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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

       제국 최대의 의류점, 프리다의 회장이라 할 수 있는 마담.

         

       얼굴에 보이는 팔자 주름과 씰룩이는 입꼬리에선 탐욕이 가득하다. 전체적인 외모는 소위 말하는 마귀할멈과 흡사. 나이는 40대 이상이군.

         

       프란체는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마담을 굽어봤다.

         

       “오랜만에 주문 제작을 맡기고 싶은데, 문제없겠지?”

       “물론이지요! 데카르트 공녀님께서 맡기시는 건데 당연히 해드려야지요!”

         

       마담은 손바닥을 비비며 입맛을 다셨다. 데카르트 공작가의 돈을 빼먹을 생각에 신이 났나 보다. 앞에 어떤 일이 기다리는지도 모르고.

         

       “자세한 건 드레스룸으로 가서 이야기하고 싶네만.”

       “바로 모시겠습니다! 위층으로 올라가시지요!”

         

       프란체가 힐끔 돌아보며 눈빛을 보내왔다. 따라오라는 뜻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창 드레스를 구경 중인 카자르에게 속삭였다.

         

       “구경 그만하고 올라가자.”

       “아, 네.”

         

       카자르는 아직 미련 남은 듯 장식된 드레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위에 가면 더 좋은 드레스가 널렸으니 그거 봐.”

         

       그제야 눈을 반짝이며 미련을 떠나보낸 카자르. 고향에서 좋은 드레스를 못 입어본 게 한이 되었나 보다.

         

       ‘의복 사업을 시작하면 얘한테도 몇 개 나눠줘야겠네.’

         

       프란체가 말했다.

         

       “안 따라오니?”

       “갑니다!”

         

       그렇게 카자르와 함께 프란체의 뒤를 따라가고, 계단을 올라갔다. 위층은 더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드레스가 널려있었고, 보석과 장신구를 전문으로 하는 구역도 존재했다.

         

       카자르가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와, 진짜 황도의 의류점은 대단하네요.”

       “여기만 대단한 거야.”

       “그래요?”

       “그래. 이러니까 제국 전체의 의류점을 꽉 잡았겠지.”

         

       프랜차이즈는 내가 만들 생각이었는데. 다시 생각해도 마담은 사업에 도가 튼 사람이로군.

         

       ‘그래도 뭐, 일단 지금까지는…….’

         

       프리다라는 상표를 잡을 만한 기회는 남아있다. 아직은 의류, 보석, 장신구만 취급하고 있으니까. 나는 여기서 훨씬 더 키우고 가장 중요한 의류 사업의 핵심을 빼먹을 생각이니 잡아먹는 건 시간문제다.

         

       프란체와 마담이 대화를 시작했다.

         

       “공녀님께서 어떤 드레스를 원하셔서 주문 제작을 맡기시나요~?”

       “다음에 있을 황실 파티에 입고 갈 드레스를 주문하려고. 나와 어울리는 검은색의 드레스를 원하는데.”

         

       마담이 입꼬리를 올리며 눈웃음을 지었다.

         

       “검은색 드레스라, 간단한 문제지요! 어떤 형태를 원하시는지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프란체가 마담과 드레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나는 매장을 둘러봤다. 전문 세공사도 많이 고용되었는지, 보석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카자르는 눈을 반짝이며 어린아이처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촌스럽게 왜 저래? 나는 그녀에게 붙어 속삭였다.

         

       “너무 신 내지 마. 지금은 공녀님과 같이 왔으니까.”

       “구경하는 것도 안 돼요?”

       “구경을 너무 과하게 하잖아.”

       “이런 드레스는 난생 처음 봐서…….”

         

       어깨가 추욱 늘어진 카자르.

         

       “나중에 기가 막힌 드레스 하나 뽑아줄 테니까 그거나 기대해.”

       “정말요?”

       “그래. 프란체 코퍼레이션에 들어온 레이디 유플레인에게 주는 선물이야.”

         

       프란체 코퍼레이션 얘기가 나오자 다시 표정이 구겨지는 카자르. 아니, 프란체 코퍼레이션이 어때서?

         

       “대체 그 이상한 이름은 어디에 쓰려고 밀고 계시는 거예요?”

       “우리가 세울 상단 이름.”

       “아무도 우리 상단을 이용하지 않을 거 같은데요.”

         

       그리 정색까지 하며 말할 필요는 없잖아.

         

       “크흠. 아무튼. 지금은 품위를 지켜. 우리의 행동이 공녀님의 품위에도 영향이 가니까.”

