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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9

   상대가 펼치는 마법진에 개입하기 위해서 필요한 능력은 수도 없이 많다.

   

   일단 제일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마력에 대항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전제를 지키지 못하면 마법진에 개입하기도 못한 채 상대의 마력에 자신의 마력이 집어삼켜지게 되니.

   

   마법진에 개입하는 것을 시도할 수조차 없어진다. 본래라면 조이는 폐인이 지닌 마력에 대응할 수 없다.

   

   그녀가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는 건 사실이고, 재능에 안주하지 않고 노력해가며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는 것도 분명한 진실이지만 아직까지 그녀는 아카데미 1학년에 불과하다.

   

   여태까지 갈고 닦아온 것들보다 앞으로 개화할 것들이 더 많은 조이는 아직 폐인에게 힘대결을 걸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을 쌓지 못했다.

   

   그래서 조이는 자신이 지닌 비장의 수를 꺼냈다.

   

   과거 루시가 자신에게 선물해 준 보석. 그 안에 쌓여있는 마력을 개방하는 것을 통해 억지로 균형을 맞춘 것이다.

   

   본래 그녀가 지닌 마력에 보석 속 마력이 더해지며 폐인의 마력과 조이의 마력이 서로를 마주볼 수 있게 되었지만 이 대치는 오래갈 수 없었다.

   

   지금 조이가 다루려하는 마력은 평소 그녀의 한계치를 가뿐히 넘어선 수준이었으니까.

   

   몸 안에 새겨진 마력의 회로가 점차 찢어져나가는 듯한 통증.

   

   혈관 속에 흐르는 피가 점차 끓어오르는 듯한 열기.

   

   이를 악문 조이는 그 고통을 견뎌가면서 자신의 마력을 움직였다.

   

   마법진에 개입하기 위한 두 번째 조건. 상대방이 펼치려는 마법진의 모습을 알 것.

   

   마법진이 모양을 갖춰 마력끼리 서로 응집된 상태에서 그를 흩어버리는 일은 무척이나 어렵다.

   

   격상의 힘을 지녀 짓누르는 게 아니라면 사실상 불가능하지.

   

   그렇지만 마법진이 완성되기 전에 끼어든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서로 손을 붙잡으려 하는 마력의 사이에 끼어들어 애초에 마법진이 형성되는 것을 막는다면 격의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도, 오히려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마법을 흩어 버릴 수 있다.

   

   그리고 폐인을 쓰러트리기 위해 수십 수백번을 도전했던 조이는 이미 상대가 펼칠 마법진을 완벽하게 암기하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 그림이 그려지는 지.

   

   어느 부분이 중심이 되는 지.

   

   어떤 쪽이 결합이 약한 지.

   

   예상 외의 경우가 생겼을 때 어떤 식으로 보완을 하는 지.

   

   이 모든 사안을 말이다.

   

   그렇기에 조이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입꼬리를 끌어 올릴 수 있었다.

   

   이미 어떻게 해야 할 지는 모두 정해져 있어.

   

   이제 남은 건 마력을 움직이는 것 뿐.

   

   그녀가 자신의 지팡이를 가볍게 휘젓자 그녀의 주변의 퍼져 있던 마력들이 각자의 의지를 지닌 것처럼 각자 있어야 할 위치로 이동한다.

   

   루시에게 도움을 구한 후 개화한 그녀의 재능.

   

   마력학 교수가 극찬하며 눈을 붉힐 만큼 뛰어난 다중 마력 조작 능력.

   

   조이가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특기가 아낌없이 발휘됨에 따라 폐인이 그려내던 마법진이 중간에 형성을 멈춘다.

   

   “놀랍구나. 꼬마야.”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일.

   

   마법을 사용하는 폐인 본인조차 상상하지 못했을 일.

   

   분명 당혹을 느껴야 정상인 일.

   

   헌데 어째선지 그러한 일을 앞에 두고서도 폐인은 여전히 태연했다.

   

   “그 안에 품은 재능이 실로 경이로워.”

   “…그럼요. …대 파트란 가문의 영애에게… 이 정도는 별 것 아니죠!”

   

   고통을 억지로 짓누른 조이가 목소리를 드높이자 폐인의 입꼬리가 양 끝으로 오르며 진득한 웃음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아직이다! 겨우 이 정도로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폐인의 외침에 따르듯 그의 마력이 한 층 더 기세를 더한다.

   

   여태까지의 대치는 자신의 배려였다는 듯. 이 정도면 충분히 놀아주었으니 이제 끝을 내자는 듯. 점차 짙어져가는 마력을 앞에 둔 조이는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그게 한계가 아니었다고?!

   

   발악하듯 마법을 만들어낸 게 아니라 그 때까지도 여지를 남겨두고 있었다고!?

   

   말이 안 되잖아!

   

   조이는 필사적으로 폐인의 마력을 밀어내려 노력했지만 그러기엔 격의 차이가 너무도 컸다.

   

   폐인의 마력이 폭풍우라면 조이의 마력은 그저 봄날의 바람일 뿐이었으니.

