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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

       ─아 야스 존나 하고 싶다

       ㄴ해봤음?

       ㄴ아.

       ㄴ야스… 해보고 싶다..

       ㄴ빠른 수긍 ㅋㅋ

       ㄴㅅㅂㅋㅋㅋ

       ㄴ그걸 정정하네 ㅋㅋ

         

       ─야스 할 사람?

       ─야스 << 이거 세상에 존재 함? ㅋㅋ

       ─엘프눈나 맘마통 보고 싶다…

       ─응애… 나 맘마 부족해서 죽어…

       ─이거보다 작으면 애기랑 남편 굶어죽음

         

       갤러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글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정말로 하루하루 똥오줌 싸는 백수에 야한걸심연끝까지퍼먹었지만욕구가해결되지않아머리가망가진 이들이라서 그런 걸까?

       당연히 그런 건 아니었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섹드립만 떠오른다.

         

       현대에서는 유명한 말이었다.

       삶이 너무 힘들어서. 너무 지쳐서.

       멘탈이 깨지기 직전까지 몰린 이들의 도착점이 섹드립이었다.

         

       ─나, 응애… 맘마조…

         

       라고 말하는 건 이상성욕이절대아니며올바르게자란성인도말할수있는정상적인 행위라는 얘기다.

       단지 힘들어서 그럴 뿐이다.

         

       물론 갤러리의 대형 고닉이자, 파딱.

       식물드루이드. 엘란의 여왕 에리스는 섹드립 대신 품위 있게 식물의 사진을 올렸다.

         

       식물을 관찰하며 무럭무럭 자라는 걸 좋아하는 이상 성욕자가 아니라, 그냥 식물이 좋고 기뻤을 뿐이다.

       뿌듯함, 성취감 그리고 자연의 신비까지 느낄 수 있었으니까!

         

       올바른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풀어나가는 그녀였지만, 갤러리를 오래 봐온 사람들은 알 수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많은 식물을 키우며, 식물 일기를 자주 올리지 않나?

       수상할 정도로 응애 맘마조를 외치는 갤러리 유저들을 보듬어주고 위로해주기까지 하지 않던가?

       그래서 엘프틀딱할머니라 불리고 있었지만, 그냥 그녀가 착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남을 돌보고 아끼는 것조차도 스트레스 풀기의 일환이었다.

         

       항상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몸부림….

       그렇다. 그녀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였다.

         

       “혁명 마려워요….”

       “뭐라 하셨습니까…? 여왕님.”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에리스는 업무를 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엘프 여왕이란 어떤 존재인가?

       여왕이란 특별한 핏줄이나 무언가를 가진 이가 아니다.

       그저, 세계수가 선택한 인물이다.

       선택 기준도 세계수가 맘대로 정하는 거라, 아무도 자세히는 모른다.

         

       에리스도 평범한 가정의 딸이었고 식물 키우기와 닭에게 모이 주기라는 소소한 취미를 가진 소녀였다.

       옛날에 그렇게 살던 소녀가 여왕이 되었다.

       드럽게 어려운 업무를 보고 있다.

         

       “….”

         

       하얀 건 글씨…. 아니, 종이고. 검은 건 뭐지?

       이제 익숙해질 법한 업무지만, 여전히 어려워서 에리스는 눈두덩을 꾹꾹 눌렀다.

         

       엘란에서 열리는 축제를 왜 자신이 결재해야 하는 건가.

       사소한 세금이나 법이 바뀌는 데 왜 그걸 자신이 공부하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원로회의 틀딱들을 원망했다.

         

       ‘원로 틀딱들이 문제에요!’

         

       틀딱들은 넉넉하게 지원해주지도 않으면서 바라는 건 많았다.

       항상 투덜거리면서 엘프의 것을 칭송하는 행태에 에리스는 진절머리를 느꼈다.

         

       ‘원로들의 도움이 없으면 무언가를 진행하기도 힘든데…!’

