까…?”

     “내가? 전혀.”

     아무래도 카를로스 경이 충격이 큰 모양이다.

     “나는 단 한 번도 제국을 품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 오히려 잘 흘러갔다면 이런 전쟁 같은 것도 일어나지 않았겠지.”

     “…….”

     “전쟁이 일어난 원인을 착각하지 말도록. 황제가 선전포고를 내건 말이 무엇이었나? 너무나도 단순한 이유지.”

     “노스트럼에 황금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 황금을 일깨운 건 우리의 대ㅡ단하신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시지.”

     거짓된 황금이 범람하여 제국 경제를 망가뜨리지 않았다면.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나리아가 20살이 되자마자 얌전히 살해당해줬다면.

     아마도 지금쯤 우리는 인간이 통제 가능한 정도의 황금과 자원을 바탕으로 하여, 제국력 100년을 맞이하여 대륙통일화폐 및 경제협력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황제는 전쟁을 선택했다.

     가장 황제답지 않은 방식이지만, 그의 성향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이 전쟁이 너무나도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다.

     “파산하지 않는 도박은 싫어하는데.”

     “예?”

     “그냥, 이쪽의 헛소리일세.”

     나는 크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시신의 냄새 때문에 다소 역한 느낌도 들었지만, 그 역함 때문에 내 안의 무언가가 깨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카를로스 경.”

     이런 시신을 수습하는 일.

     “제국에서 이런 전략병기를 선물로 줬으니, 우리 또한 그에 대한 보답을 해줘야겠지.”

     매국노 그레이가 회귀 전 가장 많이 했던 일이었다.

     “죽음에는 죽음으로.”

     “도련님. 무엇이든 말씀해주십시오.”

     카를로스 경이 전의를, 살의를 불태운다.

     “어떠한 전략병기든, 저는 기꺼이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아쉽네. 자네는 안 돼.”

     “예?”

     “그걸 사용할 수 있는 건 한 명 뿐이라서.”

     아스타시아라고 있다.

     그레이 지브롤터라고 부르기도 하고.

     “카를로스 경. 남아서 수습하겠나, 아니면 따라오겠나?”

     “저는….”

     “경이 괜찮다면, 남아서 수습해주게.”

     “…최대한 빨리 수습하고 따라붙겠습니다.”

     또다른 전략병기의 이름은, 카를로스라고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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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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