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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9

    자신의 이름을 부른 이유를 알 수 없는 루크는 고민을 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시험을 너무 잘 쳤다고 감탄해서 따로 불러낼 이유는 없지 않은가?

    만약 정말로 그런 이유였다면 단순히 만점처리를 한 뒤에 시상을 하며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면 그만이었다.

     

    그렇다면 백이면 백, 자신의 답지에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이리라.

    ‘혹시 풀이과정을 적은 답지가 땀으로 지워지거나 찢어졌나? 아니면, 치명적으로 실수한 부분이 있던가? 그도 아니면, 도를 넘은 찝찝함에 무의식적으로 마법을 써버려서 부정행위로 적발이 되었는데 내가 눈치를 채지 못 한건가?’

     

    세가지 경우 모두 가능성이 있었다.

    시간도 없고 집중도 제대로 못했으니 분명 그러하리라.

     

    하지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어쩌지?

    자신을 실격처리 하려고 부른 것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니 루크는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루크가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시험장의 문을 열자, 그곳에서는 진행위원들의 채점이 한창이었다.

    루크는 잠시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쭈뼛거리며 그들 중 한명에게 다가가 등을 콕콕 찌르며 말했다.

     

    “저어……. 누가 날 여기로 불렀다고 들었는데…….”

     

    그러자 그는 꽤나 무신경한 표정으로 루크를 내려다보았다.

    그 모습에 혹여 자신의 말투가 문제가 되는 종류의 사람인가 싶어서, 조용히 말을 덧붙였다.

     

    “……어디로 가면 되나요?”

     

    어쩔 수 없다.

    지금은 대충 자신에게 편한 말투를 쓸 수는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자신은 현재 알 수 없는 이유로 불려서 나온 입장이고, 그러니 상대방의 심기를 거스를 만 한 일은 딱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좋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는 가만히 루크를 바라보다가, 알겠다는 듯이 눈썹을 살짝 들어올렸다.

     

    “네가 루크 이루시니?”

     

    루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는 조용히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는 다시 빠르게 답지를 훑으면서 채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굉장히 바빠 보인다.

     

    그 모습을 보니 더 이상 말을 물어보는 것도 실례가 아닐까 싶어 루크도 더 말을 걸지 않고 그가 가리켰던 방향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러자 루크의 눈에 들어오는 하얀 박스형 구조물.

    구조물 위에는 ‘이의 제기 및 조정 관리위원’이라고 적힌 글씨가 있었고, 심지어 ‘사일런스’마법이 인챈트된 상태였다.

     

    그것은 마치 일종의 심문실같았다.

     

    뭐, 실제로도 비슷한 역할이리라.

     

     

    루크가 조심스럽게 그 박스형 구조물 안에 들어가자, 그 안에는 하나의 작은 의자와, 그 맞은편에는 중년의 남성이 두 손을 포개어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놓은 채 앉아 있었다.

    이곳에서 일종의 상담이 이뤄지는 모양.

     

    테이블 위에 놓인 무언가를 보는 남성의 표정이 어쩐지 심각해보였기에 루크는 꽤 긴장을 하며 몸을 떨었다.

    그야 그럴게, 그가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무언가는 바로 자신의 답안지였기 때문이다.

     

    ‘대체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지?’

     

    루크는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나, 자신의 답안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렇게 땀을 많이 흘렸는데, 또 식은땀이 난다는 것이 굉장히 신기하다.

    마르지도 않는 모양이다.

    과연 인간이 지닌 땀이라는 것은 대체 용량이 얼마나 되는 것일까?

     

    “저, 루크 이루시라고 합니다만……. 절 부르셨다고요.”

    “아.”

     

    루크가 입을 열어 인기척을 내자 그는 그제서야 눈앞에 사람이 서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고개를 들고는, 눈앞에 놓인 의자를 손을 내밀어 권유하듯 가리키며 말했다.

     

    “만나서 반갑구나, 루크 이루시. 나는 시험의 감독관이자 마법사인 로만이라고 한단다.”

    “……네. 안녕하세요, 로만.”

