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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8

     한 가지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전쟁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정정.

     이렇게 본격적인 전쟁을 경험하지는 않았다.

     회귀 전에 있었던 한 달 전쟁.

     그 때는 회귀 전 황제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련된 전쟁’이었다.

     아군 피해의 최소화.

     적 최고 전력의 회유.

     왕도 쾌진격 및 포위를 통한 왕국군 명령 체계 붕괴.

     수 년 전부터 아카데미에서 쌓은 교우관계 및 정보를 바탕으로 한 귀족들의 투항 유도.

     그 세련된 움직임에 똥칠을 한 게 무능왕이었기는 하지만, 적어도 그 모든 과정 전체는 전쟁사에 길이 남을 역대급 전쟁이었다.

     라고 제국의 역사학자들이 그렇게 말했다.

     당대 황제의 업적을 칭송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500년만에 그 누구도 못한 노스트럼 점령을 했는데 죽은 제국군 병사가 1천명도 되지 않았으니 얼마나 환호성을 내질렀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회귀전의 나는 본격적으로 전쟁을 경험해봤다고 하기에는 조금 문제가 있다.

     내가 가장 많이 경험해본 전투는 소위 ‘게릴라전’.

     망국의 공주, 나리아가 매국노 그레이를 상대로 노스트럼 전역에서 펼치던 혁명군의 게릴라전이 내가 가장 많이 경험해본 전쟁이었다.

     그나마 전쟁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체험해본다고 했다면, 황제가 가끔 백작가로 찾아왔을 때 체스를 두면서 전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정도.

     체스는 전쟁과도 같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전쟁은 양쪽 다 똑같은 기물을 가지고 싸우는, 선후공 차이의 유불리만 있을 뿐인 흑과 백의 기물전쟁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래도 그거라도 전쟁이랍시고 배운 것들이 있고, 나도 나름 모의전이라는 방식을 통해 전술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 결과.

     결론이 나왔다.

     “윈체스터 대공께서 대 제국군 전선에 대한 모든 전술을 총괄해주셔야겠습니다.”

     “내가?”

     “예.”

     전략과 전술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이가 지휘봉을 들 수 있게 지지하는 것이 나의 첫 번째 역할.

     “제국을 상대로 그간 교류를 해온 대표격인 모르가니아의 필두가 제국과의 전쟁에서 총지휘를 맡는다는 것만으로도 노스트럼의 귀족들은 힘을 합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구심점이 되라는 말이로군.”

     “예.”

     나리아는 갓 왕이 되었다.

     심지어 왕이 된 과정도 석연치 않다고 의혹을 내던질 수 있고, 귀족들 중에는 나리아와 성향이 맞지 않아 숙청당할까 실시간으로 걱정하기도 할 것이다.

     ‘애초에 지금 왕이 바뀌었고, 제국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걸 모르고 있을 수도 있어.’

     정보가 느려서 파발이 늦게 도착한 곳이라거나, 수정구를 이용한 통신마법을 제 때 수신하지 않은 귀족들은 지금쯤 ‘뭐?! 세인트 지오 왕께서 돌아가셨어!’라고 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공 각하께서 직접 전장을 누비셔도 됩니다. 최전선은 지브롤터가 맡을 것이며, 체스말로 쓰셔도 됩니다. 후방에서 지휘봉을 휘두르며 진격을 외치셔도 됩니다.”

     “나의 역할은 그야말로 ‘총사령관’이라는 건가?”

     “그렇죠.”

     구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아래에 있던 충성병자들.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의 아래에 뭉치게 될 새로운 권력자들.

     지브롤터와 같이 제국에 줄을 대고 부역하려고 하던 매국노들.

     “모든 이들을 아우를 수 있는 중간자가 바로 대공 각하십니다.”

     “그 역할,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하지.”

     회귀 전과 지금의 윈체스터 대공은 다르다.

     회귀 이전의 일을 이야기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윈체스터 대공의 몸에는 생명력과 의지가 넘쳐흐른다.

