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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9

       

        

        

       콰아아아아앙!!!

        

        

       섬광이 일대를 메우고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광대한 폭발이 이어졌다.

        

       얼음 가시들이 얼음 호수를 메워가고 빙괴가 사납게 범람했다.

        

       나는 광채 속에 몸을 숨기고 베로니카에게 날아들어 서리낫을 휘둘렀다.

        

        

       휘익!

        

       스으윽!

        

        

       베로니카는 내 기척을 눈치채고 지면을 박차며 뒤로 피했다.

       

       그녀가 쥔 서리낫이 보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서리낫과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모양새를 가진 대낫이었다.

        

       아마도 과거의 기억을 본 따 만든 모조품이리라.

        

        

       파앗!

        

        

       베로니카를 향해 달려들어 은빛 궤적을 빠른 속도로 수차례 그려냈다.

       

       베로니카는 얼음 마법으로 사용하거나 [빙제]의 날개를 펼쳐 빠르게 뒤로 물러나기도 하며 내 공격을 막거나 피했다.

       

       

       ‘낫이 무거워서 못 휘두르는 건가?’

       

       

       저렇게 뼈만 남은 듯한 앙상한 몸이라면 그럴 만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얼음 마법진을 전개했다.

        

       그녀의 마법진은 광범위한 [서리불꽃]을 쏟아냈다. 나 또한 [서리불꽃]으로 대항했다.

        

        

       화르르르륵!!

        

        

       파괴적인 얼음 마법이 서로를 잡아먹으려 든다.

        

       우리는 얼음 마력을 머금고 서로에게 원소 마법을 쉴 새 없이 퍼부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마법을 써서 베로니카의 머릿속에 말을 걸고 있었다.

        

        

       ‘왜 여기서 문지기를 하고 있었습니까?’

       ‘…….’

       ‘당신은 별을 따라가겠다고 했어요. 그건 무슨 뜻이었습니까?’

       ‘…….’

       ‘당신이 뿌리치고 싶었던 거짓이란 건 또 뭐고요?’

        

        

       콰아아앙!!

        

        

       ‘이 문을 넘어가면 전부 알 수 있습니까? 별도, 거짓도!’

       ‘…….’

        

        

       콰아아아!!

        

        

       베로니카에게선 그 어떤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미 그녀의 정신은 망가져 있었다. 그녀는 유려하고 화려한 얼음 마법으로 내 목숨을 노리고 연격을 내지를 뿐이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좋으니 베로니카의 이성을 일깨워주고 싶었다.

        

        

       “대답해주세요!”

        

        

       아예 고함을 질렀다.

        

        

       “처음에 악신을 봉인했던 건 제 안의 괴물이죠?! 그건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어요! 근데 당신은 그걸 어떻게 아신 겁니까?!”

        

        

       <메르헨의 마법 기사> 최종 보스인 악신 네피드는 심연 속에 봉인된 뒤에 ‘부활’하는 것이다.

        

       왜 그런 표현이 쓰이는가.

        

       태초의 원왕들조차 악신의 부활을 예언했을 뿐이지, 악신의 봉인에 관여한 바가 없다.

        

       누가 악신을 봉인했는지는 여태껏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뒤펜도르프에서, 베로니카는 휘랑의 망토를 찾으러 온 내게 쪽지를 남겨 누가 악신을 봉인했는지 추측할 수 있게 했다.

        

       악신을 봉인했으며, 내가 살고 싶다면 믿어선 안 될 존재.

       

       

       “오즈마를!!”

       

        

       그 존재는 별의 요정 스텔라의 제 1 권속, 오즈마일 터.

        

        

       콰아아아앙!!

        

        

       연쇄적으로 얼음 마법이 격돌하며 거센 냉기 폭발을 일으켰다.

       

       

       파앗!

       

        

       휘몰아치는 극저온의 냉기를 뚫고 베로니카의 코앞에 이르렀다.

        

       얼음 마법과 함께 베로니카가 서리낫을 휘두르자, 나는 냉기를 휘감은 서리낫을 휘둘렀다.

        

       표적은 베로니카가 아니라 그녀가 쥔 서리낫이었다.

        

        

       카앙!

        

        

       베로니카의 서리낫이 튕겨 나갔다. 힘의 우위는 내 쪽에 쏠려 있었다.

