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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19

       문이 닫혔다.

       

       수십 명의 사람이 들어오고도 남을 정도로 넓은 방에는 단 열 명의 인사만이 입장했다. 대통령과 몇몇 부처의 장관, 그리고 나와 버멜도 각각 한 자리씩 차지했다.

       

       “후우, 덥다 더워.”

       “다들 벗읍시다.”

       

       가짜 피에 찌든 수술복을 벗으며 모두가 한숨을 쉬었다.

       

       “꼭 이렇게 해야만 했습니까?”

       

       행정부장관이 불편한 기색으로 물었다.

       

       “모두의 눈을 속이기 위한 조치입니다.”

       “이렇게 하면 정말로 마왕이 유인되는 게 맞습니까?”

       “그럼요.”

       

       행정부장관은 여전히 내가 못 미더운 모양이다.

       

       그럴 법도 하다. 웬 마수 하나가, 그것도 최고 간부가 넝쿨째로 굴러 들어와서는, 마도부장관이라는 직책을 떡하니 먹어 버렸으니까. 나 같아도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저는 믿을 수 없습니다.”

       “정 그러시다면 저기 지군이나 공군께 여쭈어 보세요. 제 신원 보증을 서 주고 계시는 분들이니까요.”

       

       이 공간에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땅의 정령왕인 노움.

       

       그리고 얼마 전 버멜과 계약한 치녀.

       

       이 둘도 마왕 암살 계획의 참가자다.

       

       “걱정하지 말게, 엘프여. 이 소녀가 호천을 골로 보냈지 않느냐? 그것만으로도 우리 편에 섰다는 증거는 확실하지. 자! 얼굴 풀고 저리 가서 앉으시게.”

       

       노움의 변호에도 행정부장관은 끄응, 하는 소리를 냈다.

       

       대통령이나 다른 고위간부도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이 나와 함께하되, 신뢰하지는 않는 눈치.

       

       “에테르.”

       

       버멜이 나를 따로 불러내서 속삭였다.

       

       “몸 상태는 어때?”

       

       그리 물어보는 버멜의 얼굴색이 좋지 않다.

       

       나는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대학원 세 번 다니는 느낌인데.”

       

       버멜은 질겁하며 물러났다.

       

       어느새 카리나 씨가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세팅을 마친 뒤 주위를 환기하고 있었다.

       

       “그럼 작전을 점검하겠습니다.”

       

       작전이라고 해 봐야 간단하다.

       

       “우리 카우렐리아 정부는 기존의 전선을 유지하면서 수도를 완전히 비웁니다. 남쪽에 자리한 안전한 대도시 중 한 곳으로 천도하여 마왕이 이곳 메르헤름을 점령할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입니다.”

       “여전히 미친 계획이로군.”

       

       행안부장관과 법무부장관이 동시에 혀를 찼다.

       

       “난 이 계획 반대입니다.”

       “저도 말입니다.”

       

       이 사람들, 아직 정신을 덜 차렸구나.

       

       “수도가 점령되면 우리 군의 사기가 꺾입니다. 반대로 마왕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질 것이니, 정령이 있다고는 하나 우리가 어찌 그들의 쾌진격을 감당할 수 있겠단 말입니까?”

       “사기는 꺾여도 상관 없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곘습니다. 부디 불민한 저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어차피 흑주 한 번이면 마왕은 죽습니다.”

       

       법무부장관의 표정이 멍청해졌다. 내 변론이 억지처럼 보이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틀린 건 내가 아니라 저 사람이다.

       

       호천을 죽이고 두 달. 

       

       미미하게나마 흑주를 경량화하고 몇 기를 추가 생산했다. 만에 하나 패배할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마도부장관, 행정부도 발언할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수도의 국민이 모두 대피하기 전에 마왕이 쳐들어오면 어떡합니까? 구멍을 낸다든지, 민천과 양동 작전을 펼친다든지.”

       “방어선을 촘촘이 짜면 해결될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한들, 당신이 과거에 만든 그 폭탄 한 발이면 수십만의 카우렐리아 국민이 봉변을 당할 것입니다.”

       

       이것 또한 마찬가지다. 반론할 수 있다.

       

       “혹시 마도부장관께선 이 점을 노리는 건 아니실지….”