         

       카자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프란체의 뒤에 붙었다. 아직도 드레스에 관한 이야기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튼. 이런 드레스를 만들고 싶네만.”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만, 문제없겠네요! 저희 제작자 중에 뛰어난 제작자가 한 명 있거든요!”

       “그거 다행이군.”

         

       프란체가 부채를 펼치며 입가를 가린다. 저게 귀족 레이디의 기본 소양인가?

         

       “시간은 언제까지 맞춰드릴까요?”

       “황실 파티 이전이면 되니 한 달이면 되겠군.”

       “한 달이면 충분하지요!”

         

       일단 대화를 여기까지 끌고 오는 데는 성공했다. 나머지는 프란체가 공장에 방문하고 싶다는 얘기를 하는 것뿐. 나는 프란체에게 다가가 읊조렸다.

         

       “공장의 위치를 알아야 합니다.”

       “나도 알고 있단다.”

         

       프란체는 다시 마담을 굽어보며 말했다.

         

       “대금을 치르기 전에 하나 원하는 게 있는데.”

       “어떤 것일까요~?”

       “내 드레스를 제작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네.”

       “…네?”

         

       탁. 프란체가 부채를 접으며 반대 손을 탁탁 쳤다.

         

       “제작 과정을 지켜보고 싶다고 말했네. 문제라도 있나?”

         

       본론을 얘기하자 곤란하다는 듯 마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제작 과정은 보여드릴 수가…….”

       “어째서지?”

       “제작은 다른 곳에서 하는데, 그곳이 공녀님께서 가실만한 곳이 아니라서요…….”

         

       프란체가 눈을 얕게 뜨고 마담을 노려봤다.

         

       “그건 내가 판단할 문제 아닌가?”

         

       시선을 피하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마담. 역시 켕기는 게 있나 보군.

         

       “다시 말하지. 내 드레스를 제작하는 과정이 보고 싶군.”

         

       대충 빠져나갈 구멍은 없으니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협박에 가까운 수준. 마담은 입술을 머금고 대답했다.

         

       “그, 그럼 일정을 잡아두겠습니다.”

       “아니, 지금 당장 보러 가고 싶군.”

       “…….”

         

       그래, 프란체. 좋은 판단이다.

         

       정말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마담. ‘불운을 맞이한 천금의 재능’이 착취당하고 있는 공장 말고 다른 곳을 보여줄 생각이었겠지. 그건 불가능할 거다. 우리는 지금 당장 들어갈 거니까.

         

       공장의 위치만 알아내면 착취를 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대거 탈출시켜 우리 쪽으로 데려올 예정이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불운을 맞이한 천금의 재능’이다. 프리다의 몰락과 동시에, 프란체 코퍼레이션을 하늘로 올려줄 사람이니까.

         

       프란체가 말했다.

         

       “곤란한 거라도 있나?”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제작 과정을 보게 해주지?”

       “알겠습니다. 대신 좀 거리가 있습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

         

       나는 프란체에게 속삭였다. 내용을 들은 그녀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담.”

       “네, 네?”

       “혹시 몰라 이야기해두는 건데, 마담이 숨기려는 건 이미 알고 있으니 허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네? 그게 무슨…?”

       “나는 내 드레스를 만들어줄 진짜 제작자를 만나고 싶다는 거지.”

       “…!”

         

       마담의 얼굴에서 큰 무게추가 호수에 떨어진 듯 철렁거리는 감정이 보였다. 반응을 보니 다른 공장으로 데려갈 생각이었나 보군.

         

       “내 말의 뜻, 잘 알겠지?”

       “…….”

         

       꼴깍. 돌덩이를 삼키듯 침이 무겁게 넘어가는 마담. 잔뜩 경직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가시지요.”

         

       마담이 공장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다. 메인 공장은 말 그대로 착취의 현장. 모든 노동자들은 과로 상태고, 제대로 된 보수조차 받지 못한다. 어떤 귀족이 그걸 신경 쓰겠냐마는, 이것은 마담이 감추고 싶었던 비밀이다.

         

       제국에서 가장 크고 유명세를 펼친 프리다의 밑천에는 이런 게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그리고, 프리다의 핵심이자 정수라고 말할 수 있는 ‘비운을 맞이한 천금의 재능’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거다. 그가 없으면 프리다가 몰락하는 건 기정사실이니.

         

       이게 제국 최고의 의류점, 프리다의 진실.

         

       이 퀘스트를 클리어하면서도 뭐 이딴 좆같은 공장이 다 있냐고 성질을 부렸던 적이 있다. 실제로도 존재할만한 이야기라 더욱 과몰입한 것도 없지 않아 있지만.

         

       “가시지요.”

         

       우리는 마담의 마차에 탑승했다. 나와 마담이 같이 앉고, 프란체와 카자르가 같이 앉았다.

