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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

   

    왕 뭐시기가 있던 곳으로 돌아오니, 그가 모닥불 하나를 피워놓고 불멍을 때리고 있는 게 보였다.

   

    표정이 착잡해보인다.

   

    서준은 품에 안고 있는 아이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아빠한테 가봐.”

    “응…?”

   

    꾸벅꾸벅 졸다 퍼뜩 고개를 든 아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아, 아빠아…!!”

   

    넋이 나간 듯 멍하던 사내가 아이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에 생기를 되찾았다.

   

    “소, 소령아…!”

    “아쁘아…!!”

   

    품에서 내린 아이가 우다다 달려가 사내에게 안겼다. 사내는 아이를 끌어안은 채 체면 따위 생각도 않고 엉엉 울었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부녀 상봉을 지켜보던 서준이 흘끗 시선을 돌렸다.

   

    춘봉이가 복잡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도 안길래?”

   

    양팔을 슬쩍 벌리자 춘봉이가 코웃음을 쳤다.

   

    “…지랄 마.”

    “에구구 우리 춘봉이.”

    “…어차피 안을 거면서 왜 물어보는 거야?”

   

    툴툴대는 춘봉이를 번쩍 안아들었다. 묵직하다. 이제 품에 폭 안기기에는 사이즈가 조금 크다.

   

    하지만 나도 성장이 끝난 건 아니니까.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긴 하지.

   

    “…바보.”

   

    춘봉이가 품에 꼭 안겼다. 녀석의 등을 토닥이며 뒤편에서 따라오던 여인들을 살폈다.

   

    “조금 더 걸을 수 있겠어요?”

    “네, 네! 물론이죠!”

   

    해 떨어지기 전에 마을에 도착할 수 있으면 베스트고, 아니라면 산에서 야영을 해야 한다.

   

    대충 생각을 정리하고 부녀를 살피니 여전히 서로 끌어안고 펑펑 우는 중. 춘봉이도 가족들 생각에 울적해졌는지 조용하다.

   

    “음…. 어쩔 수 없지.”

   

    부녀 상봉은 부녀 상봉이고, 근처에 마을이 있나 물어봐야겠다.

   

   

    *

   

   

    “고맙소…! 정말 고맙소 소협…! 내 이 은혜는 죽더라도 잊지 않겠소! 언제든 이 왕대산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불러만 주시오! 이 한 목숨 바쳐 은인을 돕겠소!”

   

    왕대산이 바닥에 엎드려 몇 번이고 절을 해댄다. 개새끼긴 한데 자꾸 저렇게 나오니까 조금 부담스러웠다.

   

    “일단 일어나고. 근처에 혹시 마을 있어요?”

    “편히 말씀해주시오! 다짜고짜 칼부터 휘두르는 이 못난 놈에게 존대는 과분하오!”

    “아니, 이게 편하니까 그건 됐고…. 그래서 마을 있어요?”

    “아! 바로 안내하리다! 걸어서 반 시진 정도면 마을이 있소!”

   

    벌떡 일어난 왕대산이 여인들을 보더니 또 눈깔이 뒤집혔다.

   

    “오오오! 그 빌어먹을 산적놈들의 만행에 치가 떨리는구나! 허나 소협은 그놈들을 처단하고 무수한 이들을 구했구려! 존경하오 소협! 아니, 대협!”

   

    이 새끼 진짜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슬쩍 물러나 춘봉이의 귀에 속삭이니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주화입마 같은데. 심한 건 아니고, 딸이 납치당해서 심마가 생겼었나봐.”

    “그런 건가? 이야, 주화입마 이거 무섭네.”

    “그래서 묻는 건데. 넌 주화입마 아니지?”

    “…진심으로 묻는 거야?”

    “어.”

   

    서준이 슬쩍 왕대산을 곁눈질했다. 내가 저 지랄을 한다고? 아무리 그래도 저 정도는 아니지 않나?

   

    “금춘봉 너는 목마 하루 압수야.”

    “어? 뭐…, 그래라?”

    “아니 왜! 싫잖아! 빨리 말려줘!”

    “미친놈.”