         

       설상가상으로 계획한 걸 엎어버리기까지 하니, 요즘 말로 ‘지게’ 가 마려웠다.

       원로들을 전부 밀어버리는 폭군이 되고 싶었다.

         

       “후우….”

         

       원로들의 의견을 싹 무시하고 엘란 발전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는 있지만.

       원로들이 가진 영향력을 무시할 수가 없으니 문제였다.

       건물을 짓는데 인재들을 그들이 통제한다거나.

       세금으로 물건을 사야하는데. 안 판다거나.

       소위, 원로 카르텔들이 배를 째버리면 답이 없었다.

         

       에리스가 무시하고 응. 알빠 아니에요. 진행할게요. 라고 하면 어떨까?

       여왕! 그런 선택은 아니 되오!! 하고 수십 명의 원로가 반대하겠지.

       결국 굽히는 쪽은 에리스가 되는 결말이다.

       원로 회의에서 ‘진행시켜’ 사인이 나오기 전까지는 에리스도 딱히 뭔가를 하기 어려웠다.

         

       ‘근데 뭘 원하는 거냐고요!’

         

       깃펜을 잡은 에리스의 손에 핏줄이 섰다.

       세계수의 번영과 엘프의 발전을 도모한다면서 하는 소리가 가관이었다.

         

       엘프들의 고고한 전통과 문화. 그리고 선조들의 얼을 유지하는 것이라니?

         

       ‘바보도 아니고…!’

         

       신세대 엘프들은 그 틀에서 벗어나, 다른 이들의 좋은 문화를 흡수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아직도 그러는 건가요!

       그러니 매일 지게에 태우는 상상을 하며, 심신을 달랬다.

         

       “후우… 잠시 세계수님께 다녀올게요.”

       “예. 알겠습니다.”

         

       그녀는 호위 겸 부관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갔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이런 식으로 외출해 세계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하늘 위로 곧게 뻗은 나뭇가지와 잎사귀들 사이로 기분 좋은 바람이 분다.

       그녀는 병사들이 굳게 지키고 있는 세계수의 정원에 입장했다.

         

       “잠시 다녀올게요?”

       “예.”

         

       이곳에 올 수 있는 건 에리스와 세계수를 관리하는 드루이드 직책의 인원들 뿐.

       세계수를 관리하는 이들과 인사한 뒤에 그녀는 안쪽으로 이동했다.

         

       여왕의 정원! 세계수의 쉼터!

       여기는 엘란의 여왕. 에리스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

       다른 이들이 방해받지 않고 사리사욕을 채울 수 있는 공간이었다.

         

       상쾌한 공기로 뒤덮인 정원 속.

       그녀는 자신이 키우는 식물로 가득한 마당으로 향했다.

         

       “오늘도 열심히 자라고 있네요…! 기특해요…! 더 쑥쑥 자라야 한단다?”

         

       식물들을 쓰담쓰담 칭찬해주면서 이물질과 먼지가 묻은 잎사귀를 닦았다.

       보살펴주면서 뿌듯함을 얻는 추악한 욕구를 마음껏 채우는 과정이었다.

         

       “이 아이는 무럭무럭이네요.”

         

       후후 웃으면서, 줄기가 잘 뻗도록 지지대로 지탱도 해주고 물도 주면서 모든 욕구를 채웠다.

         

       남들에게 보여주기엔 부끄러운 모습이지만, 여기는 아무도 없는 여왕의 정원.

       식물들과 교감하고 대화(혼잣말)하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휴우….”

         

       갤러리에 식물들에 대한 글도 올렸고. 이상한 글을 쓰는 녀석들을 도려내기도 했으니 돌아갈 시간이다.

       밖으로 나온 에리스는 부관과 함께 시내로 향했다.

         

       “오늘도 시찰하러….”

       “시찰이 아니라 산책이라 해주세요.”

       “네. 산책. 호위하겠습니다.”

         

       그녀는 평소처럼 산책 겸 사람들의 모습을 확인했다.

       활기를 띠고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삶의 질은 괜찮은 모양.

