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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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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의 세계는 무너져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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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른다. 어느 순간부터 시야가 좁아지고 주변의 모든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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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통 새하얀 공간 속에서 아이리스는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더 이상 괴롭지 않았다. 아프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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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다가 문득 따스한 온기가 느껴져 정신을 차렸다. 동굴에서 말을 하는 것처럼 웅웅 울리는 목소리가 아이리스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
    ​
    뺨을 후려치고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손이 아닌, 상냥하게 머리를 빗겨주는 손길에 아이리스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
    ​
    학습된 두려움으로 덜덜 떨리는 손이 따스한 온기의 끝자락을 붙잡은 순간, 온기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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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순간, 닫혀있던 그녀의 세계는 아주 조금이지만 확장되었다. 
    ​
    ​
    그녀의 세계에 남은 건 아무런 가치 없는 자신과 따스한 온기가 전부였기 때문에, 그녀는 따스한 온기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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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챙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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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가운 금속 소리와 함께 그녀는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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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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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지만 아이리스를 껴안은 따스한 온기의 목소리는 너무나 선명하게 들렸다. 맞닿은 피부를 통해 느껴지는 빠른 맥박, 바짝 긴장한 탓에 힘이 들어간 손, 자신을 뒤로 숨기는 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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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리스는 천천히 그 모든 것을 인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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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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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냥을 나선 짐승의 서늘한 살기가 아이리스를 훑고 지나갔다. 아이리스는 그 순간 직감했다. 이대로 있다간 따스한 온기가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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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지도 웃지도 못한 게 된 아이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온기를 잃고 싶지 않아 소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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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키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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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텅 비어있는 그녀의 눈동자에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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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온기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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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리스는 본능적으로 날 선 검을 뺏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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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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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하얗게 부서져 내라고 좁아져 있던 시야가 확장되었다. 그녀의 시선이 이를 드러내는 짐승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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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을 차린 순간, 그녀는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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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허허허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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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벼락이 떨어지는 것 같은 울음소리, 심약한 사람이라면 심장을 부여잡고 주저앉을 만큼 무시무시한 울음이었다. 하지만 아이리스는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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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짐승은 그녀에게 이를 드러내며 눈을 번뜩였다. 뒤로 크게 점프해 물러나 그녀를 경계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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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능적으로 아이리스가 위험한 존재라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건 아이리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가볍게 땅을 박찬 그녀는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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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촤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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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와 짐승의 거리가 꽤 떨어져 있어 검이 허공을 베었다. 짐승이 비웃음을 흘리는 순간, 짐승의 몸통에 긴 줄이 그어지더니 쫙 하고 찢어졌다. 뒤이어 녹색 피가 콸콸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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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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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들짝 놀란 짐승이 몇 번이고 뒤로 물러났지만, 아이리스가 더 빨랐다. 그녀는 도축을 하는 것처럼 짐승의 다리와 머리, 몸통을 난잡하게 베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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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허허헝..! 케흑..커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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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짐승은 몇번이나 아이리스에게 달려들었지만, 아이리스의 머리카락조차 스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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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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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꺼운 목뼈가 부러지고 이를 드러내던 뱀이 10토막으로 잘리면서 아이리스는 승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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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오오오오오!! 상상도 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우와아아아아!”
    “우오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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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지가 떨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함성이 투기장을 가득 채웠다. 아이리스는 그런 주변 소리나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처럼 초록색 피가 묻은 검을 들고 리안에게 빠르게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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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챙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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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검을 바닥에 버려버리고 다급히 리안의 손을 붙잡았다. 따스한 온기가 마주 잡아주자 그녀가 안도의 숨을 길게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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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시에 시야가 다시 좁아지고, 그녀는 또다시 자신만의 세계에 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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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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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 대단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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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리스가 달려 나간 순간 나는 곧바로 주머니에서 3D 안경을 꺼내 썼다. 전투가 발생했을 때 3D 안경을 쓰고 관찰하면, 평범한 싸움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양한 효과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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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증거로 아이리스의 검에서 무슨 검풍 같은 게 슝슝 뿜어져 나와 괴물을 공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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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에서도 저 정도 위력은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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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랑 만나기 전에 아이리스가 각성을 한 건지 아니면 개그 필터의 능력이 뛰어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게 좋은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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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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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무시무시한 괴물의 목을 베어버리고는 나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빠르게 안경을 벗어 주머니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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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챙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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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검까지 내팽개치고 달려와 조심스럽게 내 손을 잡았다. 역시 괴물과 싸운 게 두려웠던 건지 손이 떨리고 있었다. 깍지를 껴주자 떨림이 천천히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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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이이익!”