     ‘경룡이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은.’

     경룡장에서 보인 흑장미 용기병들의 추태 이후, 윈체스터 대공은 아카데미에서 직접 비룡들을 경주시키며 훈련을 해왔다.

     그것이 지금에 이르러서는 한 명의 꺾이지 않은 장년의 마스터, 특히 용기병이라는 점에서 너무나도 믿음직스럽다.

     “그러면 몇 가지, 제국군과의 전쟁에 있어 유념해야 할 부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경청하겠네.”

     “하나. 머스킷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놈들은 이제 더 이상 매직 미사일이 아닌 ‘실탄’을 쏩니다.”

     “…….”

     기술의 발전이 있기도 했지만, 제국군은 지금까지 노스트럼이 ‘머스킷은 그저 매직 미사일 싸개일 뿐’이라는 인식을 심어두었다.

     “실탄이라, 어떤 형태의?”

     “마석입니다. 풍석의 응용이죠.”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머스킷의 총열에 맞게 마석을 탄환으로 깎아, 뒤에 바람 분출 마법으로 화살보다 더 빠르게 쏘아 아군에게 마석을 박아넣을 겁니다.”

     멀리서 날아오는 매직 미사일에 맞으면 주로 타박상을 입던 때와 달리, 몸 속에 탄환의 모양으로 빚어낸 마석이 꽂히게 된다.

     “어쩔 때는 실드마법까지도 꿰뚫어버릴지도 모르죠.”

     “주의하라고 전해두겠네.”

     “예. 그리고 또 하나. 이건 제국군이 아닌 우리 아군이 상기해야 할 문제.”

     나는 대공의 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여인, 나리아를 가리켰다.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 여왕께서는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행사했던 것과 같은 기적을 사용하실 수 있으십니까?”

     “…황금의 영령들을 일으키는 것이라면, 전혀.”

     나리아는 고개를 크게 가로저었다.

     “황금을 향해 다양한 방식으로 명령을 내려봤지만, 아무래도 선왕이 가지고 있던 그 지팡이가 있어야만이 황금의 영령을 일깨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겠죠. 뭔가 시련을 거쳤다고 하니.”

     비석에 파묻히고 나서도 끝까지 민폐를 끼치는 무능한 자로다.

     “됐습니다. 여왕께서는 헥스 자작에게 연락하시어,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매국노화에 최선을 다해주십시오.”

     “매국노화…?”

     “자기가 역으로 살해당할 뻔 하자, 나리아에게 그 어떤 노스트럼의 기적도 물려주지 않은 채 죽어버렸다.”

     “그건….”

     “왜 나리아 여왕은 선왕처럼 황금의 영령을 일으켜세워 우리를 돕지 않느냐. 그 억지에 가까운 의혹에 대하여, 왕국의 위기를 두고 가장 강력한 무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분노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일단 안 좋은 것들은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탓으로 돌린다.

     “이 참에 제국과의 전쟁으로 엮어버리도록 하죠.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나리아 여왕을 죽인 뒤, 제국령 노스트럼 섭정이 되어 제국의 개가 되기로 했다고.”

     “그, 그렇게까지…?”

     “황제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세이레네 백작가로 들어온 거라고 하면 될 겁니다. 무능왕이 보인 틈을 황제가 바로 찌르고 들어왔다. 나리아에게 힘을 물려주지도 않았고, 왕국에 제국군이 들어오게 만든 원초적이면서 궁극적인 원인은 전부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다.”

     실제로 그러한 것도 아니지만, 우리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내려면 없는 것도 지어내서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탓으로 돌린다.

     “모든 오탁과 오물은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에게로 넘기도록 하죠.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죽은 당사자가 일어나서 어디 황금에 깃든 다음, 그게 아니라고 하소연 할 수 있는 것도 아닐텐데.”

     내가 제일 잘 하는 건 이런 쪽이다.

