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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8

       세 개.

       

       로테가 시큐엘로부터 들은 조언은 총 세 가지였다.

       

       “죽기 전까지 세상이 놀랄 만한 업적을 세우세요.”

       

       이것이 첫 번째였으며.

       

       “믿음을 유지하세요.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바라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견지하세요.”

       

       이것이 두 번째였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평생 순결하게 사세요.”

       “네…?”

       “몸도, 마음도 더럽혀지지 않은 채로.”

       

       로테는 제 귀를 의심했다.

       

       “평생, 처녀로 살다 죽으란 말씀이신가요?”

       “어머.”

       

       시큐엘은 후후, 웃으며 대답을 회피했다.

       

       “이 이상은 알려줄 수 없어요.”

       

       다른 건 몰라도, 마지막 건 이해할 수 없다.

       

       세상이 놀랄 만한 업적? 천재의 반열에 있는 로테에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믿음을 유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에테르를 다시 만나고 싶다.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라면 가시밭길을 걷는 한이 있더라도 무덤까지 가져갈 수 있다.

       

       그런데 마지막….

       

       순결?

       

       순결을 유지하라고?

       

       무슨 말인지 알 길이 없었다. 에테르를 살리는 것과 노처녀로 살다 죽는 것이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몇 번이고 질문했지만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아무리 그래도 이 이상으로 누설하기는 힘들어요. 부디 양해를.”

       

       명치를 쓰다듬으며 쓰게 웃는 시큐엘.

       

       순결을 유지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결혼이니 가업이니 하는 건 오빠나 사촌 언니가 이으면 되니까.

       

       그보다는, 어떻게 하면 저런 몰골의 에테르를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있을지가 관심사였다.

       

       “시큐엘 님.”

       

       하는 수 없다. 질문을 바꾸는 수밖에.

       

       “에테르는 절 어떻게 살려낸 거죠?”

       “아, 그거라면 대답해 드릴 수 있어요.”

       

       그건 오픈소스에 속하니까요. 시큐엘은 그런 소리를 늘어놓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대가를 바쳤거든요.”

       “…대가.”

       “네, 여신님과 대화를 통해서요.”

       

       역시.

       

       그때 엿들었던 이야기가 잘못된 게 아니었다.

       

       “정령계 심부로 가면 ‘정령의 샘’이라는 곳이 있어요. 그곳에서 24시간 기도를 드리면 여신님과 대화할 수 있죠.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대가로 바치면 소원을 들어주세요.”

       “저도 들어갈 수 있나요?”

       “그럼요. 저 같은 대정령의 허가만 받는다면요.”

       

       로테의 얼굴이 환해진다.

       

       그래, 정령의 샘이라면.

       

       “시큐엘 님, 절 그곳으로 데려가 주실 수 있나요?”

       “안타깝게도 불가능해요. 왕위에서 내려와서 말이죠…. 지군이나 공군에게 부탁해야 할 거예요.”

       

       로테는 아, 하고 아쉬운 소리를 냈다. 잠깐 들썩였던 어깨가 축 늘어진다.

       

       “더 질문은 없나요?”

       “……없어요.”

       “제가 설명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예요. 이 이상 말하면 인과가 뒤틀릴 수 있거든요.”

       “감사했습니다.”

       “자, 그럼. 저는 이만 가 볼게요.”

       

       용건을 마치자마자 홀연히 떠나버린 시큐엘.

       

       로테는 그녀가 있었던 자리를 공허하게 훑으며 걸었다.

       

       “아….”

       

       막연하다.

       

       수군이 알려준 이야기를 실천한다고 해서 에테르를 되살릴 수 있느냐?

       

       그런 모른다. 그렇다고 안 하기엔 뭔가 찝찝하다.

       

       – 믿음을 유지하세요.

       

       짜악!

       

       “정신 차리자.”

       

       아직 마왕과의 전쟁이 끝나지도 않았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해도 모자랄 판인데, 눈물 콧물 질질 짜면서 하루종일 처져 있는 건 하루면 족하다.

       

       로테는 아카데미를 조깅하듯 한 바퀴 더 돌았다. 뜀박질하면서 머리를 식혔다. 

       

       할 수 있는 일도 몇 가지 떠올렸다.

