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2

       

       32.

       

       돌아오는 길의 풍경은, 가는 길과의 풍경과 거의 비슷했다. 여전히 사람들은 거구의 호위기사를 향해 눈길을 던지다가 물러났다. ‘거의’ 라고 한 이유는 사람들이 살짝 길을 비켜 물러났을 뿐, 그때와 같이 슬금슬금 몸을 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달라진 점은 더 이상 젊은 여성들이 얼굴을 붉히며 그에게 시선을 던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성녀 에실리아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거리를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있는 것이 비단 그런 이유 뿐만은 아니겠지만, 그녀의 기분을 고무적이게 만든 이유에 그런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때문에, 에실리아는 다른 것에 신경 쓸 필요없이 보다 여유롭게,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만끽할 수 있었다. 성녀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제르피에드에게 말했다.

        

       “기사님! 우리 한번 저거 먹어봐요! 처음 보는 건데 뭔가 맛있을 것 같지 않아요?”

        

       성녀가 가리킨 것은 이질적인 형태의 과일이었다. 이질적이라는 것은, 순전히 성녀만의 기준이었다. 이미 제르피에드는 저 과일의 이름을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성녀가 과일 가게로 뛰어 들어가 구입하고 있었기에, 제르피에드는 그 과일에 대해서 뭐라 말할 새도 없었다.

        

       “이거, 먹어 볼 수 있을까요?”

        

       가게 안에 기대어 날카로운 오후의 햇살을 피하고 있던 중년의 인간 남성은 과일을 사겠다는 사람이 오자 매우 반색했다. 그는 서글서글한 웃음을 내보이며 칼을 꺼내 성녀가 말한 과일을 잘라 접시에 담아주었다. 성녀는 입꼬리를 위로 주욱 당겼다. 비록 처음 보는 과일이었지만, 자신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뾰족뾰족한 껍질에 둘러 쌓여 있는 그 과일은, 껍질을 자르자 한 눈에 보기에도 부드러운 형태의 과육을 드러냈다. 껍질의 외형은 흉흉했지만, 알록달록한 빛깔 때문에 맛이 있을 거란 자신의 추측이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그 부드러운 과육을 보자 마자 에실리아는 접시와 같이 주어진 얇은 나무 꼬치에 과육을 꽂아, 작은 입술 너머로 한 입에 넣어버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성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과육을 삼키고 엉엉 우는 에실리아를 본 제르피에드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가명을 불렀다.

        

       “…제미니, 내가 그래서 말리려고 했건만…두리안을 함부로 그렇게 먹어버리면….”

        

       과일 가게의 주인이 반색을 한 이유는 단순히 손님이 왔다는 것에 있지 않았다. 그가 취급하는 과일의 종류는 남부 대륙에서 들여오는 열대 과일이었고, 성녀가 먹어보고 싶다고 한 과일의 이름은 ‘두리안’이었다.

        

       가게 주인의 입장에서 두리안이라는 과일은 마치 계륵(鷄肋) 같은 것이었다. 과일의 맛이 좋아, 그 값이 비싸서 그것을 들여오는 데도 마찬가지로 상당한 값을 요하는데, 정작 맛에 비해 찾는 사람들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왜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은지는 성녀가 온 몸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냄새애…이상해요오오…!!”

        

       취급이 곤란한 물건을 사겠다고 한 사람이 왔으니, 가게 주인이 반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성녀가 그 과일에 대해 잘 모르고 한 일이었으며 사십 평생을 데일스에서 태어나 데일스에서 보낸 그가 그것을 못 알아볼 리가 없었지만, 그것까진 자신과 무관한 일 아닌가? 제르피에드는 다시 한숨을 쉬며 가게 주인을 살짝 노려보듯이 쳐다보았다.

        

       모자 너머로도 느껴지는 날카로운 시선에, 가게 주인은 짐짓 모르는 채 하며 눈을 전혀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는 헛기침을 섞으며 말했다.

        

       “…이미 껍질을 따버린 데다가 드시기 까지 했으니 구매를 하셔야 합니다.”

        

       제르피에드는 세 번째로 한숨을 쉬었다. 가게 내부를 둘러본 그는 가게 주인에게 값을 치를 테니 자신이 말한 과일들을 가져다 달라고 말했다. 그때, 엉엉 울던 에실리아는 울음을 훌쩍이며 제르피에드에게 말했다.

        

       “흐흡…흑…저거도오 더 살래요오….”

       “…두리안 말이오? 이미 드셔 보시지 않았소? 드시기가 꽤 힘들 터인데?”

       “그래도오…! 엄청 맛있단 말이에요오…!”

