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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

       “소천마님.”

       “무어냐.”

       “천라지망이 점차 조여지고 있습니다.”

       

       슬슬 그럴 때인가.

       이 정도면 오래 버틴 셈이지.

       

       “나갈 채비를 하마.”

       “당장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아직은 시간이 남았습니다.”

       “거짓말 말거라.”

       

       급하지 않다고?

       

       내 바깥 사정에 관해 잘은 알지 못하나 정파에서 얼마나 불을 켜고 나를 찾고 있는지는 알고 있다.

       

       천마를 죽였으니 이제 그 핏줄을 끊어 천마신교의 존재를 세상에서 지우고파 하는 이들이다. 무슨 수를 써서건 내 목을 가져가려 할 터.

       

       그런 상황에서 이 곳에 더 남아 있다 내 존재가 들킨 다면 어찌 되겠느냐.

       

       그 때는 내가 문제가 아니다. 이 빙궁이 위협을 받게 된단 말이다.

       

       그대는 은혜를 입은 이들을 내 손으로 지옥에 보내란 말을 하고 싶은 게냐.

       

       “이틀 안에 떠나겠다.”

       “화령!”

       

       여인이 내 이름을 불렀다. 어릴 적 사파의 화합에서 만났던 이후로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제발. 내가 죽을 때까지만 여기 남아줘요. 오래 안 걸릴 테니까.”

       

       먹구름이 걷히고 달빛이 비쳤다.

       

       여인의 뺨을 따라 흘러내린 눈물은 이내 얼음이 되어 땅에 떨어지더니 산산조각이 나 바닥에 흩어졌다.

       

       *

       

       아직도 그 때의 기억이 나를 괴롭히는가.

       

       여인은 결국 절맥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었다. 유언 같은 것은 없었다. 그녀는 마지막이 되었을 무렵에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까.

       

       나는 여인의 손님이었기에 여인이 죽은 다음 날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채 쫓겨났다.

       

       나라는 존재가 빙궁의 위협이 된다는 걸 알았기에 저항도 하지 않고 얌전히 빙궁을 빠져나왔지.

       

       안타깝게도 빙궁은 그 이전에 이미 정파 세력의 걸림돌이라 여겨진 상황이었고, 내 존재와는 상관없이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당주를 잃은 빙궁은 약했다. 그들은 채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멸문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후일 빙궁이 있던 자리에 찾아가니 잿더미만이 남아 있었지.

       

       현기증에서 벗어나 천천히 눈을 뜨자 바뀐 풍경이 나를 반겨주었다.

       

       펼쳐진 곳은 숲 속에 있는 고즈넉한 분위기의 저택이었다.

       

       안의 호수엔 비단잉어가 살 것 같았고 돌아다니다 보면 어디선가 대나무통 움직이는 소리가 날 것 같은 그런 곳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빙궁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구나.

       

       기감을 펼쳐 안의 동태를 살폈다.

       

       저택 안에는 수없이 많은 무인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단순 무위의 수준만 따지자면 회사에서 만났던 노인 수준의 이들도 다수 포진해 있었다.

       

       이 곳은 즐길 수 있겠구나.

       

       이번에도 내 발자취는 똑같았다. 나는 정문 앞으로 다가가 문을 밀었다.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미끄러지듯 문이 열리며 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돌로 만들어진 길을 중심으로 양 쪽에 무인들이 포진해 있었다.

       

       적을 맞이한다기보다는 중한 손님을 대하는 듯한 모습이구나.

       

       들어오자마자 무언가 날아들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건 또 뭐에요?! 이런 게 있었나?>

       “무어냐. 하린 그대도 모르는 풍경이더냐?”

       <원래는 들어오자마자 무인들이 협공을 한다구요. 진짜 이 악물고 죽이려 들어서 얼마나 어려운데요.>

       

       그럼 이들은 도당체 왜 이러는 것이냐. 나도 그 이유를 좀 알자꾸나.

       

       “안녕하십니까.”

       

       문 옆에 서 있던 노인이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화경의 초입에 이른 이였다. 아마 빙궁의 장로 중 한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 그에게 게임 속 나는 핏덩이나 다름없을 터인데 왜 예의를 차리는 것일까.

       

       보통 무인이란 것들은 자기보다 경지가 낮은 이를 무시하는 습성이 있는데.

       

       <빙궁장로는 왜 또 이렇게 예의바른 건데요. 뭐지? 뭘까요?>

       

       글쎄다. 하린. 나보다는 그대가 이 게임에 대해 더 잘 알지 않느냐. 그대가 모르면 나도 모른다.

       

       “본인은 빙궁의 일장로입니다. 이름은 설유현이라 합니다.”

       “백화령일세. 정중함의 이유를 물어도 되겠는가?”

       “당신이 베푼 자비 때문이지요.”

