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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

       마검 수르트.

       필사의 위력을 가진 위험한 무기.

         

       하지만 애용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이것에 있다.

         

       "미친…!"

         

       성력이 대량으로 빠져나갔다. 몸에는 깊은 상처가 남았다.

         

       [경고.]

       [경고.]

       [그릇의 일부가 깨졌습니다.]

       [한계에 달한 신체를 과도하게 움직이지 않게 주의하십시오.]

         

       쓰고 나면 불량품이 되어버린다. 동격의 육체를 가지기 전까지는 항상 이렇다. 며칠 동안은 골골 거리는 것은 당연.

         

       거기다가 전투 경험치를 죄다 수르트에게 쪽 빨아 먹힌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스호퍼를 잡은 대가로 레벨업을 몇 번이나 해야 하는데, 그 경쾌한 소리는 하나도 귓가에 들리지 않았다.

         

       들리는 건 비참한 수르트의 낮은 비명뿐.

         

       【하으읏…더, 더럽혀졌어어어어…】

         

       순진한 목소리로 울부짖는 수르트를 곧바로 포켓에 집어넣었다. 나는 바닥에 엎어진 채 그래스호퍼를 올려다보았다.

         

       머리부터 몸통까지 죄다 없어져 버린 괴물. 애초에 인간이 낼 수 있는 스킬 출력의 한계는 보통 S랭크다. 그 이상은 애초에 인간의 위력에서 벗어난 것들뿐이다.

         

       출력을 다 끌어냈으면 거의 핵폭탄급 위력이었겠지. 지금 날린 건 그 발톱 때도 안 되겠지만 작은 마을 하나 정도는 몰살시킬 수 있었다.

         

       [그래스호퍼를 쓰러트렸습니다.]

       [베이그니스의 심장이 서서히 멈춥니다.]

       [수호자를 잃은 기생충들의 능력이 대폭 떨어집니다.]

         

       지나치게 긴 다리가 뒤늦게 툭 떨어졌다. 휩쓸려 나간 기생충들이 끈적끈적하게 바닥에 달라붙어 있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남아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이 인원을 데려온 것이다.

         

       내가 그래스호퍼를 쓰러트려도, 남은 잔당들을 처리할 수 있게끔.

         

       "누나아아아아아아!"

       "어, 어?"

         

       얼이 빠진 대답이 들여왔다. 돌아볼 기억도 없어서 그냥 드러누운 채 외쳤다.

         

       "저 몸에 힘이 없어요! 죽을 거 같아요!"

       "뭐?! 아, 안 돼?!"

         

       남아 있는 기생충들이 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빠른 발소리가 내 앞에 멈춰 섰다.

         

       "괘, 괜찮아?!"

         

       이자벨라의 얼굴이 다가왔다. 나는 손을 뻗었다. 이 지긋지긋하고 냄새나는 곳을 드디어 빠져나가는 데에 속이 시원했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웃음. 나는 이자벨라에게 몸을 기댔다.

         

       "저 죽으면 양지바른 곳에 묻어줘요."

       "…너 정말."

         

       이자벨라가 나를 부축했다. 뽑은 검으로 다가오는 기생충들을 노려보았다.

         

       "사람 그만 걱정시켜."

       "노력해볼게요."

       "…말은 잘해."

         

         

         

       . . .

         

         

         

         

       라다토크는 빠르게 전황을 정리했다. 남은 일은 비교적 쉬웠다. 올려다보기도 힘들 정도의 괴물이 사라지니, 남은 악마들은 버벅거리며 바닥을 기어가는 수준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껍질 또한 약해졌으며 빛을 잃었다. 아까는 잘 들어가지 않던 검이 이제는 잘 들어갈 정도다.

         

       라다토크는 피를 잔뜩 뒤집어썼다. 살 벽의 꿈틀거림이 사라지고, 모든 게 조용해졌다.

       그는 끝이 찾아왔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 끝의 중심에는 그가 있었다.

         

       견습 사제 자하드.

         

       …신의 인도를 받은 자.

         

       몰려드는 악마의 군대 속에서 보았다. 거대한 불의 검과 작지만, 누구보다 컸던 등을.

