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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7

   아돈을 불태워 버린 크라슈가 성벽 위에서 가볍게 숨을 몰아쉬었다.

     

   ‘최후의 방주를 폭주시킨 건 아돈이었나.’

     

   크라슈는 성벽에서 아돈이 하늘에 손을 들어 올린 채 기도를 올리던 것을 보았다.

     

   “크림슨가든.”

   [ 내 방법이랑은 다르지만 비슷한 종류다. ]

     

   역시, 익시온 놈들은 금역을 폭주시킬 방법을 알고 있었다.

   크라슈는 짜증스레 불타 버린 아돈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허리를 폈다.

     

   여기까지 달려오느라 멸화침식을 꽤 끌어 올린 탓인지 몸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동시에 크라슈는 자신의 몸속에 자리한 아우라의 내단들의 외벽이 조금 녹았음을 깨달았다.

   만약 이 이상 녹는다면 아우라는 그 즉시 크라슈의 몸에서 폭발해 버릴 것이다.

     

   그 뒤의 결과를 잘 아는 크라슈는 우선으로 아우라의 내단을 관리했다.

     

   그 사이 크라슈의 옆에 있던 하링이 망루 밖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하링이 보고 있는 방향은 다름 아닌 라그렌 가문이었다.

     

   크라슈도 하링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거기에는 새하얀 안개로 가득 찬 것이 보였다.

   라그렌 가문은 물론 라그렌 가문이 자리한 산 전체가 안개에 둘러싸인 것이었다.

     

   크라슈는 안개의 성분이 연기에 가깝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연마.’

     

   지금 이곳 어딘가에 연마가 온 것이 분명했다.

   동시에 크라슈는 아돈이 미끼임을 직감했다.

     

   ‘일부러 알린 거군.’

     

   지금 금역을 폭주시키고 있는 것은 자신들 익시온이며.

   지금 자신들은 라그렌 가문의 목줄을 쥐고 있다고 말이다.

     

   익시온은 지금까지 크라슈와 그의 주위 인물을 노렸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한 실패 과정을 통해 익시온도 배운 게 있었다.

     

   크라슈는 현재 익시온이 섣부르게 상대할 수 없는 강자다.

   더욱이 크라슈는 늘 예기치 못할 정도의 수준으로 대폭 성장하고 있다.

     

   익시온은 크라슈를 위험 요소로 판단했다.

   그러니 예전과 같이 전력을 분산시켜 크라슈에게 인원을 보내는 것은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섣부르게 과한 전력을 투자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최근 천상사강과 같은 강한 인물들과 꾸준하게 접촉했다.’

     

   그리고 크라슈는 이 모습을 다른 이들도 알 수 있도록 대놓고 움직였다.

   이는 크라슈 나름대로 계산이 들어가 있는 행동이었다.

     

   크라슈의 곁에 강자가 붙어 있다는 것만으로 섣부른 행동을 못 하게 할 수 있으니까.

     

   ‘내 처지에서는 일부러 균형을 맞춘 셈이었지.’

     

   크라슈는 익시온에게 족쇄를 단 셈이었다.

     

   익시온은 세계 침식자와의 전쟁의 시발점이 될 확률이 높다.

   크라슈는 어떻게든 그 확률을 줄이고 싶었다.

     

   ‘그러니 오히려 세계 침식자들이 익시온을 손절하게 해야 한다.’

     

   인간과 익시온이 부딪치기 전에 크라슈는 익시온을 제외한 다른 세계 침식자를 설득할 작정이었다.

     

   그런 크라슈가 누굴 설득할 작정이었는가.

   그건 다름 아닌 익시온과는 다른 의미로 세계 침식자의 중심인 자.

     

   ‘검존(劍尊).’

     

   크라슈가 설득하고자 하는 이는 세계 침식자 중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검존이었다.

   인간 중 최강의 재능을 지닌 샬롯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 쓰러트린 괴물.

