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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8

    미니 사신 정원. 우유 빙수 설원.

    황금 사신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유령 오브젝트가 그곳에서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여기는 어디지.’

    ‘나는 누구일까.’

    ‘모르겠어.’

    유령 오브젝트는 마치 방금 태어난 것처럼 모든 것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상태였다.

    그래서 자신과 세상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미니 사신 정원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황금 사신들이었다.

    ‘유령!’

    ‘찾기!’

    황금 사신들은 차가운 설원 위에 조그마한 발자국을 남기면서 뚜방뚜방 걸어 다녔다.

    ‘저 황금색 오브젝트와 약하게나마 이어져 있어.’

    유령 오브젝트는 자신과 황금 사신 간의 희미한 연결과 동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황금색 사신 안에서 따뜻한 태양처럼 빛나는 끝없는 애정의 불꽃을 보았다.

    ‘그럼 나도 저런 황금색 오브젝트인 걸까?’

    유령 오브젝트는 그런 의문을 품은 채, 우유 빙수 설원을 벗어났다.

    설원을 꼼꼼히 뒤지고 있는 황금 사신을 피해 핫초코의 바다에 들어서자, 바다 위에 둥실둥실 떠오른 과자집을 발견했다.

    그 조그마한 과자집 안에는 푸른 사신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핫초코의 바다에는 엄폐물이 없어서, 그렇게 푸른 사신과 유령 오브젝트는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유… 유령!>

    굉장히 깜짝 놀란 것처럼 보이던 푸른 사신은 <이… 이곳에서 도망가게 해주세요!>라는 문구만을 남기고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저 푸른색 오브젝트와도 미약한 연결이 느껴져.’

    유령 오브젝트는 푸른 사신과의 연결과 함께, 희미하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상냥함의 불꽃을 보았다.

    ‘나는 황금색 오브젝트? 아니면 푸른색 오브젝트?’

    유령 오브젝트는 푸른 사신을 보고 나자, 자신의 정체가 더욱 혼란스럽게 느껴졌다.

    ‘나도 황금색 오브젝트나, 푸른 오브젝트처럼 따뜻한 오브젝트였으면 좋겠네.’

    유령 오브젝트는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하며, 젤리 밀림 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

    그리고 유령 오브젝트는 숲의 그늘 속에서 상냥한 표정으로 하늘을 둥실둥실 떠다니는 주황 사신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 상냥한 표정과 달리, 주황 사신의 내면에는 괴롭히고 싶어 하는 어두운 마음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오늘은 푸딩 사신의 푸딩을 몰래 뺏어 먹어야지.]

    경험이 부족해서 유령 오브젝트는 주황 사신의 마음을 제대로 해석하진 못했지만, 대충 의미는 알 수 있었다.

    [약한 오브젝트의 소중한 물건을 훔쳐 가겠다!] 라니, 약자를 괴롭히는 정말 끔찍한 오브젝트였다.

    더욱 끔찍한 점은 주황 사신과도 연결과 동질감을 느꼈다는 점이었다.

    유령 오브젝트는 왠지 자신의 정체를 확인하는 것이 조금 무서워졌지만,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어 떨쳐내고 다시 길을 나섰다.

    그렇게 마시멜로가 가득한 평원에 도착하자, 강렬한 끌림이 느껴지는 오브젝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편안한 자세로 바닥에 누워 잠들어 있는 회색 사신이었다.

    ‘지배자? 창조주?’

    ‘아니. 엄마!’

    신기하게도 회색 사신을 보는 순간, 유령 오브젝트는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았다.

    둥실둥실 떠서 가까이 다가가자, ‘엄마’의 주변에는 형형색색의 미니 사신들이 같이 잠들어 있었다.

    ‘엄마’는 악몽을 꾸는 건지,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 희미한 의지를 흘렸다.

    ‘일하기 싫어.’

    ‘미니 사신들이 외신들을 다 죽여주면 좋을 텐데….’

    그 의지를 듣는 순간, 유령 오브젝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엄마가 힘들어하고 있어!’

