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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

       

       

       

       

       마이어 씨는 내 떨떠름한 반응에 들이밀었던 얼굴을 얼른 빼고 헛기침을 했다.

       

       “커험. 실례했습니다. 사역마가 귀여워서 그만 실수를….”

       “하하, 괜찮습니다. 이제 꽤 익숙하거든요.”

       “뀨우.”

       

       마이어 씨는 내 손에 얌전히 들려 있는 아르를 힐끔 바라보더니,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크흠. 하여튼, 가능하시다면 캐머해릴까지 쭉 호위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히파르에서 잠시 머물긴 하겠지만, 그사이에 또 캐머해릴까지 편도로 호위를 해 줄 용병을 구하려면 번거롭기도 하고…. 그동안 저도 히파르에서 처리할 일이 있다 보니 웬만하면 호위해 주시던 분이 계속 하는 게 마음이 편하기도 하고요.”

       “근데 방금은 테이머라 걱정되신다고 히파르에서 바로 칼 같이 교체할 것처럼 말씀하신….”

       “허허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오해입니다. 크흠. 다소 마음에 걸린다고 말한 건 사실이지만 교체한다고는….”

       

       마이어 씨는 내 눈치를 보며 연신 헛기침을 했다. 

       

       “…….”

       “…….”

       

       그리고 나와 아르가 입을 다문 채 빤히 바라보자,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실토했다. 

       

       “…예. 솔직히 테이머이시라는 말을 듣고 히파르에서 새로 용병을 구인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역마가 제 생각보다 너무 귀여워서….”

       

       마이어 씨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뀨우우.”

       

       내 손에 여전히 들려 있는 아르는, 내가 손가락으로 말랑한 배를 장난스럽게 누르자 배시시 웃으며 뀨 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공중에 뜬 두 발을 가볍게 동동 굴렀다. 

       

       그 모습을 본 마이어 씨는 침을 꿀꺽 삼키고 손을 모아 나에게 부탁했다.

       

       “레온 님. 가능하시다면 부디 캐머해릴까지 호위를 맡아 주십시오. 아까 제가 한 말이 기분이 나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흐음….”

       “쀼우….”

       “의뢰비도 계약서에 나온 것보다 더 얹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히파르에서 캐머해릴까지의 길이 험해서 꺼려지신다면 제가 히파르에서 용병도 더 충원하도록 하지요. 그러니….”

       

       마이어 씨가 점점 파격적인 조건을 붙이자, 짐짓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나는 결국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잠깐만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하실 건….”

       “혹시 다른 조건이 더 필요하시다면 말씀하십시오.”

       “…….”

       

       이 사람, 생각보다 진심이다.

       

       “사실 제가 최근에 좀 무리해서 납품 일정을 잡은 탓에, 제국 동부에서 남부를 거쳐 이곳 서부까지 거의 쉴 새 없이 돌아다녔습니다. 대부분 편도 일정이다 보니 호위를 하면서도 못마땅해 하는 용병들이 많았고, 저 역시 거친 용병들과 함께 일정을 소화하려니 두 배로 피곤하더군요.”

       

       마이어 씨는 푸념하듯 말을 이었다.

       

       “물론 저도 상인으로서 용병들을 많이 겪어 왔습니다만…. 이번에는 조금 더 심하더군요. 특히 테이머인 용병이 하나 있었는데, 보기만 해도 무서운 까만 멧돼지 마물을 사역마로 삼은 용병이었습니다.”

       

       아하.

       역시 뭔가 일이 있긴 있었던 모양이었다.

       

       “블랙보어가 좀 거칠긴 하죠. 웬만한 테이머는 컨트롤하기 쉽지 않을 텐데….”

       

       내가 맞장구를 쳐 주자, 마이어 씨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렇습니다. 테이머 본인은 ‘우리 복돌이가 얼마나 착한데 그러냐’, ‘이렇게 순한 애 없다’라면서 사고 안 치고 얌전히 있을 거라고 호언장담을 했습니다만…. 삼 일을 못 가서 짐칸의 납품 상자 하나를 부숴 놓았었지요.”

