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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9

   자욱한 연기의 안개 속.

   그 사이를 크라슈와 하링, 에벨아스크가 함께 들어서고 있었다.

     

   에벨아스크는 크라슈의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기고, 크라슈는 하링의 인비저블을 통해 모습을 숨겼다.

     

   덕분에 크라슈가 라그렌으로 진입했음에도 세계 침식자 중 어느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다.

     

   안개 같은 연기가 가득 찬 라그렌 가문은 조용했다.

   독을 주로 다루는 라그렌 가문의 일원들은 모두 은밀한 움직임에 능하다.

     

   그러니 이렇게 조용해 보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뒤에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을 것이었다.

     

   “하링, 바로 공방실로 가자.”

     

   지금 가장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것은 크라슈의 내단을 해결하는 것이다.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세계 침식자와 정면 싸움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 하링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크라슈를 공방실로 데려가기 시작했다.

   공방실로 데려가는 와중에도 역시 조용한 복도가 이어졌다.

     

   인기척은 드문드문 느껴지나 다들 일부러 숨을 죽였음을 눈치챘다.

     

   ‘세계 침식자가 돌아다니고 있는 거겠지.’

     

   크라슈 또한 연마의 연기 속에서 세계 침식자와 마주칠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 하링에게서 최대한 떨어지지 않은 채 나아갔을까.

     

   쿵- 쿵-

     

   곧이어 커다란 발소리가 크라슈와 하링의 귀에 동시에 들려왔다.

   하링과 크라슈는 눈이 마주치자 바로 벽 쪽에 몸을 기대었다.

     

   그러자 다른 복도에서 웬 거대한 곰 같은 사내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곰이라는 말 딱 그대로였다.

     

   그의 얼굴이 곰의 머리였기 때문이었다.

   체형이 인간형 체형이라는 것만 제외한다면 그는 누가 봐도 영락없이 곰이었다.

     

   ‘흑웅(黑熊).’

     

   크라슈는 곰 같은 사내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세계 침식자, 흑웅.

   강인한 육체를 이용한 무투 능력이 뛰어난 이였다.

     

   “킁, 전투를 기대하고 왔는데 아주 코빼기도 안 보이는 구만. 짜증 나는 것들.”

     

   흑웅이 거칠게 콧소리를 내며 짜증을 부렸다.

   연마의 연기 속에 들어오고 난 이후, 흑웅은 라그렌 가문의 인원들을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다.

     

   예전 세계 침식자 광도제에게 한 번 크게 당한 이후 라그렌 가문은 본가의 전력에 집중했다.

   그 결과, 일반적인 가문의 하녀라고 하더라도 다들 몸을 숨기는 비술과 비밀 통로 사용법을 익혀 두었다.

     

   그러니 이런 비상시가 터지자마자 모든 인원이 일제히 몸을 숨겨 버린 것이다.

     

   “이래서는 연마 놈의 연기가 오히려 방해될 지경이잖아.”

     

   아무리 연마라도 이만큼의 연기 안개를 풀면 외부에서 침입하는 일원을 알 수 있어도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연기 내부에 있는 세계 침식자들은 전부 자기 발로 직접 찾아야 했다.

     

   “한 놈만 걸려봐라. 사지를 분해해 버릴 거다.”

     

   흑웅은 한껏 짜증을 내비치며 애꿎은 벽을 쿵쿵 쳤다.

   그것만으로 라그렌 가문의 건물 전체가 울리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이 건물을 그냥 다 부숴 버리면 안 되나?”

     

   그가 위험한 생각을 품고 있던 그때.

   흑웅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왜냐하면 그의 등 뒤에서 기척 하나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웬 뱀 한 마리가 있었다.

     

   흑웅은 뱀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크라슈 또한 뱀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음사, 뭘 찾았나?”

     

   음사(音蛇)

   뱀을 다루는 세계 침식자다.

     

   감지계 능력과 암살이 뛰어난 음사는 흑웅과 주로 호흡을 맞추던 이다.

     

   음사가 적을 찾아내고, 흑웅이 깨부순다.

   이것이 둘의 조합이었다.

     

   “쉬익.”

     

   흑웅이 질문한 순간 뱀이 혀를 내밀며 무언가를 전했다.

   크라슈와 하링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흑웅의 눈이 바로 빛났다.

     

   “그렇구만 이 고약한 것들이 거기 숨어 있었다 이거지?”

     

   흑웅이 커다란 손을 두둑하니 풀었다.

   그의 입가에 살의를 품은 번들거리는 웃음이 그려졌다.

     

   “안내해. 바로 가자고.”

     

   흑웅의 말을 들은 뱀이 바로 몸을 틀며 나아갔다.

   흑웅은 냉큼 그 뱀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본 크라슈가 우뢰성에 손을 올렸다.

   저 반응을 보아하니 음사가 숨어 있던 라그렌 가문의 일원들을 찾은 게 분명했다.

     

   그 순간 하링의 손이 우뢰성을 잡은 크라슈의 손을 덮었다.

     

   크라슈가 하링과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라그렌 가문 사람들은 그렇게 쉽게 당하지 않아.”