        

       나는 그녀의 머리를 양손으로 붙잡고, 그녀의 이마를 향해 머리를 거세게 쥐어박았다.

        

        

       쿠웅!!!

        

        

       머리가 깨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

        

       베로니카는 터덜터덜 뒤로 물러났고, 나는 피가 나는 머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멱살을 잡았다. 그녀가 아무리 얼음 마법을 퍼부어도, 내 얼음 마법으로 반격하면서.

        

       가까이서 베로니카의 생기 없는 눈을 노려보며 말했다.

        

        

       “당신은 여기서 절 기다렸잖아요. 대체 왜 그랬던 건데요…?”

       […….]

        

        

       베로니카는 무언가를 깨닫기라도 한 것처럼 핏기 하나 없는 입술을 뻐끔거렸다.

        

       그녀의 눈이 비로소 나를 담아냈다.

        

        

       [별….]

        

        

       드디어 베로니카는 단어를 입에 담았다.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말을 안 했던 것인지, 목소리가 쩍쩍 갈라졌다.

        

        

       […은…, 너…머…에….]

        

        

       별은, 너머에.

        

       내 질문에 대답하는 걸까. 아니면 자신에게 남겨진 집념을 그저 입에 담은 것에 불과할까.

        

       다만, 문을 넘어가면 알 수 있다는 의미라는 건 분명해 보였다.

        

       눈을 지그시 깜박였다.

        

        

       ‘왜지?’

        

        

       어째서 베로니카는 이곳에 이르러 문지기가 되었는가.

        

       나보고 망설임 없이 해치우라고 했으니, 그녀는 이미 자기 운명을 짐작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베로니카. 왜 당신은… 여기서 문지기 노릇이나 하고 있었습니까?”

        

        

       그리 물어보자, 점점 베로니카의 두 눈이 커져 갔다.

        

       이내,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녀의 미라 같은 얼굴이 마치 얼음 조각처럼 우수수 깨지고 갈라지며.

        

       가까스로 미소를 담아냈기에.

        

        

       [나를… 죽여…, 이… 문을… 넘어갈… 자격…을…!]

        

        

       화아아악!

        

        

       날카로운 섬광이 스쳐 지나가고, 엄청난 마력이 파동처럼 번졌다.

       

       잇달아 하늘에서 휘애애앵, 하는 기이한 바람 소리가 들렸다.

        

       베로니카로부터 눈을 떼고 방심할 수 없었기에, [천리안]을 발동해 상공에 뭐가 나타났는지 살폈다.

        

        

       ‘저건 뭐야…?’

        

        

       대량의 마법진을 머금은 연푸른빛 초승달이 피의 구름 아래에서 휘황찬란한 빛을 발했다.

        

       베로니카와 마력으로 이어진 얼음의 초승달.

       

       생전 처음 보는 얼음 마법이었으나, 그것을 창성하는 데 소모된 마력이 [한빙지옥]보다 더 많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첨벙.

        

       첨벙.

        

        

       얼음 호수의 수면 위로 점차 무언가가 떠올랐다.

       

       무거운 짐을 멘, 나체의 갖은 생물들.

       

       모두 맹렬한 추위 속에 머물렀던 까닭에, 전신이 동상에 걸린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기침 소리,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소리, 울음소리.

        

       그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엉엉 울며 얼음의 초승달을 바라보았다.

        

       기괴한 광경이었다.

        

       그제야 나는 얼음 호수에 침수하는 조건을 알 수 있었다.

        

        

       ‘죽음…. 얼음 호수에 빠지는 건 죽은 자뿐이구나.’

        

        

       살아 있기에 얼음 호수에 빠질 수 없었다.

        

       살아 있기에 얼음 호수가 많은 괴수들을 내보내 나를 배척했다.

       

       승강기에서 만들었던 바위 막대기도 산 자의 마법으로 만들어진 것이었기에 얼음 호수는 받아들이지 않았으리라.

        

       그리 깨달은 순간이었다.

        

        

       콰악!!

        

        

       얼굴 옆에 엄청난 충격이 일며, 내 몸이 공처럼 날아갔다.

        

        

       ‘뭐…?’

       

        

       얼음 호수를 사정 없이 뒹굴었다.

