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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9

    <319 – 특별한 약속>

     

    퍼거슨은 예 그러십니까 하고 오크노디를 두고 떠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렇게는 둘 수 없겠는데. 자네들이 오크노디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에 아카데미에 보냈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져서 그 아이를 재단의 품에서 기를 속셈임을 모를 것 같나?”

    “제국교수의 습격을 당한 아이에게 마음의 상처를 달랠 시간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거든 학생의 안위를 걱정하는 학부모들이 우리 재단에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지금 아카데미를 협박하는 건가?”

    “명분은 재단에게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말로는 싸워서 이길 수 없다.

    그렇다고 무력을 사용하면 다른 아이들도 지키지 못하고 본인의 신변도 위험해진다.

    적어도 대화로 평화롭게 풀어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을 때에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럼 직접 그 아이와 대화를 나누겠네. 자신의 의지로 이곳에 머무르려 하는지, 복귀일정은 어떻게 잡을 계획인지. 아카데미의 교수로서도 학생을 향한 걱정이 드는 마음은 이해하겠지? 이것조차도 거절한다면 아카데미에서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네.”

     

    뭐든지 폭력으로 해결하려 드는 것이 빠르고 간단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정말로 위험하고 성가신 칼은 손이 아닌 혀에서 나오기도 한다.

    재단에서도 아카데미와의 전면전마저 감수한 것은 아니었는지 조나도 그것마저 거부하지는 못했다.

     

    “따라오십시오.”

     

    훈련의 탑.

    시설 내부에 들어온 퍼거슨은 시설 전체에 퍼진 거대한 마력장을 느꼈다.

    아카데미에 들어오는 교수라면 누구라도 감지할 수밖에 없는 아카데미 부지 전체를 장악하는 드래곤교장의 거대한 마력장에 필적하는 기운이다.

     

    <대륙급 마나경계>

    <주의 뜻을 거스르지 말라non obedite voluntati Domini>

     

    스스로 현인신이 되어 세계의 법칙을 유린할 수 있는 드래곤교장은 바다 한가운데에 섬을 세워 그만의 법칙을 자신의 영토에 새겼다.

    아카데미는 그렇게 12선신과 12악신, 유일신 소페미아조차 쉬이 넘볼 수 없는 영역이 되었다.

    지금 이 탑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은 그에 못지않다.

     

    ‘이사장의 정체에 대한 소문이 사실이었던 건가?’

     

    장소도 의미심장하다.

    용사파티를 위해 탄생한 훈련의 탑.

    유일신 소페미아가 자신이 선정한 진정한 용사를 위해 만들어낸 훈련시설.

    그런 시설을 비밀스레 점거한 이사장과 재단.

    어쩌면 이사장은 무단점거자가 아니라 이 시설을 이용할 자격이 충분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푸슝.

     

    고대시설에서부터 인류 전체에 확산된 기술.

    엘리베이터.

    문명의 이기가 좌우로 문을 열자 오크노디와 이사장이 나타났다.

    마치 거대한 악마의 수중에 언제 부서질지 모를 작고 여린 보석이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조마조마한 광경.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부수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런 초조함마저 느끼는 퍼거슨을 보고 오크노디가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지었다.

     

    “으겍. 진짜다.”

    “진짜?”

    “사악한 연쇄강화마. 고학년 파산의 주범!”

    “갑자기 무슨 소리냐.”

    “시치미 떼지 말아요. 고학년 전용 강화서비스는 퍼거슨 교수님이 운영하고 있잖아요!”

     

    어디서 입 싼 고학년 선배라는 녀석이 이제 막 1학년인 오크노디에게 주절주절 입이라도 털었나보다.

    첫인상을 제대로 조졌다는 생각에 퍼거슨이 와락 인상을 구겼다.

    지금 네가 다리를 붙잡고 매달려있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알기는 하냐?

    당장이라도 윽박지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이사장은 그런 퍼거슨의 속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처럼 가볍게 어깨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웃었다.

     

    “제 아이에게 할 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공사가 다망하신 분을 오래 데리고 있을 수도 없으니 여기서 짧게 용무를 보도록 하죠.”

