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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

    왕국은 위기 상황에 처했다.

    북쪽에서부터 시작된 이변은 예정된 침공을 앞당기게 만들었다.

    왕국을 재로 만드는 현상이 북쪽에서 밀고 내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예정보다 이른 습격은 지지부진했고, 북쪽에서의 맥동은 왕국에 치명타를 안겨줬다.

    왕국은 재로 화했다.

    수많은 자원을 끌어 모아 만든 왕국이 붕괴하고 있었다.

    10년 동안 모아왔던, 소중한 병사들은 한순간에 재가 되어버렸다.

    10년의 인내는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세계를 지배할 초석은 그렇게 무너져 내렸다.

    왕국을 갈아버리는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있으니, 더욱 서둘러서 남하를 시작해야했다.

    하지만 지상의 병사들은 진격하지 못 했고, 왕국은 맥동으로 인해 위장이 벗겨져서 그 입구가 드러나 버렸다. 

    결국 왕성을 비우고 서둘러 남하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 것이었다.

    ‘!’

    병사들을 움직여서 이주 준비를 하던 도중, 왕국 안으로 들어서는 이물질이 느껴졌다.

    침입자였다.

    왕국이 드러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침입자란 말인가.

    전체적으로 회색을 띤 침입자였는데, 왕국 내부를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유유자적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침입자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지금 왕국에는 여유가 없었다.

    자비를 베풀 여유가 없는 왕국의 병사들이 침입자를 빠르게 배제하기 위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

    지하를 향해 뻥 뚫린 구멍.

    얼음과 금속이 어지럽게 얽혀서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동굴이었다.

    동굴 바닥과 벽에는 금속 가루들이 패턴을 그리며 달라붙어 있었다.

    쇳가루들이 달라붙은 모양새를 볼 때, 동굴 벽은 강력한 자석으로 보였다.

    거기에 이따금씩 번쩍하고 동굴 안에서 벼락이 치는걸 보니, 고압의 전류도 흐르는 것으로 보였다.

    높이는 약 1.2m 가량, 넉넉하게 걸어 다닐 만한 높이였다.

    고압의 전류가 흐르고 높이가 겨우 1.2m인 동굴? 인간은 여길 어떻게 탐사해야 하는 걸까?

    나야 별 상관없지만.

    꽤 깊숙이 지하로 들어가니, 통로들이 잔뜩 모이는 거대한 공동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곳에는 대량의 얼음 거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벽과 천장을 가리지 않고 잔뜩 달라붙어 있었는데, 동굴 벽이 자석인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양새였다.

    밖에 돌아다니는 대형 병사들과는 달리 인간형도 아니었고, 높이도 1m정도 밖에 안 되는 작은 병사들이었다.

    지하 통로 높이가 낮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

    저 얼음 거미들은 아무리 숫자가 많다고 해도 별로 위협이 되지는 못 했다.

    오브젝트가 아니었으니까.

    눈으로 저들을 동시에 파괴할 수 있는 파괴조건을 읽어 들였다.

    오브젝트가 아니라면 파괴는 쉬웠다.

    ***

    회색의 침입자는 바닥에서 얼음 조각을 하나 주워들었다.

    강철의 육신과 얼음의 갑주를 두른 병사들에게 얼음 조각이라니?

    ‘얼음 조각 따위로 뭘 하려고?’

    침입자는 주먹을 힘껏 말아 쥐고, 벽을 세 번 콩콩콩. 

    그리고 얼음 조각을 공중으로 살짝 던져 올렸다.

    침입자는 얼음 조각이 떨어지기 전에 재빨리 물구나무를 서고, 얼음 조각이 떨어지는 것에 맞춰서 다리를 휘적휘적 휘둘렀다.

    발길질에 얻어맞은 얼음 조각은 공터 한 중간으로 느릿느릿 날아갔다.

    공격이라고 여기기도 어려울 만큼 느릿한 투사체였다.