       

       잠깐 정신을 잃을 뻔했으나, [얼음 생성]을 써서 빙괴를 세워 내 몸이 더 굴러가는 것을 막아 냈다.

        

        

       [죽어 주세요…!]

       [죽어…!]

       [살고 싶어…!]

       [여기서 나가게 해줘!]

       [그 몸을, 내게…!]

        

        

       죽은 자들이 내게 달려든다. 그들은 모두 약했다. 그들이 품은 두려움 또한 읽혔다.

        

       곧바로 고개를 들었다. 나를 향해 얼음 마법의 공세가 쏟아지고 있었다.

        

        

       [끄헉!]

       [엄마, 엄마…!]

       [살려…줘…!]

        

        

       나는 [빙제]의 날개를 뻗어 위로 날아가 베로니카의 공격을 모두 피했으나, 날 향해 달려오던 죽은 자들 수십 명이 얼음 마법에 당해 잿빛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전황을 살폈다.

        

        

       “쿨럭…!”

        

        

       입에서 피가 우르르 쏟아졌다. 전신에 타박상이 생겼다.

        

       뺨이 가장 얼얼했다. 마치 누군가에게 강하게 얻어맞은 듯한 기분.

        

       죽은 자들은 부리나케 달려들어 뺨이 찢어지도록 입을 벌리더니, 내 피가 성수라도 되는 것처럼 받아 마시려 했다.

       

       

       [아, 안 돼…!]

       [피가, 산 자의 피가…!]

       

       

       그들은 내 피가 얼음 호수에 스며들자 통곡하며 좌절했다.

        

       한편, 여전히 거대한 문 앞엔 베로니카가 서리낫을 도로 줍고 가만히 서 있었다.

        

        

       ‘방금 뭐였지? 잠깐, 사라졌었어….’

        

        

       강한 타격을 입기 직전, 베로니카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었다.

       

       그리고 충격을 느꼈을 때 베로니카의 모습을 잠깐 눈에 담았었다.

       

       분명 내게 주먹을 휘두른 자세였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속도…라는 표현마저 괴리감이 들 만큼 빠르기까지 했다.

       

       

       ‘마치 동영상을 빨리 감기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이었어….’

       

       

       왜 그런 느낌이 든 거지? 그것도 뒤늦게?

       

       애당초 아까 전에 서리낫끼리 맞부딪힐 때 그녀가 얼마나 힘이 없는지도 파악했다.

       

       저렇게 힘없는 그녀가, 내 몸에 이토록 강력한 타격을 줬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믿기 어려웠다. 

       

       그녀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얼음의 초승달과 관련된 현상일까.

       

       

       ‘휘랑의 망토도 효과를 못 썼고.’

       

       

       휘랑의 망토는 위기를 감지하면 얼음 보호막을 전개한다.

       

       하지만 베로니카의 정체 불명의 공격에는 대응하지 못했다.

       

       

       ‘이 망토조차 반응 못할 속도라….’

       

       

       휘우우우우!

       

        

       거리가 멀어지니 베로니카는 다시 팔을 위로 뻗고 냉기 태양을 생성했다. 9성급 얼음 원소 마법 [한빙지옥]이었다.

        

       죽은 자들이 겁에 질리자, 그들은 다시 얼음 호수 밑으로 침잠했다.

        

        

       ‘나를 죽여 이 문을 넘어갈 자격을…, 이라고 했지? 이어질 말은 ‘증명하라’인가.’

        

        

       베로니카가 가까스로 내게 전한 뜻을 되새겼다.

        

       이성을 가다듬었다. 확인해볼 것이 생겼다.

        

       나도 [한빙지옥]을 구축했다. 우리는 다시 서로를 향해 냉기 태양을 내던졌다.

        

        

       콰아아아아아앙!!!!!

        

        

       전신에 얼음 보호막을 씌우고, 막대한 냉기 폭발을 가로질러 베로니카를 향해 서리낫을 휘두르려 했다.

        

       그녀에게 이른 순간.

        

        

       콰아아악!!

        

        

       “크헉!!”

        

        

       베로니카는 시야에서 사라졌고, 나는 튼튼한 몸이 어그러질 만큼 정체 불명의 강한 타격을 입고서 다시 튕겨져 나갔다.