       하지만 그건 라의 불꽃이 아니었다. 소유자에게마저 파멸을 선사하는 악마의 불꽃.

         

       그건 한 인간이 낼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도 불가능한 힘이었다.

         

       대체 무엇을. 대체 어떻게.

         

       신이시여.

         

       이것 또한 당신의 뜻입니까.

         

       라다토크는 이단심문관에게 나머지 기생충을 맡긴 뒤 소년의 앞에 섰다. 어린 견습 사제를 내려다보며 짧게 물었다.

         

       "형제님. 아까 그 불꽃은 무엇입니까?"

       "파멸의 불꽃이죠. 라가 저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게 무슨…"

       "교단 지부에서 발견한 악의 존재에요. 그리고 그걸 봉인하고 있던 성위를 제가 이어받았어요."

         

       라다토크가 눈을 크게 떴다. 그 말이라면 지금 저 몸 안에는 고대의 악이 잠들어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그때 라와 접선하신 겁니까?"

       "맞아요. 그분이 저를 선택하셨고, 저 또한 사명을 이어받기로 했어요. 고대의 악으로부터 여러분들을 지키는 게 제 역할이에요."

       "신이시여…이 어린 몸에게 어찌나 무거운 것을…"

       "제가 선택한 길이에요."

         

       자하드가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 씨익 웃었다.

         

       "라다토크님이라 할지라도, 저와 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그 신실한 웃음에 라다토크는 무너졌다. 잠시나마 그를 의심했던 자신을 저주했다.

       나는 대체 무엇을…이 어리고 강한 사제를 깎아내리려 했단 말인가.

         

       "…하지만 형제님."

         

       라다토크는 무릎을 꿇었다. 그와 시선을 맞췄다.

         

       시기가 좋지 않다. 무척이나 좋지 않다. 그가 10년만 일찍 태어났더라면, 교단의 상황이 지금처럼 악화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지금 교단은 어지럽습니다. 모든 걸 바로잡기에는, 잔존한 세력이 너무나 큽니다. 태양신교에 사도가 등장했던 건 이례적인 일이 아닙니다. 몇 번이나 존재했습니다. 지금도 세 명의 사도가 살아있습니다."

       "그런데요?"

       "원래는 넷이었던 것이 셋으로 준 것입니다. 저희는 현재 사도 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를 추기경 후보인 드웨인 대주교로 보고 있습니다."

       "사도를 그렇게 마음대로 죽여도 돼요?"

       "성흔은 같은 신도를 죽이는 즉시 그 빛이 꺼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통하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유능하고 어린 인재다. 하지만 이미 내부고발을 해버렸고, 교단 내부에 적을 사버렸다.

       드웨인 대주교.

         

       현 추기경 후보 중 하나인 그가 결코 눈앞의 소년을 좋게 볼 리가 없다.

         

       "형제님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라의 가르침을 널리 퍼트리는 것이죠."

       "그것이 전부입니까?"

       "아니요?"

         

       그가 언제나처럼 자신 있게 말했다.

         

       "썩어빠진 내부를 싹 정리하고, 그 위에 서려고요."

         

       선다.

       선다라.

         

       언뜻 보면 야욕이 넘치고, 권력을 넘보는 발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라다토크는 그렇기에 오히려 편했다.

         

       그의 진실한 속마음을 엿본 거 같았다. 그리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동안 스스로 확인해왔다.

         

       타 교단에게도 자비의 손길을 베푸는 존재.

       굶주린 자들을 위해서 손수 요리를 해주었던 존재.

       죽을 것만 같았던 지옥에서 스스로를 희생하며 활로를 틀어주었던 존재.

         

       자기희생으로 점철된 자다. 이런 자가 위에 선다면, 그 어떤 교단이라도 바뀌지 않을까.

         

       "…이단심문관 라다토크가 당신에게 맹세하겠습니다."

         

       자신의 위에는 디모나가 있다. 그는 그녀를 아낀다. 자식처럼 생각하며, 항상 그녀의 곁을 지켜주고 싶다.

         

       하지만 눈앞의 소년은 다르다. 지킬 자가 아니다.

         

       따라야만 하는 자.

