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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9

       빠르게 심문실을 나선 백우진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뜨거운 피가 흐르는 전장의 한복판이었다.

         

       “절대로 물러서지 마라!”

       “모두 죽여라!”

         

       살육에 취한 혈교도들의 쾌진격과 이에 물러서지 않고 맞서려는 생도들의 치열한 전투.

         

       화마에 휩싸인 전각과 비명을 내지르며 뿔뿔이 흩어져 가는 사용인들.

         

       백우진은 학관 정문을 높다랗게 가로막고 있는 방벽을 바라보았다.

         

       ‘멀쩡해.’

         

       방벽은 무너지지 않았다.

         

       아니, 무너지기는커녕 급하게 보수한 흔적이 고스란히 보일 정도로 멀쩡하다.

         

       말인즉 학관 내에 꾸준히 늘어나는 혈교도들은 정문을 통해 들어온 게 아니라는 뜻.

         

       ‘그렇다면 어디로?’

         

       비록 짧은 시간에 불과했지만, 백우진은 노련하게 준비를 마쳤다.

         

       상대가 파고들어 올 만한 자그마한 틈이 보이면 메꾸고, 그럴 수 없는 곳에는 인력을 배치하여 신호를 전달할 수 있게끔 해두었건만.

         

       대체 어떻게 한순간에 이토록 많은 인원이 불시에 기습을 가할 수 있단 말인가.

         

       ‘설마….’

         

       아찔한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전쟁 중에 가장 있어선 안 되는 최악의 상황.

         

       ‘내통자가 있는 건가.’

         

       학관 내에 내통자가 있을지 모른다는 것.

         

       ‘평범한 놈이 아니야.’

         

       아군에게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전쟁에서 가장 있어선 안 되는 일임과 동시에 애석하게도 가장 흔히 벌어지는 일.

         

       그렇기에 적당한 대비를 해두었다.

         

       학관 내의 하오문도들을 이용하여 감시체계를 만들어둔 만큼, 어지간한 인물이라면 배신할 낌새를 보이기만 해도 그들의 시야를 벗어날 수 없었을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통수를 맞았다는 건…, 상대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뜻이겠지.

         

       가령 생도 중에서 최상위권 성적을 구가하는 이라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교수진 중에 내통자가 있을지도.’

         

       비교적 움직임이 자유로운 이들 중 내통자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문제는 그것이 정확히 누구인지 밝혀낼 수 있느냐인데….

         

       “크아악!”

         

       생도의 날카로운 비명이 백우진의 상념을 일깨웠다.

         

       가만히 서서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님을 깨달은 백우진의 몸이 전장을 누볐다.

         

       죽음의 위기에 다다른 생도들을 중심으로 뻗은 그의 손길이 수많은 이를 살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손길이 닿을 수 있는 곳까지만이었다.

         

       “꺄아악!”

       “크허어억!”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생도들이 죽어가고 있다.

         

       교수진과 신룡조원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지만, 그들이 넓은 전장을 모두 누빌 수는 없는 상황.

         

       ‘이대로 가면 피해가 너무 커진다.’

         

       아직 여물지 못한 생도들의 실력으로는 혈교도를 막아낼 수 없다.

         

       결국 상위권 생도들과 교수진으로 틈을 메꿔야만 하는데,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하나.

         

       어떻게든 전장의 범위를 좁히는 것뿐.

         

       백우진이 목소리에 내공을 실어 외쳤다.

         

       “다들 대연무장까지 천천히 걸음을 뒤로 물린다! 절대 등은 보이지 마라!”

         

       그의 외침에 멈춰 있던 생도들이 천천히 걸음을 뒤로 물리기 시작했다.

         

       이에 더욱 기세를 탄 혈교도들이 거세게 몰아붙였으나, 곳곳에 배치해둔 고수들이 저지선 역할을 해준 덕분에 큰 피해는 면할 수 있었다.

         

       대연무장으로 향할수록 전장이 좁아지고 있다.