    “그래. 그럼 잠시 거기, 자리에 좀 앉아 보겠니?”

    “네.”

     

    루크는 그런 그의 제안에 응하여 조심스럽게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다리를 모아 두 손을 무릎 위에 공손하게 얹어 두었다.

    하지만 역시나 불안하기 때문인지, 루크가 아무리 자세를 바로 하려고 해도 귀는 한없이 축 처졌고, 꼬리는 무의식정으로 차가운 의자의 철제 다리를 감싸며 초조한 감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로만은 아이가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 굉장히 안쓰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런, 너무 긴장한 모양이군. 불쌍하게도.’

     

    하긴, 채점이 진행되는 중에 갑자기 불러내면 누구나 긴장을 할 수밖에 없으리라.

    게다가 다른 아이들보다 더 어려 보이는 연령의 소녀가 아닌가?

    저 어린 아이가 이런 상황에 처하면 당연히 더 긴장을 하겠지.

     

    로만은 아이가 안심할 수 있도록 최대한 인자한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루크, 너무 걱정할 것 없다. 그렇게 심각한 이야기는 아닐테니까.”

    “예?”

     

    루크의 한쪽 귀가 궁금증으로 인해 살짝 일어섰다.

     

    이렇게 채점중에 굳이 자신을 불러내 놓고서 그렇게 심각한 이야기가 아니라니?

    그럼 대체 무슨 일이라는 말인가?

    루크가 물었다.

     

    “심각한 이야기가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루크의 질문에 로만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묻고 싶은 건, 네 답지에 적힌 이 각종 기호들 때문이었다. 네가 정말로 이해를 하고 답을 썼는지 확인을 해야 해서 말이다.”

     

    로만의 대답에 루크의 굳어있던 표정은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완전히 들뜬 표정으로 거의 외치듯이 물었다.

     

    “그럼 절 실격시키려고 부른 게 아니란 말씀이신가요? 그러니까, 땀 때문에 풀이가 지워지거나 찢어져서 알아볼 수가 없다던가, 풀이중에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던가, 하려고 하지도 않은 부정행위로 실격이 되었다던가, 그런 이야기가 아니란 거죠?”

    “하하하ㅡ. 그래, 당연하지. 얘야, 너는 그게 걱정이었구나?”

     

    아이의 들뜬 모습에 로만은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아서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루크의 걱정과는 달리, 답지가 조금 젖어서 손상되거나 풀이가 조금 이상한 걸로는 딱히 참가자를 실격시키지 않는다.

    마법 경시대회의 취지는 참가자들 간에 마법적 사고의 실력을 겨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정행위는 당연히 실격이 되지만, 루크는 그 특이한 외모로 시험 중에 다른 학생들보다 훨씬 많은 시선을 주었기 때문에 부정행위는 일체 하지 않았다는 것을 로만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루크는 실격이 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하아……. 다행이다…….”

     

    루크는 한숨을 쉬며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하하하, 그렇게 놀랐니? 미안하다.”

     

    아이에겐 꽤 미안한 일이다.

    확실히, 대부분의 호명은 그런 실격처리를 위해 이뤄지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이럴 줄 알았다면 미리 어떤 이유로 부르는 것인지도 함께 방송을 할 걸 그랬다.

     

    그래도 그 모습을 보며 로만은 루크의 ‘열정’을 다시 확인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오랜 준비를 거친 시험에서 실격을 한다는 것은 분명히 아이에게는 그 정도로 분하고 허무한 결말일 테니까.

     

    루크는 화사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아뇨, 괜찮아요.”

     

    그러나 루크는 사실 딱히 로만의 기대와는 달리 시험에 큰 노력을 기울이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눈앞에서 상과 상금이 사라져버린다고 생각하면 억울하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

     

    자신이 호명된 이유가 실격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답지의 해설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것을 깨달은 루크는 로만의 테이블 앞에 서서 자신의 답지를 보며 부연설명을 덧붙이고 있었다.

    문제가 된 것은 역시나 루크가 시간을 아끼기 위해 생략하고 부호화시킨 몇가지 혼합 방정식과 공식, 그리고 활용부분에 관한 것이었다.