     

   하링의 눈에는 라그렌 가문을 향한 믿음이 담겨 있었다.

     

   “라그렌은 세계 침식자에 관해서는 몇 번이고 대비를 해왔어. 오히려 끌어들이기 위한 함정이야.”

     

   한 번 큰 아픔을 겪은 적이 있기에 라그렌은 더욱 철저히 세계 침식자를 대비했다.

   그들에게 이번 일은 오히려 세계 침식자를 향한 복수 전에 가까웠다.

     

   크라슈는 하링의 말을 듣고는 우뢰성에서 손을 떼었다.

   다름 아닌 라그렌 가문의 직계인 하링이 말한 이야기다.

     

   이건, 믿어야겠지.

     

   크라슈 또한 내단을 해결하지 못한 지금 여기서 정체를 드러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알았어. 계속 가자.”

     

   자신을 믿어준 크라슈의 대답에 하링은 미소를 그리곤 그와 함께 나아갔다.

     

   얼마 후 크라슈는 하링과 함께 공방실에 도착했다.

   공방실은 때마침 텅 비어 있었다.

     

   다른 세계 침식자들도 구태여 공방실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세계 침식자들에게도 독향이 가득한 공방실은 꺼림칙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들어온 만큼 크라슈와 하링은 곧바로 인비저블을 해제했다.

     

   “에벨아스크, 경계 부탁할게.”

   “나중에 일당 받을 거야.”

     

   뭘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크라슈의 그림자에서 나온 에벨아스크가 공방실 입구 쪽으로 향했다.

     

   그녀 또한 세계 침식자 중에서도 실력자에 속한다.

   명성만큼이나 허투루 뚫리지는 않을 터.

     

   저쪽은 에벨아스크에게 맡겨 두고, 크라슈는 하링과 함께 공방실 내부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하게 된 공방실 내부에는 독왕, 하우란이 준비해 두었던 재료들이 있었다.

     

   그 또한 크라슈의 내단을 꺼내는 걸 돕기로 한만큼 최대한 빨리 재료를 공수해준 것이었다.

     

   “하링, 어때.”

   “응, 재료는 충분히 다 갖춰져 있어.”

     

   하링은 안도하며 자기 가방에서 꺼낸 재료들을 바로 손질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손질하는 하링의 얼굴은 걱정이 담겨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원래 크라슈의 몸에서 내단을 꺼내는 영약은 하우란이 만들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링 또한 영약과 독단을 제조하는데 능숙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하우란 만큼은 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다.

     

   이번 영약의 제조는 하링도 처음 해보는 일이다.

   그러니 혹시나 크라슈에게 잘못된 영향을 끼칠까 싶어 그녀의 눈에 걱정이 서린 것이다.

     

   크라슈도 그 점을 눈치챘다.

     

   “하링.”

     

   그러니 크라슈가 하링을 부르자 크라슈는 입가에 당당한 미소를 띄웠다.

     

   “난 웬만한 부작용은 죄다 씹어 삼킨다.”

     

   지금까지 겪어온 일들이 많은 만큼 고통을 인내하는데 이골이 났다.

     

   이래 봬도 크라슈는 감히 단언할 수 있었다.

   세상에서 자기만큼이나 고통을 잘 견딜 수 있는 놈은 없을 거라 말이다.

     

   “그쪽 방면으로는 내가 유일하게 재능 있거든.”

     

   고통받는 게 익숙하다는 것은 꽤나 서글픈 이야기였지만.

   크라슈의 말에서 틀린 말은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어떤 걸 감수하든 내단만 꺼낼 수 있다면 만사 해결이야.”

     

   결과물만 완성 시킨다면 된다.

   그러니 뒷 일은 걱정하지 말아라.

     

   크라슈가 그리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 안 되잖아!”

     

   하지만 그 말을 들은 하링은 버럭 화를 냈다.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해본 말이었는데.

   하링이 화를 낼 줄은 몰랐던 크라슈는 조금 당황한 눈을 하였다.

     

   그런 크라슈를 하링은 슬프게 바라보았다.

     

   “난 크라슈가 아픈 거 싫어.”

     

   크라슈는 늘 결과를 얻기 위해 고통을 인내하려 한다.

   하링은 그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크라슈에게 전하는 급속 영약 제조 당시에도 최대한 그에게 갈 부담을 줄였었다.

     

   미래의 연금성주인 달링은 극도의 효율 위주다.

   그는 크라슈가 직접 효율만을 올려달라 부탁했기에 부작용을 생각하지 않고, 극한의 효율만을 뽑아낸다.

     

   거기서 최대한 조율을 한 것이 하링이었다.

     

   급속 영약을 사용하게 될 크라슈에게 조금이라도 덜 부담이 가도록.

   하링은 효율을 떨어트리지 않는 선에서 어떻게든 저주와 재료들을 연구해 제조했었다.

     

   그 사실을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크라슈가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니까 부작용 없이 완성 시킬 거야.”

     

   살짝 눈물 섞인 하링의 표정을 본 크라슈는 그동안 자신이 너무 무책임했음을 깨달았다.