    얼음 조각은 공터 한중간에 놓여있던 금속 덩어리를 툭하고 건드렸다.

    저 금속 조각은 북쪽에서 시작한 맥동에 당한 병사의 잔해로 보였다.

    얼음 조각에 부딪힌 충격으로 데굴데굴 굴러가는 금속덩어리를 얼음 거미중 하나를 움직여서 막았다.

    ‘겨우 이거냐?’

    이런 생각이 절로 드는 적이었다. 이 정도라면 굳이 신경을 쓸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그때 공터 안에서 강렬한 방전이 그 금속 구체에 틀어박히면서 모든 게 일변했다. 

    금속 구체는 수류탄처럼 폭발했고, 그 잔해에 맞고 날아간 거미들은 한데 뭉쳐 데굴데굴 굴러갔다. 

    구체에서 비산한 조각들은 공터 사방에 꽂혔고, 그 중에는 침입자가 주먹으로 건드린 곳도 있었다.

    그 부분에서 시작된 거대한 균열은 공터를 가로질렀고, 또 다른 폭발을 불렀다.

    통로에 흐르던 고압전류가 문제였다.

    아마 평소의 통로는 이정도 충격으로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북쪽에서 시작된 맥동, 그때 통로 안에 누적된 막대한 충격량.

    맥동에서 유래된 수많은 금속 가루와 금속 조각들. 

    그리고 침입자가 했던 의미 없는 행동들이 정확한 타이밍에 맞물린 결과였다.

    그 연쇄적인 현상은 공터에 모아둔 왕국의 병사들을 모두 박살 내버렸다.

    통로가 무너지는 큰 소리가 지하에 울려 퍼졌다.

    ‘…’

    침입자는 범상치 않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도대체 뭐지? 확률을 임의로 조작하는 능력?

    무슨 힘을 가졌는지는 몰라도 충분한 힘을 가진 강자임은 분명해보였다.

    현 왕국의 전력으로는 상대가 불가능해보였다.

    그래도 강자는 강자 나름대로 상대하는 방법이 있었다.

    가짜 승리를 안겨주면 되는 것이다.

    본신을 숨기고 승리했다고 착각하게 만들면 된다.

    왕국의 중심부에서 강자를 맞이할 준비를 시작했다.

    ***

    얼음조각 하나로 적들을 일소한 나는 먼지가 묻은 손을 툭툭 털며 붕괴한 공터를 둘러봤다.

    살아남은 소수의 거미는 삐걱거리며 사방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밖에 있던 병사와 유사한 거미들이 등장한 시점에서 확실해보였다.

    ‘이 동굴 안에 ‘도봉구의 얼음 왕좌’를 만든 오브젝트가 있다.’

    찰박찰박.

    경쾌한 걸음 소리를 울리며 도봉구의 얼음 왕좌를 찾아 나섰다.

    병사들이 도망가는 길을 더듬어 올라가자, 나타난 것은 거대한 공터였다.

    얼음 병사들이 신하들처럼 일렬로 정렬해있고, 천장에는 인공적인 빛이 내리쬐는 공간이었다.

    기둥과 벽에 새겨진 무늬는 어쩐지 신전의 그것처럼 무언가 경건함을 느끼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와! 소리가 나올 정도로 멋진 공간이었다.

    이 공간 끝에는 거대한 얼음 왕좌가 놓여 있었고, 그 왕좌에는 흑색의 강철로 온몸을 덮은 존재가 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왕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갑옷이 앉아 있었다.

    이 거대한 방에는 공중에 떠있는 쇠붙이가 잔뜩 장식되어있어서, 그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욱 강하게 했다.

    왕좌에서 일어선 갑옷은 거대한 철퇴를 손에 들고는 쿵쿵, 발걸음 소리를 내며 점점 다가왔다.

    박력이 넘치는 멋진 등장이었지만, 나는 관심이 없었다.

    고개를 돌려가며 찾아야할 것을 찾고만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 갑옷, 오브젝트가 아니었다.