    ‘엄마를 대신해야 해!’

    <신좌를 대신 짊어져야 해!>

    유령 오브젝트는 노란색 눈동자를 불태우며 천천히 회색 사신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

    폭! 폭! 폭!

    갑자기 이마를 누가 건드리는 기분이 들어서, 잠에서 깨보니 수상하게 생긴 오브젝트가 내 이마를 칼로 찌르고 있었다.

    그것도 평범한 오브젝트가 아니라, 장작을 가진 미니 사신이었다.

    게다가 완전히 처음 보는 녀석이네.

    ‘달’이 아니더라도 ‘달’급이면 미니 사신이 생기는 건가?

    아니면 그 하얀 녀석이 나랑 비슷한 능력을 사용했기 때문일까?

    눈을 감은 채 조용히 관찰하고 있었더니, 잔뜩 흥분한 미니 사신이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왕위를 계승하는 중입니다. 엄마!’

    칼로 나를 찌르는 것도 수상한데, 저런 소리까지 하다니….

    나는 그 순간 눈을 뜬 뒤, 새로운 패륜 사신을 손아귀에 붙잡고 칼을 빼앗아 버렸다.

    ‘앙대! 내 효도가!’

    칼을 빼앗자, 새로운 패륜 사신은 버둥거리며 원통한 의지를 흘렸다.

    얼마나 억울한지, 눈물을 찔끔 흘릴 정도였다.

    ‘효도? 설마 효를 하는 칼이라는 뜻인 건가?’

    도대체 이게 왜 ‘효’지?

    그리고 버둥거리는 미니 사신을 자세히 관찰하니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외형을 하고 있었다.

    새하얀 유령.

    피처럼 붉은 흔적.

    보자기처럼 생긴 유령.

    ‘아, 이게 그건가. 설원의 유령?’

    황금 사신의 새로운 탐험 목표인 ‘유령’으로 보였다.

    ‘이 칼은 압수야.’

    나는 유령 사신이 들고 있던, 고무로 만든 것처럼 말랑말랑한 칼을 압수했다.

    말랑말랑해서 아프진 않지만, 이상하게 이 칼에 찔리면 기분이 나쁘단 말이지.

    나중에 안뜰에 가서, 미니 하마한테 선물로 줘야지.

    히히.

    ‘앙대!’

    패륜 유령 사신이 슬프게 우는 꼴을 보니,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

    송파구 인근, 제임스 타워.

    회색 사신이 하늘을 갈라버린 지, 며칠.

    이제서야 한가해진 제임스는 개인 숙소 의자에 눕듯이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드디어 끝났군.”

    황금 사신은 짙은 피로감을 담은 제임스의 목소리를 듣자, 제임스의 어깨 위로 올라와 잘했다는 것처럼 토닥거렸다.

    그리고 제임스는 따뜻한 커피를 마시려고 컵을 살짝 들어 올려 조금 마셨지만, 컵 속에 들어있던 것은 커피가 아니라 전혀 다른 음료였다.

    짙은 풍미와 부드러운 감촉, 그리고 엄청난 단맛의 ‘핫초코’였다.

    마치 입안이 자연스럽게 코팅되는 듯한 핫초코의 맛은 제임스에게 꽤 익숙한 것이었다.

    미니 사신 정원의 핫초코였으니까.

    깜짝 놀란 제임스가 컵을 내려놓고 황금 사신 쪽을 돌아봤지만, 황금 사신은 히히 웃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독약을 치우고, 맛있는 거 가져다 놨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조금 웃음이 나왔다.

    “그래, 이럴 땐 핫초코도 괜찮겠지.”

    제임스는 피식 웃으며, 다시 핫초코를 천천히 마셨다.

    제임스는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TV 소리를 배경음으로 해서, 천천히 생각에 잠겼다.

    ‘0호 유물에 나온 것처럼, 회색 사신이 일곱 가지 색의 달을 모두 모았다.’

    제임스는 꽤 오래전의 기억을 되짚었다.