   

    춘봉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

   

   

    왕대산의 말대로 한 시간 정도를 걸으니 마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 높은 곳에서 보면 마을의 경계가 대강 다 보일 정도로 자그마한 마을이다.

   

    서준은 어느새 꽤 불어난 일행과 함께 마을을 향해 움직였다.

   

    여인의 수가 다섯. 소령과 왕대산, 거기에 춘봉과 자신까지 더해 총 아홉 명.

   

    누가 봐도 특이한 조합의 사람들이 우르르 마을로 다가오니 청년 둘이 조잡한 창을 꼬나쥔 채 그들에게 다가왔다.

   

    “정지! 누구냐!”

   

    서준이 왕대산을 바라보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 그가 앞으로 나섰다.

   

    “이놈들! 감히 누구의 앞을 가로막느냐!”

   

    그냥 내가 할 걸 그랬나? 

   

    서준이 후회할 때 왕대산이 품에서 피로 적힌 편지를 꺼내들었다.

   

    “이 안에 내 딸아이의 호위가 있다. 이 여인들은 녹림도들에게 납치당했던 이들이요, 여기 두 분은 그들을 구해낸 영웅들이시니! 마을 안에서 소란을 피울 일은 없다.”

   

    뒤죽박죽인 말이었지만 경비 청년들은 대충 알아먹은 듯했다.

   

    “아, 춘 씨 할머니 댁에 머무는 사람이라면 본 적 있네요. 들어가세요.”

   

    이거 따뜻한 청년이었구만.

   

    청년이 창을 치우고 사람들을 들여보내려 할 때, 옆에 있던 또 한 명의 청년이 눈을 크게 뜨며 동료의 팔을 두드렸다.

   

    “이, 이봐! 저거 실종됐다던 성 씨네 딸 아니야?”

    “뭐라고!?”

   

    제자리에서 펄쩍 뛴 따뜻한 청년이 헐레벌떡 다가와 여인 중 하나의 얼굴을 확인했다.

   

    “맞구만! 성 씨네 딸 맞아!”

    “자네는 어서 가서 알리게! 나는 이분들을 안내하겠네!”

    “그, 그렇지! 알겠네!”

   

    따뜻한 청년이 마을 안으로 달려가고, 또 하나의 청년이 일행을 안내했다.

   

    “묵을 곳이 필요하시다면 촌장님 댁이나 저쪽 간판 달린 집으로 가시면 됩니다. 제가 말해둘 테니 돈은 안 내셔도 되고요.”

    “아이, 안 그래도 되는데.”

    “마을 사람을 구해주신 분께 어떻게 돈을 받겠습니까.”

    “아하. 감사합니다.”

   

    이거 아주 인심이 살아있는 마을이다. 전에 살던 뒷골목과는 아주 천지차이라 할 수 있겠다.

   

    작은 마을이라 그런가? 

   

    하지만 오히려 이럴 때 조심해야 한다. 시골 마을 인심은 따뜻할 때도 있지만 개지랄 염병맞을 때도 있으니까.

   

    “여기가 춘 씨 할머니 댁입니다. 이 마을의 유일한 의원이시죠.”

    “장 아저씨 여기 이써?”

   

    아빠 손을 붙잡고 걷던 소령이 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왕대산이 아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구나. 무사한지 보러 갈까?”

    “웅!”

   

    소령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왕대산의 표정에는 기쁨과 분노가 공존했다. 아무래도 딸을 지키지 못하고 혼자 도망친 호위를 곱게 볼 수는 없겠지.

   

    그게 맞는 선택이었다고는 해도 감정은 또 얘기가 다른 법이니까. 

   

    서준은 그들을 잠시 지켜보다 조용히 따라오던 여인들에게 말했다.

   

    “일단 잠깐 여기서 쉬고 있을까요? 아마 마을 사람들도 여기로 올 것 같은데.”

   

    그 말에 성 씨네 딸이라는 사람이 몸을 흠칫 떨었다.

   

    서준은 그녀를 유심히 관찰하다 몸을 돌렸다. 일단 호위라는 사람이 조금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

   

   

    안내해준 청년이 떠나고, 왕대산이 춘 씨 할머니 댁 대문을 두드렸다.

   

    “계시오?”

   

    문이 열리며 나이 지긋한 노파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일들이슈? 보아하니 외지인들 같은디.”