        

       얼음 호수를 재차 굴렀다. 죽은 자들이 다시 수면 위로 기어올라 비명을 지르며 내게 좀비 떼처럼 달려들었다.

        

        

       차라라락!!

        

        

       쉴 틈 없이 베로니카의 얼음 마법이 쏟아졌다.

       

       또다시 잃을 뻔한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고 날아올라 그 모든 공격을 피했다. 죽은 자들만이 베로니카의 공격에 당해 저마다 소멸할 뿐이었다.

        

       문득 부유섬과 싸웠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명계의 생물들은 내 육신을 잡아먹으면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덤벼들었으니까.

        

       저들도 마찬가지겠지. 이 지옥을 탈출하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를 붙잡으려는 것일 터.

        

       거리가 멀어지자 다시 베로니카가 [한빙지옥]을 구축했다.

        

       죽은 자들은 다시 얼음 호수로 돌아갔다. 아니…, 돌아갔다기보다는 강제로 빠져 버리는 느낌이었다.

        

        

       “허억, 허억….”

        

        

       입에서 우르르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내고 베로니카를 관찰했다.

        

        

       ‘[한빙지옥]의 크기가 조금 작아졌어….’

        

        

       처음 베로니카의 마력을 느끼고 파악한 바, [한빙지옥] 3번 정도는 그녀에게 무리가 아니었다.

        

       즉, 저 얼음의 초승달에 부담될 만큼 많은 마력을 사용한 것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저 초승달은 내게 아무런 해도 가하지 않았다. 저런 걸 왜 유지하고 있을까.

        

        

       ‘알 것 같다….’

       

       

       힘은 질량과 가속도의 곱이며, 가속도는 걸린 시간 분의 속도 변화량이다.

        

       표적의 시간이 느려질수록 공격자가 가하는 충격의 위력은 늘어난다. 표적에게 있어서 가속도의 분모인 ‘걸린 시간’이 공격자가 공격할 때 들인 ‘걸린 시간’보다 줄어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이 약한 베로니카라고 해도 내 몸에 엄청난 타격을 입힐 수 있었던 건, 내 시간이 느려졌기 때문.

       

       하지만 베로니카의 움직임을 알아챘던 건 이미 공격을 맞은 이후였다.

       

       

       ‘처음엔 시간을 멈추고 자기 혼자 움직였다…. 그리고 시간이 점점 원래 상태로 되돌아갔다면….’

       

       

       베로니카가 순간 이동 했다가, 내게 타격을 가했을 때 그녀의 모습이 동영상의 빨리 감기처럼 보였던 현상.

       

       휘랑의 망토가 미처 대응하지 못했던 점.

       

       그녀가 나약한 힘으로 내게 큰 타격을 입혔다는 점이 모두 설명이 된다.

       

       

       ‘시간 정지 능력인가.’

       

       

       모든 범위의 시간을 전부 정지한다는 건 말도 안 되지만.

       

       저 강대한 힘을 지닌 얼음 초승달의 효과가 이곳에 한정된다면 납득이 가능하다.

       

       나만 시간이 멈추었다고 보긴 어려웠다. 배경은 위화감 없이 멀쩡했고, 베로니카만이 사라졌었으니.

        

       하지만 처음에 시간이 멈췄다고 가정할 시, 많은 문제점이 발생한다.

       

       공기는 대류 현상을 일으키지 못하므로 절대적인 방어력을 갖게 될 테고, 억지로 몸을 움직이는 데 성공해도 그 몸은 입자 단위로 분해될 것이었다.

       

       공기 문제가 없어도 중력이나 온갖 물리력 문제가 걸린다.

       

       하지만 베로니카가 시간을 멈추자마자 움직인 게 아니었다면, 반사 신경이 뛰어난 내 눈은 무조건 그녀의 모습을 포착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단순히 시간을 얼리는 능력이 아니다.’

       

       

       정확한 효과는 파악하기 어려워도, 확실한 건 베로니카를 근접전으로 이길 수단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게 저 초승달이 가진 힘의 한계일까.

       

       아니, 그 이상일 것이란 확신이 든다.

        

       

       ‘아마도, 저 힘이….’

       

       

       내가 배워야 할 궁극의 얼음 마법이리라.