    “우아아아아아아!”
    “오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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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성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수천 명이 넘는 사람과 마족 등의 시선을 받는 건 좋은 느낌이 아니었다. 나는 아이리스의 손을 꼭 잡은 채 내게 검을 던져줬던 남자가 서 있는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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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로 안으로 들어가 있던 남자는 어느새 밖으로 나와 벽 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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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흐, 생각보다 쓸만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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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가 음습한 시선으로 아이리스를 훑어보았다. 이에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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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미친 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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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가 예쁘긴 하지만 워낙 못 먹고 자란 탓에 몸도 깡마르고 키도 작았다. 못해도 40대는 되어 보이는 남자가 나보다 머리 하나 작은 여자애를 음흉하게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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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다급하게 아이리스의 눈가를 가리며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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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 저런 거 보면 안 돼. 지지야. 지지.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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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말없이 나를 졸졸 따라오다가 작게 고개를 까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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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려 대답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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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깜짝 놀라 아이리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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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 지금 대답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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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자 아이리스가 고개를 작게 갸웃거리고는 내 어깨에 이마를 툭 부딪쳤다.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전보다 더 여러 반응을 보이게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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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대당하고 끝내 버려졌던 강아지가 천천히 마음을 여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감격의 쓰나미가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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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구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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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단을 막 다 내려왔을 때 닫혀있던 커다란 문이 열렸다. 그 너머에서 들어온 건 오뚜기를 떠올리게 하는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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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흐흣…잘했다!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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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예를 가축보다 못한 것으로 취급하는 오뚜기가 최고의 찬사를 터뜨리며 손뼉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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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녀석들을 위층으로 보내!”
    “예,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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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뚜기의 뒤에 서 있던 쥐 수인이 비굴하게 고개를 푹 숙이며 파리처럼 두 손을 비비적거렸다. 오뚜기는 악당 같은 웃음을 토해내며 펄쩍펄쩍 뛰다가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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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아이리스는 쥐 수인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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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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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작 한 층 올라온 것뿐인데도 주변 풍경이 확 바뀌었다. 호화로운 것까지는 아니지만 밝은 톤의 바닥과 여기저기에 놓인 화분, 널찍한 창문과 소파가 놓인 휴식 공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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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은 귀족들의 저택에서 보던 시종들의 기숙사와 비슷해 보였다. 감옥에 비하면 천국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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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을 쭉 둘러본 쥐 수인은 여기가 아니라며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들을 위층으로 안내했다. 그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최상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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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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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생에 뮤튜브 영상에서 보았던 VVIP 스위트 룸이나 다를 바 없는 방이 떡하니 존재했다. 귀족 부럽지 않은 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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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음…여긴 아무래도 너희에겐 이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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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 수인은 그리 중얼거리곤 처음에 갔던 기숙사형 층 바로 위층에서 내렸다. 방마다 침대가 두 개씩 놓인 방은 깔끔했지만 조금 부족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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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전에 호화로운 최상층을 보고 온 탓에 자연스럽게 비교되어 그런 듯했다. 뒤이어 나는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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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일부러 보여준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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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족 못지않은 생활을 할 수 있는 최상층을 보여주고 그들이 가야 하는 층과 그보다 못한 층을 보여주면 당연히 비교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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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예는 자연스럽게 더 높은 층을 위한 갈망을 하게 되고 낮은 층으로 떨어지는 걸 두려워하게된다. 결국 ‘투기장의 권력’에 눈이 먼 이들은 스스로 족쇄를 찬 채 영원히 투기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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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너희 둘은 앞으로 여기서 지내면 된다. 따로 경기가 잡힐 때까지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투기장을 빠져나가지 않으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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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 수인은 비어있는 방 중 하나를 지정해준 후, 투기장에서 일정 이상 벗어나면 목줄이 터져버리니 주의하라고 말했다. 그가 돌아가고 나와 아이리스만 덩그러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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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슬금슬금 방에서 머리를 내미는 노예들과 우리가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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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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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방으로 들어가 있을까?’ 라고 생각하던 그때, 시비조가 섞인 목소리가 말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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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자 나보다 머리 두 개는 커 보이는 남자가 조소를 지으며 나와 아이리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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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노아쪽 시점은 한참 나중에 나올 것 같습니다.
아이리스 파트가 중요해서 :3