     

   크라슈는 그가 익시온의 적이 되도록 설득할 목적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겠지만.

   세계 침식자와의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설득을 위해서는 크라슈는 반드시 아우라의 내단을 완전히 소화해 내어 창제무신을 다뤄야만 했다.

   검존을 설득할 수 있는 건 검담(劍談)밖에 없으니까.

     

   그렇기에 크라슈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인간과 익시온이 부딪치는 걸 벌 시간이 말이다.

     

   ‘그런데 이 썩을 익시온 놈들은 그딴 걸 기다릴 생각이 없단 말이지.’

     

   크라슈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 안개가 크라슈에게 말하는 바가 바로 그 증거였다.

   라그렌 가문과 시즐리를 구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안개 속으로 들어와라.

     

   익시온 놈들은 그리 고하고 있었다.

     

   크라슈가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들은 계획한 함정을 발동시킬 것이다.

     

   ‘반대로 내가 들어오지 않으면.’

     

   익시온 입장에서는 그거대로 나쁜 이야기가 아니었다.

   인질을 그대로 끌고 가면 될 노릇이니까.

     

   “썩을 놈들이.”

     

   크라슈가 이를 바득 부딪쳤다.

   놈들이 작정하고 이번 일을 준비했음을 눈치챈 것이다.

     

   ‘내가 라그렌 가문에 오게 된 것은 우연이었겠지만.’

     

   그들은 이 우연을 오히려 기회로 삼았다.

   제국의 멸망과 함께 크라슈를 잡는 것까지 말이다.

     

   “크라슈.”

     

   그 순간 하링이 크라슈의 옷깃을 당겼다.

   그녀 또한 크라슈의 고민을 눈치챈 것이다.

     

   크라슈는 지금 제 상태가 아니다.

   크라슈의 몸에는 세계의 틈에서 흡수한 아우라가 내단으로 만들어져 있으니 말이다.

     

   익시온이 이 사실까지는 알지 못하겠지만.

   지금 크라슈가 이 안에 들어가면 위기에 처할 거란 건 하링도 잘 알았다.

     

   “안에는 아버지가 계셔. 라그렌은 괜찮아.”

     

   다음 말을 듣고, 크라슈가 하링을 바라보았다.

     

   독왕, 하우란 라그렌.

   그는 분명 천하십강에 속할 만큼 실력자다.

   더불어 라그렌 가문 또한 그리 호락호락한 가문은 아니다.

     

   과거, 광도제와 지옥 선녀 탓에 라그렌이 쑥대밭이 되었던 만큼.

   라그렌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철저히 단련해 왔으니까.

     

   하링의 말대로 라그렌은 익시온의 공세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정.

   저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크라슈도 하링도 지금은 알 수 없었다.

     

   거기에 최후의 방주가 폭주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최후의 방주와 성벽을 관리하고 있던 것은 라그렌이다.

     

   라그렌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면 최후의 방주에서 시작된 재해는 끝내 성벽을 무너트리고, 이곳을 덮칠 것이다.

     

   하링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을 텐데.

   그는 지금 크라슈에게 라그렌은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다.

     

   크라슈는 그녀의 진심을 엿보았다.

   자신의 가문 때문에 크라슈가 위기에 처하지 않기를 바라는 진심을 말이다.

     

   크라슈의 옷깃을 잡은 하링의 팔이 미약하게 떨렸다.

   그 떨림의 너머에 하링이 라그렌을 향한 걱정이 느껴졌다.

     

   당연하다.

   라그렌은 하링에게 고향이고, 가족이었으니까.

     

   하물며,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아버지가 위험할지도 모른다.

   걱정하지 않는 게 이상했다.

     

   이런 주제에 자신부터 걱정하고 있다니.

     

   이 상황을 어찌 헤어나갈지 고민하고 있던 크라슈는 모든 생각을 정리했다.

     

   “하링, 재료는 전부 모았지.”

   “아, 응.”