       “헛소리 마십쇼. 마왕군에 돌아갈 생각이었다면 흑주를 만든 시점에서 호천과 함께 여길 벗어났을 겁니다.”

       “……솔직히, 미덥지 않습니다.”

       

       행정부장관은 끝까지 반대하는 기색이었다.

       

       “뭐가 말입니까?”

       “마왕은 의심이 많은 자입니다. 이 정도로 과연 넘어오겠습니까?”

       “그래서 이렇게까지 했잖아요?”

       

       나는 땀에 젖은 민소매티를 펄럭거리며 대꾸했다.

       

       “제가 마왕의 성격을 알듯, 마왕도 제 성격을 알죠.”

       

       속임수를 써 친한 친구와 동생들을 울렸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들을 이용한 셈이다.

       

       사후세계가 있다면 분명 지옥에 떨어지겠지.

       

       “읍.”

       

       또다.

       

       나는 행정부장관과 말싸움을 벌이다 말고 휴지를 꺼냈다. 입을 틀어막고 어깨를 들썩였다.

       

       얼마 안 가 휴지가 흐물흐물하게 젖었다.

       

       “……!”

       

       아마 각처 인사들도 이런 내 모습은 처음 볼 것이다.

       

       “허어…. 이거, 못 보일 꼴을 보였습니다.”

       “여, 연기가 지나치십니다.”

       “연기 아닙니다.”

       

       아직 끝이 아니다.

       

       “카학, 칵…!!”

       

       사레라도 들린 것처럼 폐부가 저릿하다.

       

       몇 번이나 기침을 토해냈다. 입에 피거품이 올라왔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인사들이 입을 떡 벌린 채로 내 각혈쇼를 직관했다. 이목이 집중되니 조금 부담스러웠다.

       

       “지병이, 있으셨습니까?”

       “정령의 샘 때문입니다.”

       “저, 정령의 샘이라면!”

       “예. 여신님과 계약을 나누었습니다. 그 대가로 제 수명을 가져가시더군요.”

       

       이렇게 된 거.

       

       이젠 숨길 필요가 없었다.

       

       “아마 올해를 넘기기 힘들 겁니다.”

       “…….”

       

       모두가 유감이라는 듯 입을 다문다.

       

       하지만 1천 년을 살아오면서 인간의 마음 읽기 100단에 도달하여 심리학 명예박사학위를 손수 취득한 나라면 저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다들 좋아하고 있다.

       

       마왕이 죽으면, 다음 위협은 나니까.

       

       어떻게 공구리쳐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겠지.

       

       그런데 어라? 내가 얼마 못 가서 죽는다고 하네?

       

       경사도 이런 경사가 없다, 이 말이다.

       

       역시 귀 긴 놈은 믿을 게 못 된다니까.

       

       “…에테르.”

       

       단 한 명.

       

       내 곁에 있는 녀석을 제외하고는.

       

       “힘들면 말하지 말고 쉬어.”

       

       버멜 호르데.

       

       아니, 김성현.

       

       원래 세계로 돌아가면 가장 먼저 찾을 새끼 1순위.

       

       “정말 쉬어도 되냐.”

       

       솔직히 조금 힘든데.

       

       “그럼. 나머지는 나한테 맡겨.”

       

       오, 오우.

       

       원래는 못미더운 면이 있었는데. 이젠 꽤 강직하잖아.

       

       게다가 시키지 않은 일도 알아서 하는 점까지.

       

       대학원생으로 딱이다.

       

       버멜은 정부 인사 상대로 생각보다 조리 있게 말했다. 어느 부분에선 내가 변론하는 것보다 더 좋았다.  게임 지식인가 뭔가가 있어서 그런가? 

       

       나와 주변 인물의 생각을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중간중간 태클을 거는 엘프가 있으면 에어리얼을 꺼내 분위기를 뒤틀어 주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기강을 잡으며 나머지 계획을 점검하고 조율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래, 저 치녀가 사기라니까. 게임으로 치면 치트잖아.

       

       세상에 어떤 정치인이 사회 초년생의 말을 들어주냐고. 다 저 정령왕이랑 계약했으니까 들어주는 거지.

       

       그렇지? 앨리스 언니.