아이리스가 조금씩 마음을 열고 분리불안 생길 거 생각하니 기쁘네요.

월요일에 오전 8시, 저녁 10시 30분에 올려서 연참할 예정입니다.

선작과 추천은 사랑입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다음화 보기

아이리스의 세계는 무너져내렸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른다. 어느 순간부터 시야가 좁아지고 주변의 모든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온통 새하얀 공간 속에서 아이리스는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더 이상 괴롭지 않았다. 아프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따스한 온기가 느껴져 정신을 차렸다. 동굴에서 말을 하는 것처럼 웅웅 울리는 목소리가 아이리스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뺨을 후려치고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손이 아닌, 상냥하게 머리를 빗겨주는 손길에 아이리스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학습된 두려움으로 덜덜 떨리는 손이 따스한 온기의 끝자락을 붙잡은 순간, 온기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아주었다.

그 순간, 닫혀있던 그녀의 세계는 아주 조금이지만 확장되었다.

그녀의 세계에 남은 건 아무런 가치 없는 자신과 따스한 온기가 전부였기 때문에, 그녀는 따스한 온기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챙그랑!

차가운 금속 소리와 함께 그녀는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하아,하..”

하지만 아이리스를 껴안은 따스한 온기의 목소리는 너무나 선명하게 들렸다. 맞닿은 피부를 통해 느껴지는 빠른 맥박, 바짝 긴장한 탓에 힘이 들어간 손, 자신을 뒤로 숨기는 몸짓.

아이리스는 천천히 그 모든 것을 인지했다.

“크르릉..”

사냥을 나선 짐승의 서늘한 살기가 아이리스를 훑고 지나갔다. 아이리스는 그 순간 직감했다. 이대로 있다간 따스한 온기가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걸.

울지도 웃지도 못한 게 된 아이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온기를 잃고 싶지 않아 소원했다.

‘지키고 싶어.’

텅 비어있는 그녀의 눈동자에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 온기만큼은…’

아이리스는 본능적으로 날 선 검을 뺏어 들었다.

‘잃고 싶지 않아.’

세상이 하얗게 부서져 내라고 좁아져 있던 시야가 확장되었다. 그녀의 시선이 이를 드러내는 짐승을 향했다.

정신을 차린 순간, 그녀는 달리고 있었다.

“크허허허헝!”

마치 벼락이 떨어지는 것 같은 울음소리, 심약한 사람이라면 심장을 부여잡고 주저앉을 만큼 무시무시한 울음이었다. 하지만 아이리스는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짐승은 그녀에게 이를 드러내며 눈을 번뜩였다. 뒤로 크게 점프해 물러나 그녀를 경계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본능적으로 아이리스가 위험한 존재라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건 아이리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가볍게 땅을 박찬 그녀는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

촤아아악!

그녀와 짐승의 거리가 꽤 떨어져 있어 검이 허공을 베었다. 짐승이 비웃음을 흘리는 순간, 짐승의 몸통에 긴 줄이 그어지더니 쫙 하고 찢어졌다. 뒤이어 녹색 피가 콸콸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크르릉..!”

화들짝 놀란 짐승이 몇 번이고 뒤로 물러났지만, 아이리스가 더 빨랐다. 그녀는 도축을 하는 것처럼 짐승의 다리와 머리, 몸통을 난잡하게 베어냈다.

“크허허헝..! 케흑..커헉…!”

짐승은 몇번이나 아이리스에게 달려들었지만, 아이리스의 머리카락조차 스치지 못했다.

우드득!

두꺼운 목뼈가 부러지고 이를 드러내던 뱀이 10토막으로 잘리면서 아이리스는 승리하게 되었다.

“우오오오오오!! 상상도 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우와아아아아!”

“우오오오오!!”

대지가 떨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함성이 투기장을 가득 채웠다. 아이리스는 그런 주변 소리나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처럼 초록색 피가 묻은 검을 들고 리안에게 빠르게 달려갔다.

챙그랑.

그녀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검을 바닥에 버려버리고 다급히 리안의 손을 붙잡았다. 따스한 온기가 마주 잡아주자 그녀가 안도의 숨을 길게 내뱉었다.

동시에 시야가 다시 좁아지고, 그녀는 또다시 자신만의 세계에 몸을 웅크렸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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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대단하네.’

아이리스가 달려 나간 순간 나는 곧바로 주머니에서 3D 안경을 꺼내 썼다. 전투가 발생했을 때 3D 안경을 쓰고 관찰하면, 평범한 싸움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양한 효과가 생긴다.

그 증거로 아이리스의 검에서 무슨 검풍 같은 게 슝슝 뿜어져 나와 괴물을 공격하고 있었다.

‘원작에서도 저 정도 위력은 아니었는데.’

나랑 만나기 전에 아이리스가 각성을 한 건지 아니면 개그 필터의 능력이 뛰어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게 좋은 거였다.

우드득!

아이리스는 무시무시한 괴물의 목을 베어버리고는 나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빠르게 안경을 벗어 주머니에 넣었다.

챙그랑!

아이리스는 검까지 내팽개치고 달려와 조심스럽게 내 손을 잡았다. 역시 괴물과 싸운 게 두려웠던 건지 손이 떨리고 있었다. 깍지를 껴주자 떨림이 천천히 멎었다.

“휘이이익!”

