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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

       

         

         

         

        “모두 모였군.”

         

         

        회의장에는 용사 파티만 집합해 있었다.

         

        법복 이곳저곳이 찢어지고 그을린 성녀 아르실.

         

        마찬가지로 로브 아랫단이 죄다 찢겨 있는 마법사 티그리아.

         

        반대로 말끔한 옷차림의 궁수 나이드리안.

         

        그리고 금빛으로 빛나는 갑옷을 착용한 방패기사 라인폴드.

         

        용사가 없는 용사 파티가 집결했다.

         

        정확히는 용사와 짐꾼이 없는 용사 파티가.

         

         

        “극비사항으로 보이는데도 전령이 대략적인 내용을 다 알고서 전달하던데요.”

         

        “통제할 수 없는 정보였기 때문이지.”

         

         

        그나마 용사 파티원들만 있을 때는 똑바로 이야기할 수 있는 나이드리안이 가장 처음 입을 열었다.

         

        라인폴드는 멋진 금발을 쓸어올리며 대답했지만 미간의 주름으로 보아 매우 짜증난 상태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연스레 하대를 하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왕 토벌 이후로 라인폴드에게서 더 이상 상냥함 따위 찾아볼 수 없었다.

         

         

        “발터크루아에서 대놓고 마족이 침공했는데 알려지는 건 시간 문제야.”

         

        “아르실과 티그리아도 마족과 조우했다고 했다면서요?”

         

         

        원로의 응원 아닌 응원을 듣고 온지라 나이드리안은 꽤나 적극적이었다.

         

        의외의 모습에 라인폴드가 흘끗 그녀를 바라봤지만 그뿐이었다.

         

        반면 아르실은 조금 실망했다.

         

        누가봐도 고생한 흔적이 역력한 자신과 티그리아에게 괜찮냐는 말이 나오지도 않는다.

         

        루시라면 분명히 그걸 먼저 물어봤을텐데.

         

        하지만 아르실은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할 자격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명분이 충분했더라도 동료를 배제했던 자신들 사이에서 안부 묻는 걸 바라다니 스스로가 괘씸했다.

         

         

        “어찌된 일인지 자세히 알려줬으면 좋겠군. 빠르고 간략하게.”

         

        “알겠음.”

         

         

        티그리아는 라인폴드의 요구에 따라 시간 순서대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했다.

         

        에팔테르가에서 발터크루아로 가던 길에 마용사 파티를 자칭하는 푸른 마족, 창잡이 샐러메이를 만나 처참하게 패배하고 간신히 도착한 발터크루아 역시 환술사의 공격을 당한 상태였고 거기서 아르실이 래빈과 나눈 대화를 이야기해줬다.

         

        그런데 티그리아는 사건의 중심에 예상외로 짐꾼이 많이 언급되고 있다는 것을 교묘하게 피해서 말했다.

         

        샐러메이가 린에 관해 했던 말은 물론이고, 마법사 자신이 판단했을 때 린이 아르실, 래빈과도 연관이 깊다고 짐작하여 성녀와 도적이 구면이라는 사실까지 일부러 빼먹었다.

         

         

        “용사는 즈라문 군도로 갔다라….”

         

        “정황상 루시는 발터크루아에 있던 게 맞고 그녀를 노리고 마용사 파티의 환술사가 습격한 게 아닐까요?”

         

         

        실상과 조금 달랐지만 나이드리안의 추측은 현재 용사 파티가 도출해 낼 수 있는 가장 그럴듯한 가정이었다.

         

         

        “발터크루아 길드 연합과 루시가 힘을 합쳐 마족과 싸운 거에요. 환술사가 물러간 뒤 루시는 일부러 자신의 행선지를 전달하도록 한거죠.”

         

        “하, 그 자식 대체 무슨 생각이지?”

         

         

        관절을 꺾으며 고민해봤지만 아르실은 떠오르는 게 없었다.

         

        역시 성녀는 머리 쓰는 일은 익숙치 않았다.

         

         

        “뻔하지 않겠나. 우리를 유인하고 있는 거야. 원한을 갚고 싶은 거겠지.”

         

        “원한… 인가.”

         

        “뭘 괴로워하는 척 하지? 루시에나 에스텔은 평소에 대단히 위험한 언행을 보여왔어. 제거할 수 밖에 없었다. 모두 납득했을 텐데.”

         

         

        쳇, 그딴 합리화로 하늘을 가릴 수 있을 것 같냐.

