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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8

       복지시설에 보내는 기부품과 자취생 방에 들고 가는 집들이 선물 사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쌀, 생수, 라면, 휴지 같은 생필품이 선호된다는 것이다. 굳이 상대의 궁핍한 생활에 대해 질문하지 않아도 상대에게 꼭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것들은 유용했다.

         

       그러나 그것들이 복지시설의 기부품으로 선호되는 데에는 집들이 선물과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것들은 부피가 크고 쌓기 편했다. 라면 몇 상자, 쌀 몇 포대, 두루마리 휴지 몇 세트와 생수 몇만 원어치만 있으면, 여러 사람이 그 앞에 서서 지역 신문의 사회면에 싣기에 적합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 병풍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그들이 행사를 마치고 다 함께 먹으러 가는 식당의 밥값보다 저렴하다는 점에서 경제적이었다.

         

       허수아비가 보육원에 있던 시절, 저런 기부품이 들어올 때마다 그의 친구인 깡통은 위와 같은 말을 써가며 빈정거리곤 했었다. 그의 시선은 삐딱하긴 했지만, 현실을 꼬집고 있었다. 우리가 기부받은 라면으로 식사를 하는 동안, 원장 선생님은 그 기부자분들과 함께 한방 백숙집이나 한우 숯불구이 집에서 식사하고 오곤 했다.

         

       그렇다고 시설에 들어오는 기부에 저런 생색내기 수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종종 거액의 액수를 조건 없이 넘기겠다는 독지가들도 있었다. 그럴 때도 깡통은 탈세가 목적이라는 둥, 사이비 종교에 호구가 잡혔다는 둥 빈정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물론 뒤의 말까지 내뱉고 난 다음이면, 그는 친구인 허수아비의 눈치를 살피고 입을 다물었다. 그 호구 잡힌 인물 중에는 바로 허수아비의 부모도 있었기 때문이다.

       

       허수아비는 공양미 300석을 절에 시주한 심청이에게 불교에 뜻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버린 것은 소경이었던 아버지의 눈을 뜨이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부모가 잘 운영하던 사업체를 교회 사람에게 맡기고는 지저분한 작업복을 입은 채 산골의 건설 현장에서 숙식하며 일한 것도 그래서였다. 두 분은 팔도 다리도 없이 태어난 자식에게 멀쩡한 몸을 주겠다는 목사의 약속을 믿었다.

         

       두 분은 수십억 원의 자산을 모두 성전 건설에 가져다 바친 것도 모자라 직접 벽돌을 나르고 시멘트를 발랐다. 옛날이야기와 다른 것은 그 이후였다. 그분들은 심 봉사와 달리 살아서 다시는 자식을 보지 못했다. 두 사람은 성전의 완성을 코앞에 두고 인부들의 숙소에서 난 화재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가 진실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어릴 적, 그는 다른 아이들처럼 부모님이 자신을 버린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자신같이 쓸모없는 인간을 거두어주고 길러준 전능교의 은혜에 감사했었다.

         

       ‘원더스타인 단장님은 제 목숨을 구해주셨는걸요?’

         

       아나이스 베르그송. 자신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던 귀족 여인은 그녀를 죽이고 상회를 뺏으려 한 조직의 수장이 자신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러면서 은혜 운운하는 꼴이란……. 그녀는 멍청했던 과거의 자신을 떠오르게 했다.

         

       그렇다고 그녀의 접근을 피한 것이 꼭 개인적인 감정에 의한 것만은 아니었다. 메인 퀘스트 공략을 위해서도 그녀와 거리를 두는 게 맞았다.

         

       그녀는 부두교 측과 강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었다. 부두교의 수장은 원더스타인이었지만, 실질적으로 조직을 이끄는 자는 세 마녀 중 한 명이자 부교주인 ‘토끼 마녀’였다.

         

       세 마녀는 원작에서 원더스타인과 대등한 존재들로 표현됐다. 그녀들의 성격은 각자 달랐지만, 다들 원더스타인에게 집착한다는 점은 비슷했다.