       

       언니?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머릿속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올 뿐.

       

       갑자기 공기가 무거워졌다.

       

       

       **

       

       

       계획을 최종 점검하면 이러하다.

       

       수도를 거짓으로 내어준 뒤, 마왕이 세계수를 태우고 정령계에 진입할 때까지 내버려 둔다. 이를 유인하는 역할을 지군(地君) 노움이 맡는다.

       

       노움이 마왕을 정령계로 데려가면 나와 버멜이 뒤따라 들어간다. 군사는 아주 조금. 그마저도 사람이 아닌 골렘을 투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노움과 함께 마왕을 쓰러뜨리고 흑주를 설치한다. 이후 정령계를 닫고 빠져 나온다.

       

       그 다음은?

       

       펑.

       

       흑주는 강력하다. 하지만 마왕을 확실하게 잡을 수 있다.

       

       위력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일처리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 나는 호천을 잡은 이후 두 달 동안 흑주를 경량화하하는 동시에 화력을 높이는 방법을 추가로 모색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제 남은 건 터뜨리는 곳을 잡는 것뿐.

       

       그 지점이 정령계로 선정되었다.

       

       정령계는 뭐, 현계와는 달리 다중차원으로 되어 있으니 차원 하나 날아간다고 해도 상관은 없을 것이다.

       

       “에테르.”

       

       물론 이 계획은 타인에게 말할 수는 없다. 이런 작전은 기밀 유지가 생명이니까.

       

       “에테르, 에테르?”

       

       아무튼, 남은 건 세부적인 계획을 다듬는 일.

       

       마왕은 병이라 여길 정도로 신중한 성격이다. 내 낚시질이 성공할지 안 할지는 솔직히 장담할 수 없다.

       

       만약 실패하면 도리어 끝장이다.

       

       내가 먹히면, 세계도 멸망한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카우렐리아가 역사에서 사라질 각오는 해야 한다.

       

       “에테르!”

       

       그러니까 이 정도로 연기에 과몰입하고 있는 거지.

       

       “에테르, 내 말 안 들려?”

       

       머리 위로 손이 휘적휘적 움직인다. 내 건 아니었다.

       

       “어? 어….”

       “나야, 나…. 나 왔어.”

       

       붉은 머리카락에, 새빨간 눈동자.

       

       어느덧 로테가 내 병문안을 와 있었다.

       

       “다행이야. 살아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나는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가 구사일생한 것으로 되어있었다. 로테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어어….”

       

       연기에 충실하고자, 그녀를 보았음에도 인사를 하기는커녕 고개를 좌우로 까딱였다.

       

       로테는 나를 꽉 껴안고 있다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는 떨어졌다.

       

       “자, 잠깐만.”

       “어어? 어.”

       “너, 설마.”

       

       로테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난다.

       

       마치 자동차에 치여 죽은 비둘기를 처음 본 어린아이처럼. 동심과 희망이 사라진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아, 아닐 거야. 아니겠지? 아닐 거야….”

       

       사람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덴 다섯 단계가 있다고 하나?

       

       그건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겪을 수 있는 일인가 보다.

       

       “나 기억하지? 응? 제발, 기억한다고 해 줘.”

       

       처음은 부정.

       

       “왜 하필이면 너야. 왜, 왜, 왜, 왜…!”

       

       그 다음은 분노.

       

       “여신님, 제발. 제발. 제발….”

       

       이번에는 협상.

       

       이쯤에서 나는 연기를 포기했다. 같은 소녀를 세 번 울리는 건 친구로서 더는 할 짓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로테.”

       

       몸을 움직여 반쯤 주저앉아 있는 소녀에게 손을 뻗었다.

       

       “미안해. 잠깐 잊고 있었어.”

       “아… 이, 이, 이 바, 바보야! 잊을 게 따로 있지…!”

       

       로테는 나를 부둥켜 안고 흐느꼈다.

       

       말랑말랑한 감촉이 병약해진 몸을 푹신하게 감쌌다. 마치 어머니의 품에 안긴 듯한 감각이었다.

       

       “나, 너를 위해 준비한 게 있어.”

       “뭔데?”

       

       꼬옥.

       

       로테가 내 손을 잡으며 싱긋 웃었다.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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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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