         

       "오늘의 일을 함구하겠습니다. 어떤 고난에도 등을 보이지 않겠습니다. 당신을 오롯이 따를 것을 맹세합니다."

       "이단심판관님은요?"

       "그것과 이건 다른 이야기입니다."

       "…아하하."

         

       자하드가 웃었다.

         

       "부하랑 보디가드의 차이죠?"

       "…굳이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좋네요. 라의 교단의 철혈곰이라니."

       "그 호칭은 좀."

       "뭐 어때요."

         

       자하드가 주먹을 툭 내밀었다. 라다토크는 그걸 멍하니 쳐다보았다.

         

       "멋있잖아요. 철혈곰."

         

       라다토크는 그 이명을 싫어했다. 죄 없는 피가 잔뜩 묻어있는 거 같아 불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의 입에서 나왔기에, 전에 없던 애정이 생기는 건.

         

       "…그렇습니까."

         

       라다토크는 망설였다. 끝내 주먹을 천천히 맞댔다.

         

       "고맙습니다. 사제님."

       "형제님은 끝난 건가요?"

       "존경을 담아 불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다토크가 그를 따라 마주 웃었다.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사제님."

         

         

         

       . . .

         

         

         

       포탈이 열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심장의 떨림이 멎음과 함께 공간 자체가 찢겨나갔다.

       틈새 너머에는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라다토크가 중얼거렸다.

         

       "…아마 밖에는 태양신교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와 이자벨라가 시선을 교환했다. 이자벨라가 혀를 찼다.

         

       "나가면 적이겠군."

       "…둘 다 나가는 순간 적이 되겠지."

         

       라다토크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가라. 이단. 이번만은 널 보내주겠다."

       "뭐?"

       "마음이 변하기 전에 사라지는 게 좋을 거다."

         

       라다토크가 내게 눈짓했다. 나는 웃었다.

       아주 좋은 자세다. 라다토크. 으흐흐. 부하가 됐는데 눈치까지 볼 줄 알다니!

         

       그 헥토르 녀석들이랑 차원이 다르군!

         

       "가요. 누나. 그동안 즐거웠어요."

       "……"

         

       살아남은 뱀 신도와 성기사들이 우리를 보았다. 이자벨라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시선을 맞췄다.

         

       "몸은 괜찮아?"

       "아파요. 하지만 가는 동안 낫겠죠. 뭐."

       "…또 위험한 일 할 거야?"

       "그것이 라의 뜻이라면."

         

       그녀가 내 성흔을 쓰다듬었다.

         

       "네게 다른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걸 잊지 마. 헷갈리면 언제든지 찾아와. 뱀의 교단은 네게 열려 있어."

       "거! 그냥 보내줄 때 가라!"

       "어디서 우리 사제님에게 사이한 말을!"

       "아 좀! 우리 단장님이 그럴 수도 있지!"

       "쫌생이처럼 왜 그래?!"

       "뭐?! 쫌생이?!"

         

       성기사들과 이단심문관들이 얼굴을 맞대고 이를 갈았다. 그러다가 누가 먼저라고 할 거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가라. 이단들아."

       "잘 먹고 잘살아라."

       "또 마주치면 죽는다."

       "너야말로 죽는다."

       "너 포커 좀 치더라."

       "다음에 판돈 걸고 할 줄 알아."

       "응. 좆밥들. 꺼져."

       "뒤질래?! 나가기 전에 한 판 더 뜨고 가!"

         

       이자벨라가 웃고 떠드는 두 교단을 바라보았다. 함께 싸워온 시간 속에 친구가 되어버린 두 교단의 모습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 듯, 섣불리 발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이별의 순간은 다가왔다. 그녀가 내게 이마를 갖다 댔다.

         

       "…만약. 정말로 만약에, 이 두 교단이 하나가 되는 날이 온다면…널 따를게. 나의 작은 친구."

       "보고 싶을 거예요. 누나."

         

       마지막까지 플래그를 세웠다. 어딜 감히. 다시는 못 마주칠 것처럼 밑밥 깔고 있어.

       은혜를 다 갚기 전까지 넌 내 것이다! 내가 뱀 교단에 심어놓은 스파이나 마찬가지야!

