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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9

     “왔나.”

     프란츠는 백작성의 침실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레이 지브롤터. 드디어 왔는가.”

     허리에 찬 칼에 한 번 손을 올리고, 벽에 걸린 머스킷을 한 번 훑으며 프란츠는 비릿하게 웃었다.

     “지금까지는 벼르기만 했을 뿐, 눈치가 보여서 처리하지 못했지.”

     프란츠가 한 손으로 자신의 앞머리를 쓱 뒤로 쓸어넘겼다.

     그의 손에 묻어있는 붉은 피가 머리를 끈적하게 적셨고, 시야를 가리는 것 하나 없는 상태로 만들어 창문 너머를 바라봤다.

     “…저건 뭐야.”

     그리고 프란츠는 보았다.

     “거짓된 황금의 노예들?”

     

     황금의 가면을 쓴 정체불명의 존재들.

     대부분 노스트럼의 전통적인 갑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으며, 그간 보고를 통해 파악한 황금의 노예들과 다를바 없는 모습.

     하지만 기이하다.

     오직 지브롤터만을 죽이기 위해 지금까지 움직여왔던, 지브롤터를 죽이는 길을 가로막거나 하는 등의 방해공작을 벌이면 검을 휘두르던 자들이 세이레네 백작령으로 왔다?

     “죽었어도 노스트럼이라는 건가.”

     프란츠는 진절머리가 난다든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국왕을 죽인 매국노가 떡하니 지브롤터에 있는데, 내란 을 일으킨 매국노가 아닌 외부의 적부터 처리하려고 들다니. 하여튼 저 더러운 영웅들이란….”

     노스트럼의 땅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황금의 노예들이 있는 걸까.

     그리고 그들은 왜 죽어서도 노스트럼을 위해 저렇게 애쓰는 걸까.

     “저런 힘을 내가 가질 수만 있다면….”

     프란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다루던 골드드래곤의 기적.

     죽은 자의 영혼을 자유롭게 다루는 그 힘이 자신에게 생긴다면, 프란츠는 그걸 이용해 대륙 전체를 정벌할 자신이 있었다.

     무능왕은 그런 기적을 가지고도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다.

     그렇기에 무능왕이며, 프란츠는 무능왕과는 전혀 다른 존재라고 자부한다.

     능력도, 나이도, 실력도, 기회도.

     “전 제국군에 알린다.”

     프란츠는 허리에 차고 있던 네모난 마석을 손에 움켜쥔 뒤, 마석의 윗부분에 새겨진 버튼을 꾹 누르며 말했다.

     “적을 사살하라. 이상.”

     황명.

     노스트럼에 있는 모든 것들을 죽인다.

     투두두두두ㅡㅡㅡㅡ!!

     프란츠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머스킷 특유의 소리가 세이레네 백작령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 * *

     올라오자마자 바로 적의 공세가 시작된다.

     우리가 성벽을 뛰어넘을 것도 예상했다는듯, 적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향해 마구 사격을 날리기 시작했다.

     타ㅡ앙.

     검을 휘둘러 마탄을 쳐낸다.

     내가 아닌 나의 뒤를 노린 공격이었다.

     “일단-”

     내가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내 뒤에 있던 사신이 골목을 달린다.

     지금부터 내가 달려도 따라잡기 힘들 속도로 1층 건물의 지붕을 밟고 다른 건물의 창문으로 뛰어든다.

     서걱.

     안에서 들리는 낮은 칼소리.

     동시에 건물 안쪽에서 붉은 핏자국이 벽에 튀는 모습이 보였고, 나는 바로 여인이 달려간 궤적을 따라 건물로 들어갔다.

     “굳이 힘 안 빼셔도 됩니다, 아스타시아.”

     “…지금은 엘리가 아닐까요?”

     여인, 아스타시아는 퉁명스럽게 답하며 검을 아래로 내렸다.

     “실망, 하셨나요?”

     몸에도 검에도 피 한 방울 묻어있지 않았지만, 아스타시아는 내게 그런 모습을 보였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는듯 볼을 긁적였다.