   

   아무리 발악을 한다 한들 그 끝에 도달할 결말은 폭풍우에 잡아 먹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것 말고는 있을 수 없었다.

   

   어떡하죠?!

   

   어떡해야 하죠?!

   

   어떻게 하면 지금의 제가 이걸 막아낼 수 있죠?!

   

   도대체 어떤 수를 쓰면 이 상황을.

   

   “위대하신 주신께서 가라사대.”

   

   당혹 속에서 조이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었던 그 때.

   

   그녀의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한 치 흐트러짐 없이 따스함만을 담은 목소리가.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는 기적이 따른다 하셨으니.”

   

   그를 따라 고개를 돌린 조이는 어느새 자신의 옆에 선 페이비의, 아니 성녀의 얼굴을 보았다.

   

   신의 뜻을 따라 세상에 희망을 전하고자 하는 성직자의 모습을 말이다.

   

   “우리는 물러섬을 잊을 것이다.”

   

   기도문이 끝난 순간 조이의 몸에 머무르면 고통이 흩어지고 당황과 곤혹으로 가득 차 있던 그녀의 마음에 의지가 스며든다.

   

   악과 싸우는 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축언이 조이에게 의지를 더해준 것이다.

   

   기도를 끝마친 페이비는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는 조이에게 싱긋 웃어준 후 신성을 끌어올리며 다시금 앞을 바라봤다.

   

   “자. 여러분? 이 정도가 아니란 걸 보여주죠.”

   “말하지 않아도 압니다! 성녀님!”

   “갈게.”

   

   힘 찬 남성의 목소리와 무심한 여성의 목소리가 뒤섞임과 동시에 조이의 옆을 스치듯 지나친 아서와 프레이가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돌진을 본 폐인은 방 안을 장악한 자신의 붉은 마력으로 그 돌진을 방해하려 했지만 마력의 움직임은 이전에 비해 어설플 수밖에 없었다.

   

   방 안에 퍼진 그의 마력은 조이의 마력에 의해 묶여 있는 상태였으니까.

   

   “큰 소리 친 거 치곤 별 거 아니군!”

   “허~접.”

   

   폐인이라는 적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아서와 프레이다. 폐인이 지닌 최선을 뚫어가며 이 자리까지 온 그들이 어설퍼진 방해에 멈출 리가 있나.

   

   두 사람은 그 모든 방해를 가뿐히 피해내며 폐인의 앞에 도달했다.

   

   “방해를 하다니!”

   “왜 이제는 버거운가?!”

   “바로 말 바꾸기. 추해.”

   

   두 사람의 무기 위에 오러가 새겨진다.

   

   뒷 일 따위는 생각하지 않겠다는 듯 온 전력을 담은 필살의 형상.

   

   폐인은 그 오러를 보자마자 다급히 검을 휘둘렀지만 그의 검격은 프레이와 아서를 물러서게 만들지 못했다.

   

   오히려 아서 한 사람의 검에 가로 막혀 빈틈을 노출하게 되었을 뿐.

   

   “젠장!”

   

   본래대로였다면 폐인은 아서와 프레이의 협공에도 여유로웠을 것이다.

   

   그가 지닌 무재와 굳건한 신체, 그리고 압도적인 마력은 지금의 아서와 프레이가 견디기에 버거운 수준이었으니까.

   

   허나 지금은 아니다.

   

   수많은 도전 속에서 폐인이 지닌 무의 대부분이 파훼당한 지금은.

   

   마지막 마법을 펼치기 위해 모든 마력을 몸 바깥으로 내어버린 지금은.

   

   폐인도 아서와 프레이의 협공을 막기 위해 필사를 다해야만 했다.

   

   “역시 검 자체는 재미없어. 허접해.”

   “그 말대로! 마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군!”

   “이 빌어먹을 것들이!”

   

   오러와 오러가 부딪히며 생겨나는 불꽃을 멍하니 지켜보던 조이는 자신의 어깨 위에 무언가가 올려지는 것을 느끼고 정신을 차렸다.

   

   “조이.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네?”

   “기회가 찾아왔잖아요. 자꾸 그러면 저도 조이를 얼빵 영애라고 부를 거에요?”

   “네?! 아니 그게 무슨… 아.”

   

   페이비의 말에 놀라 목소리를 높이던 조이는 이내 그녀의 말에 담긴 의미를 이해했다.

   

   붉은 빛의 마력이 점차 흐트러져 가고 있었다.

   

   아서와 프레이의 협공에 의해 폐인이 몰림에 따라 그의 통제 아래에 있던 마력들이 지휘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할 수 있죠?”

   “…물론이에요.”

   

   주인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있는 마력에 개입하는 것은 자연에 존재하는 마력에 개입하는 것만큼이나 손쉬운 일!

   

   과거의 조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조이에게 이 정도 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도울게요. 조이.”

   

   조이는 돕겠다는 페이비의 말에 되물음을 던지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친구로 지내 온 페이비의 능력을 아는 그녀는 가벼운 미소로 믿음을 드러낸 후 다시금 자신의 지팡이를 움직였다.

