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19

       다른 승객들이 열차에서 내리고 있는 동안, 괴물 서커스단은 짐을 갈무리한 채 객실 안에서 조용히 대기했다.

         

       잠시 후, 역 직원들이 내려와 그들이 타고 있는 열차를 꼬리 칸에서 분리해냈고, 그와 동시에 선로 끝에서 땅땅거리는 소리를 내며 작은 기관차 한 대가 들어왔다. 녀석은 분리된 객차와 결합하더니 그것을 끌고 들어온 방향 그대로 후진하기 시작했다.

         

       메인 플랫폼을 빠져나간 기관차는 역사 바깥에 있는 간이 플랫폼 앞에 멈춰 섰다. 플랫폼이라고 이름 붙었긴 했지만, 집채만 한 돌덩이 위에 지붕 하나만 달랑 얹어 놓은 외로운 섬과 같은 곳이었다.

         

       전세 객차처럼 임시로 배치된 차량은 일정이 끝나면 열차에서 분리되어 차고지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 들어가기 전에 이곳에서 한 번 실내 검사를 받았다. 혹시나 깜빡하고 두고 간 짐이나 내리지 못한 손님들을 이곳에서 내리기 위함이었다.

         

       괴물 서커스단이 일부러 본 플랫폼에서 내리지 않은 이유도 바로 이곳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이곳은 역을 둘러싼 철책 바로 앞에 있었다. 그곳의 쪽문을 통하면, 북적이는 역사 건물을 거치지 않고 바로 역에서 나갈 수 있었다.

         

       “맞지? 내 말 맞지?”

         

       클라라가 창밖을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역사에서 내리지 말고 기다렸다가 이곳에서 내리는 게 좋다고 의견을 낸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덕분에 괴물 단원들은 사람들의 이목을 받지 않고 열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다들 그녀에게 고마움의 말을 한마디씩 하고는 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단원들이 줄지어 내리는 와중에도 한 명만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은빛 머리카락의 소녀는 인형처럼 다소곳한 자세로 앉아 자신을 들어줄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다.

         

       “우와악, 이것 좀 봐! 눈이 거의 무릎까지 오는데?”

       “춥다, 추워. 이게 키예프의 겨울이구나.”

       “이 정도로 무슨! 12월은 시작에 불과해. 제일 추울 때는 1월 초라고.”

       “진짜 사람도 동면할 만한 날씨군.”

         

       마야는 앞서 내린 단원들이 눈밭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고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녀의 전용 탈것이 있었다. 그의 등에 업혀 가면 저런 눈 따위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그와 찰싹 달라붙어 체온과 숨결을 나눌 생각을 하니 그녀는 심장이 콩닥거렸다.

         

       “단장님.”

         

       마야는 금발의 남자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두 팔을 벌렸다. 그가 평소처럼 자신 앞에 무릎 꿇고 자신을 품에 안아줄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마야와 눈을 마주치더니 작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죄송합니다, 마야 양. 탑승객이 먼저 있어서요.”

       “……네?”

         

       마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원더스타인은 쓴 미소를 지으며 등을 내밀어 보였다. 그곳에는 귤색 머리카락의 여자아이가 업혀 있었다. 그녀는 원더스타인의 목에 두 팔을 감고 그의 등에 꼭 달라붙어 있었다.

         

       “창조주,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그대는 내 말이다. 어서 달려라!”

       “침착하세요. 그러다 떨어지겠어요. 너무 신난 것 아닌가요?”

       “지난 며칠 동안 얼마나 그대의 등에 타고 싶었는지 그대는 모를 거다.”

       “그랬습니까? 앞으로 더 시간을 자주 내드리지요.”

         

       마야는 자신의 전용 탈것을 훔쳐 타고 지나가는 소녀의 모습을 허망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녀는 마야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혀를 날름거려 보였다.

         

       ‘저게! 감히 내 것을!’

         

       마야는 속에서 뭔가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때, 붉은 모히칸의 거한이 그녀의 앞에 섰다. 마야는 그가 원더스타인을 노려보고 있는 것을 보고 이 순간 질투심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 자신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녀 앞에 무릎을 꿇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는 내가 업어주게 됐다. 미안하다.”

       “……어떻게 된 일이죠?”

       “루엘로와 삼손이 나와 원더스타인 중에 누구 등에 탈지를 두고 가위바위보를 했다고 하더구나. 그런데 루리가 지고 삼손이 이겼지.”

       “…….”

         

       새하얀 눈보라가 시야를 가득 메웠다. 쪽문을 통해 역을 빠져나온 괴물 서커스단은 곧 클라라의 판단이 확실히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악천후 속에서는 누구나 역을 나서자마자 마차를 잡으려 하기 마련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역사 앞 광장은 마차를 타려는 사람들의 대기 줄로 가득했다.