       흐뭇한 웃음을 짓던 에리스는 순간 굳었다.

         

       “어….”

       “젊은 커플이군요.”

         

       아무리 골목 구석이라지만, 대낮부터 과한 애정행각을 하는 커플이라니.

       원로 틀딱들이라면 네놈들!!!! 하고 소리를 질렀을 꼬락서니지만, 에리스는 참아냈다.

       그야, 에리스는 젊은 세대 아니던가.

       하지만 눈살이 찌푸려지는 건 참을 수 없었다.

         

       “…대담하네요. 이런 곳에서 저런 행위를.”

       “요즘 신세대는 저런다고 합니다.”

       “그런가요?”

       “하긴 여왕님은 신세대는 아니시니 당황스러울 법도─”

       “아뇨…! 제가 그 정도로 늙진 않았거든요?! 저도 신세대에 속해요!”

       “…제가 여왕님의 나이를 착각했나 봅니다.”

         

       부관의 말에 에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말이다. 원로들과 다르게 저런 행위…는 가볍게 넘어갈 수 있다.

         

       ‘그래도… 저는 부끄럽네요.’

         

       여전히 애정행각중인 커플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신세대에 속하는 그녀지만, 저건 좀…. 보기에 그렇다.

       한 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에리스는 이어서 산책을 하다가, 다시 집무실로 향했다.

         

       이제는 일을 해야 할 시간.

       집무실로 돌아온 에리스가 한숨을 쉬며, 다시 업무를 시작했다.

       아니, 시작하려 했다.

       눈앞에 떠오른 악질 채팅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갤러리 관리자 채팅】

         

       ─마왕쨩) 틀딱~ 틀딱~

       ─식물드루이드) …왜요.

       ─마왕쨩) 본인쟝 심심한 거시얌~

       ─식물드루이드) 저리가요!!!

       ─마왕쨩) 에엣~~ 반응 너무한 거시야아암~~

         

       또 어디서 이런 이상한 말투를 배워와선!

       그녀는 틱틱거리면서도 열심히 대답했다.

       말을 일부러 무시하면 복이 달아난다는 엘프의 토속 신앙 때문은 아니다. 아무튼 아니었다.

         

       ─식물드루이드) 저한테 말 걸지 말고 이상한 글이나 쓰러가요!

       ─마왕쨩) 틀딱한테 이상한 글 쓰는 거시얌~~~

       ─마왕쨩) 나 응애 마왕쨩… 쭈쭈조

       ─식물드루이드) 도대체무슨소릴하는건가요!!!!

         

       오늘도 마왕쨩의 채팅 러시에 에리스가 입을 꾸욱 다물었다.

       엘프 틀딱이 괴롭힘 당하는 동안, 대륙의 반대편.

         

       마제로스의 왕성에서 마왕이 웃었다.

       악질 채팅 러시의 주인공이었다.

         

       “쿡쿡. 재미있구나.”

         

       어릴 때 좋아하는 아이를 괴롭힐 때의 기분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녀는 엘프틀딱이 밉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타격감 넘치고 망가지지 않는 샌드백인데. 싫을 리가!

       그녀는 몇 번 엘프틀딱을 괴롭히고선 여유롭게 콜라를 마셨다.

         

       모두가 잠들어있는 이른 새벽.

       그녀는 혼자서 깨어있는 상태로 갤러리를 탐방했다.

         

       ─마왕쨩

       제목) 콜라 마시는 거시얌~~

       벌써 치킨 두 마리에 콜라 3잔 마신 거시얌~~

         

       ㄴ이 새낀 안 잠?

       ㄴㅋㅋ자겠냐고 ㅋㅋ

       ㄴ치킨 두 마리를 어케 먹음??

       ㄴ쉽지 않은 걸 아무렇지 않게 해내네 마왕 맞는 듯 ㄹㅇㅋㅋ

       ㄴ치킨 두 마리 먹으면 마왕임?