    “여기서 장유호라는 사내가 치료를 받고 있다 들었소만, 혹 들어가도 괜찮겠소?”

    “아. 아아. 그놈 일행인가 보구먼? 들어들 오슈.”

   

    머리가 하얗게 샌 노파는 지팡이를 짚으며 앞장섰다.

   

    “저, 할머니?”

    “잉?”

    “혹시 이 사람들 좀 쉴 만한 장소 있나요? 꽤 피곤할 텐데.”

   

    서준의 말에 여인들을 살핀 노파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잉 쯧쯧. 꼴들이 말이 아니구먼. 방 하나 내어줄 테니 거기서 쉬고들 있게.”

    “오, 감사합니다.”

    “향아響兒 너는 네 애비가 헛짓거리 하거든 나한테 찾아오고.”

    “…네.”

   

    아까 그 성 씨네 딸내미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다른 여인들을 방으로 안내했다. 아무래도 춘 노파와 아는 사이인 듯했다.

   

    고개를 갸웃거린 서준은 왕대산과 함께 춘 노파를 뒤따랐다.

   

    그렇게 들어간 방 안에서는 약재 냄새가 물씬 풍겼다. 딱 한의원 냄새가 이랬던 거 같은데.

   

    “이놈아! 손님 왔다!”

    “예? 손님 말입니까? 아! 혹시…?”

   

    방 안에는 한 사내가 바닥에 누워있었다. 그는 왕대산을 보고 눈을 크게 뜨더니, 옆에 있는 소령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아, 아가씨…! 무사하셨군요!”

    “장 아저씨이…!”

   

    소령이 우다다 달려 사내에게 뛰어들려 했지만 춘 노파가 막아섰다.

   

    “얘야. 아픈 사람에게 달려들면 안 되지.”

    “아, 으으…. 죄송합니다아….”

   

    소령이 꾸벅 허리를 숙인다. 예의 바른 아이구만.

   

    서준이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 사내에게 살금살금 다가간 소령이 그 손을 꼭 붙잡았다.

   

    “장 아저씨…. 미안해…. 내가 산으로 가자 해서….”

    “아뇨, 괜찮습니다. 아가씨를 지키지 못한 제 잘못인 걸요.”

    “뭐? 자, 잠시만! 장 호위, 이게 무슨 말인가? 소령이가 산으로 가자 했다는 말인가?”

   

    왕대산이 화들짝 놀라 묻자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쪽 산에는 마물도 별로 없고 산적들도 없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가주님.”

    “아이고! 소령아! 내 누누히 떼를 쓰면 안 된다 하지 않았느냐!”

    “우으…, 그치만….”

   

    순식간에 개판이 된 상황에 서준이 눈을 끔뻑였다.

   

    뭐? 아이의 미모를 본 산적이 마을까지 와서 납치를 해?

   

    생각해보니 어지간한 페도 새끼가 아니라면 저 아이를 보고 그럴 리가 없었다. 그냥 미친 딸바보 새끼라 시원하게 헛다리를 짚은 것이다.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싶더라.”

   

    대충 납득하고 있는데 문득 시선이 이쪽으로 쏠리는 게 느껴졌다.

   

    “아, 그럼 저분께서….”

    “응! 잘생긴 오빠가 구해줘써!”

   

    내가 누구? 잘생긴 오빠.

   

    히죽히죽 웃고 있자 춘봉이의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진다. 보란듯이 더 싱글벙글 웃었다.

   

    “억…!”

   

    옆구리가 꼬집혔다. 존나 아프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소협. 그러고 보니 제 소개도 하지 않았군요. 저는 장유호라 합니다. 소령 아가씨의 호위를 맡고 있습니다.”

    “소령 아가씨라…. 얘 혹시 있는 집 아가씨예요?”

   

    장유호가 왕대산을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자 왕대산이 대신 말했다.

   

    “그런 건 아니오. 변두리의 자그마한 가문이오만, 장 호위와는 우연히 연이 이어져 이렇게 됐을 뿐이외다.”

    “아하.”

   

    그렇다는 모양이다.

   

    자기 얘기가 나와서 그런지 소령이 조심스레 다가와 서준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안아달라는 건가?