     

   하링은 그리 말하며 크라슈에게 챙겨온 재료가 든 가방을 보였다.

     

   “나머지 재료는 지금쯤이면 라그렌 가문에 다 모였을 테고, 말이야.”

     

   그 말을 들은 하링의 눈이 한차례 흔들렸다.

   하링은 크라슈가 지금 안개로 들어가기로 결심했음을 눈치챘다.

     

   “크라슈, 잠시만 영혼 주박은 아직이잖아.”

     

   그러니 하링은 크라슈를 말리고자 상급 저주 영혼 주박을 언급했다.

     

   도르마에게 부탁해놓은 영혼 주박이다.

   다행히 도르마가 영혼 주박을 어떻게든 구했다는 연락은 크림슨가든을 통해 들었다.

     

   하지만 그걸 전해 받는 것은 크라슈가 돌아온 뒤로 하기로 했던 만큼.

   라그렌 가문에는 영혼 주박이 없는 상태였다.

     

   “괜찮아.”

     

   크라슈는 그리 말하며 자기 그림자를 보았다.

     

   “내 친구 녀석들이 좀 유능하거든.”

     

   그 말이 이어진 순간 크라슈의 그림자가 이리저리 부풀어 올랐다.

   깜짝 놀란 하링이 그걸 보자 곧이어 그림자에서 불쑥 머리가 튀어나오더니 이내 사람이 되었다.

     

   크라슈의 그림자에서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에벨아스크였다.

   나타난 그녀는 살짝 불만이 가득한 눈으로 크라슈를 보았다.

     

   “사람을 아주 심부름꾼으로 쓰고 말이야.”

     

   에벨아스크의 손에는 부적이 덕지덕지 붙은 자그마한 항아리 하나가 있었다.

   항아리에 깃든 것은 다름 아닌 상급 저주 영혼 주박이었다.

     

   도르마가 구해준 영혼 주박을 크림슨가든의 종인 타리아 발레스를 통해 받은 뒤.

   그걸 넘겨받은 에벨아스크가 이쪽으로 넘어온 것이었다.

     

   “수고했어.”

     

   크라슈는 에벨아스크에게 건네받은 영혼 주박을 하링에게 건넸다.

   그러자 얼떨결에 그걸 받은 하링이 굳은 얼굴로 크라슈를 보았다.

     

   이걸 크라슈가 전했다는 건 곧 안에 들어가는 걸 작정했다는 소리기 때문이다.

     

   “하링, 내 망할 몸을 해결하려면 나는 어떻게든 라그렌에 들어가야 한다.”

     

   크라슈의 몸을 해결하려면 라그렌 안에 있는 재료가 꼭 필요했다.

     

   익시온이 움직임을 개시하며 한시가 바쁜 상황.

   또다시 재료를 모으기 위해 쓸 시간은 크라슈에게 없었다.

     

   “그러니 하링, 부탁해. 나와 함께 라그렌으로 들어가 줘.”

     

   오히려 크라슈에게 역으로 부탁을 받게 된 하링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 남자는 늘 이렇다.

   내가 가장 원하는 걸 부담 느끼지 않게.

   오히려 자신이 필요해서 하는 일이라며 당위성을 붙여 밀어붙인다.

     

   하링이 크라슈를 보았다.

   그녀는 더 이상 그를 말릴 수 없었다.

     

   크라슈가 이런 사람이라 하링은 그를 좋아하게 된 거였으니까.

     

   “……알았어. 가자. 내가 크라슈의 몸을 반드시 해결해줄게.”

     

   하링의 대답을 들은 크라슈가 미소 지었다.

   그러고는 크라슈는 은근슬쩍 뒷걸음질 치고 있던 에벨아스크의 옷을 콱 잡았다.

     

   “가자고, 내 그림자 무사.”

   “으이익, 내,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에벨아스크는 분통을 터트리면서도 도망치지 않았다.

   그녀 또한 지금 상황이 위급한 것을 알기 때문이다.

     

   크라슈가 고개를 들었다.