         

        아르실은 방패기사가 못 마땅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초조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씨에 대해 묻자 폭소하던 래빈의 모습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허나 이상하군. 목적지가 왜 즈라문 군도지?”

         

        “저희와 전투를 한다면 인근에 큰 피해를 줄 수 밖에 없어서 아닐까요? 군도에서도 무인도 같은 섬을 골라 기다리고 있다가 저희와 붙으려는 거죠.”

         

         

        이번에도 그럴듯한 추측이었다.

         

        입담이 거칠긴 해도 루시는 주위를 배려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아, 짐꾼 한정으로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머리가 좋았었나? 라인폴드는 내심 나이드리안에게 감탄했다.

         

        나르시스트 성향인 그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순수 학문과 지식을 공부하는 머리만 따지면 학자인 나이드리안이 월등히 좋았다.

         

        하지만 티그리아가 직접 나서서 그 추측을 부정했다.

         

         

        “그런 게 아닐거임.”

         

        “네가 확언을 하다니 근거가 뭐지?”

         

         

        라인폴드가 묻자 티그리아는 살짝 멈칫했다.

         

        그다지 꺼내고 싶은 내용이 아니었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즈라문 군도에는 마검이 봉인되어 있음.”

         

        “마검?!”

         

         

        사악한 아이템이 등장하자 아르실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즈라문 군도에 마검이 봉인되어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데.”

         

        “역사와 성경에 대해 깊이 공부한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를거임.”

         

        “자세한 설명 부탁하지.”

         

        “…….”

         

        “티그리아, 설명을 요구하고 있네만.”

         

         

        방패기사가 위엄을 갖춘 목소리로 압박했지만 그딴 얄팍함에 벌벌 떨 마법사가 아니었다.

         

        그녀답지 않게 침묵이 길어졌다.

         

         

        ‘린이 있었다면….’

         

         

        이 이상한 두려움에 떨지 않고 말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린이 곁에 있었다면.

         

        갑자기 린이 보고 싶어졌다.

         

        그 욕망 하나에 기대어 티그리아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2대 용사의 최대 업적임. 마왕에게서 마검을 빼앗고 즈라문 군도에 봉인하면서 세상의 모든 이들이 환호하였음. 하지만 그 인기를 시기한 당시 도적이 2대 용사가 마검으로 인류를 지배하려 한다는 모함을 하고 다른 파티원들이 동조하면서 결국 2대 용사는 붙잡혀 처형당했음.”

         

        “…….”

         

        “그리고 그 뒤는 모두가 알고 있는 그대로임.”

         

         

        그녀가 담담히 풀어낸 것은 소실된 역사였다.

         

        용사를 배반한 용사 파티의 이야기에 라인폴드마저 침음성을 흘렸다.

         

        그나마 나설 수 있는 건 원로에게 잔뜩 혼나고 온 나이드리안이었다.

         

         

        “마검이 잠들어 있는 건 알겠어요. 하지만 그게 루시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마족은 인간이 부정한 감정 속에 놓여 극한의 압박을 받아 탄생하는 종족임.”

         

         

        세상은 그걸 타락했다고 표현한다.

         

         

        “마검도 마찬가지임.”

         

         

        상상도 못한 엄청난 진실에 마법사를 제외한 모두가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마검은 성검이 타락해서 만들어졌음.”

         

        “언제? 네 말을 도무지 따라갈 수 없어. 2대 용사가 마검을 봉인했다며? 그럼 대체 언제 성검이 타락을 했고, 지금까지 루시가 썼던 성검은 뭐야? 앞뒤가 안맞는다고!”

         

        “1대 용사임.”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반박 한 번 해보려다 뒤로 갈수록 더 충격적인 사실만 나오고 있었다.

         

        라인폴드도 부정하고 나섰다.

         

         

        “1대 용사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용사이기도 하다. 세상 아무도 모르고 있던 마족의 존재를 처음으로사람들에게 알리고 밀려오는 마군을 향해 홀로 돌진해 동귀어진하여 막아낸 고독의 용사이기도 하지.”

         

        “1대 용사는 죽지 않았음. 아니 정확히는 그때 죽지 않았었음.”

         

        “뭐라?”

         

        “마군의 진격을 멈췄지만 마족들은 죽기 직전의 그녀를 데리고 후퇴했음. 그리고 마신이 직접 1대 용사를 고문하여 타락시켰음.”

         

        “용사가 타락이라고?!”