         

       ㄴ앉은 자리에서 두 마리면 마왕급 맞지

       ㄴ한 마리는?

       ㄴ맛있음

       ㄴㅋㅋ 맞지 맛있지

       ㄴㄹㅇㅋㅋ 치킨이 맛있는 이유는 맛있기 때문

       ㄴ(끄덕)

         

       ㄴ마왕쨩 닭다리만 뺏어먹어도 됨?

       ㄴ난 닭날개만 ㅋㅋ

       ㄴ마왕쨩) 둘 다 어디 사는 거시야~~

       ㄴㅋㅋㅋㅋ

       ㄴ마왕쨩…빡치다…!

       ㄴ진심 빡친 것 같은데 ㅋㅋㅋ

       ㄴ마왕쨩 화내는 거 처음 봄ㅋㅋ

       ㄴ닭다리는 선 넘었지 ㅋㅋ

         

       “바보 같긴. 재미있구나.”

         

       그녀도 웃으면서 여유로움을 즐겼다.

       마제로스의 일과가 시작되려면 시간이 남은 탓이었다.

         

       일찍 일어나서 기다리는 건 아니었다. 그냥 안 잤을 뿐.

       아르셀라가 남들과는 아예 다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잠을 많이 자지 않았다.

       육체가 피곤하지 않은데 왜 잔단 말인가.

       극도로 발달한 육체는 잠조차 이겨낼 수 있었다.

       아르셀라가 그걸 증명해냈으며, 박살난 생활패턴으로 구현되었다.

         

       가끔 잠을 자긴 하나, 정신적으로 피로할 때나 자고 싶을 때 뿐.

       그 외엔 깨어있는 그녀였다.

       그러다보니 남들의 눈에는 누구보다 엠생의 삶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흐응….”

         

       다른 사람들의 일과까지는 시간이 여유가 있는 상황.

       그녀는 허공으로 천천히 주먹을 내질렀다.

       근육 하나하나 섬세한 움직임과 뒤틀림에 신경 쓰면서 단련했다.

       발차기도 그녀가 춤을 추는 듯이 궤적을 그렸다.

       중간 중간 간간히 갤러리의 글을 읽으면서 악질적인 애들을 잘라냈다.

         

       단련이 끝나고 아침 식사 시간이 되었다.

       그녀는 치킨 마요마요 덮밥을 배부르게 먹고서, 부관에게 물었다.

         

       “혹시 마왕 쟁탈전 후보는 등장 했느냐.”

       “없습니다.”

       “역시 그런가.”

         

       마제로스란 어떤 나라인가.

       힘으로 지배자가 결정이 되는 무시무시한 나라다.

       하지만 이번 마왕 쟁탈전에 아무도 오지 않았으니, 이번에도 아르셀라가 여왕 자리를 유지하게 됐다.

         

       ‘당연히 그래야 하거늘.’

         

       그녀가 힘이 세다고 멍청한 건 아니다. 오히려 똑똑한 편에 속했다.

       아르셀라가 처음 마왕이 됐을 때, 독단적인 행보에 사람들이 비난하기도 했었지만.

       그건 이제는 먼 과거의 일!

       그녀의 전두지휘로 마제로스의 국력은 나날이 강해졌다.

         

       마제로스는 강대해졌고 그녀도 파딱의 자리를 지켰다.

       여유롭게 갤러리에서 활동하던 그녀였고 계획도 순조로웠다.

       아르셀라는 주딱을 데려오기 위해, 남몰래 무언가를 준비했다.

       하지만 주딱이 마음에 걸렸다.

         

       ‘무기가 없으면 병신인 난쟁이 땅딸보 드워프가 제공한 반지를 넙죽 받다니.’

         

       그것만 아니었다면 완벽했을 텐데.

       왜 하필 드워프란 말인가.

       마제로스라면 강인한 육체를 가질 수 있도록 기회를 줄 텐데!

       언젠간 드워프가 준 반지를 빼게 만들겠다 생각하며, 아르셀라는 작게 웃었다.