       

       가문의 복수를 위해 모두를 학살해도 모자랄 터이거늘 당신은 그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경고를 했을 뿐.

       

       그 누구보다도 올곧은 당신의 심성에 답하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당주께서는 판단하셨습니다. 때문에 언젠가 객으로 찾아 올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불살 이벤트가 있었구나!>

       

       일장로의 설명을 들은 하린이 소리쳤다.

       

       거 불살 이벤트는 또 무엇이더냐.

       

       그녀가 설명을 하길 상대를 죽일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는 게임에는 게임 속 인물 그 누구도 죽이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이벤트가 존재한다고 한다.

       

       <복수도 제압만으로 클리어가 되는 게임이라 불살이벤트가 있을 거란 추측이 있기는 했어요.

       

       근데 연구소 보스를 죽이지 않고 제압한 사람이 없어서 확인이 안 됐었거든요.

       

       그러니까 이거 화령님이 최초에요!>

       “그렇더냐.”

       

       별 감흥은 없었다. 이 일이 나에게는 그리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는 탓이었다.

       

       잔뜩 흥분해서 이야기를 쏟아내는 하린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장로의 뒤를 따라갔다.

       

       저택 한 가운데에 있는 집의 문이 열리자 나무로 된 의자에 앉아 곰방대를 물고 있는 여자가 보였다.

       

       눈으로 칠해진 듯한 하얀 색의 머리카락도. 눈토끼와 닮은 붉은 색의 말똥거리는 눈동자도. 그리고 하얗다 못해 창백하다는 말이 어울릴 피부도.

       

       모두 내 기억 속 빙궁의 여인과 닮아 있었다.

       

       다만 예쁘기는 추억에 머무르는 그 아해가 더욱 아름다웠다. 생긴 것 하나로 대륙을 호령했던 아이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일어나 예를 표하지 못함을 이해해 주시길.”

       “이해하마.”

       

       슬쩍 보아도 여자의 몸 상태가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구음절맥의 부작용으로 대다수의 혈맥이 얼어붙은 상태였다.

       

       그 때문에 본래 끊임없이 흘러야 할 내기가 고이기 시작했고, 내기가 고인 장소부터 시작해 괴사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깨어나 있는 게 용하구나. 숨을 쉬는 것마저도 고통스러울 터인데. 어찌 그리 처연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게냐.

       

       쯧.

       

       이런 부분까지 닮지 말란 말이다.

       

       “장로. 저 분과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누어도 될까요?”

       “바깥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빙궁의 장로가 문을 닫았고, 방 안에는 나와 여자만이 남게 되었다.

       

       여자는 의자에 앉으라 말을 했으나 나는 다른 말을 꺼내는 걸로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대가 이 모든 일의 원흉인가?”

       “그렇습니다. 복수자시여. 여태 일어난 모든 일은 제가 삶을 갈구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다가오는 죽음이 두려워 악행에 손을 댔다고 여자는 고백했다.

       

       처음엔 사술에 의지하려 했다. 허나 정파가 그를 가로막았다. 때문에 멸했다.

       

       살기 위해서.

       

       그 과정에서 정파의 비급을 훔쳐 절맥을 해결해보려 했으나 실패했다. 구음절맥을 치유 할 방법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무공으로 안 된다면 현대의 기술에 의존해 보기로 했다.

       

       살기 위해서.

       

       허나 실패했다. 의사들은 그녀의 병세를 불치의 병이라 이야기할 뿐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각자로 안 된다면 두 개를 결합시키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럼 무언가가 나오지 않겠냐고.

       

       연구소를 만들어 많은 희생양을 낳은 건 그 이유였다. 그들이 걸친 장비는 어디까지나 부산물에 불과했다.

       

       이 모든 것은 단지.

       

       살기 위해서.

       

       나는 그녀를 책망하지 않았다. 내게 그녀의 악행을 따질 권리는 없었다.

       

       복수의 권한은 어디까지나 이 게임의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몸을 빌린 이방인에 불과하니 잘잘못을 따지는 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그러고도 해결책을 찾지 못했느냐.”

       “예. 덕택에 시한부의 생을 살고 있지요.”

       

       그래 보이는구나. 내가 의원은 아니다만 대충 진단하기에 한 달을 버티면 잘 버틴 것이라 봐도 될 듯 싶으니 말이다.

       

       웃긴 이야기 아닌가. 이 게임의 주인공이 복수를 택하건 택하지 않건 그녀의 원수는 절망과 비탄 속에서 죽어갔을 예정이라니.

       

       손이 심심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엔리에게 곰방대를 불러오는 방법을 들을 것을.

       

       일단은 임시방편을 사용할까.

       

       여자의 손에서 곰방대를 빼앗아 입에 물었다. 알싸한 향이 올라오는 것을 보아 담배가 아닌 모양이구나.

       

       “진통을 위한 약인가.”

       “돌려주실 수 있을까요.”