         

       "그,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하지 마…부끄럽잖아…"

       "절 잊으실 건 아니죠?"

       "그럴 리 있겠어?"

         

       그녀가 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다 낡고 으스러진 브로치.

         

       "내게 있어 정말 중요한 거야. 언젠간 돌려줘."

       "안 돌려줄 건데요."

       "뭐?"

         

       그야 두고두고 그래야 널 뜯어 먹지!

       하지만 그 말은 할 수 없으니 나는 대신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가지고 있어야 계속 볼 수 있잖아요. 그렇죠?"

         

       이자벨라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나를 쓱 째려보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너…어이없어."

         

       쪽.

         

       이마에 짧게 입술이 스쳐 지나갔다. 주변 성기사들이 휘파람을 불었다. 이자벨라가 얼굴을 붉히며 으르렁거렸다.

         

       "다 닥치고 나가! 즉시 도주 준비하고! 나가자마자 바로 튄다! 전투는 무조건 피하는 걸로!"

         

       이자벨라의 피로 더럽혀진 케이프가 흩날렸다. 공간의 틈새로 발을 내딛기 전, 나를 마지막으로 돌아보았다.

         

       "…또 봐."

       "잘 가요. 누나."

         

       그녀가 공간의 틈새로 모습을 감췄다. 뱀 교단들이 우르르 그녀를 따라 공간의 틈새로 뛰어들었다.

         

       "잘 가라! 멍청이들아!"

       "다신 보지 말자!"

       "꺼져!"

         

       휘파람을 불어대던 이단심문관들의 환호 사이로 마지막 성기사마저 모습을 감췄다. 태양신교만이 남은 베이그니스의 내부는 무척이나 조용했다.

         

       물량전이 대부분인 이벤트 보스라서 클리어가 가능했던 부분. 나는 기지개를 쭉 켰다. 골절 마디마디가 시렸다. 마치 다 노인이라도 된 거 같군.

         

       쉬고 싶다. 성력도 제대로 안 돌아오니, 상처가 제대로 회복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할 일이 남아있다. 그것도 제일 중요한 할 일이!

         

       "사제님. 몸이 편찮으시면 조금 쉬었다 가시는 게…"

       "그냥 형제님이라고 불러주세요. 남들 눈에 오해 살까 봐 두렵네요."

       "알겠습니다."

       "나머지 이단심문관님들도 동의하시죠? 제가 마지막에 쓴 거, 비밀에 부쳐주겠다는 것."

         

       이단심문관들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러다 일제히 외쳤다.

         

       "물론입니다! 형제님!"

       "에이. 걱정 마시죠!"

       "저희 입 무겁습니다!"

       "이참에 사제님 라인으로 갈아타려고요!"

       "방금 누가 말했냐?"

       "난데?"

       "아주 잘 말했어! 새끼야!"

         

       인기스타가 된 기분이군. 교단 본부에 수족이 생긴 느낌이다.

       그렇다면 어디 한 번 털어볼까. 베이그니스를 토벌하려고 했던 이유.

         

       "어차피 조금 넉넉하게 나가도 될 텐데, 눈의 악마 내부나 한번 뒤져볼까요?"

         

       보상 타임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안녕하세요

    작품 내 비중 있는 여캐들은 모두 ‘처녀’이며 동시에 ‘히로인’입니다.

    저는 크라켄을 좋아합니다.

    다리가 여러 개기 때문이죠.

    고로 주인공도 문어발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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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성기사가 성물을 독차지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 world where magic reigns supreme and the influence of gods wanes, a young boy finds himself unexpectedly thrust into the role of an acolyte in the declining Sun God’s Temple. Blessed with the divine stigma of the Sun God, he must navigate the temple’s internal politics, the hostility of his fellow acolytes, and the challenges that come with his newfound powers.

As he delves deeper into the mysteries of the temple, he discovers hidden secrets and powerful artifacts that could change the course of his destiny. With the guidance of an enigmatic senior acolyte and the unwavering faith in his own abilities, he sets out to prove his worth and carve his own path in a world that has all but forgotten the true power of the div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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