    최대한 다른 사람이 보아도 이해하기 쉽도록 아주 자세하게 풀어서 썼는데도 그 풀이가 증명에 버금갈 정도로 길고 복잡한 탓에 혼란이 좀 생긴 모양이다.

     

    루크는 사실, 평소에도 자신이 항상 숨쉬듯이 하는 다중계산을 어떻게하면 타인이 이해하기 쉽게 나타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품고 있었다.

    현대 마법에 익숙하지 않았을 때는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모든 정보를 끄집어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아는 것은 있으나,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정확히는, 그동안 과거의 루크는 그것을 표현할 이유도, 수단도 없었다.

    과거 서클마법의 경우에는 개인적인 깨달음을 남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할 방법이 그리 많지 않았으며, 어떻게든 상대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한다고 해 봤자 자신의 깨달음이 타인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의 클래스마법은 절대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동일한 결과를 내는 마법언어, 점차 현대의 마법과 그것을 나타내는 방식에 익숙해지고나니 자신의 생각을 끄집어내는 것에도 조금씩 익숙해진 루크는 금세 자신의 생각을 수식과 서술로 끄집어낼 수 있게 되었다.

    마치, 글을 모르던 아이가 글을 배워, 마침내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정리할 수 있게 된 것과 같이 말이다.

     

    그리고 루크는 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기존의 계산 문자체계에서 더 발전시킬 수 없을까?’

     

    단순하고 쉬운 문제를 풀 때는 그 설명이라는 것이 기존의 방식과 큰 차이가 없어서 의미가 없었지만, 국제 아카데미 마법 경시대회의 문제쯤 되면 이런 욕심이 들었다.

    이번 기회에, 그 방식을 도입해서 문제를 풀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래서, 이 문자는 제가 주석에 달아놓은 것과 동일하게, 필레만 공식과 오스판의 방정식을 합쳐서 제가 알아보기 쉽게 표기해둔 거에요. 이렇게 표시하면 알아보기도 쉽고, 작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줄어들어서 암산도 쉽죠. 그리고 이 공식을 쓸 때는 이런 식으로 간략화가 가능하죠.”

     

    그리고 그런 루크의 설명을 가만히 듣던 로만은 그야말로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에 그가 루크를 부른 이유는 ‘너무 지나치게 어렵고 비약적인 방식의 문제풀이’였다.

    하지만 그런데 답은 또 말이 되다보니, 분명 뭔가 의도가 있겠다 싶어서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한번 들어나 보자.’는 생각으로 부른 것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루크의 설명을 들어보면 전혀 생각없이 그렇게 늘어놓은 것이 아니었다.

     

    전혀 연관성을 알아볼 수 없었던 다른 공식에서 공통적인 부분을 찾아내어 융합시켜 거대한 하나의 이론으로 만들고 그것을 단순화시켜 공식의 증명과 해를 찾는 데 사용하다니?

    그 발상은 사실 현대 마법이론의 거대한 과제인 ‘대통일이론’의 근간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얘야, 누군가에게 배운 것이 아니라 정말로 네가 그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라고?”

    “그런데요……?”

     

    맙소사, 이 어린 여자아이의 머릿속에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인가?

    그는 마치 불가해한 무언가를 마주한 것만 같았다.

    로만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루크에게 물었다.

     

    “지금 네 나이가 어떻게 되지?”

    “10살……인데요?”

    “……뭐?”

     

    로만은 또 한번 경악했다.

     

    10살 여자아이, 그리고 경시대회.

    거기에 말도 안되는 마법적 성취까지.

     

    그 세가지가 뜻하는 것은, 너무나 뻔했다.

     

    로만은 마치 또 다른 대통일이론이 정립된 듯한 느낌을 받으며 입을 열었다.

     

    “너 혹시 샤에흐의 기적식, 알고 있니?”

    “…….”

     

    루크는 대답은 않고 조용히 시선을 피했다.

    마치 대답하기 싫다는 듯한 눈치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찾았다 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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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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