     

   하링과 에벨아스크와 함께.

   라그렌 침투 작전.

   시작이다.

     

     

     

   * * *

     

     

     

   라그렌 가문의 가주.

   독왕, 하우란 라그렌.

     

   그는 지금 어느 한 방을 조용히 지키고 있었다.

     

   현재 그의 뒤편의 방에 있는 인물은 제국에서 가장 고귀한 이였다.

     

   그녀의 이름은 시즐리 에파니아.

   제국의 4황녀이자 제국 최고의 두뇌라 일컬어지는 이였다.

     

   하우란이 시즐리를 처음 본 것은 그녀가 어린 시절이었다.

     

   어린 시절, 두뇌는 뛰어나나 천방지축의 말괄량이 소녀라 소문이 난 시즐리.

   그런 소문 덕분인지 귀족들은 그녀를 딱히 다음 황제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우란은 시즐리를 처음 본 그날 알아차렸다.

   그녀가 하는 모든 행동은 연기임을 말이다.

     

   그것도 어른마저 속일 정도의 고도의 연기였다.

     

   그것이 고작해야 4살.

   시즐리는 4살이라는 나이에 세상을 읽고 있었다.

     

   ‘무서운 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너무 똑똑했기에 하우란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다.

     

   시즐리는 현실을 무척이나 잘 알았다.

     

   자신이 황제가 되고자 한다면 너무 많은 혼란이 일어난다는 것부터 시작해.

   황가에 남아 있으면 자신의 신변이 위험할 거라는 것까지 그녀는 전부 꿰뚫어 보았다.

     

   그러니 그녀는 말괄량이 막내 황녀로서 황가에서 멀어졌다.

     

   ‘그 이후로 4황녀님은 더 이상 황가에 돌아오지 않을 거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최근 그녀의 행보는 무척이나 많이 바뀌었다.

     

   황제가 병들었다는 말이 귀족들 사이에 은연중 퍼져 있던 도중.

   라헬른 아카데미를 다니던 시즐리가 대뜸 황가에 돌아왔다.

     

   그녀는 천황과 접촉하더니 이내 병든 황제와 자리했고.

   얼마 안 가 황제는 완전히 회복한 모습으로 다시금 나타났다.

     

   그리고 그 과정 도중 제국에서 익시온이라는 세계 침식자 집단이 감히 시즐리를 납치하려 했었다.

     

   그때 우연한 이유로 제국에 들렀던 크라슈가 시즐리를 구했고, 황제는 그런 크라슈의 영웅적 행보에 감탄하며 영웅으로 칭했다.

   거기에 그를 무려, 시즐리의 약혼자로 선포했다.

     

   마치, 물 흐르듯이 순식간에 벌어진 대사건.

     

   하우란은 이 사건이 발표된 것과는 달리 생각보다 여러 이해관계가 섞여 있음을 눈치챘다.

     

   하우란은 이에 관해서는 깊게 파지 않았다.

   깊게 파봤자 하우란으로서 얻는 건 황가의 눈총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우란이 침묵하던 그때.

   시즐리가 첩자 건으로 크라슈와 함께 방문했다.

     

   시즐리의 방문을 보고, 하우란은 처음에는 그녀가 그저 자신의 약혼자인 크라슈에게 딸인 하링을 이어주려 하는 걸 경고하러 온 줄 알았다.

     

   그러나 시즐리가 방문한 후.

   하우란은 무언가 찝찝한 기분을 느꼈다.

     

   첩자를 찾으러 온 시즐리의 행동은 생각보다 굼떴다.

   마치, 무언가 때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을 본 하우란은 개인적으로 정보원을 풀었다.

   라그렌은 제국 소속이긴 하나 제국이란 언제 칼이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은 법.

     

   그러니 하우란은 시즐리와 관련된 정보를 파보았다.

     

   그리고 하우란은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3황녀님을 결정적으로 몰락시킨 건 4황녀님의 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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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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