     “역시 여자가 이렇게 막 그러면….”

     “멋있습니다.”

     “네?”

     “제국적인 멋이 있어서 오히려 좋네요.”

     나는 아스타시아에게 다가가며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노스트럼의 영애들께서는 언제나 왕자님이 자신을 지켜주기를 바라는 그런 ‘레이디’가 되기를 바라지만, 저는 아스타시아가 지금 보여주는 모습을 더 좋아한답니다.”

     “어, 정말요?”

     “속고만 사셨나.”

     “그러면 지금까지 왜 가만히 있었던 거죠? 왜 모른 척을…?”

     “그야, 그런 걸 신경 쓰면서 눈치 보는 당신이 귀여웠으니까?”

     아스타시아가 반쯤 감긴 눈으로 나를 노려본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향해 가볍게 어깨를 으쓱인 뒤, 지팡이에서 칼을 뽑아낸 다음 그대로 아래로 휘둘렀다.

     “전쟁은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추악한 면모를 보여주기 마련이죠. 하지만 그걸 추악하다는 관점이 아니라, 좀 더 그 인간 본연에 가까운 본 모습을 보여준다는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이야기는 다릅니다.”

     “뭔가 엄청 철학적인 말을 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사람 사지를 썰면서 이야기를 하니까 매칭이 안 되는데요.”

     서걱, 서걱.

     “그렇습니까? 저 또한 이런 사람입니다. 환멸하셨습니까?”

     “으음…. 옛날 이야기에서 보던 지브롤터의 모습 그대로라서 딱히 이상하지는 않다?”

     “그러면 됐습니다. 이것부터 처리하도록 하죠.”

     

     우리의 아래.

     잘린 팔 끝에는 머스킷을 움켜쥐고 있고, 사지가 떨어진 채 바닥에 쓰러진 제국군 병사가 우리에게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말은 하지 못한다.

     아마도 혀가 잘린 사람일 터.

     화륵.

     불꽃 마법을 일으키는 마석을 통해 잘린 단면을 지져 과다출혈을 막는다.

     병사는 비명을 내지르지 않는다.

     “정말이지, 제국군이란.”

     “그림자겠죠? 그림자라면 고문 훈련을 받으니까, 참으려고 하는 게 기본이에요.”

     “아스타시아도 그런 훈련을 받았습니까?”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죠. 굶기는 고문은 받은 적은 있지만.”

     “역시, 황제는 죽여야겠습니다.”

     어린 아이를 굶기는 것도 중죄인데 그게 아스타시아다?

     죽일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새삼스럽네.’

     회귀 전의 그녀는 내게 이런 이야기까지는 하지 않았다.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제법 가깝게 지낸 덕분에 이렇게 내면의 어둠에 해당하는 것도 이야기해주는 게 아닐까.

     “아스타시아.”

     “네.”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제가 가진 모든 비밀을 전부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

     아스타시아가 쓰게 웃는다.

     “아버님…이라고 해야겠죠? 나리아도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그레이, 당신에게서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게 있다고.”

     역시나.

     “나리아가 다른 건 몰라도 그 비밀에 관한 건 그레이에게 직접 들어야 한다고 그랬거든요. 그게 어떠한 비밀이든 저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으니까, 안심하세요.”

     “그렇습니까.”

     회귀했다.

     말하기가 조금 쉽지 않다.

     시간 끝의 황금 신전이라는 장소의 특수성 때문이 아니라, 아스타시아가 회귀 전에 겪었던 그런 일을 차마 말하기 어려웠다.

     “모든 게 끝난 뒤, 그 때 느긋하게 이야기를 하도록 할까요.”

     “…네. 모든 게 끝난 뒤.”

     잠깐 사담을 나누기는 했지만, 지금은 전투 중이다.

     당장 우리 아래에 사지가 잘려나간 채 몸통만 남아 기절한 이 자만 하더라도, 한쪽 팔이라도 멀쩡했다면 그 팔로 머스킷을 들어 대화를 나누는 우리를 쏴버렸을 것이다.