         

        “왜 놀라는 지 모르겠음. 라인폴드 너만 해도 저번 회의에서 루시에나 에스텔의 타락 가능성을 제시했었음.”

         

         

        그건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쇼였기 때문이었다.

         

        졸지에 과거의 자신과 싸우게 된 라인폴드는 불쾌한 속내를 애써 감췄다.

         

         

        “좋다, 용사가 타락하면서 그 성검도 마검이 되었다는 거로군?”

         

        “맞음, 하지만 마신이 인간인 용사에게 직접 손을 대었기 때문에 여신이 새로 성검을 벼려서 2대 용사에게 하사했음.”

         

        “네가 하는 말이 모두 진실이고 역사라고 한다면, 그 타락한 1대 용사는 지금 어디서 뭘하고 있나?”

         

        “죽었음.”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러자 티그리아는 손가락을 세어보았다.

         

         

        “2달하고 일주일 되었음. 장소는 마경에서.”

         

         

        아르실은 저 입을 막고 싶었다.

         

        나이드리안은 입가를 가리며 경악했고, 라인폴드는 입술을 깨물어 피가 나고 있었다.

         

        언제나 듣기 싫은 진실, 받아 들이고 싶지 않은 사실을 알려주는 건 왜 마법사인 것일까.

         

         

        “루시에나 에스텔을 필두로 한 우리에게 죽었음.”

         

         

        마왕이 바로 1대 용사였다.

         

         

        “그리고 본론으로 다시 돌아가자면, 마검은 본래 성검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성검을 강화하는데 사용할 수도 있음. 이건 추측임. 안 해봐서 모름.”

         

         

        깜빡이도 없이 치고 들어오는 무지막지한 막타에 마법사를 제외한 용사 파티는 전원 머리를 부여잡았다.

         

         

         

        —

         

         

         

        나이드리안은 자신의 경갑과 활을 챙겼다.

         

        특수 제작된 화살을 화살통에 넣고 식물 학자답게 여러 개의 작은 약병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가는 게냐?”

         

        “예, 원로님.”

         

        “이번에야말로 마족을 세상에서 지우고 우리 엘프의 멸족을 막아야만 한다.”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황태녀와 방패기사에게 우리의 계약을 제대로 상기시켰느냐?”

         

        “네.”

         

         

        고개를 끄덕인 나이드리안은 회의에서 라인폴드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다시 읊었다.

         

         

        “용사 루시에나 에스텔을 확보하고 마족을 비롯한 세상의 위협을 제거하면 줄어들고 있는 엘프 숲을 대체할 다른 광활한 숲을 엘프에게 제공할 것.”

         

        “바로 그것이다. 이대로면 우리는 멸족을 피하지 못한다.”

         

        “네, 알고 있습니다.”

         

        “네 어깨에 종족의 생존이 달렸다, 나이드리안!”

         

         

        또다시 무겁게 눌러오는 부담감.

         

        그러나 나이드리안은 이겨내야만 한다.

         

        엘프의 운명이 그녀에게 달렸으니까.

         

         

        “다녀오겠습니다.”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고 살아서 돌아오너라.”

         

         

        자신의 생환을 비는 이유는 그녀가 정치적으로 가치가 있기 때문이겠지.

         

        씁쓸함을 뒤로 하고 나이드리안은 황궁 앞 광장으로 나아갔다.

         

         

         

         

         

        “성녀님, 이번 여정에 여신님과 교국의 위신이 달려있습니다.”

         

        “알았으니까 그만 좀 재잘거려! 너희야말로 제국이랑 같이 나랑 맺은 계약 꼭 지키라고!”

         

        “그 계약은 늘 명심하고 있습니다.”

         

        “그럼 어디 한 번 말해보실까. 우리의 계약 내용.”

         

         

        뭔 놈의 성녀가 이리 이기적이란 말인가.

         

        하지만 자신 역시 욕심 가득한 정치인임을 인정하는 추기경은 평온함을 가장했다.

         

         

        “우리 교국과 제국은 성녀님께서 용사를 확보하고 마족을 비롯한 세상의 위협을 제거하면 성녀님의 출신지인 구정물골목에 아카데미를 세우고 성녀님을 그 아카데미의 교장으로 세우는 거였지요.”

         

        “디테일이 빠졌잖아. 제국에서 아카데미를 위한 모든 자금 지원을, 교국에서 구정물골목의 모든 이들에게 축복과 세례를 해주는 거였어. 그리고 나는 성녀직에서 물러나는 거고.”