       

       자신은 전선에 보탬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에테르가 최대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있다. 식단을 몸에 좋은 것으로 만들어 준다든지. 각종 잡무를 대신 도맡아서 해준다든지. 시녀 역할을 자청하면 어떻게든 수명을 늘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 정령의 샘.

       

       ‘아니야.’

       

       도리질을 쳤다.

       

       만약 지금 정령의 샘으로 향한다면, 에테르를 걱정시키는 꼴만 된다. 마도부장관이라는 중책을 맡은 사람의 시선을 분산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정령의 샘은 최후의 수단이다. 로테는 시큐엘이 말한 세 가지 원칙을 고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선행에 근거한 업적을 세우고, 순수함을 지키며, 올겨울이 지나도 에테르와 계속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을 견지하기로 했다.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

       

       ‘우선 죽부터 끓여줘야겠다.’

       

       탁.

       

       조깅을 마친 로테는 발을 옮겨 야시장으로 향했다.

       

       

       **

       

       

       누구에게나 그럴싸한 계획은 있다.

       

       실제 상황이 닥치기 전까지는.

       

       “장관님께서 쓰러지셨다고 하더구나.”

       

       에테르가 시한부라는 것을 알고 난 다음 날 오전.

       

       죽을 끓이던 로테에게 그런 소식이 전해져왔다. 출처는 그녀의 아버지, 크롬웰 살리에르였다.

       

       “네, 네…?”

       “어제 새벽에 졸도했다고 하셨어. 갑자기 무리하시다가 각혈하면서 중환자실로 실려 가셨다고.”

       

       짧고도 명료한 비보.

       

       국자를 들고 있던 손에 사르르 힘이 풀린다. 짤그락, 하고 바닥에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아, 안 돼.”

       

       죽을 완성하려면 앞으로 수십 분은 더 있어야 하는데.

       

       “입원한 장소가 어디예요?”

       “아카데미 부속 병원이란다. 자, 여기.”

       

       로테는 만들던 것을 팽개치고는 옷을 껴입었다. 아버지에게 약도를 건네받은 뒤 황급히 골렘을 타고 일리야드로 달려갔다.

       

       “이 개새끼들아!!”

       

       쾅!

       

       복도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로테는 달려오다 말고 들리는 쌍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뭐? 마수의 몸이라서 치료가 어려워?”

       “가족분, 진정을! 잠깐 진정을…!” 

       

       신장 150이 조금 안 되는 소녀가 자기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큰 의사를 상대로 드잡이질을 하고 있었다.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살려내. 우리 언니 못 살려내면 너희 나라는 통째로 멸망할 줄 알아? 알겠어?!”

       

       멀대같이 생긴 의사는 양손을 든 채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환자 가족이 의사에게 멱살질을 하는 건 정도가 심하지 않는 한 처벌받지 않지만, 의사가 환자를 한 대라도 후려치면 바로 면허 정지이기 때문이다.

       

       “윽!”

       “개새끼들아, 우리 언니 살려내라고. 흐어엉….”

       

       군청색 머리카락의 소녀, 로즈마리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어댔다.

       

       그 옆으로는 백발금안의 소녀가 있었다. 아카샤였다. 아카샤는 손을 깍지 낀 채로 앉아있었다. 합장하고 있는 모양새가 꼭 여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듯하였다.

       

       “아….”

       

       적색등이 켜진 수술실 앞.

       

       에테르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는 금안족 두 명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금안족에게 걸린 철화의 저주 때문에 감정표현이 힘들 텐데도, 저리 울며 슬퍼하고 있다.

       

       그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친구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귀만 큰 새끼들아!”

       

       로즈마리는 1분간 울다가 다시 의사 하나를 붙잡았다.

       

       “블루베리, 의사 선생님 그만 괴롭혀!”

       “누가 블루베리라는 거냐! 이 몹쓸 인간아!”

       

       클라이스, 클라라 하스펠트 자매와 헤를라인이 달려들어 로즈마리와 의사 사이를 떨어뜨려 놓았다. 로즈마리는 분에 겨워 씩씩거리다가 축 늘어졌다.

       

       “……!”

       “……!”

       

       눈이 맞았다.