    “…오크노디. 크루즈선으로 돌아가는 길을 놓치거든 언제 아카데미로 돌아갈지 알 수 없단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함께 돌아가자.”

    “싫어요!”

    “선배들이 나에 대해 퍼트린 헛소문 때문에 그러니? 오해가 있다면 말로 풀어보자꾸나.”

    “티토소가한테 5강 조명대 들려준 것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요. 강화의 강력함을 얼리엑서스로 보여주고 고학년이 되면 다 털어먹으려고 작정한 거죠?”

    “왜 그런 못된 말을 하니? 신께 맹세컨대 그런 사악한 계획은 꾸민 적이 없단다.”

    “흥. 절대 안 속아! 절 티토소가처럼 쉽게 속여 넘길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그렇게 어려운 아이가 브론즈 교수와 디스트로이어 교수에게 제자로 육성당하고 있다는 소문이 벌써부터 퍼지디?

    벌써부터 4학년을 넘겨서 5학년 이상 대학원생 루트가 보이기 시작하는 아이의 투정이 교수로서는 우습게 보였지만 학생들의 인솔자로서는 더욱 성가시게 들렸다.

    이 불신은 깊다.

    적어도 자신이 해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이사장이 웃는 얼굴로 비웃듯이 입꼬리를 올리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더 해봤자 소용은 없어 보입니다만?’

    ‘…재단의 이사장보다 신용이 없다니, 망할. 강화슬롯머신의 고강확률을 너무 내려뒀나?’

     

    오크노디를 설득하는 것은 틀렸다.

    마음을 접으려던 그의 눈에 두 사람의 뒤로 무척이나 불편하다는 얼굴을 한 학생이 보였다.

    한 자루의 검처럼 날카로운 기세를 지니고 있지만 이사장이 무서워서 그 기를 제대로 펼치지도 못하고 찌그러져 있는 남학생.

    981기 1학년 상급반 학생인 싱이었다.

     

    “싱. 너도 오크노디와 함께 남을 거냐?”

    “그렇다.”

     

    이 새낀 왜 반말이야.

    퍼거슨의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사장만 없으면 남 눈치 볼 것도 없이 망치로 머리통을 깡깡 후려칠 텐데.

     

    “돌아갈 길이 사라지면 너희의 신변은 재단이 지니는 것이나 다름없다. 저들이 허락하지 않으면 평생을 이 섬에 갇혀 지내야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럴 걱정은 필요 없다. 이 탑의 60층에는 <전송마법진>이 있고 오크노디는 이사장과의 거래로 우리 둘이 60층으로 직행할 권리도 뚫었다.”

    “원하는 때에는 배를 타지 않고도 언제든지 이 탑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끄덕.

    이제는 대꾸도 없이 고개만 움직이는 싱.

    퍼거슨의 손등에 힘줄이 솟아올랐다.

    저 새끼는 나중에 내 강의 들으면 진짜 뒤졌다고 복창하게 만들어야 속이 풀리겠어.

    살벌한 생각을 애써 억누른 채, 퍼거슨은 이만하면 교수된 도리는 다했다고 판단했다.

     

    “그럼 학기가 시작하기 전까지는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네. 알다시피 3월부터 7월까지가 1학기였다면 9월부터 12월까지가 2학기이니 늦어도 8월 말까지는 아카데미로 복귀해야 강의를 원활하게 이수하고 벌금을 지불하지 않을 걸세.”

     

    퍼거슨은 오크노디와 싱을 데리고 돌아가는 것을 포기했다.

     

     

    * *

     

     

    탑의 창문 너머로 섬을 떠나는 크루즈선을 바라보는 오크노디.

    그녀에게 이사장이 물었다.

     

    “아쉽지는 않으십니까? 친구들과 함께 방학을 좀 더 만끽할 시간을 놓쳐서.”

    “전혀요? 학기가 시작하면 어차피 다시 보게 될 텐데요 머!”

    “후후. 만일 제가 아카데미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면 어쩔 겁니까? 이제 아카데미로 학생을 데려갈 교수도 없는데.”

     

    오크노디가 이사장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어딘지 모르게 확신에 찬 얼굴로 피이━, 하고 새된 소리를 내며 웃었다.

     

    “파파 같은 거물이 그럴 리가 없잖아요.”