         

       반면, 그들이 나온 쪽문 쪽은 상대적으로 한적했다. 비록 선로와 붙어 있는 도로라 통행량이 많지는 않았지만, 대신 마차를 기다리는 사람이 그들 외에는 없었다.

         

       그들은 역사 쪽으로 향하는 빈 마차가 보일 때마다 세웠다. 마부들도 굳이 번잡한 광장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것을 반가워하며 그들을 태웠다.

         

       그들은 마차를 한 대 잡을 때마다 일행들을 채워서 숙소로 출발시켰다.

         

       그렇게 일행의 절반 정도가 떠났을 때, 역사 안쪽에서 환호성 같은 것이 들렸다.

         

       “무슨 일이지?”

       “귀빈이라도 도착했나?”

       “환영 인파 같은 건 안 보이던데요.”

       “흠, 그러면 일정표에 없는 도착이라는 건데……. 잠깐, 나 들은 적 있어. 그런 경우는 3가지라고. 황제, 교황, 혹은 황태자…….”

       “누군지 알겠군요.”

         

       도스빌이 지금 막 역 건물 옥상에서 벽을 타고 내려오는 수 m짜리 깃발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에는 온갖 갑옷과 보석으로 치장한 곰 그림이 박혀 있었다.

         

       “황태자 니콜라이의 문장입니다.”

       “오, 제국의 황태자라? 동부 순방 중이라고 들었는데…….”

         

       가스통이 수염을 주무르며 흥미로운 눈길로 역 쪽을 바라봤다. 서커스단 안에서 신문의 정치면을 읽는 사람은 그와 도스빌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두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이 잦았다.

         

       “여기도 동부니까요. 마침 황실 휴양지도 있고…….”

       “휴양지라? 그곳은 온천의 ‘원탕’이 있는 곳이지? 거기 근처에는 희귀한 연금 식물이 많이 자라는데 기회가 되면 구경 가고 싶군. 그건 그렇고 어서 떠나야 하지 않나? 황태자가 나오면 광장 근처가 더 혼잡해질 거야.”

         

       그때, 가만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원더스타인이 끼어들었다.

         

       “황태자가 나오면 한 번 보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응? 네가 웬일이냐?”

         

       가스통은 지금까지 온갖 부귀영화 얘기를 해도 닭 소 보듯 하던 제자가 황태자 얘기에는 관심을 보이자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아니, 그러고 보니 내가 제국에 대해서는 별로 얘기한 적이 없군.”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면 이 혹한의 땅에는 정원을 가꾸는 것 자체가 낯선 일이었기 때문이다.

         

       “제국 귀족들에게 있어서 정원사라는 직업은 사실 사냥터지기나 숲지기에 더 가깝지. 사냥감들이 잘 자도록 보금자리를 구성하고, 인삼이나 송로버섯 군생지를 따위를 관리하는 쪽 말이다. 네가 그런 자리를 희망한다면 다른 방식으로 교육을…….”

       “그냥 황태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할 뿐입니다.”

         

       원더스타인은 아직도 자신을 정원사로 만드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 가스통에 대해 참 징글징글하다 생각하며 그의 말을 끊었다.

         

       그가 황태자를 구경하고 싶어 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비운의 황태자, 니콜라이. 그 역시 원작에 나왔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부두교와 콤프라치코스를 무너뜨린 용사들은 마지막 마녀를 찾아서 제국의 수도로 향했다. 그러나 용사들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이미 전쟁터로 변해 있었다. 귀족들이 사병을 이끌고 여러 파벌로 나뉘어 수도 곳곳을 점거하고 서로 혈전을 벌여댔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쟁을 조장한 것은 황제의 측근인 ‘황실 극단’과 그곳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뱀 마녀’였다. 그러나 서로 칼을 들이미는 내전까지 가게 된 원인은 바로 황태자 니콜라이의 죽음이었다.

         

       황태자는 어렸을 때부터 신동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자신을 탐탁지 않게 바라보는 아버지와 새어머니 사이에서 그는 숱한 죽음의 위협을 받았으면서도 삐뚤어지지 않게 자라났다.

         

       그를 견제하는 파벌에서는 어떻게든 그를 실각시키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수난을 극복하며 지지 세력을 모아 마침내 황제의 자리를 선위 받기 직전에 이르렀다.

         

       황권 이양을 목전에 두고, 온 제국이 성군의 도래를 기뻐하는 그때, 불길한 소문이 제도를 덮쳤다. 그것은 용사들이 콤프라치코스를 분쇄하고 난 직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원래 용사들은 아이 상회의 ‘상품 목록’을 불태울 작정이었다.

         

       TT3는 프롤로그 스테이지의 베르그송 자작부터 시작해서 과거에 원더스타인의 ‘손길’이 닿았던 사람들이 괴물로 변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런 때에 그러한 명단이 공개되었다간 큰 혼란이 일어날 게 분명했다. 누가 진짜이고 가짜인지, 누가 검은 마도사가 만든 괴물인지 아닌지를 두고 마녀사냥이 벌어질 것이었다. 명부는 불태우는 게 맞았다.