    제임스와 미국에는 사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오브젝트 사태를 돌파할 방법으로 0호 유물과 회색 사신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오브젝트 사태의 ‘유일한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검은 복면인’들, 일명 ‘닌자’들을 선택하느냐의 선택지가 존재했다.

    그 선택의 기로는 ‘불변하는 검은 공’에 대한 입장차이였다.

    불변구를 회색 사신에게 절대로 접촉시키지 말라는 복면인들.

    그리고 접촉시키는 미래가 그려진 0호 유물.

    결국 선택한 것은 수상쩍은 검은 복면인들이 아니라 회색 사신이었다.

    ‘그나저나 지금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군.’

    복면인들은 제임스와 미국이 다른 길을 선택하는 순간, 사라져 버렸으니까.

    그리고 그들의 수장과 주기적으로 주고받던 연락도 끊어져 버렸다.

    그 모습이 왠지 뭔가를 기다리는 것만 같아서, 꺼림칙했다.

    그때 TV에서 또 다른 사건이 벌어졌음을 알려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전국 곳곳에서 이상한 물건들과 폐허가 된 건물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마치 중세나 판타지 세계에서나 볼 법한 시대착오적인 물건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갑자기 출현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데요.]

    [한국 오브젝트 협의회는 공식 발표를 통해 이러한 현상을 ‘오브젝트 현상’으로 규정했습니다.]

    [아직 정확한 원인과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기에, 시민 여러분께서는 발견된 물건이나 건물 근처에 함부로 접근하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현재 정부와 관련 기관에서는 오브젝트 현상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으며, 시민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고 대응책을 마련 중입니다.]

    [한국 오브젝트 뉴스에서는 오브젝트 현상과 관련된 추가 정보가 있는 대로 신속히 보도해 드리겠습니다. 시청자 여러분의 관심과 제보 부탁드립니다.]

    “쉴 틈이 없군.”

    제임스는 마구 울리고 있는 전용 통신 장치를 내려다보며, 핫초코를 한 번에 다 비워버렸다.

    장치 위에는 메시지 내용의 일부가 표시되고 있었다.

    <현재 벌어지는 공간 접합 사태는 0호 유물에 적혀 있던 현상으로 보인다. 빠른 회신 필요.>

    ***

    늦은 밤, 서울숲 깊숙한 곳.

    회색 사신이 미니 사신들에게 맡기고 떠난 강철탑 인근.

    뚜방뚜방.

    검은 사신들이 물로 만든 길쭉한 창을 들고, 강철탑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강철탑을 감시하는 검은 사신 보초병이었다.

    원래 강철탑을 감시하는 것은 황금 사신들에게 맡겨진 과업이었지만, 황금 사신은 밤이 되면 잠들어버려서 검은 사신이 대신 야간 감시를 하고 있었다.

    삐! 삐! 삐!

    마치 군대에서 호흡을 맞추듯이 삐 소리를 흘리며 뚜방뚜방.

    그때 하늘에서 거대한 금속 덩어리가 떨어져 내렸다.

    삐?!

    금속 덩어리에 깔린 검은 사신이 그 밑에서 기어 나오며 위를 올려다보자, 강철탑이 점점 뒤틀리며 조각조각 부서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서울 숲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서울숲을 압도하는 존재감으로 우뚝 서 있던 강철탑이 서서히 형태를 잃어가며 붕괴했다.

    마치 거대한 거인이 무릎을 꿇듯이, 강철탑은 천천히, 그러나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

    이 광경에 검은 사신들은 굉장히 놀라서 머리 위로 느낌표를 마구 만들어 냈다. 

    그 순간, 무너진 잔해 사이로 검은빛이 하늘로 치솟았고 그 끝에는 불길한 기운을 풍기는 검은 별이 나타났다.

    이 검은 별은 마치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징조처럼 보였다.

    ‘엄마를 불러야 해!’

    검은 사신은 ‘큰일이야!’라고 의지를 뿜어내며, 강철탑 근처를 허둥지둥 마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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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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