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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9

       “나한테는 왜 그렇게 존댓말을 하는 거야? 언니 나한테 벽이라도 느껴?”

        

       “그건 아닙니다만……?”

        

       성을 내는 클레어에게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자 클레어는 한동안 답답하다는 듯 끙끙거리더니 말했다.

        

       “그런데 왜! 나한테는 존댓말을 쓰냐고! 앨리스한테는 말을 놓았으면서! 게다가!”

        

       거기까지 말한 클레어는 갑자기 목소리를 살짝 줄이더니,

        

       “게다가, 언니 그때도 나한테 말 놓았었잖아.”

        

       “그때……? 아.”

        

       클레어가 말하는 건 클레어와 내가 함께 시간을 돌렸던 그때인 것 같았다.

        

       “그때는 생각을 깊게 할만한 시간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생각을 깊게 하고 있고?”

        

       “그때보다는 훨씬 여유로운 상황이니까요.”

        

       “허.”

        

       어이가 없다는 듯 짧게 한숨을 쉰 클레어는 몸을 돌렸다.

        

       혹시 화가 나서 집으로 돌아가려는 건가 싶어 깜짝 놀랐는데, 알고 보니 카페로 들어오려고 입구를 향한 것이었다. 아무리 클레어가 주변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라도 귀족 영애는 귀족 영애인 모양이다. 울타리를 휙 넘어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면.

        

       여기까지 오는 와중에 미리 카운터에 들러 본인이 마시고 싶은 음료를 주문하고 오는 것이 조금 재미있었다. 화가 나더라도 먹을 건 먹어야 한다는 생각인 것 같아서.

        

       그리고 그건 아주 클레어다운 행동이었다.

        

       그런 클레어의 뒤를, 입가에 쓴웃음을 띤 레오가 따라 들어왔다.

        

       클레어가 화내는 표정은…… 사실 클레어한테 말하기는 미안하지만, 그렇게 무섭지는 않았다.

        

       클레어도 진지한 표정을 지을 때는 진지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 만약 누군가가 나를 칼로 찌르거나 하면 내가 보기에도 무시무시하다고 생각할만한 표정을 지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클레어는 연기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다. 그런 진심 어린 분노를 연기력으로 보여줄 수 있는 성격은 아니었다.

        

       지금 클레어가 짓고 있는 표정은, 마치 과자나 장난감을 빼앗긴 아이 같은 표정이라, 솔직히 보고 있으면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너도 진짜 취향이 고약하다.”

        

       “…….”

        

       그리고 나의 표정을 알아본 앨리스가 나를 흘겨보며 말했다.

        

       환상 속 세계에서는 서로 자주 티격태격했던 것 같은데, 그사이에 미운 정이라도 든 걸까? 클레어 편을 들어주는 것을 보면.

        

       “결국 클레어한테도 말을 놓을 생각 아니야?”

        

       “레오에게도 말을 놓을 생각입니다.”

        

       클레어한테만 말을 놓는 것은 조금 그랬다. 클레어는 내 동생이었지만, 마찬가지로 레오도 내 동생이었으니까. 지난번에 그레이스 남작 부인…… 아니, ‘어머니’와 대화했을 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으니까.

        

       “네가 레오 누나로 있을 때는 레오한테 말을 놓고 살았어?”

        

       “그건 아니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상황에서 레오한테 갑자기 말을 놓으면 레오가 당황하지 않을까?”

        

       “그러려고 말을 놓겠다는 겁니다.”

        

       “진짜 취향 안 좋네.”

        

       앨리스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표정은 그다지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살짝 올라간 입가나 올라간 눈썹을 보면, 앨리스도 사실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취향이 안 좋은 건 두 사람 이야기인 것 같은데요.”

        

       그리고 우리 둘의 대화를 정면에서 들은 샤를로트가 그렇게 말했다. 나나 앨리스가 서로의 표정을 보고 대충 감정을 알 수 있는 것과 다르게, 아마 샤를로트는 우리 둘의 대화에서 대충 그 감정을 유추해냈을 것이다. 아니면 지난 1년 동안 알고 지내는 동안 조금이나마 우리의 기술을 배웠다거나.

        

       반면에 미아는 머리 위에 물음표만 잔뜩 늘어놓고 있었다. 대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대화 자체를 표면적으로 받아들였는데, 옆에서 하는 샤를로트가 하는 말에 조금 혼란을 느낀 걸까.

        

       미아도 평소에는 굉장히 조숙한 편인데, 이상하게 입 안에 먹는 것만 들어가면 어린아이가 되어버린다니까.

        

       그렇게 대화하는 도중, 저쪽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클레어가 나 보라는 듯 다소 과장된 포즈로 발을 쿵쿵거리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린 클레어의 어리광을 받아준 사람은 아버지와 어머니 중 어느 쪽일까? 음, 내가 환상 속 세상에서 겪어본 경험에 빗대어 생각해볼 때, 아마 아버지 쪽일 가능성이 매우 컸다. 겉으로는 엄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딸바보에 가까운 사람이니.

        

       “언니, 이 일에 대해서는 우리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굳이 ‘생각해’라는 단어를 두 개씩이나 넣어서 그렇게 말했다. 굳이 강조하자면 생각해, 라는 단어보다는 진지하게, 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편이 좋을 텐데.