       “저런.”

       “게다가 일정 내내 마차 뒤에서 꾸잉, 꿰엑거리고, 먹기는 또 얼마나 먹는지….”

       

       마이어 씨는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여튼, 이제 히파르와 캐머해릴에만 납품하면 끝인 상황에서 그렘 마을에 머물게 됐는데…. 또 테이머 분이 오신다고 하기에 그때의 악몽이 떠올라 실례를 범했습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마이어 씨가 고개를 숙여 사과하자, 나는 얼른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듣고 보니 충분히 이해가 되네요.”

       

       안 그래도 바쁜 일정에, 좋지 않은 동선에 불만인 용병들, 그리고 진상 테이머까지 겪었으면 테이머란 말을 듣자마자 PTSD가 와도 이상하지 않긴 하다. 

       

       그렇게 또 앞으로 펼쳐질 악몽을 머릿속에서 그리고 있을 때쯤, 우리 귀여운 아르를 직접 보고 나니 눈이 돌아갈 수밖에.

       

       ‘흠. 그나저나 캐머해릴이라.’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사실 캐머해릴까지 호위 의뢰를 할 수 있으면 나한테도 나쁠 건 없긴 한데.’

       

       실은 길드에서 의뢰인이 히파르를 지나 캐머해릴까지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다. 

       

       ‘지금쯤 캐머해릴 근처에는 주인공이 서부 루트를 탔을 때 이용할 수 있는 개꿀 사냥터에 한창 마물이 몰려 있을 테니까.’

       

       잡화점에서 스미스 씨에게 들었던 정보를 기반으로 유추해 봤을 때 주인공은 아마 동부 루트를 탔을 터.

       

       ‘어차피 주인공이 동부 루트를 탔다면, 내가 그 사냥터를 쏙 이용해 먹어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소리지.’

       

       주인공이 이용해야 될 사냥터나 주인공이 얻어야 될 아이템, 기연 등을 내가 미리 선점하는 건 스토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어쨌거나 난 아르랑 내 몸 지킬 정도의 힘을 가지고 조용히 행복하게 사는 게 목표니까. 주인공 녀석이 마물도 잡고 기연도 얻고 해야 나중에 마왕도 때려잡고 알아서 척척 대륙의 평화를 지키지.’

       

       하지만 주인공을 방해하는 게 아니라면, 내가 알고 있는 좋은 사냥터를 이용한다든지 아이템을 선점하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레키온 사가의 게임 특성 상 내가 해당 사냥터나 아이템을 선점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채 갈 가능성이 높기도 하고.

       

       그러니 주인공이 안 쓸 거면 내가 쓰는 게 여러모로 낫다.

       

       ‘이번 기회에 캐머해릴에서 아르랑 나랑 레벨업을 좀 해 두면 앞으로도 꽤나 편해질 거야.’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히파르까지만 갈 생각을 했던 건, 어차피 이번 여정의 목적은 레벨업이 아니라 아르와 휴양지에서 온천을 이용하며 또 하나의 추억을 쌓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레벨 상태로 히파르에서 캐머해릴까지 안전하게 가려면 좀 많이 길을 돌아서 가거나, 다른 용병 전력이 있어야 하니까.’

       

       그래서 기왕 온천 이용권 쓰러 가는 길에 히파르까지 호위하는 의뢰를 수주한 걸로 만족하려고 했었는데….

       

       ‘이렇게 마이어 씨가 먼저 좋은 조건도 내걸고, 캐머해릴 갈 땐 용병도 추가 모집해 준다고 했으니…. 이 정도면 해볼 만한데.’

       

       내 마음은 이미 마이어 씨의 제안을 수락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아직 남은 게 있다.

       

       “아르야, 넌 어떻게 생각해? 히파르에 들렀다가 캐머해릴까지 가는 거.”

       “쀼우?”

       

       바로 아르의 생각을 물어보는 것.

       

       ‘안 그래도 원래 목적이 휴양인데 가는 길에 호위 의뢰를 맡는 것 자체가 아르에겐 피곤한 일일 테니.’