     “제국과의 전쟁에서 노스트럼이 하나로 단결하려면 그에 걸맞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 희생이 거룩하거나 웅장한 영웅적 희생은 아니지만, 무능왕의 무능한 짓 덕분에 많은 영웅들이 기꺼이 나리아 여왕을 위해 나서려고 하겠죠.”

     

     협잡. 모략. 정치. 사전계획.

     “대공께서는 그들을 모아 제국군과 싸우는데 편성하시면 될 것입니다.”

     군사의 체계적인 배치와 효율적인 전술 등은 내 주요 분야가 아니다.

     “알겠네. 그러면 자네는 어찌할 것인가?”

     “판을 짜놓았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지요.”

     세이레네 백작령은 아니고 저기 위쪽인 세빌리야의 이야기지만, 전쟁이든 역병이든 난민이 내려오면 결국 고생하는 건 지브롤터다.

     “일개 장군이라고 생각하시고 운용한다면 되겠지만, 저는 제가 가장 잘 싸울 수 있는 장소에서 싸우려고 합니다.”

     “그게 어딘가?”

     “당연히….”

     나는 대공에게 나의 계획에 대하여 이야기를 전했고, 대공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진짜로 그렇게 하겠다고?”

     “물론입니다.”

     시간은 어느덧 자정.

     “전쟁에 신사와 품격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들이 먼저 저런 걸 보냈는데.”

     화르륵.

     마도자동선에 불이 붙는다.

     철도의 가운데, 앞뒤로 넓게 생긴 구덩이 위에 우뚣 솟은 마도자동선 전체에 붙은 불이 검은 연기를 일으키며 밤하늘로 올라간다.

     “전쟁을 일으킨 자들에게 보여줘야죠. 전쟁이라는 선택지가 가장 어리석은 선택지였다는걸.”

     지금의 황제는 알고 있을까.

     모른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전쟁을 일으킨 건지, 나는 확신할 수 없다.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가는 가능성 하나.

     

     죽음은 인간의 완성이다.

     그레이 지브롤터는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의 완성이다.

     …

     “적진으로, 가겠습니다.”

     나는 품에서 미리 준비한 물건 하나를 꺼냈다.

     “이걸 쓰고.”

     “……이런 건 또 언제.”

     “언제나 항상 준비하던 것들 중 하나죠. 마침 때가 되었기에 꺼냈을 뿐이고.”

     없으면 만들면 된다.

     그건 무능왕을 향한 음해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이거, 적에게 공포를 심어주기에 딱 좋은 물건 아니겠습니까.”

     * * *

     [제국력 1월 2일, 새벽 4시. 세이레네 백작성 성문 앞.]

     “흐아암.”

     제국의 그림자 출신, 지워진 번호 213번의 청색 머리칼의 청년이 길게 하품을 한다.

     “뭐 하는 거야. 정신 안 차려?”

     

     청년의 파트너이자 공교롭게도 같은 지워진 번호를 가진 여인이 보급용 음료수캔을 가져와 건넨다.

     “정신 차리기에는 너무 미지근한데.”

     “몸에 넣고 와서 그런 거야. 뭘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어? 그냥 주는대로 마실 것이지.”

     투덜거리는 두 사람의 대화는 평범해보였으나, 그들의 주변에는 온갖 핏자국이 즐비하게 늘어져있었다.

     수많은 이들이 베이고 쓰러지고 죽은 흔적.

     “한 대 피울 거야?”

     “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듯 너무나도 담담했다.

     “야. 이 전쟁, 이길 수 있을까?”

     “당연히 이기지. 상대는 노스트럼이야. 폐하께서는 질 싸움을 하지 않으시잖아.”

     “그렇긴 하지.”

     애초에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면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이라는 존재는, 자신들을 만들어준 존재는 그러한 이성의 괴물이다.

     “아 참. 너 몇이나 처리했냐? 점수 내기는 잊지 않았겠지?”

     “78. 너는?”

     “어머, 그거 유감이네. 나는 세 자리지롱.”