        

       “어떤 일을 말씀하시는지요?”

        

       “그러니까, 지금 말하는 언니의 말투 말이야.”

        

       클레어는 의자를 하나 꺼내서 앉았다. 그리고 팔짱을 낀 채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참았어. 아무래도 언니는 꽤 오랫동안 황실에서 지낸 모양이고, 그래서 존댓말이 입에 붙어버린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내 말을 들은 클레어는 미간을 확 찡그리더니 앨리스 쪽을 보았다.

        

       아, 그렇지, 참. 앨리스는 황녀이면서도 비슷한 나이의 누구에게나 반말을 썼다. 내 주변에서 존댓말만 쓰는 인물 중 가장 높은 자리의 사람은 바로 샤를로트였다.

        

       그리고 샤를로트는 엄밀히 따지자면 앨리스나 나와는 다른 사람이지.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확실한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사람. 앨리스나 나도 마찬가지이긴 했지만, 우리 둘은 그러면서도 다소 방치된 모습이었다면, 샤를로트는 누군가가 길 안내를 확실하게 해준 모양새였다. 샤를로트가 사용하는 ‘존댓말’도 그런 이유에서 나오는 걸 테고.

        

       “아니, 그건 거짓말이야.”

        

       클레어는 단번에 나의 거짓말을 꿰뚫어 보았다.

        

       “황궁에서 확실하게 존댓말을 쓰는 사람은 언니뿐이야. 아니면 사용인이거나. 황족이 아닌 귀족이거나. 내가 알고 있는 황족은 전부 나한테 반말했으니까.”

        

       그리고 그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그레이스 가에서 딸로 지냈던 적이 있듯, 클레어도 황녀였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니, 그거 연기잖아?”

        

       …….

        

       그리고, 클레어는 의외로 본질적인 부분까지 확실하게 파고들었다.

        

       “할 필요 없는데 일부러 하는 거잖아. 이유는 잘 몰라도…….”

        

       음.

        

       이유라.

        

       이유…….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 사이에서 나만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그 쿨뷰티 이미지를 언제쯤 벗어야 할지도 계산하고, 쿨뷰티 특유의 헛점과 그 쿨뷰티가 싸울 때 어떻게 싸울지까지 진지하게 고민해 만들어진 하나의 캐릭터 성이었지.

        

       그러니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컨셉질’이었다.

        

       “…….”

        

       “그러니까 언니—”

        

       “알았어.”

        

       나는 클레어가 더 파헤치기 전에 얼른 대답했다.

        

       “응?”

        

       갑작스러운 나의 대답에 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클레어를 보고, 나는 말했다.

        

       “이제 네 앞에서 굳이 존댓말을 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으니, 앞으로 말을 놓겠다는 거야.”

        

       “정말?”

        

       클레어의 얼굴이 순식간에 환해졌다. 기분 탓이겠지만 주변 광량이 좀 올라간 것 같았다.

        

       “진짜지? 이제는 반말하다가 갑자기 존댓말로 돌아가거나 하지 않을 거지?”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레오 쪽을 보았다.

        

       “당연히 너한테도 말 놓을 거야. 내가 ‘누나’잖아?”

        

       “…….”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더러 누님이라는 호칭을 쓰며 놀려먹던 레오였지만, 막상 내가 그렇게 말해버리자 황망한 얼굴이 되어버렸다.

        

       아무래도 내가 반말을 쓰는 것에 익숙해지려면 한참 걸릴 것 같은 표정이다.

        

       그리고 그런 대화를 나누는 나와 내 동생들을, 샤를로트와 미아는 다소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보고 있었고.

        

       ……그 와중에 앨리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보고 있었다.

        

       설마 내가 컨셉질 하고 있었다는 걸 완벽하게 깨달은 건 아니겠지?

        

       *

        

       개학 후, 내가 클레어와 레오에게 말을 놓았다는 사실은 순식간에 학교에 퍼졌다.

        

       사실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누구에게나 정중하게 존댓말을 썼으니까.

        

       물론 시간을 돌릴 수 있다는 이유로 막말을 가끔 하긴 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정중한 말투였다.

        

       문제는, 내가 반말을 하는 사람과 존댓말을 하는 사람의 종류가 나뉘었다는 것이다.

        

       반말을 나누는 대상은 앨리스, 클레어, 레오에게 한하고, 나머지에는 존댓말을 했다.

        

       처음에는 주변 반응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시간이 이 주일 정도 지나자 슬슬 학생들 사이에 말이 돌기 시작한 모양이다.

        

       “실비아, 혹시 그 말투 좀 통일시켜줄 수 없어요?”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문제라면 산더미거든요.”

        

       내 반응에 샤를로트는 조금 질렸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모르는 척하는 건 아니죠?”

        

       “…….”

        

       아니, 정말로 모르는데.

        

       나의 침묵에 내 반응을 조금 유추할 수 있었던 건지, 샤를로트는 이마를 짚었다.

        

       “그러니까, 주변 학생들이 사람을 나누고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응?

        

       아니, 사람을 나누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음화는 최대한 빨리 써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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