         

       ‘주딱은 언젠간 데려오고 말겠다.’

         

       주딱과 함께라면 마제로스는 더욱 강대해질 테니!

       그녀가 사악하게 웃었다.

         

       ***

         

       에리스는 엘란을 위해 일하느라 바쁘고.

       아르셀라는 언제 내전이 일어날지 모르는 마제로스를 관리하느라 바빴다.

       그렇다면 용사. 카이라 루즈도 대단한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휴식 최고에요…!”

         

       그녀는 헤센 백작령에서 쉬고 있었다.

       대륙의 평화를 위해, 헤센 백작의 폭주를 막아달라는 부탁 이후로 할 일이 없었다.

       원래는 2주일간 머물러달라는 부탁이었지만, 2주일이 지난 지금도 자연스럽게 눌러 앉았다.

         

       “용사님. 혹시 언제 떠날 지….”

       “저는 항상 한가해요!”

       “아하….”

         

       봉인된 악마가 풀려나지도 않았고 징조도 없으며 계시도 없다.

       그런 용사가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헤센 백작의 저택에서 손님으로 대접받으면서 한량 라이프를 즐기는 것이었다.

       다만, 용사의 한량 라이프를 두고 보지 못하는 이가 있었다.

         

       “용사님 그렇다면… 혹시….”

         

       헤센 백작령을 다스리는 헤센 백작.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괴물.

       53세. 몸이 근질근질해서 누군가와 합을 겨루고 싶을 한창 때의 나이!

       욕심과 싸움에 미쳐 전쟁을 일으킬 생각까지 했던 그는 타깃을 바꿔 용사에게 대련을 신청했다.

         

       “배움을 요청해도 되겠습니까?”

         

       그는 이전보다 훨씬 유해진 모습이었다.

       몇 번의 대련 끝에 전투 욕구를 해소했고.

       다른 영지를 노리는 욕심은 힘 앞에 굴복했다.

       용사와 왕국, 제국에게 두드려 맞은 결과물이었다.

         

       “앗… 알았어요.”

         

       고개를 숙이는 헤센 백작의 요청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이는 훨씬 어리지만, 카이라 루즈는 용사이며 강자의 위치에 서있다.

       헤센 백작이 고개를 숙이면서 부탁하는 모습은 이상한 게 아니었다.

         

       ‘여유로운 백수 라이프가 좋지만….’

         

       얻어먹는 입장에서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

       카이라가 검을 뽑았다. 새하얀 검신이 빛난다.

       용사의 이름에 걸맞은 순백의 검이 헤센 백작에게 쇄도했다.

         

       카앙!

         

       “크윽….”

         

       헤센 백작이 순간적으로 신음을 흘렸다.

       그냥 내려치는 검격이지만, 공기가 갈라진다.

       일격에 충격파가 터지면서 푸른 마나가 공기 중에 흩날렸다.

       무식할 정도로 강한 힘에 헤센 백작이 계속 밀려났다.

         

       손속은 봐주지 않는다. 가르침도 없다. 그저 싸워달라기에 싸울 뿐.

         

       콰아앙─!

         

       카이라의 검이 헤센 백작을 무자비하게 내리찍었다.

         

       “쿠흑… 역시 강하군요.”

         

       손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에 헤센 백작이 식은땀을 흘렸다.

       용사는 괴물인 건가.

       하지만 헤센 백작은 기교를 이용해 일순간의 틈을 만들었다.

       검을 튕겨내고서 땅을 크게 박찼다.

         

       후웅─!

         

       그가 쏘아낸 쾌검은 허무하리만치 용사에게 막혔다.

       하지만 이번으로 용사와 대련한 것도 수차례.

       용사의 검에서 드러나는 허점을 비집었다.

         

       카가각!

         

       힘으로 잡아 뜯는 것처럼 용사의 검을 위로 쳐냈다.

       카이라의 목덜미가 무방비해진 순간, 헤센의 검이 그곳을 파고들었다.

         

       사각.