       “거절하마. 본인은 제멋대로인 인간이라 말이지.”

       

       머리가 워낙에 복잡한지라 그대의 요구는 들어줄 수 없겠구나.

       

       본래는 그냥 적당히 끝을 내려 했다.

       

       어차피 이 곳은 게임이지 않은가.

       

       이 건물도 내가 기억하는 빙궁이 아니고. 이 곳에 머무르는 이들도 내가 기억하는 빙궁의 문파원들이 아니다.

       

       심지어 내 앞에 있는 여자 또한 내가 기억하는 여인이 아니다.

       

       미련을 품을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것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저 게임으로만 즐길 생각이었다.

       

       허나 이 여자를 보고 있자니 자꾸만 옛 추억이 서린 얼굴과 여자의 얼굴이 겹쳐서 게임을 게임으로 볼 수가 없었다.

       

       늙어서 노망이 든 게지. 이러다 언제 치매에 걸려서 복수를 하겠다며 깽판을 치는 게 아닌가 몰라.

       

       절로 한숨이 샜다.

       

       외면할 수 없겠구나.

       

       “하린.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꾸나. 다음 일정은 나중에 보내마.”

       <네? 그게 무슨. 화령…>

         

       통신을 끊어버린 후  여자의 반대편 의자에 앉았다.

       

       “그대가 말했듯 본인은 복수자이니라.”

       

       거짓이었다. 나는 복수에 관해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다만 이리 말해야 여자를 납득시킬 수 있을 듯 해 말을 꺼냈을 뿐이다.

       

       “계속해서 생각했지. 원흉을 만나면 어찌 복수를 할까. 하고.

       

       죽인다?

       

       죽음은 도피일 뿐이다. 그걸로는 내 괴로움을 모두 해소할 수 없다.

       

       주변인을 모두 참살하고 홀로 살아남게 한다?

       

       분명 괴롭겠지. 허나 그럼 원흉은 나에 대한 복수심으로 새 삶을 결심할 것이다. 그건 그리 내키지 않은 결말이다.”

       

       이 또한 하나 같이 개소리였다.

       

       어디까지나 내가 이 여자를 치료할 당위를 얻기 위해 되는 대로 내뱉는 말일 뿐이다.

       

       “그러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은혜를 입히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구원해준 은인에게 평생토록 자신이 보답할 길이 없음을 깨닫는 것. 그 때문에 평생 후회하고 좌절하고 비통해하며 사는 것.

       

       행복을 거머쥘 때마다 내게 이걸 가질 자격이 있는 지 고민하는 것.

       

       이 얼마나 아름답고 시궁창 같은 복수더냐.”

       

       치료해주마.

       

       내가 그리 말하자 여자가 눈을 깜박였다. 그리곤 웃음을 흘렸다.

       

       “장난을 치시는 겁니까? 그 정도 희망으로 저를 좌절시킬 수는.”

       “구음절맥이란 몸 안의 압도적인 음기가 혈맥을 얼리는 질병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똑같이 구양절맥을 일으킬 만한 압도적인 양기가 필요하다.”

       

       말을 끊으며 제멋대로 목소리를 냈더니 처음으로 여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걸 제가 모를 것 같으십니까? 저도 그 양기를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다 실패했습니다. 그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단 말입니다.”

       “보거라.”

       

       손 위에다 내기를 뭉쳤다.

       

       그것은 태양과도 같은 기운이었다. 하늘에서 내려와 대지의 모든 것을 보듬어 주는, 눈을 녹이고 땅에서 새싹을 돋게 만드는 신이 내린 축복이었다.

       

       여자도 그를 느꼈을 것이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일어서려다 다리에 힘이 빠져 바닥에 주저 앉았다. 허나 그러고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이내 내 앞까지 다가온 여자는 조심스레 내 손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온기를 느꼈다.

       

       “어찌. 여성인 당신이 이런 양기를.”

       “빙궁의 진기는 날카로운 얼음과도 같지. 그렇다면 당연히 이 세상 어딘가엔 그 반대도 있지 않겠느냐.”

       

       나는 그것을 흉내내었을 뿐이다.

       

       오래 전 여인을 떠나보냈을 때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은인의 죽음에도 무덤덤하구나. 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욕했지.

       

       허나 달랐다.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게 아니었다. 너무도 충격이 커서 본인 스스로도 그 크기를 짐작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나는 아무리 긴 시간이 지나도 여인을 떨쳐내지 못했다.

       

       무림에서의 일이 끝나자마자 대륙을 떠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은 오롯이 구음절맥의 치료법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운명이 정말 그녀에게 죽음을 선고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운명이라 곡해해 포기해 버린 것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차라리 발견되지 않기를 원했다. 그래야 나도 체념할 수 있을 테니까.

       

       허나 현실은 야속했다.

       

       나는 여정의 끝에서 이 진기를 흉내내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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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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