         

         

        마지막 조건이 없었다면 이딴 웃기지도 않는 거짓말로 채워진 계약은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다.

         

        일 다 끝내고 스스로 물러나준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계약이 이행될 지는 미지수지만.

         

         

        “있잖아, 추기경. 구정물골목은 요새 어때? 계속 감시하고 있을 거 아냐. 내가 거기 출신이라는 소문 퍼뜨리는 놈 있나없나.”

         

         

        은근슬쩍 이씨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돌려 물어봤지만 추기경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런 불경한 녀석은 없었습니다.”

         

        “…그래?”

         

         

        골목 자체를 청소해버렸으니 그럴만한 사람, 아닌 생명체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성녀를 비웃으며 추기경은 그녀를 배웅했다.

         

         

        “부디 여신님의 가호가 있기를.”

         

        “웃기고 있네. 그 가호 내려주는 게 나거든?”

         

         

        인벤토리에 짐을 다 챙기자 광장으로 향하는 아르실.

         

        그녀는 알고 있을까.

         

        그 가호를 내리는 능력을 강제로 얻고 지불한 대가는 그녀의 과거 전부라는 것을.

         

         

         

         

        의외로 마법사는 방패기사와 함께 있었다.

         

         

        “정말 지켜볼 셈인가?”

         

        “그게 우리의 계약 내용임.”

         

        “흐음.”

         

         

        남들 앞에서 나름 노련한 모습을 보여주는 방패기사도 티그리아만큼은 껄그러웠다.

         

         

        “진정한 애정과 사랑을 연구하고 싶다면 굳이 나일 필요가 있나?”

         

        “라인폴드가 황태녀에게 보여주는 애정이 진실하다고 느꼈기 때문임. 지금까지 봐온 애정들은 모두 정치적, 물질적 손익과 성적 욕망에만 따른 가짜였음. 따라서 라인폴드와 황태녀가 내 연구의 적합한 모델임.”

         

         

        티그리아가 불만스러워하는 것은 동의해놓고 라인폴드가 황태녀와 있는 모습을 그녀에게 거의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단 둘이서만 밀회를 즐기니 티그리아는 진정한 사랑에 대해 연구하기가 힘들었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게 용사의 뒤를 칠만큼 중요한 연구인가?”

         

        “우문임. 2대 용사 파티와 왕국이 붕괴된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닌 육욕에 의한 배신이었기 때문임. 진리를 탐구하는 마법사로서 절대 놓칠 수 없는 연구 주제임.”

         

        “다른 목적이 있는 건 아니겠지?”

         

        “다른 목적은 없음. 다만, 내 연구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다른 모델을 찾을 수 밖에 없음. 아직 내 조력이 필요한 상태일 거임. 최대한 협조하길 원함.”

         

        “유의하도록 하지.”

         

         

        진저리를 치며 마법사에게 멀어지는 라인폴드.

         

        그는 곧장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리나시엔에게 다가갔다.

         

         

        “조심하세요, 모르건.”

         

        “이 세상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전 절대로 죽을 수 없습니다.”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정의감이었다.

         

        세상의 수호자가 되겠다는 그의 소원만큼은 순수했고 맹목적이었다.

         

        듬직한 그를 껴안으며 황태녀가 속삭였다.

         

         

        “무서워요.”

         

        “무엇이?”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이 역경이, 용사를 해쳤다는 이유로 여신님께서 내리시는 벌인 것만 같아요.”

         

         

        마치 2대 용사 때의 사건처럼.

         

        뒷말을 삼켰지만 라인폴드도 충분히 알아들었다.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리나시엔의 턱을 살짝 당겼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용사는 자기 주제를 모르고 거칠게 행동하여 세상의 새로운 적이 될 여지를 줬습니다. 여신님께서는 불의와 부정에 분노하셨던 것이지 용사 개인의 신상을 이유로 분노하셨던 게 아닙니다.”

         

         

        누구도 모른다.

         

        그가 세상의 수호자가 되기 위해 누구와 거래했는지.

         

        설사 여신이 그걸 질책하더라도 그는 당당하게 자신의 정의를 대변할 자신이 있었고, 여신마저 그 정의를 무너뜨리려 한다면 대응할 힘도 얻었다.

         

        그자라면 가능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리나시엔도 그를 따라웃었다.

         

         

        “그런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군요. 죄송해요. 역시나 전 아직 준비가 부족… 으읍…!”