     “아스타시아. 이 병사들 말입니다.”

     “네.”

     그림자란 그런 자들이다.

     “이렇게까지 하는 게 잔인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저항할 겁니다.”

     “밧줄로 묶고 포로로 붙잡으면 기회를 틈타 간수를 살해하고 간수의 옷을 입은 채 도주할 거예요. 잘한 거예요.”

     “감사합니다.”

     사지를 자르고 난 뒤에도, 무언가 자폭으로 적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면 기꺼이 그런 위험은 감수하는 자들.

     “사실은 그런 위함부담을 감수하고 싶지 않아서 사지부터 자르라고 명을 내렸는데, 사사로운 명분도 하나 생기긴 했죠.”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잔인하고 냉혹한데, 타인에게는 어떠한 잣대를 내밀겠는가.

     “저들이 노스트럼을 곱게 죽이지 않았으니, 이쪽에서도 피의 복수를 하기에 딱 좋은 상황이니까.”

     방 안.

     병사가 우리를 향해 저격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이 방에도 핏자국이 역력했다.

     심지어 그냥 살해당한 핏자국도 아니고, 어딘가 끌려간 흔적이 잇는 핏자국이 바닥을 따라 쭉 이어지고 있다.

     “따라가도록 하죠.”

     “그레이. 저기, 아까부터 느낀 건데.”

     “뭡니까?”

     “…시신이 수상할 정도로 적지 않아요?”

     아스타시아가 느낀 기묘함.

     “성벽 근처에서도 그랬지만, 시신이 수상할 정도로 없는 게….”

     “맞습니다. 다 치웠죠. 우리에게 보낸 건 아마 ‘이미 죽은 자’일 것입니다.”

     시신의 대부분은 마도자동선에 실렸다.

     하지만 그런 시신도 세이레네 백작령에 있는 사람들 전체 인구와 비교한다면, 그 비율은 절대적인 차이가 있는 법.

     “가시죠. 저들이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이미 기사들이 확인을 마쳤을테니.”

     * * *

     타다다당!!

     마탄이 불을 뿜어낸다.

     이전에는 매직 미사일 싸개라고 부르며 얕보았던 그것이 전신을 두드린다.

     얼굴, 목, 심장, 관절, 낭심.

     한 곳이라도 맞으면 강력한 타격으로 정신을 잃고, 이어서 맞으면 몸에 매직 미사일 형태로 구멍이 뻥 뚫려 즉사할 수도 있는 공격이 연이어 날아온다.

     까ㅡ앙!

     그냥 매직 미사일이 아니다.

     순수하게 마나로 빚어진 것이 아닌, 화살촉처럼 끝을 날카롭게 갈아만든 금속 마탄이 매직 미사일보다 더 빠르게 날아와 몸에 박힌다.

     “우오오오!!”

     기사 카를로스는 기합을 내지르며 앞으로 달렸다.

     

     까가가강.

     정수리를 노린 마탄은 투구에 부딪쳐 튕겨나간다.

     복부에 박힌 마탄은 다소 충격을 주지만, 옆으로 미끄러지며 바닥을 구른다.

     

     타ㅡ앙.

     갑옷 사이의 관절부를 노린 마탄이 날아들어 정확하게 무릎 안쪽을 맞추지만, 기사 카를로스는 멈추지 않는다.

     “더러운 제국의 쓰레기들! 죽어라!”

     서걱.

     카를로스는 가장 가까운 제국군 병사의 머스킷을 잘랐다.

     

     뭉텅, 하고 썰린 머스킷에 병사는 머스킷을 그대로 앞으로 내던지더니, 허리에 찬 검을 뽑으며 기사 카를로스를 향해 휘둘렀다.

     푸ㅡ욱!

     검은 카를로스의 겨드랑이 아래를 찔렀다.

     아니다. 

     카를로스가 자신의 겨드랑이 사이로 검을 찌르게 하면서 검을 팔 안쪽으로 붙잡고, 동시에 앞으로 발을 크게 들어 제국군 병사의 명치를 걷어찬다.