“우아아아아아아!”

“오오오오!!!”

함성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수천 명이 넘는 사람과 마족 등의 시선을 받는 건 좋은 느낌이 아니었다. 나는 아이리스의 손을 꼭 잡은 채 내게 검을 던져줬던 남자가 서 있는 곳으로 향했다.

통로 안으로 들어가 있던 남자는 어느새 밖으로 나와 벽 쪽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크흐, 생각보다 쓸만하던데?”

남자가 음습한 시선으로 아이리스를 훑어보았다. 이에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저 미친 새끼가?’

아이리스가 예쁘긴 하지만 워낙 못 먹고 자란 탓에 몸도 깡마르고 키도 작았다. 못해도 40대는 되어 보이는 남자가 나보다 머리 하나 작은 여자애를 음흉하게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나는 다급하게 아이리스의 눈가를 가리며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리스 저런 거 보면 안 돼. 지지야. 지지. 알겠지?”

아이리스는 말없이 나를 졸졸 따라오다가 작게 고개를 까딱거렸다.

무려 대답을 한 것이다!

나는 깜짝 놀라 아이리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이리스 지금 대답한 거야?!”

그러자 아이리스가 고개를 작게 갸웃거리고는 내 어깨에 이마를 툭 부딪쳤다.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전보다 더 여러 반응을 보이게 된 것 같았다.

학대당하고 끝내 버려졌던 강아지가 천천히 마음을 여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감격의 쓰나미가 밀려왔다.

쿠구궁.

계단을 막 다 내려왔을 때 닫혀있던 커다란 문이 열렸다. 그 너머에서 들어온 건 오뚜기를 떠올리게 하는 남자였다.

“크흐흣…잘했다! 잘했어!”

노예를 가축보다 못한 것으로 취급하는 오뚜기가 최고의 찬사를 터뜨리며 손뼉을 쳤다.

“이 녀석들을 위층으로 보내!”

“예, 알겠습니다!”

오뚜기의 뒤에 서 있던 쥐 수인이 비굴하게 고개를 푹 숙이며 파리처럼 두 손을 비비적거렸다. 오뚜기는 악당 같은 웃음을 토해내며 펄쩍펄쩍 뛰다가 돌아갔다.

나와 아이리스는 쥐 수인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이동했다.

“와…”

고작 한 층 올라온 것뿐인데도 주변 풍경이 확 바뀌었다. 호화로운 것까지는 아니지만 밝은 톤의 바닥과 여기저기에 놓인 화분, 널찍한 창문과 소파가 놓인 휴식 공간도 있었다.

방은 귀족들의 저택에서 보던 시종들의 기숙사와 비슷해 보였다. 감옥에 비하면 천국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었다.

방을 쭉 둘러본 쥐 수인은 여기가 아니라며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들을 위층으로 안내했다. 그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최상층이었다.

“….!?”

전생에 뮤튜브 영상에서 보았던 VVIP 스위트 룸이나 다를 바 없는 방이 떡하니 존재했다. 귀족 부럽지 않은 방이었다.

“흐음…여긴 아무래도 너희에겐 이르겠지.”

쥐 수인은 그리 중얼거리곤 처음에 갔던 기숙사형 층 바로 위층에서 내렸다. 방마다 침대가 두 개씩 놓인 방은 깔끔했지만 조금 부족해 보였다.

조금 전에 호화로운 최상층을 보고 온 탓에 자연스럽게 비교되어 그런 듯했다. 뒤이어 나는 깨달았다.

‘아, 일부러 보여준 거구나.’

귀족 못지않은 생활을 할 수 있는 최상층을 보여주고 그들이 가야 하는 층과 그보다 못한 층을 보여주면 당연히 비교를 하게 된다.

노예는 자연스럽게 더 높은 층을 위한 갈망을 하게 되고 낮은 층으로 떨어지는 걸 두려워하게된다. 결국 ‘투기장의 권력’에 눈이 먼 이들은 스스로 족쇄를 찬 채 영원히 투기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자, 너희 둘은 앞으로 여기서 지내면 된다. 따로 경기가 잡힐 때까지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투기장을 빠져나가지 않으면 돼.”

쥐 수인은 비어있는 방 중 하나를 지정해준 후, 투기장에서 일정 이상 벗어나면 목줄이 터져버리니 주의하라고 말했다. 그가 돌아가고 나와 아이리스만 덩그러니 남았다.

아니,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슬금슬금 방에서 머리를 내미는 노예들과 우리가 남게 되었다.

“어이.”

‘우선 방으로 들어가 있을까?’ 라고 생각하던 그때, 시비조가 섞인 목소리가 말을 걸어왔다.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자 나보다 머리 두 개는 커 보이는 남자가 조소를 지으며 나와 아이리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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