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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7

       숨이 막힌다.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건가?

       

       처음에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워낙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였으니까.

       

       로테는 손을 들어올려 파들거리는 눈매를 꾹꾹 눌렀다.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너무 떨려서,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동생, 저번에 수군에게 듣지 않았니? 호천에게 복부를 관통당했던 이후로 수명이….”

       “그래, 줄었지. 3개월 정도.”

       

       호천 길라흐.

       

       에테르는 그 자식의 갈고리에 꿰여 죽을 뻔했다. 로테는 로즈마리의 스코프를 통해 그 광경을 실시간으로 지켜봤었다.

       

       다행히 전세가 역전되어 어떻게든 그를 무찌르는 데 성공했지만, 그 뒤로 에테르는 2주간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딱 그게 끝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로테는 파스모의 부하에게 임사 상태까지 갔다가 겨우 살아났다. 어떻게 살아났는지는 자신도 정확히 모르지만,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는 넘어갔다. 

       

       1분 전까지만 해도 그 모든 것이 여신께서 내린 기적이요, 호의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또한 아니었다.

       

       모든 것에는 대가가 있었다. 에테르는 로테 자신을 살리는 대가로 여신에게 남은 수명을 지불한 것이다.

       

       “수군이 그러더라. 거기서 수명만 안 날려 먹었어도 내년 봄까진 살았을 거라고.”

       

       현재 10월 중순.

       

       앞으로 최대 한 달 반.

       

       그만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에테르를 평생 볼 수 없게 된다.

       

       ‘아닐 거야.’

       

       필사적으로 부인해 보지만, 머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정령왕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으니까.

       

       이것은 지고지순한 진리다. 여신의 대언자인 정령왕들이 거짓을 고한다면, 세상의 어디가 진실된 곳이란 말인가?

       

       ‘아닐 거야. 아닐 거야. 아닐 거야…….’

       

       형용할 수 없는 압박감이 몰려온다.

       

       로테는 숨을 쌕쌕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투욱.

       

       떨어뜨린 쇼핑백이 재수 없게 발에 채고 만 것은 그때였다.

       

       “……!”

       “뭐야, 누구 있어?”

       

       에테르가 지팡이를 짚으며 일어났다.

       

       방향은 당연히 이쪽이다.

       

       들킨다.

       

       무조건 들킨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떻게 하면 좋지?

       

       고민은 길지 않았다.

       

       로테는 쇼핑백 세 개를 챙겨 양손에 들었다. 도망치는 대신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탁.

       

       심호흡을 하고는, 한층 결연해진 표정으로 모퉁이를 돌았다.

       

       예상대로였다.

       

       에테르의 얼굴은 멍청하게 변해있었다.

       

       “……네가 여기서 왜 나와?”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난데없이 앞에 나타난 건 정부 부처 인사도, 정령왕도 아닌, 자신의 친구였으니까.

       

       로테 살리에르. 에테르의 베스트 프렌드나 마찬가지인 소녀였지만, 이번 마왕 토벌전의 주역은 아니었다.

       

       만약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정식 마도사가 되었더라면.

       

       그랬더라면 진작 일선에서 큰 활약을 했겠지만, 원자폭탄이 마왕군 수중에 들어가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제국은 예정보다 일찍 멸망했고, 세계는 방사능 퍼레이드에 휩싸였다. 이런 상황에선 졸업은커녕 공부도 할 수 없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로테는 이곳 정부 기관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다. 오히려 일반 시민들처럼 기다리는 입장이어야 한다.

       

       하지만.

       

       “너, 보려고, 왔는데.”

       

       친구가 친구를 만나는 데 이유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것 하나 안 되니…?”

       

       목소리가 가늘게 떨린다. 그것이 너무나 처량해서, 에테르는 다음에 할 말을 그만 잃어버리고 말았다.

       

       들켰다.

       

       망했다.

       

       이걸 어떡하지.

       

       “…….”

       

       표백제를 뿌린 것처럼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된다. 문득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번개가 꽈르릉, 하고 치는 소리였다.

       

       “……왜 숨겼어?”

       

       잠시간의 침묵 끝에, 로테가 꺼낸 말이었다.

       

       에테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가 없었다.

       

       “대답해 줘. 왜 숨겼는지.”

       

       저벅.

       

       그녀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기세에 짓눌린 에테르가 도리어 뒷걸음질을 쳤다.

       

       그렇게 몇 발자국씩, 간격을 유지하며 물러나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말았다.