   

    훌쩍 안아들어 등을 토닥여주자 아이가 금세 새근새근 잠들었다. 그러자 춘봉이의 노골적인 시선이 느껴졌다. 귀여운 자식.

   

    “우리 춘봉이 왜. 오빠가 재워줄까?”

    “…지랄.”

    “오구 삐졌어요?”

    “뭐라는 거야. 안 삐졌거든?”

    “이거 안 되겠구만. 오늘밤은 오빠가 자장가라도 불….”

   

    쿵쿵쿵쿵-!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다. 건물 밖으로 슬쩍 고개를 내미니 누군지 모를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딸! 이향이가 여기 있다고!?”

    “자네, 마음은 알겠네만….”

    “닥쳐! 향아! 당장 나와라! 지금까지 어디 있었던 거냐!”

   

    사내의 목소리에 춘 노파가 혀를 차며 몸을 일으켰다.

   

    “저놈은 또 지랄이구먼. 앉아들 계쇼. 금방 쫓아내고 올 테니.”

   

    그녀가 지팡이를 짚은 채 나가 대문을 열었다.

   

    대문 너머에는 두 사내가 서있었다. 얼굴이 시뻘겋게 물든 사내 하나와 그를 말리는 사내 하나였다.

   

    “여기가 어디라고 이 난리냐 이놈아! 썩 꺼지지 못해!”

    “내 딸이 여기 있다는데 그게 무슨 소리요!”

    “애비 노릇은 하고 딸을 찾아야지! 헛짓거리 하지 말고 꺼져라!”

    “이게 노망이 났나…!”

   

    손을 치켜들려던 사내가 멈칫했다. 그는 춘 노파의 뒤로 시선을 향하더니, 이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성이향!”

    “…아버지.”

   

    사내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성 씨네 딸이라 불리던 그 여인이 서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춘 노파에게 다가가 그녀를 부드럽게 만류했다.

   

    “고마웠어요 할머니.”

    “…향아.”

    “너는 이년아! 뭘 하고 다니길래 이제야 기어들어와! 왔으면 집에 퍼뜩 들어오기나 할 것이지 이런 데 틀어박혀 있기나 하고! 네 애미를 닮아서 너까지 나를 무시해!?”

    “아버지…. 그런 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사내의 윽박에 이향이 몸을 움츠렸다.

   

    “사실…, 산적들에게….”

    “산적!? 허…! 그럼 정조까지 잃었겠구나! 그럴 거면 뭣하러 돌아왔어! 마을 사람들한테 손가락질 받을 걸 생각하면 그 자리에서 죽었어야지!”

    “이…! 이놈이 지금 무슨 개잡소릴 하고 있는 게야! 그게 네 딸에게 할 소리냐!”

    “아까부터 자꾸 이 노인네가…!”

   

    또 손을 치켜드는 사내를 같이 온 사내 하나가 만류했다.

   

    “자네! 정말 왜 이러나!”

    “이거 못 놔!? 됐고! 너 같은 년은 그냥 여기서 죽는 게 낫겠다! 나는 너 같은 딸년 둔 적 없…! 아아악…!”

   

    난리를 피우던 사내가 손을 붙잡고 비명을 질렀다. 그 손이 얼어붙은 까닭이다.

   

    “아프진 않을 텐데 지랄은.”

   

    서준이 한숨을 내쉬며 품 안의 소령을 왕대산에게 넘겼다. 다행히 제때 기막으로 소리를 차단해 아이가 깨진 않았다.

   

    “참 뭣 같단 말이지.”

   

    서준이 혀를 차며 사내를 향해 걸어갔다. 사내가 얼어붙은 제 손을 흘끗거리며 몸을 움츠린다.

   

    그 모습에 서준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남의 집 일이라 안 끼어들려 했더니만. 그쪽 때문에 우리 춘봉이 표정이 씹창이 났잖아.”

   

    내가 또 헬리콥터 맘이라 이런 건 못 참는다. 그쪽 때문에 우리 애가 울잖아욧! 

   

    진짜 뒤질라고 새끼가. 

   

    “딱 정해봐. 몇 대 쳐맞을래?”

   

    일단 손에 권기拳氣부터 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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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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