       

       로즈마리는 벌떡 일어나 로테에게 다가왔다. 성큼거리는 발소리가 소름 끼칠 정도로 두렵게 느껴진다.

       

       “……너.”

       

       눈을 부라리며 로테를 올려다보는 로즈마리.

       

       그녀의 입에서 냉혹한 말 한마디가 뱉어진다.

       

       “너 때문이야.”

       

       후욱, 하고 몸이 앞으로 당겨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로즈마리의 손에 무저항하게 끌려가는 자신이 있었다.

       

       “너 때문에 우리 큰언니가 저렇게 됐어.”

       

       얼굴과 얼굴이 맞붙는다. 눈이 눈이 맞닿는다.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금빛 눈동자가, 동 틀 녘 야영지의 불씨처럼 사그라지는 적색 눈동자에 분노를 퍼붓는다.

       

       “네년만 없었어도, 언니가 저렇게 될 일은 없었겠지. 그러니까 이건 네 잘못이야.”

       “…아, 아니야.”

       “발뺌할 거야? 네 잘못이야. 네가 책임져야 해.”

       “아, 아니, 나는….”

       

       저도 모르게 입술이 떨린다.

       

       “빨갱이 년, 틸레트에 있었을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내가, 내가 수백 년이나 언니 뒷바라지를 했는데…! 그런데 너 같은 년이 나타나서, 감히 내 언니를……!”

       

       무어라 말하지 못했다.

       

       강변할 수 없었다.

       

       “나, 나는….”

       “너 때문이야! 너 때문이라고오!”

       

       로즈마리는 양 주먹으로 로테의 가슴을 내리쳤다. 

       

       팍, 팍, 팍, 팍.

       

       아프지 않았다. 어떻게 아플 수 있겠는가.

       

       “내, 내 잘못이야.”

       

       어제, 미친 듯이 울어서.

       

       그래서 더는 나올 눈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로테는 그 자리에 오도카니 서서 수술실 전등을 올려다봤다. 눈앞이 흐려서, 상이 제대로 맺히질 않았다.

       

       세상이 빗물처럼 고여간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을까.

       

       촤라락!

       

       “나오세요! 비키세요!”

       “……!”

       

       수술실 문이 열리며 스트레처 카 한 대가 튀어나왔다. 청록색 수술복은 입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그것을 끌고 있었다.

       

       “선생님…!”

       

       퀭하니 있던 로테와 로즈마리가 일어나며 의사 행렬을 붙잡았다.

       

       “에테르, 에테르는 어떻게 됐어요?”

       “지금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야 이 새끼야. 벤틸레이터! 똑바로 안 세워?”

       

       후웅, 후웅.

       

       촤라락!

       

       수술복에 피를 잔뜩 묻힌 의사들이 장갑을 뺄 시간도 없이 카트를 밀고 미끄러져 나갔다. ER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경이로운 속도였다.

       

       “턴!”

       

       수십 미터 떨어진 코너 너머로 사라지는 의사들.

       

       중간 브리핑을 하러 나온 것도 아니고, 수술이 끝난 것도 아니라면 대체 무얼 하러 나왔단 말인가? 아니, 대체 왜 수술도 끝나지 않은 환자를 어디로 데려간단 말인가?

       

       알 수 없었다.

       

       비의료인으로선 아무것도 모른다.

       

       그랬기에.

       

       “아.”

       

       로테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

       

       

       “이제 마스크 벗으셔도 됩니다.”

       “후우.”

       

       더워 뒈지는 줄 알았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시한부 소재는 언제 써도 맛깔난 것 같습니다. 후회하는 감정, 피폐한 감정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원래는 이번 에피소드와 유사한 플롯이 메인인 글을 먼저 연재하려고 했었는데, 의학 지식이 왕창 필요해서 잠깐 미뤄두고 있었습니다. 당장 차기작은 예고드렸던 대로 스페이스 오페라로 가겠지만, 의학쪽 공부도 어느 정도 되고 나면 그땐 시한부물도 여러분께 선보일 계획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되면 벌써 말씀드린 차기작만 세 개가 되는군요. 스페이스오페라, 삼국지, 시한부물까지… 언젠가 모두 다 보여드릴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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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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