       

       “너……. 설마.”

       

       로테의 눈시울이 점점 벌게진다.

       

       “이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거야?”

       “오, 오해야.”

       

       에테르는 허둥지둥하며 넘어진 다리를 일으켰다.

       

       일으키려 했다.

       

       “윽.”

       

       무릎에 힘이 안 들어간다. 정령이 된 것처럼 몸이 둥실둥실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로테의 안색이 더욱더 어두워졌다.

       

       “아, 이… 그게…….”

       

       에테르가 손사래를 치며 기겁했다.

       

       “나, 멀쩡해. 정말이야. 응? 이것 봐, 방금 건 그냥 넘어진 거… 으윽……!”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려던 찰나.

       

       픽, 하고 신체가 거꾸러졌다.

       

       “에테르!”

       

       로테가 화들짝 놀라며 쇼핑백을 내팽개치고 달려들었다. 에테르는 얼떨결에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걸음을 뗐다.

       

       그렇게 반쯤 공주님 안기를 당한 채 소파로 이송된 에테르.

       

       “…하아.”

       

       옅게 한숨을 쉬며 사고를 팽팽히 돌리기 시작했다.

       

       로테에게 들킨 것도 문제인데,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컨디션이 악화되고 말았다.

       

       이젠 정말 타임어택이다. 올겨울이 지나가기 전에 마왕을 토벌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몸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

       

       “에테르.”

       

       

       로테는 에테르의 다리를 일자로 놓은 뒤 마사지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시울이 가랑비에 옷 젖듯 눅진눅진해졌다.

       

       한동안 다리를 주물럭거리던 로테.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나 때문에 그런 거지?”

       “……뭐, 뭐가.”

       “내가 한 번 죽어서, 나를 살리려고.”

       

       로테는 희미하게 웃었다.

       

       울면서 웃었다.

       

       “고마워.”

       “…….”

       “그런데, 이런 건 싫어.”

       

       로테가 쇼핑백을 내려놓고는 에테르의 옷깃을 붙잡았다.

       

       하나는 케이크, 하나는 이슬 어린 버블티, 마지막 하나는 겨울 신상 코트. 전부 그녀가 내려놓은 쇼핑백에 들어있는 물건이다.

       

       에테르는 그것들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피곤에 겨워 눈을 슬쩍 감았다.

       

       “싫단 말이야….”

       

       툭, 하고 가슴팍에 양감 어린 물체가 닿는다.

       

       품 안에서 색색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뜨거운 숨바람이 셔츠를 후비고 들어왔다.

       

       할 말은 많았다. 하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다 들켜버렸으니까. 이 이상 거짓말을 했다간 혼날 테니까. 좋지 못한 추억만 쌓고 떠날 수는 없으니까.

       

       그랬기에.

       

       “……로테, 너까지 죽지는 마.”

       

       진실도, 거짓도 아닌 부탁을 말한다.

       

       “흐윽, 흐으윽…! 흐아아으윽……!!”

       

       힘겹게 짜낸 말과는 반대로, 친구의 대답은 말라 비틀어질 줄 모르고 줄줄 흘러나왔다.

       

       가을인데.

       

       건조한 가을인데, 날씨가 눅었다.

       

       그래서 이날, 에테르는 셔츠를 세 번이나 갈아입어야 했다.

       

       

       **

       

       

       로테는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눈물을 짜내고 짜내고 또 짜내다가, 도저히 안 나와서. 반쯤 탈수된 상태로 가로등을 거닐어 여기까지 왔다.

       

       “딸.”

       “…….”

       “진정되면 나중에 얘기하자.”

       

       덜컹, 하고 문이 닫혔다.

       

       로테는 방 안에서 다시 한 시간을 웅크린 채로 있었다.

       

       – 너까지 죽지는 마.

       

       만약 에테르가 사라지면, 자신도 덩달아 사라질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으니 따라 죽을 수가 없게 되었다.

       

       “흐.”

       

       생각해 보면 웃기는 일이었다.

       

       제아무리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고, 룸메이트로 수개월을 같이 살고, 늘 붙어 다니며 공부까지 함께 했었던.

       

       그저 그 정도가 전부인, 친한 친구일 뿐인데.

       

       왜 그런 친구가 곧 있으면 죽는다고 말하자마자 같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어지는 것일까?

       

       정말이지, 왜 그런 것일까….

       

       혹시, 사랑해서?

       

       ‘아닐 거야.’