         

       엮이면 귀찮아질 게 뻔했다. 실제로 재판 건으로 이미 한 번 공격받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는 그녀와 거리를 두려 했다. 그게 서로에게 안전한 일이라고 여겼다.

         

       물론 그녀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게임 안에서 발견한 그녀의 일기장에 그렇게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눈치로는 그녀가 자신에게 이성으로서 호감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고, 그렇게 처음부터 철벽을 치지도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그의 거리두기 작전은 성공해서 장미 풍차 카바레 이후로 그녀와 더 엮일 일은 없어 보였다. 실제로 예테린푸르크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그녀가 보내는 편지의 내용이 사무적으로 변했다.

         

       그러나 며칠 전, 벤 설리반이 그에게 가져다준 ‘선물’은 그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자신과 편지를 주고받은 대상은 진짜 아나이스가 아니었다. 그것은 부두교에서 파견한 도플갱어였다.

         

       도플갱어가 상대의 정신까지 완전히 복사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준비 작업이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것은 고작 피에르의 배신 이후로 서너 달 만에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원더스타인은 그에 대해 설리반에게 우회적으로 질문했고, 그는 원더스타인이 3년 전에 그녀의 몸을 조사해두라는 명령을 내렸던 것을 저들이 이용한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 3년 전이라는 것은 바로 아나이스의 아버지인 전대 베르그송 자작이 죽은 직후였다. 그 순간, 원더스타인의 머릿속에서 원작에서 얻었던 정보가 재배치되었고, 그는 그녀의 서사에 대한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부두교는 세력을 펼치기 위해 자금과 유통망이 필요했었다. 그래서 그들은 베르그송 자작에게 협력을 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거부했고 아마 살해당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사고’라고 하지만, 그런 ‘사고’로 부모를 잃어 본 그가 보기에 그것은 부두교 측의 짓이 분명했다.

         

       그렇게 제랄 베르그송을 제거한 부두교는 상회를 장악하기 위해 피에르에게 손을 뻗치는 한편, 아나이스를 도플갱어로 대체할 준비를 했을 것이다. 안 그랬다면, 3년 전부터 그녀의 몸을 조사할 이유가 없었다.

       바이오맨서의 힘을 지닌 원더스타인이 고작 그녀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몇 년이나 공을 들였을 리 없었다. 실제로 자신은 손 한 번 대는 것만으로 그녀를 멀쩡하게 고칠 수 있었다.

         

       그러나 부두교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나이스가 가진 재능은 훨씬 뛰어났다. 그녀의 도플갱어가 준비되기도 전에 그녀는 피에르의 부정을 발각하고 말았다. 부두교가 보기에는 자칫 잘못하면 수년에 걸쳐 구축한 유통망이 모두 날아가게 생긴 것이다.

         

       그 시점에서 원더스타인은 그녀를 다른 방식으로 조종하기 위해 움직였을 것이고, 피에르는 자기 나름대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암살을 염두에 두고 저택을 찾았을 것이다. 그것이 TT0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그 첫 번째 퀘스트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일이 꼬이고 말았다. 원작에서는 암살을 포기하고 물러났던 피에르가 여기서는 암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말았고, 부두교는 아나이스에게 완전한 적으로 상정되고 말았다.

         

       당연히 그녀는 상회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부두교를 파헤치고 다녔고, ‘토끼 마녀’는 원더스타인의 비호를 받고 설치는 그녀를 제재하기 위해 도플갱어를 움직인 것이다. 그 작전을 시작한 타이밍은 그가 그녀의 곁을 떠난 직후였다.

         

       “정말 뜨거운 물이 땅에서 나온단 말이에요?”

       “이상하네! 우리 동네 지하수 팔 때는 항상 물이 차가웠는데…….”

       “그러니까 화산 뿌리가 땅 아래에서 물을 끓였다고 보면 돼!”