   

   그러자 조이의 마력이 폐인의 마력 사이사이로 스며들고, 조이의 마력이 만들어낸 길을 따라 페이비의 신성이 움직이며 마력의 흩어짐이 가속화된다.

   

   “그만 둬라! 이런 식으로 끝날 순 없다!”

   

   이상을 감지한 폐인이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저항을 하려 했지만.

   

   “어디를 가려 하는가!”

   “차례차례 대응하는 게 예의. 못 지나가.”

   “비켜라아아아!”

   

   평정을 잃어버린 그로써는 영광스러운 솔라딘의 피를 이은 자와 무재의 축복을 받은 자를 쓰러트릴 수 없었으니.

   

   “안 돼.”

   

   아서 일행에게 몇 번의 죽음을 안겨 주었던 붉은 마력이 흩어지고.

   

   “안 돼!”

   

   방 안을 가득 채우던 불온한 공기가 신성에 의해 가라앉았으며.

   

   “안 된단 말이다!”

   

   그가 펼치려던 마법의 근원이 붕괴된 그 순간.

   

   “안 ㄷ… 쿨럭!쿨럭!”

   

   비명에 가까운 추잡한 목소리를 내지르던 폐인의 입에서 기침과 함께 피가 스며 나온다.

   

   자신의 모든 마력을 담아 만들어내던 마법이 무너짐에 따라 찾아온 반동.

   

   마법을 다루는 자에게 있어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부작용.

   

   그를 빈틈이라 판단한 프레이가 숨통을 끊기 위해 달려나가는 것을 아서가 가로 막는다.

   

   “…왜 막아? 동정?”

   “상대는 루시 알른이다. 마지막에 무슨 함정을 파놨을지 모른다.”

   “아. 이해했어.”

   

   프레이가 순순히 뒤로 물러서는 동안에도 폐인의 죽음은 차츰차츰 진행되어갔다.

   

   그의 몸을 지키던 갑옷에 녹이 슬더니 점차 가루가 되어 무너진다.

   

   젊음을 가지고 있던 그의 피부에 빠른 속도로 주름이 생겨나더니 이윽고 그 주름을 기점으로 피부가 썩어간다.

   

   육신의 무게를 견딜 수 없을 만큼 약해진 뼈가 부러져 그의 몸이 바닥을 뒹군다.

   

   그 끝에 몇 번이나 일어나려다 쓰러지기를 반복한 폐인은 발끝에서부터 무너져가는 자신의 몸을 보고서 허탈한 듯 목소리를 낸다.

   

   “이것이 잘못된 수단을 택한 자의 결말인가.”

   

   시간을 관장하는 신이 폐인이 지닌 시간을 앗아가는 듯한 풍경 속.

   

   “하하. 그래. 이것이 순리라는 것일 테니.”

   

   회한을 담은 눈으로 방 안을 둘러보던 폐인은 마지막으로 자신을 쓰러트린 일행을 바라봤다.

   

   “축하한다. 그대들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 이 저택을 넘어섰으니. 부디 그대들이 일으킨 기적을 자랑스럽게 여겨주면 좋겠군.”

   

   패자가 할 말은 아닌가. 라고 중얼거리며 키득거리던 폐인이었지만 그 웃음소리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웃음이 이어지던 중 그에게 남아 있던 모든 시간이 거두어 져버렸기에.

   

   그렇게 아서 일행을 수백의 실패로 몰아넣었던 대적자는 희미한 웃음을 마지막으로 재가 되어 흩어져 버렸고,

   

   그가 사라진 자리에는 차가운 아름다움을 간직한 팔찌만이 남아 그 곳에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을 증빙했다.

   

   “…조이. 내 장신구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그런다만 저게 내가 생각하는 그 물건이 맞나?”

   “3왕자님! 보면 몰라요!? 세심하게 세공된 보석들! 그 안에 담긴 수많은 빛깔! 뭣보다 저기 새겨진 서명은 분명 프레티님의 것이라고요!”

   “맞습니다. 3왕자님. 저것은 분명 예술교단의 사도께서 제작하신 물건입니다.”

   “그렇다는 건… 우리가 이 던전의 최초 공략자라는 이야기잖나!”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아서가 주먹을 꼭 쥐고.

   

   “끝났다아아아!”

   

   방금 전 모든 힘을 쏟아 부은 조이가 귀족으로써의 품위를 잊은 채 너무 힘들고 아프다며 미소와 함께 징징거리는 소리를 냈고.

   

   “끝났군요.”

   

   조이의 옆에 다가간 페이비가 자신의 마법으로 그녀를 치유했으며.

   

   “마지막에 시시했어.”

   

   자신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져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프레이가 시시하다 허세를 피우며 자신의 검을 검집에 넣는다.

   

   아카데미 기말 시험이 시작되고서 자그마한 휴식도 없이 이어진 6일간의 여정은,

   

   결국 아서 일행의 승리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

   

   – 띠링!

   

   [기말학 던전이 공략되었습니다!]

   

   [퀘스트 실패에 따라 패널티가 부과됩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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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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