         

       그만큼 고수들이 운신해야 하는 거리가 짧아짐에 따라 생도들의 피해도 더욱 줄었다.

         

       이윽고 당도한 대연무장.

         

       “부상자는 가장 안쪽에서 상처를 치료한다.”

         

       백우진의 지시에 따라 생도들이 전열을 가다듬었다.

         

       2년 차와 3년 차 상위권 생도들을 가장 앞서 배치하고, 곳곳에 교수진을 끼워 넣는다.

         

       그리고 명백히 가장 강한 단체인 옥면신룡조의 조원들에게는 역할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숱한 전투를 경험한 이들.

         

       도리어 자유롭게 놔두면 놔둘수록 그들의 단합력과 전투력이 빛을 발할 터.

         

       “후우.”

         

       주변의 팽배한 긴장감에 손끝이 조금씩 굳는다.

         

       자신도 이럴진대, 생도들은 오죽할까.

         

       그들의 긴장감을 낮추고, 사기를 드높일 방법이 필요하다.

         

       그것도 아주 짧고, 굵은 말 한마디로.

         

       그러다 문득 제법 괜찮은 문구가 떠올랐다.

         

       “이곳에서 살아남는 이들 전부!”

         

       생도들의 긴장 어린 시선이 백우진에게로 향하는 순간.

         

       “내 전 재산을 털어 금양루에서 몇 날, 며칠을 놀고먹게 해주마!”

         

       전쟁터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채우지 못하게 한다.

         

       언제 부족해질지 모르기에 아껴 먹어야 하고,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기에 적게 자야만 한다.

         

       기본적인 식욕과 수면욕이 이러니, 성욕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욕구로 가득 차오르기 마련이다.

         

       고작 며칠에 불과하지만, 그들은 안락한 침상과 따뜻한 음식에 목말라 있는 상태.

         

       그런 상황에서 던진 금양루란 미끼는 제법 먹음직스러웠다.

         

       “와아아아아-!”

         

       아니, 어쩌면 제법 많이.

         

       그들이 외치는 함성에 생에 대한 강인한 의지가 느껴진다.

         

       이를 들은 백우진의 입가에도 작은 미소가 맺혔다.

         

       ‘이거면 됐다.’

         

       그것이면 됐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그들에게 길을 열어줄 것이다.

         

       대부분의 준비는 끝났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아직 중요한 것이 남았다.

         

       백우진은 곧장 근처에 서 있는 혈수마녀를 은밀히 불렀다.

         

       “누이.”

       “…말하거라.”

       “구멍을 막아야 합니다.”

         

       뒤늦게 합류한 혈교도들이 속속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 말인즉, 여전히 어디론가 놈들이 계속해서 드나들고 있다는 뜻.

         

       살아남기 위해선 그 구멍을 막아야만 한다.

         

       그리고 그걸 해내려면 혼자서 수많은 혈교도들을 상대해야만 하기에.

         

       “이곳에서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누이밖에 없어요.”

       “틀렸다.”

         

       그녀가 백우진의 말을 정정했다.

         

       “나밖에 없는 것이니라. 네놈은 이곳에서 다른 놈들을 지휘해야 하지 않느냐.”

       “…….”

         

       누군가에게 힘든 일을 맡기는 것만큼 마음이 불편한 것도 없다.

         

       더군다나 수십이 될지, 수백이 될지.

         

       그것도 아니면 수천이 될지 모르는 혈교도들을 상대하고서 틈을 메우라 지시하는 것은 제아무리 현경의 고수라고 해도 상당한 무리가 따르는 일.

         

       그렇기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전쟁을 준비하는 도중 단 한 번도 망설이지 않던 그가 우물거리자, 혈수마녀가 검지를 튕겨 그의 이마를 때렸다.

         

       따악!

         

       과연 현경의 고수라고 해야 할지.

         

       작은 튕김에도 적잖은 타격음과 통증이 그의 이마를 아리게 만들었다.

         

       “시답잖은 걱정을 하고 있구나. 본녀가 죽기라도 할 것 같으냐?”