     “어린 아이들 상대로 마구 검을 휘둘렀으면서 무슨….”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두 그림자는 잡담을 멈추고는 지평선 너머를 바라봤다.

     “…….”

     “프란츠님에게 보고해. 적이 나타났다고.”

     전방.

     레일이 깔린 철길이 아닌, 비포장된 도로를 거칠게 달려오는 황금의 마도자동선이 달려오고 있었다.

     “젠장, 감시대는 뭘 한 거야?”

     “요격이나 준비해. 저거, 여차하면 뛰려고 할 거야.”

     “뛰기 전에…잠깐, 저거.”

     황금의 배 위.

     “저거, 뭐야?”

     “황금의…해골?”

     금빛으로 반짝이는 날카로운 해골 투구일까, 아니면 가면일까.

     황금으로 빚어진 망령을 상징하는 것 같은, 혹은 황금의 영령 자체가 전투용 예복을 입고 마도자동선의 위에 올라탄 것 같은.

     “서, 설마 노스트럼 저 녀석들…!”

     “거짓된 황금으로 만들어낸 망령들이 사라졌다는 건 오히려 거짓이었나?!”

     “젠장, 쏴!”

     두 사람은 동시에 머스킷을 들어올렸다.

     총구가 가리키는 방향은 비행선의 위.

     혹시나 마도자동선이 뛰어오른다면, 그 때 허공에서 정확하게 마도자동선 안에 있는 황금의 망령을-

     끼이이익!!

     비행선이 갑자기 방향을 옆으로 틀었다.

     너무나도 다급하게 방향을 꺾는 바람에 마도자동선은 관성으로 바퀴가 붕 떠올랐고, 기울어진 채로 성벽에 그대로 들이박았다.

     키기기기기기긱!!!

     마차가 달리다가 울타리를 치받고 긁는 것과 같이, 황금의 마도자동선은 세이레네 성벽에 처박혔다.

     순간적으로 흔들린 충격에 두 그림자가 휘청거린 순간.

     파ㅡ앗.

     금빛의 섬광이 반짝인다 싶더니, 두 그림자는 어딘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가운데에는 황금의 해골과도 같은 가면을 쓴 제복 차림의 기사가 칼을 휘두르고 있었고, 그에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어, 왜ㅡ”

     팔이 움직이지 않는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이게, 어떻게 된-”

     “늦었어요.”

     서걱.

     하얀 궤적과 함께, 또다른 황금빛 가면을 쓴 여인이 성벽 위에 착지했다.

     “당신들.”

     푸화아아악!!

     붉은 피가 잘린 사지의 단면에서 뿜어져나온 순간.

     “선을 넘었어.”

     화륵.

     두 남녀가 제각기 들고 있던 수정구 하나가 빛을 내더니, 곧 두 남녀의 잘린 단면을 향해 화염구가 날아갔다.

     “크아아아악ㅡㅡㅡ!!”

     사지가 좌우로 흩어지고 머리와 몸통만 남은 채, 그림자들은 단면이 불꽃에 지져지는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백은으로 고통을 억누르고 있었을텐데도, 그 고통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그레이 지브롤터로부터, 모든 기사들에게 전한다.”

     타닥, 타닥.

     얼굴에 황금의 가면을 쓴 기사들이 하나둘 세이레네 성벽 위에 착지하며 자세를 잡는다.

     “사지를 잘라 적을 무력화한 뒤, 불로 지져서 죽지 않도록 만들어.”

     가장 먼저 착지한 사내가 가면을 벗고, 그 옆으로 하얀 머리칼을 포니테일로 묶은 여인이 뒤를 지키듯 선다.

     “곱게 죽일 수는 없지.”

     가면을 벗은 자, 그레이 지브롤터.

     “황금빛 태양의 아래에서 몸이 불타 죽도록 만들 수 있게, 전부 제압하라.”

     그를 시작으로, 기사들은 십수 미터가 훌쩍 넘는 성벽 아래로 그대로 뛰어내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황금의 망령(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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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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