         

       마담이 앞창을 열고 마부에게 얘기했다.

         

       “…제1 공장으로.”

       “예.”

         

       덜컹. 마차가 출발했다. 가는 길에 마담이 물었다.

         

       “공녀님, 제작 과정을 왜 보시려는지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왜, 내가 보면 안 되는 거라도 있나?”

       “그건 아닙니다만, 단순히 궁금해서입니다…….”

         

       프란체는 고개를 옆으로 꺾으며 피식 웃었다.

         

       “나도 단순히 궁금해서야.”

         

       오우, 저 비스듬히 고개를 꺾으면서 피식 웃는 것도 모자라 오만한 표정. 게임에서 보던 악역 그 자체였어.

         

       ‘저 얼굴로 소미레를 자주 괴롭혔지.’

         

       그때를 생각하니 100만 뮤튜버 김공략의 생활이 그리워진다. 건강한 삶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방송하고 싶을 때 방송했으니까.

         

       과거를 생각하니 씁쓸하다. 기분이라도 전환하기 위해 창밖을 바라봤다. 그러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한숨이 나오려는 걸 애써 참았다.

         

       ‘잡생각이 많아지는군,’

         

       카자르는 뭐하나 싶어 고개를 돌렸더니 잔뜩 경직되어 창밖만 바라보고 있다. 하긴, 시골 남작가의 레이디가 이런 상황은 익숙하지 않겠지. 심지어 그녀의 삶은 귀족의 삶이라곤 볼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하나 더. 지금 이 마차 안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부채로 손을 두드리는 프란체와 잔뜩 불안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마담까지.

         

       무거운 분위기가 정적을 만들고, 그 고요함 속에서 묘한 긴장감이 일어난다.

         

       나도 불편한데 카자르는 얼마나 불편할까.

         

       그런 불편한 기류 속에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차가 멈춰섰다.

         

       “도착했습니다.”

         

       나는 곧장 문을 열고 내려 계단 옆에서 손을 잡아주었다. 그렇게 모두가 내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거리가 황폐한 거로 보아, 황도의 경계선 지역인 듯했다. 정면에는 나무로 이루어진 커다란 저택이 보였고, 그 옆에는 창고와 같은 작은 건물들이 몇 개 보였다.

         

       마담이 말했다.

         

       “여깁니다.”

       “정말 이런 곳에서 의류를 만드는 건가?”

       “네.”

       “흐응.”

         

       프란체는 마담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마담. 그리 걱정하지 말게. 나는 단순히 내 의상이 어떻게 제작되는지 보고 싶을 뿐이야.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마담이 무엇을 하고 있든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잖나?”

         

       프란체의 말에 그제야 좀 경직된 얼굴이 풀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마담.

         

       “…그럼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공녀님이 주문하신 드레스의 제작 과정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시작 부분만 보실 수 있으실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프란체는 “그래.”라고 대답한 뒤 부채로 입가를 가렸다. 역시 저건 귀족 레이디의 기본 소양인 게 확실하군.

         

       내부로 들어서니 게임에서 봤던 광경과 똑같았다. 책상 하나에 한 사람씩, 각자 재봉을 하고 있다. 하나 같이 눈빛은 탁하고, 눈 밑이 진하게 시커멓다.

         

       정신을 못 차리고 그저 관성으로만 움직이고 있는 노동자들. 우리가 온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이게 노예가 아니면 뭐냐.’

         

       이들이 죄를 지어서 온 것도 아니다. 각자의 사정이 있어서 이곳에 온 것이고, 할 줄 아는 게 의류 제작밖에 없던 것뿐이었다.

         

       일할 수 있는 제국의 의류점은 프리다가 유일했고.

         

       내 밥그릇도 제대로 못 챙기는 와중에 남들까지 신경 쓸 여유가 있는 건 아니다만, 누가와도 이 광경을 보면 화가 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세계의 귀족인 프란체와 카자르도 이 광경이 그리 좋게 보이진 않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눈동자를 굴렸다.

         

       마담이 말했다.

         

       “주문 제작을 맡은 제작자는 안쪽에 있습니다.”

         

       우리는 마담을 따라 걸었다. 그렇게 안쪽으로 도착하고, 커다란 책상에 의자에 앉아 반쯤 졸면서 작업을 하고 있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푸석한 금발에 생기를 잃은 붉은 눈빛. 나이는 20대 중반. 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여성향 게임답게 얼굴 하나는 기가 막힌 미남.

         

       불운을 맞이한 천금의 재능.

         

       ‘안드레아.’

         

       프란체 코퍼레이션의 의복 사업을 성공시켜줄 사람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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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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