    좀 크고 멋지게 꾸며진 얼음 병사랑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철퇴를 휘두르며 귀찮게 하는 갑옷은 유령화 겹치기로 철퇴를 부숴버린 뒤 오브젝트 찾기에 열중했다.

    오브젝트는 의외의 장소에서 발견되었다.

    왕좌 옆의 탁자 위에 있었다.

    탁자 위에는 공중에 둥실둥실 떠 있는 금속들이 많았는데, 그중 하나였다.

    초전도체처럼 자석 위에 둥둥 떠 있는 원반 형태의 쇠붙이들.

    그 장식물처럼 배치된 쇠붙이 중에 딱하나 오브젝트가 숨어있던 것이다.

    초전도-개구리였다.

    납작하게 몸을 굳힌 채, 움직이지도 않고 그저 둥실둥실 떠 있기만 한 개구리였다.

    ‘왜? 어째서 개구리?’

    도봉구를 완전히 파괴하고, 한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오브젝트가 겨우 이거였다니.

    파괴 조건도 간단한 개구리였다.

    [신체의 일부가 부서지면 죽는다.]

    아귀보다는 못해도 꽤 강할 것을 예상했던 나는 약간 허탈했다.

    내가 정체를 눈치챘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냉기와 전기를 마구 뿜어내며 공격해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물리적인 영역에 머무는 공격으로는 나를 어찌 할 순 없었다.

    나는 이 신기한 생명체를 어찌해야 할까? 고민하며 그 개구리를 한 손으로 집어 들었다.

    하지만 금속광택을 내는 초전도-개구리는 내 손아귀에 쥐어지자마자 으스러져 버렸다.

    생긴 건 강철인데, 강도는 젖은 휴지보다 약한 개구리였다.

    ***

    괴물이었다.

    미끼로 던져준 병사로는 발조차 묶을 수 없었다.

    완벽한 은신도 손쉽게 간파되었다.

    무도한 괴물은 나의 본체를 한 손에 들고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를 하지 않았지만, 괴물의 손아귀 압력이 점차 강해져갔다.

    ‘이것이 나의 끝인 건가.’

    나의 영원한 왕국이 이렇게 끝을 맺게 되는 것인가.

    퍼석, 하고 뭔가 부스러지는 소리가 들리자 나의 의식은 끝없는 어둠 속에 잠겼다.

    ‘저 앞에… 그저 어둠만이… ‘

    ***

    개구리가 부스러지자, 광장에 모여 있던 모든 병사들은 실이 끊긴 인형처럼 허물어졌다.

    도봉구의 침략자가 드디어 죽은 것이다.

    폐가 있었다면, 심호흡을 한번하고 홀가분한 기분을 느낄만한 상황이었다.

    얼마나 홀가분한지, 몸이 둥실둥실 절로 떠올랐다.

    ‘????’

    초전도-개구리를 죽이자 초전도-사신이 되었다.

    자기장으로 가득한 동굴이라 그런지 우주를 유영하듯이 돌아다닐 수 있어서 꽤 재미있는 능력이었다. 

    돼지상의 향기처럼 on/off가 불가능한 타입이라면 불편할 수도 있을 텐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동굴에서 둥실둥실 떠다니다보니 문득 생각이 미쳤다.

    이거 세희 연구소에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해야 하나? 

    즐거운 우주유영 놀이는 갑작스러운 지진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강철탑의 맥동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개구리가 죽자, 강철탑의 맥동을 견디지 못하고 개미굴이 전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붕괴를 피해 지상으로 올라가, 녹아내리는 얼음 왕좌 위에 섰다.

    약 20m 높이의 얼음 위에서 내려다본 서울은 혼란스러워보였다.

    서울을 위협하는 땅 위의 해일.

    파괴되어가는 문명.

    도봉구의 얼음 왕좌와는 비교도 안 되는 강철탑의 위협에 직면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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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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