         

       그런데 용사들이 콤프라치코스의 본거지를 덮치기 직전에 원더스타인은 그것을 들고 그곳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온 세상에 공개해버렸다.

         

       제국의 황태자 니콜라이 역시 그곳에 이름이 실려 있었다.

         

       사건의 경위는 이랬다. 둘째 황비였던 황태자의 친모는 그 당시 아들을 낳기를 바라고 있었다. 일단 아들만 낳으면, 황제를 잘 구워삶아 자기 아들을 황태자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가짜 아이를 데려오는 것으로 황실의 혈통을 증명하는 시험을 통과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뱃속의 딸을 아들로 만드는 방법을 택했다.

         

       검은 마도사는 그녀가 임신 중에 황궁을 방문하여 태아의 성별을 남자로 바꾸어 주었다.

         

       황태자 니콜라이가 사실 여자였다니?

         

       제도의 정치권이 혼란에 빠진 순간, 황제의 군대가 움직여서 황태자를 체포했다.

         

       ‘검은 마도사가 만든 괴물’이라는 이름표는 순식간에 황태자의 파벌을 와해시켰다. 남은 측근들이 저항세력을 결성하고 투쟁을 벌였으나, 황태자를 구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몇 달 뒤, 황태자의 처형식이 이루어졌다.

       간악하게도 반대 파벌은 황태자가 ‘가짜’임을 그 몸으로 증명해 보였다. 원더스타인이 그가 태어나기 전에 걸어준 축복을 손수 거두어들인 덕분이었다.

         

       제국을 밝은 미래로 이끌어줄 예정이었던 황태자 니콜라이.

       그는 그렇게 벌거벗은 몸으로 수도 광장에 끌려 나와 수천 명의 성난 귀족 군중들에게 돌팔매질 당해 죽었다. 그의 배에 강제로 품게 된 자식과 함께.

         

       원더스타인이 그의 얼굴을 한번 보고 싶어 했던 것은 한 번도 게임 안에서 그를 직접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용사들이 수도에 도착했을 때, 황태자는 이미 죽은 뒤였고, 귀족들은 다음 황위 계승권자의 자리를 두고 자기네들끼리 수도를 피로 물들이고 있었다.

         

       “어이, 원더스타인, 마지막 마차다.”

         

       어느새 나머지 일행은 모두 마차를 떠나고 없었다. 이곳에 남은 사람은 그와 미노바, 루엘로와 마야가 전부였다.

         

       원더스타인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마차에 올랐다. 그들이 떠나는 순간까지도 황태자 일행은 역사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자, 그러면 출발하겠습니다.”

         

       마부가 막 말을 출발시키려 할 때였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마차를 불러세웠다.

         

       “기다려요! 같이 타고 갑시다!”

         

       소리가 들려 온 곳은 그들이 나왔던 울타리 안쪽이었다. 그곳에는 양손에 트렁크를 든 젊은 남녀 셋이 이곳을 향해 허겁지겁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도 간이 플랫폼에서 내린 모양이었다.

         

       “저희는 황금정 방향으로 갑니다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 사람은 트렁크를 마차 뒤편의 짐칸에 던져 놓고는 마차 위로 뛰어올랐다.

         

       그 순간, 역사의 입구 쪽에서 관악단의 합주가 터져 나왔다. 사람들의 함성이 뒤따랐다. 아무래도 황태자 일행이 역에서 나오는 모양이었다.

         

       병사들이 역아 안에서 뛰쳐나와 광장을 에워쌌다. 그들이 출발한 마차는 아슬아슬하게 그 직전에 빠져나올 수 있었다.

         

       원더스타인은 고개를 쭉 빼고 창밖을 내다봤다. 그러나 역 안에서 첫 대열이 나오는 순간, 마차가 모퉁이를 휙 돌았기 때문에 황태자가 나오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

         

       원더스타인은 마주 앉은 세 사람이 한숨을 내쉬는 것을 들었다. 그는 그것이 자신처럼 황태자의 얼굴을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아니면 광장이 봉쇄되기 전에 빠져나온 것에 대한 안도감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함께 마차를 타고 가는 여행객끼리 인사를 하는 것은 기본 예의였다. 원더스타인은 그들을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프랑크 원더스타인이라고 합니다. 떠돌이 마술사죠.”

         

       그의 인사에 성인 남녀 중간에 앉은 1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아이가 손을 내밀었다. 처음 봤을 때는 여자인가 착각했을 정도로 예쁘장하게 생긴 소년이었다. 그가 일행의 대표인 듯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니카라고 합니다. 음, 그냥 여행자입니다.”

         

       둘은 반갑게 악수를 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