         

       종이 한 장의 차이로 공격에 성공하지 못했다.

       머리칼을 약간 베어낸 정도로 그친 공격.

       그럼에도 헤센 백작의 얼굴엔 웃음이 걸려있었다.

       패자인 헤센이 웃고 승자인 카이라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꾸욱 다물었다.

         

       대련할 때마다 피를 한 움큼씩 토하는 헤센 백작의 모습이 보기에 좋지 않았다.

       싸우다보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피멍이나 상처도 그녀 입장에선 썩 달갑지 않았다.

         

       사람의 몸에 상처를 입히면서 즐거워하는 취미는 없으니까.

       그런데 왜 헤센 백작은 처참하게 패배했으면서도 상쾌하게 웃고 있는 걸까.

         

       “궁금한 표정이군요. 용사님.”

       “제가 그런 표정을 지었나요…?”

       “예. 이인간은매번처참하게깨지면서어떻게상쾌한표정을짓고있지? 라는 눈빛이 제게 보입니다.”

       “….”

         

       어떻게 알았지. 헤센 백작은 독심술이라도 쓰는 걸까.

       카이라는 쪼그려 앉아 그의 상처에 치유의 축복을 걸어주었다.

         

       “제겐 다 보입니다. 용사님이 더 강하지만, 나머지는 제가 더 뛰어나지 않습니까.”

         

       헤센 백작은 강함이 모자랄지언정, 경지와 경험은 용사 못지않았다.

       반대로 카이라는 강할 뿐, 깨달음과 경험이 부족했다.

       그는 입가에 묻은 피를 옷소매로 닦았다.

         

       “제가 왜 즐거워하는지 궁금하십니까.”

       “예. 궁금해요.”

       “싸우고 싶은 제 욕구가 해소되기도 하고… 용사님과는 다르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말 그대로입니다.”

         

       용사 카이라는 강하다. 대륙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아니, 전 대륙을 뒤져도 이길 사람을 찾지 못할 정도로 강하다.

       하지만.

       그저 강할 뿐인 검이었다.

         

       “용사님은 강하지만… 목적지를 잃어버린 검이죠. 그저 휘두를 뿐인.”

       “그게 왜….”

       “저와는 다릅니다.”

         

       그는 용사와 비슷한 이들을 많이 봐왔다.

       검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이들을.

       그들의 끝이 한 명이라도 좋았다면 이 말을 꺼내진 않았으리라.

       헤센 백작은 자신의 오래된 검을 치켜들었다.

         

       “제가 깨지고 망가져도 계속 일어설 수 있는 건 즐겁기 때문입니다. 높은 경지를 향해 달린다. 검의 끝을 보고 싶다. 싸우고 싶다. 그게 제 검에 담긴 욕망이자 목표이니까요.”

       “목표가 없으면 나쁜 건가요.”

       “나쁘진 않죠. 다만… 언젠간 부서질 겁니다.”

         

       카이라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검을 바라보았다.

       검을 휘두르면서도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용사가 된 날부터 강했다. 계속 강해졌다.

       그 힘으로 용사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대륙을 지켰다.

       그게 용사가 된 카이라의 할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검에 자신의 무언가를 담아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괴로운 표정으로 검을 휘두르다보면 오래 살지 못할 겁니다.”

       “제가 그렇게 괴로운 표정을 지었나요.”

       “예.”

         

       헤센 백작의 눈에서 드러나는 감정은 안쓰러움이었다.

       검을 잡을 이유도 모른 채, 검을 잡은 용사를 동정했다.

         

       “용사님은 검으로 이루고 싶은 게 있습니까.”

       “….”

         

       그의 물음에 카이라가 사색에 잠겼다.

       검으로 정녕 이루고 싶은 게 있던가.

       검으로는 이루고 싶은 게 없었다

       검엔 아무것도 없다.

       그러면 그녀에겐 아무것도 없는가?

       그것 또한 아니었다.

       그녀의 검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녀의 행동엔 분명한 의지가 있었다.