       

       

       ‘베로니카의 패턴도 정형화된 것 같고.’

       

        

       두 번 반복하고 느꼈다. 그녀는 마치 나를 시험하는 듯했다.

       

       다가오면 내가 대처할 수 없는 공격을 퍼붓는다.

       

       내가 멀리 날아가면 얼음 마법을 퍼붓고 [한빙지옥]을 사용한다.

       

       아무래도 미지의 얼음 초승달을 띄워 올린 자신을 뛰어넘어, 문을 넘어갈 자격을 증명해 보이라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 뚫지?’

       

       

       이미 난 명왕을 상대하느라 마력을 많이 소진하고 왔다.

       

       베로니카와 이 짓을 반복하면 얼마 안 가 내 쪽의 마력이 먼저 바닥나고 말 것이었다.

       

       근접전은 무조건 피해야 하고, 원거리 공격으로 시간을 끌어도 내가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얘기다.

       

       흡사 외통수나 다름없게 느껴진다.

       

       

       “끄윽! 쿨럭! 하아….”

       

       

       피를 튀기며 헛기침하고 침음을 흘렸다.

       

       몸 상태가 엉망이었다.

       

       

       ‘아니…, 마력이 바닥나기 전에 뒤지겠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베로니카를 쓰러뜨릴 수 있는가.

        

        

       “…어?”

        

        

       문득, 주위를 살피고 깨달았다.

        

       쏟아지던 피의 비는 어느새 붉은 눈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가늠할 수 없는 면적의 불그스름한 구름을 올려다보았다.

        

       나와 베로니카의 싸움이 피의 구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듯했다.

        

        

       ‘얼음 호수의 냉기로도 얼지 않았던 게….’

        

        

       얼었다.

        

       눈은 그 증거였다.

       

       

       “…….”

       

        

       문득 내 인생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앞을 바라보며 단순무식하고 지독하게, 그저 달음박질하며 살아왔던 생애가, 내 얼음 마법에 투영되려 했다.

        

       휙. 서리낫을 위로 뻗는다.

        

       하늘에 극저온의 냉기가 몰아치며 하얀 광명이 쏟아진다.

        

       [천공 지배-백야]. 하늘을 내 것으로 삼았다.

        

        

       [주인?]

        

        

       머릿속을 울리는 빙설룡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았다. 집중하고 싶었으니까.

       

        

       차라라라라락!!!

        

        

       극강의 원소 효율. 내가 마력을 흘릴 수 있는 범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하늘을 향해 대량의 얼음 마력을 쏟아부으며, 피의 구름을 급속도로 얼려갔다. [천공 지배-백야] 덕분에 한층 수월했다.

        

       구름을 메우는 강렬한 냉기. [빙제]의 냉기가 겹친 [엄동의 파란]과 [얼음 생성]의 곱연산.

       

       연산식이 겹치고, 겹치고, 겹쳐가며, 연산의 난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간다.

       

       무식했다. 그러나 올곧았다. 그렇기에 이것이 내 생애가 도달한 묘리였다.

       

       피의 구름은 내 마력에 미처 견디지 못하고 단단히 얼어갔다.

        

       [원소 시너지]. 원소 마법과 원소 마법이 결합해 효과를 증대시키는 작용.

        

       구름의 구성 요소 사이사이. 얼음의 면적을 넓혀가며 잇고, 이어간다.

        

       누군가의 피로 이루어진 구름은 그리 몹시 비대한 면적의 얼음 덩어리로 승화했다.

        

       얼음 호수를 가득 메우는 그림자.

        

       피할 곳은 없다.

        

       서리낫을 내리며 마력을 흘리길 멈춘다.

        

        

       [하늘이….]

        

        

       하늘이 추락한다.

        

        

       쿠우우우우우우우우!!!!!!!

        

        

       묵직한 파공음이 천지를 울린다.

        

       내가 독단적으로 창조한 얼음 원소 마법. 일대의 모든 것을 억압하고 집어삼킨다.

        

       굳이 명명하자면, 이 기술은 [하늘 떨구기]라고 불러야 할 터.

        

       베로니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당장 내게 [한빙지옥]을 퍼부어도 소용없다는 걸 알아챘는지, 내려앉는 얼음 덩어리를 향해 냉기 태양을 던졌다.