       “…그건 아니지만.”

         

       자신도 안다.

         

       그녀가 어지간해선 죽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

         

       그러나 전장에서는 그 어지간한 일들이 숱하게 벌어지곤 한다.

         

       그렇게 떠나보낸 이들의 묘비가 백우진의 가슴에는 빼곡하니 들어차 있고, 자신의 것 외에 그 수를 더 늘리고 싶지 않았다.

         

       “참으로 무른 녀석.”

         

       혈수마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그려졌다.

         

       무르다.

         

       다른 곳에선 그리도 강하고, 단단하면서 제 사람에게는 한없이 무르고, 무디다.

         

       그렇기에 참으로 마음이 간다.

         

       경이롭고, 경외적인 면모와 더불어 그는 더없이 인간적인 면모 또한 갖추고 있기에.

         

       “네게 하나 알려주마.”

         

       그녀가 백우진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무림사에 쓰인 본녀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 같이 거짓뿐이니라.”

         

       무림사에는 혈수마녀를 희대의 악녀라 칭한다.

         

       수많은 고수들을 이유없이 한 줌 혈수로 녹여 없앤 악독한 마녀.

         

       그것을 보았을 때 얼마나 웃었던지.

         

       과연 그것을 엮어낸 이는 자신이 그들을 무참히 살해한 이유를 정말로 몰랐을까?

         

       그럴 리 없다.

         

       다만 은폐하고 싶었을 뿐일 것이다.

         

       역사란 결국 살아남은 승자의 기록.

         

       그들은 자신들을 치부 하나 없는 완전무결한 인물로 역사에 이름을 올리고 싶었을 테지.

         

       “그러나 딱 한 가지, 옳게 쓰인 구절이 있다.”

         

       거짓으로 점철된 무림 역사에 단 한 가지, 정확한 사실로 기재된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마지막 행적.

         

       “본녀는 이 두 손으로 천라지망을 찢고 탈출했느니라.”

         

       하늘을 뒤덮는 그물을 두 손으로 찢고 도망쳤다는 것.

         

       그녀의 주변으로 붉은 기운이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는 것만으로 온몸의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농밀한 기운.

         

       이에 백우진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머금고 말았다.

         

       “허.”

         

       더 강해졌다.

         

       아니, 원래의 힘을 되찾았다고 보는 게 옳을까.

         

       “본녀를 쫓던 천라지망에는 사흑련주도, 무림맹주도 있었느니라.”

         

       그들을 떠올린 그녀가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빠득!

         

       “그놈들에게 내 옆구리를 내어주는 바람에 도망치기는 했으나….”

         

       그녀가 고개를 뒤로 돌려 백우진을 바라보았다.

         

       더없이 고혹적이고, 또 더없이 공포스러움을 자아내는 검붉은 눈동자가 그를 또렷이 응시했다.

         

       “그 두 놈은 본녀의 옆구리를 찢기 위해 각각 팔과 다리를 헌납했다.”

         

       사흑련주와 무림맹주.

         

       각각의 단체에서 최고로 거론되지 않으면 꿈도 꿀 수 없는 자리.

         

       그런 자리에 오른 두 사람을 동시에 상대해 옆구리를 내주고 팔과 다리를 찢었음은, 그녀의 경지가 그야말로 하늘에 가까워져 있음을 의미했다.

         

       그리고 지금 보여주는 그녀의 기운만 봐도, 그것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하는 듯했다.

         

       “네놈이야말로 죽지 말고 잘 버티고 있거라. 본녀가 금방 다녀올 것인즉.”

         

       마지막 말을 남긴 혈수마녀가 하늘로 높이 솟아올랐다.

         

       눈 깜빡할 사이에 점이 되어 멀어져 가는 그녀를 멍하니 지켜보던 백우진이 저도 모르게 입술을 달싹였다.

         

       “존나 멋있어….”

         

       아무래도 반한 것 같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번 에피소드도 얼마 남지 않았읍니다.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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