    “제가 거물인 것과 아카데미 등원 사이에 제가 모르는 상관관계라도 있습니까?”

    “당연히 있죠. 잔챙이 악당들은 자기 말을 지킬 줄 모르지만 거물들은 품격이 있잖아요. 약속은 지킬 줄 알아야 거물이 될 자격이 있는걸요.”

     

    사악해도 멋있게.

    그래야 거악이죠!

    해맑은 자기주장은 기특함의 감정을 유발했다.

     

    “그런 훌륭한 말은 어디서 배웠습니까?”

    “헤헤. 그냥 어쩌다보니? 그래야 할 것 같더라고요.”

    “훌륭합니다. 실로 훌륭해요. 오크노디, 당신에게는 어쩌면 소질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무슨 소질이요?”

    “대륙의 거악이라고 불릴 소질!”

     

    옆에 쭈그러져있던 싱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이 미친 부녀가 교수가 떠나자마자 무슨 대화를 하는 거지?’

     

    “기억하십시오. 범인들은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거짓말을 합니다. 지키지 못할 약속. 허울뿐인 허세. 그런 말들을 세계는 지켜보고 또 기억합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말조차 지키지 않는 거짓말쟁이구나, 라고 말입니다.”

    “헤에. 지금 그거 꼭 파파 같았어요!”

    “후후. 파파 같은 것이 아니라 파파가 맞습니다. 당신도 제게 암묵적인 약속을 하지 않았나요?”

    “음~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거짓은 나쁩니다. 세상에 기가 없던 시절에는 강자의 말에는 신의가 존재하지 않았고, 얼마든지 약자를 기만하기 위해 번복할 수 있었지요.”

    “지금은 다른가요?”

    “물론입니다. 거짓을 말하지 않고 약속을 지키는 자에게 세계는 조금씩 신용을 줍니다. 내공, 마나, 신성력. 종류는 달라도 신용의 크기가 점점 커지죠.”

    “!”

     

    두 사람의 대화를 훔쳐듣던 싱은 정신이 번뜩일 정도로 현기가 깃든 이야기에 신경이 곤두섰다.

    그런 싱의 마음까지 헤아린다는 듯이 이사장은 너그러이 웃어보였다.

     

    “싱. 당신에게도 좋은 교훈이 될 테니 새겨들으십시오. 세계와의 약속을 지키는 방법은 자신의 말을 지키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이 되면 구보를 하는 것도, 하루 일만 번의 칼질을 반복하는 것도 몸으로 지키는 약속이죠.”

    “내 수련에도 그런 의미가 있었다고…?”

    “앗, 그건 돌핑팬츠 언니들을… 아아앗,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물론 일상 속의 성실한 약속을 지키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큰 신용을 얻으려면 큰 약속을 지켜야겠죠. 복수를 끝마치겠다는 다짐을 실제로 이룬다거나, 한 지역의 모든 음식을 종류별로 하나씩 먹겠다는 목표를 달성한다거나.”

    “!!”

    “츄릅…!”

    “그러니 쉽게 다짐하지 마십시오. 무엇에도 쉽게 기대를 품지 마십시오. 다짐했다면 지키고 기대했다면 이루어야만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신용은 여러분의 곁을 떠날 테니까요.”

     

    대륙의 거악, 재단의 이사장은 이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던 건가.

    사악한 존재일지언정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만큼은 존경할만한 구석이 있을지도 모른다.

    싱은 그런 생각을 품었다.

     

    “그런 의미에서 약속을 하나 걸어보지 않겠습니까?”

    “…무슨 약속을?”

    “50층에 자신의 발로 올라서기 전까지 탑을 떠나지 않는다. 이 조건을 달성한다면 저도 제 나름의 축하선물을 드리죠. 대신, 조건을 달성하지 못하면 탑을 등반할 때까지 특별훈련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오크노디의 도움으로 39층의 시련을 극복한 싱에게는 꽤나 솔깃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내기치고는 어딘지 모르게 물러터진 구석이 있는 제안이었다.

     

    “그런 짓을 한다고 당신이 얻을 이득이 뭐지?”

    “간단합니다. 여러분이 아카데미가 아닌 재단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죠.”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테디베어의 비축분이 말라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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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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