        

        

       콰아아아아앙!!

        

        

       광범위한 폭발이 일었으나, 일대만 사나운 냉기로 그득한 지옥의 광경으로 새로이 바뀔 뿐이었다.

        

       추락하는 얼음의 하늘은 끄떡없었다.

       

       측량이 불가능한 무게와 그에 따른 중력 가속도.

       

       그에 편승해 점차 농도를 높혀가는 강렬한 냉기 마력, 얼음 덩어리를 이루는 드높은 마력 밀도.

       

       이것은… 아무리 베로니카라고 해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깨자작!

        

       콰아아아앙!!!

        

        

       추락하는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미지의 힘, 얼음의 초승달을 파괴했다.

        

       위압적인 광경.

        

       차별 없이 모든 걸 억누를 그 막강한 압력을 피할 방법은 간단했다.

       

       

       차라락.

       

       

       나와 빙설룡-힐드 주위로 [빙결 차단막]을 씌웠다.

        

       내 마법의 효과로부터 우리는 애초에 면역이지만, 저 얼음 덩어리는 피의 구름을 얼려서 생성한 것. 우리는 물리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니 [빙결 차단막]을 씌운다면 맞부딪히는 부분의 얼음만을 잡아먹고 무효화할 터. 설령 피의 구름이 날 적시더라도 딱히 해는 없으리라.

        

        

       휘우우우우!!

        

        

       베로니카는 원소 형태로 자신을 변환했다. 눈보라 같은 냉기 바람이 엄청난 속도로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피할 곳이 없으니, 나를 먼저 쓰러뜨리겠다는 집념이 느껴졌다.

       

       

       ‘가까이 있으면 내가 질 텐데, 접근을 허용할 리가.’

       

       

       그녀를 향해 팔을 뻗었다.

        

        

       차라라라락!!

        

        

       강력한 냉기로 베로니카를 밀어냈다. 6성급 얼음 원소 마법 [엄동의 파란]이었다.

        

       원소 형태로 모습을 변화해 움직일 땐 무력해진다. 그녀는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는 [엄동의 파란]에 밀려나 허공을 가로질렀다.

        

       그녀는 [빙제]의 날개를 펼쳐 다시 나를 향해 돌격하며, 미친 듯이 대규모의 얼음 마법 연격을 쏟아부었다.

       

       그 정도는 막을 만했다. 나 또한 얼음 마법을 사용하며 공격을 막거나 반격했다.

        

        

       “끝이에요. 당신은 제게 못 닿습니다.”

       

        

       휘우우우. 베로니카는 내게 다가오길 멈추었다. 이미 늦었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추락하는 하늘이 메운 그늘 속, 우리는 [빙제]의 날개를 뻗은 채 고고하게 빛나는 서로를 가만히 마주 보았다.

        

       어째선지 그녀의 얼굴에서 많은 감정이 내비치는 듯했다.

       

       

       “…평안하시길.”

       

        

       마침내 거대한 얼음 덩어리는 [빙결 차단막]을 씌운 나와 빙설룡-힐드를 무시하고, 베로니카를 휩쓸며.

        

       이윽고, 일대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쿠우우우우우우웅!!!!!

        

        

       압도적인 충격이 내려앉으며 고막을 찢을 듯이 굉음이 울려 퍼졌다.

       

       얼음 덩어리가 우르르 붕괴되고 틈새 사이사이로 얼음 호수가 간헐천처럼 튀어 올랐다.

        

        

       스르르르.

        

        

       빙괴를 풀었다.

       

       거대한 얼음 덩어리는 연푸른빛 가루가 되어 화려하게 흩어졌다.

        

       베로니카 아슬리우스의 형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단지 어느 한 곳에서 유독 아름다운 잿빛 가루만이 흩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베로니카….]

        

        

       빙설룡의 애달픈 감정이 전해져 온다.

        

       나는 베로니카가 소멸한 자리에 내려와 세 쌍의 냉기 날개를 거두었다.

        

       담담히 묵념하고, 거대한 문을 향해 나아갔다.

       

       베로니카가 정확히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있었는지는 모른다.

        

       진실은 저 문을 넘어가면 알 수 있으리라.