   자신이 받는 고통을 오직 자신만이 인내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에게 그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치는지는 알지 못했다.

     

   ‘아니,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깨닫지 못했던 거겠지.’

     

   아가레스와 싸웠던 당시.

   크라슈는 구슬프게 울던 비앙카의 얼굴을 떠올렸다.

     

   차마 더 이상 싸우지 말라는 말은 못 한 채.

   눈물 가득하던 비앙카는 결국 크라슈의 힘듦을 덜어 주기 위해 자신도 단련을 시작했었다.

     

   비앙카가 그러했듯 하링 또한 크라슈를 위해 그가 덜 힘든 방향으로 연구하고 있었다.

     

   그런 하링에게 이쪽은 부작용 상관없다며 말을 했으니.

   그녀에게는 당연히 상처로 되돌아갈 말이었다.

     

   재료를 최대한 손질하고 있는 하링을 보며 크라슈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제는 모든 게 자기 혼자만 감내하면 되는 일이 아님을 알았다.

     

   ‘창공의 세대는 나 혼자가 아니니까.’

     

   그걸 깨닫게 된 크라슈가 하링을 보았다.

     

   “미안해. 하링.”

     

   크라슈의 사과를 들은 하링이 움찔거렸다.

     

   “네 덕에 늘 더 버틸 수 있었어.”

     

   크라슈는 하링과 달링, 도르마가 함께 만들어준 급속 영약 덕분에 수도 없이 많은 위기를 넘겼다.

   그러니 오늘에서야 하링의 노력에 감사를 표하자 하링이 본격적인 제조에 들어갔다.

     

   그녀의 눈은 굳은 의지로 차올라 있었다.

     

   하링의 제조는 생각보다도 더 빨랐다.

     

   그동안 달링과 함께 영약을 제조하기 위해 워낙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덕분인지.

   그녀는 비술서에 적힌 내용을 토대로 여러 재료를 빠르게 조합했다.

     

   그리고 얼마 후 결과물을 낸 하링이 자그마한 녹색의 단을 완성 시켰다.

     

   내천단(渿泉團)

     

   내천단에는 기묘한 빛의 흐름이 엿보였다.

     

   마치, 드는 방향에 따라 빛을 반사하는 구슬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링은 완성한 내천단을 쥐고, 크라슈에게 다가갔다.

     

   “크라슈, 영혼을 직접 건드릴 때 충격이 있을 거야.”

     

   아무리 부작용을 줄인다 해도 필요한 효과까지 지울 수는 없는 법이다.

     

   “먹고 나서 내단은 손끝에서 배출 될 거야. 그런 내단이 빠질 때까지는 절대 움직여서는 안 돼.”

     

   하링은 크라슈에게 주의를 요하며 그의 앞에 그릇을 하나 두었다.

   빠져나온 내단을 받아둘 그릇이었다.

     

   “알겠어.”

     

   크라슈의 대답을 들은 하링은 긴장한 얼굴로 그에게 내천단을 건네었다.

   하링에게 받은 내천단을 크라슈는 망설임 없이 바로 삼켰다.

     

   입 안에 넣은 내천단은 정말 구슬을 입에서 굴리는 기분이 들었다.

     

   꿀꺽-

     

   결국 삼키기로 결심한 크라슈가 내천단을 넘긴 순간 목을 타고 내려가는 내천단이 느껴졌다.

     

   얼마 후 크라슈는 몸 내부가 갑갑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몸 안쪽에서 무언가 소용돌이치는 기분이 들었다.

     

   “내천단의 효과가 발현되기 시작한 거야. 집중해야 해.”

     

   하링의 말을 들은 크라슈는 바로 집중 상태에 들어갔다.

   그러자 몸 안에 흘러 들어온 내천단의 기운이 아우라의 단을 건드리는 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최대한 꿈쩍도 하지 않게 뒀던 아우라의 단이 스스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바깥의 출구를 찾고자 나아가고 있던 것이다.

     

   이거라면 확실히 빼낼 수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아우라의 내단이 굴러가는 속도가 생각보다 느렸다.

     

   크라슈의 몸에 깃든 아우라의 내단은 총 19개.

   하나를 옮기는 것마저 이만한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면 전부 빼내기 위해서는 한참 걸릴게 분명했다.

     

   ‘그래도 해야 한다.’

     

   크라슈가 최대한 집중력을 끌어 올리던 순간이었다.

     

   콰앙!

     

   공방실 바깥에서 무언가 커다란 폭발음이 들려왔다.

   어디선가 교전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크라슈, 계속해.”

     

   하링은 크라슈의 집중이 깨지지 않도록 말을 전하고는 몸을 돌렸다.

   크라슈가 말릴 틈도 없었다.

     

   하링은 순식간에 인비저블까지 발동시키며 밖으로 나갔다.

     

   크라슈가 내단을 전부 꺼낼 때까지.

   그를 지키는 건 자신의 몫이다.

     

   ‘절대 아무도 공방실에는 들어서게 두지 않아.’

     

   자신이 마음에 품은 이를 지키기 위해 후에 ‘독봉’이라 불릴 하링이 독침을 날카롭게 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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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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