       

       로테는 여자다. 에테르에게 그렇고 그런 감정은 들지 않는다.

       

       다른 가능성을 찾아보기로 했다.

       

       혹시 병일까?

       

       ‘…그럴지도.’

       

       오래전부터 정신병을 앓았을지도 모른다. 조울증이라든가, 그런 거.

       

       아니면 극단적인 성격을 타고났을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온실 속 화초처럼 편하게 자라서 느끼지 못했을 뿐.

       

       ‘모르겠어.’

       

       왜 이리도 슬픈 건지 모르겠다.

       

       물론 친한 친구가 죽는다는데 슬퍼야 하는 건 맞지만,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가슴이 미어터지는 건 문제가 있었다.

       

       단순히 사춘기가 늦게 찾아온 것일까?

       

       아니면 남들보다 감수성이 풍부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답이 안 나와서, 로테는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일리야드 아카데미로 산책을 나섰다.

       

       우선 오솔길을 따라 아카데미를 한 바퀴 돌았다.

       

       차가운 밤공기가 달갑지 않았다. 밤하늘에 수놓인 별도 예쁘지 않았다.

       

       그나마 어여쁜 것이 하나.

       

       정령왕.

       

       “…정령왕?”

       

       세계수가 보이는 풍경 앞 벤치. 그곳에서 물빛 머리카락을 지닌 이형의 존재가 고개를 들어올린 채 하늘을 감상하고 있었다.

       

       “시큐엘 님?”

       “어머.”

       

       기품 넘치는 드레스가 사락, 하고 움직인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순수한 물에 가까운 존재. 하지만 그 모습은 영락없이 도회적인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물의 정령왕, 시큐엘. 그녀가 로테를 발견하고는 눈웃음을 지었다.

       

       “물의 정령왕께서 이런 곳에는 어찌…….”

       

       로테를 발견한 시큐엘이 명치를 꾹 누르며 쓰게 웃었다.

       

       “이젠 정령왕이 아니게 됐거든요.”

       “……?”

       “모종의 사건이 있어서요. 얼마 전 일선에서 물러났답니다. 그러니 지금은 평범하디 평범한, 과년한 처녀에 불과해요.”

       “시큐엘 님이 내려오셨다니…. 다음 물의 정령왕은 누가 하는 거죠?”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에요. 대정령 중에서 여신님이 점지하신 아이가 될 테니까요.”

       

       많은 사람이 모르는 사실이지만, 정령왕도 몇백 년 주기로 교체된다.

       

       “저는 이 전쟁까지만 보고 영면에 들 예정이에요. 쓸모가 없어진 데이터는 공간만 낭비할 뿐이죠.”

       “데이터……?”

       “그런 게 있어요. 정령들만 아는…. 자, 밤공기가 추우니 나머지는 들어가서 얘기할까요?”

       

       로테는 귀신에 홀린 것처럼 시큐엘을 졸졸 따라갔다. 

       

       시큐엘은 가끔가다 명치를 매만지며 신음을 흘렸다. 로테가 물어보았으나 묵비권을 행사하겠다며 말해주질 않았다.

       

       그보다는, 눈앞에 있는 정령왕이 곧 사라진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래도 생각보다 멀쩡해 보이시는데….”

       “겉이 멀쩡하다고 속이 좋은 건 아니죠. 그래요, 마치 살리에르 양의 친구처럼 말이에요.”

       “……!”

       “그것 때문에 심란해서 산보 나온 것 아닌가요?”

       

       로테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정곡이었다.

       

       “네, 맞아요.”

       

       대화 주제가 자연스럽게 에테르로 빠졌다.

       

       로테는 이쯤에서 알아차렸다. 시큐엘이 여기 나타난 건,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고.

       

       “혹시, 전부 알고 계셨나요?”

       “당연하죠.”

       “왜 귀띰해 주시지 않으셨나요?”

       “상천이 함구해 달라고 부탁했으니까요.”

       

       로테의 입에서 아,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쉬움, 초조함, 슬픔, 무력감, 죄책감.

       

       여러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정령들 사이에선 이런저런 불문율이 있거든요. 이런 건 인간에게 말하면 안 된다, 저런 건 절대로 알려줘선 안 된다….”

       

       천기누설.

       

       여신에게 닿지 못한 자라면 그 누구도 알아선 안 되는 세상의 백엔드.

       

       “하지만!”

       

       시큐엘이 후후 웃으며 로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렇게 된 몸, 아주 살짝! 살짝만 알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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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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