         

         

        참을 수가 없었다.

         

        이 미묘하게 격 떨어지는 고귀한 여인에게 키스하지 않고는 베길 수가 없었다.

         

        역시 이게 여자지.

         

        얼굴만 보고 꼬리나 치는 루시에나 에스텔 따위보다 훨씬 나은 여자.

         

        정중하지만 탐욕스러운 키스를 나누며 라인폴드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런 둘을 관찰하던 마법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실된 애정 맞음. 그런데, 주변 공기가 일그러진 느낌이 계속 들고 있음.”

         

         

        원하던 연구를 하게 되었는데도 만족스럽지가 않다.

         

        의문만 계속될 뿐.

         

         

        ‘빨리 린을 만나야겠음.’

         

         

        그것이 바로 티그리아가 내린 결론이었다.

         

         

         

         

         

         

         

         

         

        “와아아아아-!!!!!”

         

         

        백성들이 환호한다.

         

         

        “실로 장관이로군요.”

         

        “세상의 악을 걷어낸 뒤 이 장관을 다시 볼 수 있기를.”

         

         

        귀족들은 점잖을 떤다.

         

         

        “용사 파티의 힐러(물리)! 성녀 아르실님 납십니다!”

         

         

        황궁의 거대한 문이 열리며 성녀가 걸어나왔다.

         

        거친 옷감으로 짠 투박한 법복에 갈색의 윤기 나는 단발을 찰랑이는 당당한 자태였다.

         

         

        “용사 파티의 궁수! 엘프 나이드리안님 납십니다!”

         

         

        초록색 긴 머리칼을 가진 궁수가 거침없이 전진했다.

         

        걸음걸이에 따라 곱게 땋아내린 댕기머리가 흔들렸다.

         

         

        “용사 파티의 마법사! 마도학자 티그리아님 납십니다!”

         

         

        검은 로브를 입은 마법사.

         

        평범한 스태프를 들고 나오지만 사람들은 가만 있어도 위로 살짝 솟구치는 보랏빛 긴 생머리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용사 파티의 방패기사! 모르건 라인폴드 경 납십니다!”

         

         

        마지막으로 금발의 미청년.

         

        부드러운 인상과 다르게 다부진 몸을 가진 방패기사가 갑주 차림에 커다란 방패를 들고 나타났다.

         

        그렇게 용사 파티는 서로를 보지도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묵묵히 제도 밖을 향해 나아갔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용사 파티의 집결에 사람들이 더 크게 환호한다.

         

        다른 파티원들이 모두 긴장한 가운데 라인폴드만이 여유롭게 그 환호를 즐겼다.

         

         

        뒤이어 중앙 귀족들과 황태녀를 비롯한 황족들이 광장으로 나왔지만 따로 호명하지 않았다.

         

        오늘의 주인공은 용사 파티니까.

         

        숭고한 의무를 지고 떠나려는 저들 앞에서 신분과 권위를 내세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세간의 이목이 모두 쏠린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어느정도 걸었다고 생각한 라인폴드는 갑자기 멈춰섰다.

         

        리더격인 그가 정지하니 자연히 용사 파티원들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잠시 하늘을 향해 우수에 찬 시선을 던지던 라인폴드.

         

        아주 천천히, 뒤를 돌아 황태녀를 바라보았다.

         

        그와 시선이 마주친 리나시엔은 이미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모르건… 그대의 무운을 빕니다.”

         

         

        조용해진 광장에 황태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작지만 귓가에 단단히 꽂힌 그 애절함은 많은 아낙네들의 비통한 탄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제야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라인폴드.

         

         

        “가자.”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앞장서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라인폴드를 필두로 한 용사 파티.

         

        하지만 용사가 없는 용사 파티.

         

        그들은 다시 세상의 위협을 뿌리뽑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여정의 첫 번째 목표는 바로 용사 루시에나 에스텔의 확보.

         

        황족, 귀족, 평민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그들이 무사히 용사를 찾아서 구할 수 있기를 바랐다.

         

        용사 파티에 짐꾼도 없어졌다는 사실은 누구도 떠올리지 않은 채.

         

         

         

         

         

         

         

         

         

       


           


He Became the Only Ally of the Abandoned Warrior

He Became the Only Ally of the Abandoned Warrior

Abandoned Hero's Only Ally, 버림받은 용사의 유일한 아군이 되었다.
Score 6.8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saved the Warrior who used to ignore and bully me and now she is obsessed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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