        

        

       “힐드, 좀 쉬고 있어라.”

       [주인?]

       “내가 마력이 얼마 안 남았어.”

       […알았다.]

        

        

       빙설룡-힐드와 가볍게 대화를 마치고 녀석을 역소환했다.

        

       남은 마력이 고갈되기 직전이었다. 베로니카와의 싸움에서 많은 피해를 입은 까닭에 몸 상태도 온전치 못했다.

        

       시야가 떨린다. 어지러웠다. 전투가 끝났다고 안도하니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참아야 했다. 이제 도로시를 볼 수 있을 테니까.

        

        

       “…응?”

        

        

       뒤에서 많은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뒤로 돌렸다. 얼음 호수의 많은 괴수들과 죽은 자들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심리를 읽자 경외심이 읽혔다. 그들은 나와 베로니카의 싸움을 호수 밑에서 쭉 지켜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문 너머로 넘어가는 내가 부럽다고도 느끼고 있었다.

        

        

       “…….”

        

        

       할 말은 없었다.

        

       나는 그저 나아갈 뿐이었다.

        

        

       화아아아아!

        

        

       거대한 문짝이 양옆으로 열리기 시작하고, 문 틈새로 빛이 쏟아졌다.

        

       고개를 앞으로 돌려 그 빛을 마주했다.

        

        

       끼이이이익.

        

        

       활짝 열린 문.

        

       눈을 가늘게 뜨고, 망설임 없이 광채 속으로 들어갔다.

        

       빛을 가로지르자 강한 추위 속에서도 가슴속이 포근해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잠깐이지만, 마치 천국에라도 온 것만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발걸음을 재촉하자 빛이 점차 사그라지며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새로운 풍경이 내 흐릿해진 시야에 들어왔다.

       

       이곳은 여전히 지옥이었다.

       

       

       “여기가, 문 너머….”

        

       

       마치 낮과 밤이 극적으로 반으로 갈라진 듯한 광경.

        

       내가 있는 곳은 밝았고, 거리가 떨어진 곳엔 별 하늘과 그 아름다운 하늘을 비추는 호수의 풍경이 자리 잡고 있었다.

        

       멀리서, 상공에 둥둥 떠 있는 검은 구체가 보였다. 그것은 우주를 거울처럼 비치듯 많은 별과 은하를 품고 있었다.

        

       익숙한 마력이 느껴졌다. 도로시의 마력이었다.

        

        

       “하아, 하아….”

        

        

       숨을 고르며 터덜터덜 지친 몸을 이끌었다.

       

       고요 속. 흐릿해진 시야로도 보이는 머나먼 얼음 호수의 창극(蒼極)이 나를 압도했다.

        

       나란 놈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쓸데없는 사색이 머릿속을 휘젓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다행히도, 그 회의감이 의식의 비탈길에서 나를 붙들었다.

       

       나아갔다.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얼음 호수의 서늘한 공기가 내 정신력을 좀 먹어도.

       

       뼈가 부서진 통증과 뒤틀린 근육의 아우성조차 외면하며, 나는 그저 앞으로 나아갔다.

        

       아무리 비틀거려도 올곧게.

        

        

       ‘…다 왔다.’

        

        

       빛과 어둠의 경계선에서 발을 멈추었다.

        

       상공에 떠 있는 구체가 나를 알아채고 많은 눈을 떴다.

       

       곧 구체가 찰흙처럼 갈라지더니, 그 안에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던 한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운 별 하늘을 품은 존재.

        

       네가 보인다.

        

       그녀는 조금씩 눈을 뜨더니, 나를 발견하고 몸을 일으켰다.

       

       많은 눈이 새겨진 우주의 고리가 그녀의 뒤에 자리 잡았다. 그 모든 눈이 나를 바라보았다.

        

       마음이 우르르 무너질 듯했다. 북받치는 감정에 그만 눈시울이 젖어 들었다.

        

       그러나 기어이 웃어 보이며, 나는 말했다.

       

       

       

       

       

       “오랜만이야, 도로시.”

       

       

       내가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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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AWBDLH,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
Score 8.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possessed the weakest character in my favorite game’s Hell Mode. I want to survive, but the way the main character is being controlled is atrocious. It can’t be helped. I have to stop the bad ending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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