         

       현재 괴물 서커스단은 보르조미 지방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원래 대륙횡단철도의 본선을 따라 내륙으로 더 들어갈 예정이었던 그들은 며칠 전, 단장의 제안에 따라 동부 지선을 타고 온천 도시인 보르조미에 머물렀다 가는 것으로 일정을 바꿨다.

         

       그들은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잔뜩 들떠 있었다. 소문으로만 들어본 온천이라는 것이 기대되는 것도 있었고, 고된 강행군 끝에 휴식을 취하는 것이 반갑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모두가 함께 객실에 둘러앉아 가는 것이 즐거웠다.

         

       그동안 괴물 단원들은 랫맨들과 함께 ‘인간 외 지성체’로 분류되어 화물칸을 타고 가야 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그들은 인간 단원들과 함께 당당히 객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것 역시 <크리스티앙 가이드>의 12월호에 실린 기사 덕분이었다.

         

       물론 다른 손님들과 섞일 수는 없었기에 그들은 객차 하나를 통째로 전세 내야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예전보다는 훨씬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과 같은 대접받는 것이 그들은 제일 반가웠다.

         

       원더스타인은 즐거워하는 그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구석에 다리를 뻗고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마야를 보고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

       

       괴물 단원들이 자신이 좋게 운명을 바꾼 예라면, 그녀는 자신이 나쁘게 운명을 뒤튼 예였다. 원래 역사대로라면 아르노의 지도에 따라 재능을 개화해서 대마법사의 반열에 올랐을 그녀를 자신은 재능도 썩히는 것도 모자라 하반신도 불구로 만들고 말았다.

         

       과연 자신이 현실로 돌아가기 전에 그녀의 몸을 원래대로 만들 수 있을까?

         

       원더스타인은 잠시 숨을 골랐다가 열차 구석에 앉아 있는 텁석부리 장한을 바라봤다. 며칠 전에 서커스단에 새로 들어온 설리반은 클라라와 무언가 열심히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원더스타인은 그에 대해서는 괴물 서커스의 명성을 듣고 입단을 위해 찾아온 사람이라고 단원들에게 대강 설명했다. 그는 설리반에게 서커스단 안에서는 철저히 곡예사로 지낼 것을 당부했고, 그 역할에 대해선 참모인 클라라와 상담해보라고 권했다. 덕분에 그는 며칠 사이에 그녀와 제일 친해진 듯했다.

         

       그가 가져온 정보에 따르면, 아나이스는 현재 부두교의 마도사들에게 추적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 정도는 자신이 개입한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감히 그들도 원더스타인을 거역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토끼 마녀가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가 문제였다. 물론 그녀는 사신보다 강하지는 않았다. 그냥 서로 주먹을 맞부딪히는 거라면 충분히 겨뤄볼 만했다. 그러나 그녀에겐 강대한 세력이 있었다. 그걸 이용해 자신을 방해하려 든다면, 그것이 문제였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변수가 발생할 것이다.

       어쩌면 메인 퀘스트가 실패할지도 모른다.

         

       원더스타인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가 다시 마야를 바라봤다.

       자신 때문에 운명이 뒤틀린 아이가 저곳에 있었다. 만약, 메인 퀘스트 조건에 죄 없는 사람을 불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게 있었다면, 자신은 그것을 하겠다고 나섰을까?

         

       원더스타인은 그 질문에 대해서는 바로 답할 수 있었다. 덕분에 아나이스에 대한 고민 역시 자연스럽게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자신은 책임을 져야 했다. 아나이스를 구해야 했다. 그리고 그녀의 삶을 온전히 돌려줘야 했다. 그 과정에서 부두교와 부딪히게 된다면……싸울 생각이었다.

         

       치익. 삐이익.

       증기를 토하는 기관차의 숨결이 평소보다 거칠었고, 선로를 긁는 바퀴의 마찰음도 평소보다 날카로웠다. 모두 세상을 온통 하얗게 덧칠한 이 고약한 날씨 때문이었다. 눈보라를 헤치며 8시간 동안 달린 기차가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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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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