     “이 자식!”

     카를로스는 제국군 병사의 검을 들고는 그대로 병사의 사지를 잘랐다.

     오러까지는 아니지만, 상급기사 중에서도 최고를 자랑하는 위치에 이른 기사의 검은 말끔한 오러가 아니더라도 힘으로 인간의 뼈를 잘라낼 수 있다.

     타다다당!

     동료가 베였으나, 제국군 병사들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제발 좀 죽어라, 이 괴물!!”

     그들은 이미 수십 발이 넘는 마탄을 카를로스에게 쏟아냈으나, 마탄은 그저 갑옷의 겉을 두드리기만 할 뿐이었다.

     “괴물이라고? 누가 괴물이라는 거냐!”

     카를로스는 크게 검을 휘둘렀다.

     목을 노린 검이 아닌 다리부터 잘라낸 검에 병사들은 바닥에 쓰러졌다.

     “네놈들이야말로 괴물이 아니더냐! 나는 알고 있다! 네놈들같은 괴물들을!”

     번쩍.

     다리가 잘렸음에도 불구하고, 피가 뿜어져나오지 않는다.

     “인간도 아닌 괴물 놈들이!!”

     다리가 잘린 채, 제국군 병사들은 머스킷을 들었다.

     눈동자는 붉게 물들고, 머리칼은 서서히 하얗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 더러운 흡혈귀 제국 같으니라고!”

     제국군.

     그림자와 같은 ‘간부급’을 제외하면, 그들의 태반은 인간이 아닌 존재였다.

     평범한 인간은 아주 손쉽게 찢어죽일 수 있는 괴물, 흡혈귀.

     서걱.

     “하….”

     흡혈귀가 된 병사가 앞으로 겨눈 머스킷이 그대로 세 동강으로 잘리는 걸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누가 누구보고 괴물이라고 하는-”

     푸화ㅡㅡ악.

     제국군 병사의 목이 날아갔다.

     이전까지는 사지를 먼저 자르던 카를로스의 검이 처음으로 머리와 몸을 분리했다.

     “도련님께서는 말씀하셨지. 제국군을 사지로 자르는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시신을 빠르게 치우기 위함이라고.”

     서걱, 서걱.

     “죽은 자는 흡혈귀가 될 수 없지만, 살아있는 자는 흡혈귀가 될 수 있다고 하셨지.”

     푸ㅡㅡ욱.

     카를로스의 검이 또다른 흡혈귀를 자른다.

     똑같은 제복의 병사들 가운데, 사지가 잘린 이들 중 그는 피가 뿜어져나오지 않는 이들만 집중적으로 목을 베어넘겼다.

     “이미 흡혈귀가 된 자는 살려둘 필요가 없다. 너희는-”

     “이, 괴물!!”

     타ㅡ앙.

     머스킷의 마탄이 투구에서 유일하게 겉으로 드러난 부분-눈을 맞췄다.

     “…….”

     “해, 해냈다! 내가 상급 기사를 해치웠어!”

     “아쉽네.”

     “…어?”

     툭.

     “도련님께서는 말씀하셨지. 갑옷이 보호하지 못하는 곳을 보호하는 능력도 필요하다고.”

     허망한 소리와 함께, 찌그러진 마탄이 아래로 떨어졌다.

     “죽기 전에 알려주마. 마나로 눈꺼풀을 덮었다.”

     “그게, 무슨 미친 소리ㅡ”

     “죽어라, 괴물.”

     푸ㅡㅡ욱.

     “너희가 죽는 이유는 하나다. 너희는, 지브롤터를 건드렸다.”

     목이 잘린 순간, 제국군 병사는 생각했다.

     왜 그 말이, ‘꼭 괴물을 일깨웠다’라는 말처럼 들렸을까.

     그리고 생각했다.

     황제 폐하는, 정말 이들이 이런 괴물들을 상대로 승산이 있다고 판단을 내리신 걸까.

     의심했기 때문일까.

     “…….”

     제국군 병사의 시야는 회색으로 물들며, 세상이 서서히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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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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