         

       책임감. 검을 휘두르는 게 무섭고 괴로워도 대륙을 지키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도움. 헤센 백작과 대련하는 게 싫었지만… 그가 바라기에 검을 잡았다.

       인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악마 토벌은 쓰지만, 선물로 받을 열매는 달 거라 믿으며 검을 쥐었다.

       동정. 누군가 슬퍼하는 일이 없도록 악인에게 검을 겨눴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무엇을 위한 행동이란 말인가.

       그녀는 기억 속에서 자신에게 사탕을 건네주던 아이의 미소를 보았다.

       고맙다며 고개를 숙이는 노부부를 보았다.

       절망에 빠진 이들이 희망에 휩싸이는 걸 보았다.

         

       “이루고 싶은 것은….”

         

       빛을 쫓았다. 그녀는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으면 했다.

       남이 아픈 모습을 보는 것보단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나으니까.

       그녀는 다른 이들을 지키고 싶었다.

       웃고 떠들고 즐거운 일상을 지키고 싶었다.

         

       “아무것도 없어요. 하지만 남이 고통 받게 두진 않을 거예요.”

       “구원자의 길을 걷는 군요.”

       “용사란 원래 그러니까요.”

       “힘들 겁니다. 언젠간 모두를 지킬 수 없을 테죠. 그렇다면 중요한 사람부터 지키세요. 용사님이 무너지지 않도록.”

       “중요한 사람….”

         

       그의 질문에.

       그녀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요새 들어서 자꾸 웃음 짓게 해주는 사람.

         

       용사 파티에 들어오는 대신, 자신의 파티에 들어오라고 한 사람.

       왜 그 사람이 떠오른 걸까.

         

       주딱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요새 들어서 자꾸 웃음 짓게 해준다.

       용사 파티에 들어오는 대신, 자신의 파티에 들어오라 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은 무시해도 그는 항상 진심인 것처럼 받아준다.

       바보 같은 모습을 보여도 같이 놀아준다.

         

       그 사람은 다치지 않았으면 했다.

         

       “표정이 한결 나아졌군요. 용사님. 그러니… 한 번 더 괜찮으십니까? 제발….”

       “아하하….”

         

       힘에 굴복한 헤센 백작이 비굴하게 고개를 숙였다.

       또 다시 대련이 하고 싶어 근질거리나보다. 헤센 백작이 검을 들어올렸다.

       순식간에 대련의 분위기가 되었다.

         

       카이라도 마찬가지로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랐다.

       괴로움이 아닌, 편해진 표정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그녀는 다시 검을 쥐었다.

        

       

       카이라가 헤센 백작과 대련을 하는 동안, 바깥의 비바람은 거세졌다.

       비가 많이 내리쳐서 그런 걸까.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그러는 걸까.

       갤러리에는 무서운 이야기와 글들이 주로 올라왔다.

         

       

       

       제목) 주딱은 죽는다.

       죽 는 다.

         

       ㄴ뭐냐 이 글은

       ㄴ이 새끼 자꾸 도배하네

       ㄴ주딱 살려 ㅠㅠ

       ㄴ응 ㅋㅋ 주딱 죽여도 살려낼 거야

         

       “이 십 도배충 새끼.”

         

       주딱은 일단 한 명을 현실로 내보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NL03, 비공개, 이마, 빛바랜마틴님 후원 감사감사감사합니당!!!!!!!!!!!!!!

    조금 연재가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당…!!!
    먼가… 지루한 느낌을 덜어내고… 어색한 부분을 없애려고 노력했는데… 쉽지않아용…!!!!!!!!!!

    아무튼 독자님들 읽어주셔서 감사감사합니당…!!!!!!!!!!!

    다음화 보기


           


Becoming The Top Moderator Of The Otherworld Board

Becoming The Top Moderator Of The Otherworld Board

I Became The Top Moderator Of The Otherworldly Gallery 이세계 갤러리 주딱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as minding the board 24/7 when I got dragged into another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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