       

       지금 내가 캐머해릴까지의 호위를 수락한다는 건, 온천 이용권 따서 놀러 간다고 잔뜩 신난 아이한테 거긴 잠깐만 있을 거고 또 일하러 가야 된다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다. 

       

       만약 아르가 피곤하다고, 그냥 히파르에서 더 놀고 싶다고 한다면 나는 깔끔하게 호위를 포기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히파르 주변에도 찾아 보면 레벨업 할 데는 있을 거고. 며칠 늦게 간다고 캐머해릴에 있는 사냥터가 마른다거나 하진 않을 거야.’

       

       그러니 충분히 휴식을 취한 다음 캐머해릴로 따로 가도 늦지 않다. 

       

       하지만, 그런 내 걱정과는 달리.

       

       “쀼우!”

       

       아르는 해맑게 웃으며 팔을 뻗고 안아 달라는 듯 공중에서 흔들었다. 

       

       “쀼우, 쀼!”

       

       마이어 씨 앞이라 음성화를 사용하지는 않고 있지만, 영혼의 계약을 한 상태라 그런지 아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 것 같았다. 

       

       -아르는 그냥 레온이랑 같이 있으면 다 조아!

       

       “아르야….”

       “쀼!”

       

       감동을 받은 내가 아르를 안아 주자, 아르는 내 옷자락을 꼬옥 잡고 가슴께에 얼굴을 비볐다. 

       

       “오오….”

       

       그 모습을 본 마이어 씨는 다시금 침을 꿀꺽 삼키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나는 아르의 엉덩이를 토닥여 주며, 마이어 씨에게 말했다. 

       

       “좋아요. 그럼 캐머해릴까지 같이 가시죠.”

       

       ***

       

       “아이고, 정말 감사합니다.”

       

       곧 마차가 출발했다. 

       

       처음에 마차의 뒤쪽, 그러니까 짐칸에 앉아서 갈 예정이었던 우리는 마이어 씨의 적극적인 권유로 마이어 씨와 함께 앞쪽 좌석에 타게 되었다. 

       

       ‘푹신푹신하네.’

       

       짐칸 쪽에 호위 용병들이 앉을 수 있도록 설치해 둔 의자는 딱 봐도 딱딱한 나무 의자였는데, 이쪽은 푹신한 솜을 넣은 천이 위에 깔려 있어 방석을 깔고 앉은 것처럼 푹신했다. 

       

       마차가 마을을 벗어나 길에 접어들고, 일종의 비포장 도로를 지나다 보니 덜컹거릴 때도 있었지만 푹신한 의자 덕에 생각보다 훨씬 충격은 덜했다.

       

       “쀼우!”

       

       내 바로 옆에 앉은 아르도 푹신푹신한 의자가 맘에 들었는지 편하게 주저앉아 손으로 의자 바닥을 꾹꾹 누르며 쀼 소리를 냈다. 

       

        ‘아르 덕에 이런 대우도 받아 보는구나.’

       

       혼자 왔으면 얄짤없이 짐칸행이었을 텐데.

       

       ‘여튼, 아르도 만족하는 거 같으니 다행이네.’

       

       최근에 마을에서 가장 비싼 고급 여관에서 푹신한 침대를 이용하다가 마차 타고 여행길을 떠나는 거라 피곤해하거나 할까 봐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여전히 걱정되는 건 음식인데.’

       

       아르가 좋아하는 음식을 가방에 좀 챙겨 오긴 했지만, 결국은 마이어 씨가 용병 몫으로 준비해 둔 정해진 식사를 해야 할 터.

       

       ‘음식이 입에 안 맞으면 어쩌지.’

       

       아직 어린아이라 맘에 안 드는 음식이 있으면 편식을 할 수도 있는….

       

       “이름이 아르라고 했지? 아저씨가 간식 준비한 게 있는데 먹어 보련?”

       “쀼!”

       “아이고, 잘 먹네. 아저씨가 식사 때마다 먹고 싶은 거 다 챙겨줄 테니까 맛있게 먹으렴. 응?”

       “쀼움, 쀼!”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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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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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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