        

       제르피에드는 실소가 비어져 나올 것 같은 기분을 억누르며, 가게 주인에게 두리안 두어 개를 더 달라고 이야기했다. 가게 주인은 제르피에드가 말한 과일들과 두리안 네 개를 바구니에 담아 주었다. 맞지 않은 수량에 그것을 잠깐 보고 있으니 주인이 그에게 말했다.

        

       “많이 구매 하시기도 해서 덧거리로 몇 개 좀 더 넣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제대로 된 설명 없이 구매를 강요한 것에 대한 사과의 일종임은 확실했다. 제르피에드는 다른 과일도 아닌 두리안을 덧거리로 받는다는 것이 좋은 일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

        

       에실리아의 눈가에는 여전히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옅은 눈물 방울이 촉촉하게 매달려 있었다. 그에 비해 그녀의 입가는 함박웃음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성녀의 함박웃음은 조금씩 위 아래로 움직였다. 과일을 오물거리던 에실리아는 과육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그 달콤함을 만끽했다. 과일을 다 먹자, 어느새 매달려 있던 눈물은 사라져 있었다.

        

       “음! 음! 맛있어요! 엄청 달콤해요!”

       “입맛에 맞다니 다행이군.”

       “이거 이름이 뭐라고 했죠?”

       “망고라고 하오.”

        

       에실리아가 가게에서 잘라온 망고를 다 먹자, 제르피에드는 잘라온 다른 과일을 그녀에게 건네 주었다.

        

       “이것도 드셔 보시오.”

       “이건 방금 거하고 다르게 과육이 하얗네요? 이건 이름이 뭐에요?”

       “망고스틴.”

        

       망고스틴을 하얀 치아로 깨물자, 망고와는 다른 새콤달콤한 맛이 그녀의 입 안을 가득 침범했다. 비슷한 이름이기에 망고와 유사한 맛을 생각했던 그녀는 색다른 맛에 또 다른 황홀감을 느껴야 했다. 이미 그녀의 머릿속에서 두리안의 고약한 냄새에 대한 악몽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대신 선입견 하나가 악몽을 밀어내고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망고’라는 이름이 붙는 과일들은 하나같이 환상적인 맛을 자랑한다는 선입견이 말이다.

        

       현재 그녀에게 망고와 망고스틴이 생물의 분류 단계 중 목(目) 에서부터 달라진다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호위기사는 데일스에 들어온 후, 가장 기쁜 웃음을 짓고 있는 레이디를 보고 그 사실을 지적할 마음가짐은 곧바로 접어버렸다.

        

       여관으로 돌아온 성녀의 웃음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여관의 창문 밖으로 오후 네 시경의 햇살을 담뿍 머금은 모래사장이 그녀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진실로 행복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 수 있는지 온 몸으로 증명해 보이며, 그녀는 입안에 들어있던 망고스틴을 삼키고 호위기사에게 외쳤다.

        

       “기사님! 기사님! 기사님!”

       “듣고 있소, 에실리아.”

        

       레이디가 다음으로 하는 말에 제르피에드는 약간의 당혹을 느꼈다.

        

       “저희 수영해요!”

        

        

       –

        

        

       여관에 들어온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밖으로 나서며 제르피에드는 당혹을 감추기 힘들었다. 그가 당혹하고 있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우선 수영이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것이었다. 그가 수영을 언제 했던가에 대한 기억은 오래되어 흐릿한 것이었다. 아마, 데스나이트가 되기 이전에 했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데스나이트가 된 이후로는 수영을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대륙을 건널 때는 전 계약자들의 도움을 받으면 그만이었고, 계약자들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을 때는 그냥 바다 속으로 들어가 해저를 걸어서 건너면 그만이었다. 딱히 숨을 쉴 필요가 없었으므로.

        

       하지만 그를 가장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다른 것이었다.

        

       살아 있는 자들에게 수영이라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물에 들어가서, 물 속에서 나아가기 위해 손 발을 움직이는 것을 일컫는다. 물 속에 들어가기 때문에 옷이 젖을 수 밖에 없고, 그런 불편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영을 할 때는 살갗에 닿는 면적을 최소화 시켜야 한다. 지금 상황에서 그것은 레이디의 맨살을 보는 것과 같다…….

        

       제르피에드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기사도에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 불순한 생각을 머리속에서 황급히 지우고, 에실리아에게 그 사실을 어떻게 전할지 고민하고 있던 그는, 애석하게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가 한참을 고민하던 도중 그의 레이디는 이미 옷 가게 안으로 들어가버렸기 때문이다.

        

       옷 가게의 주인은 삼십 대 초반의 엘프 여성이었다. 에실리아는 발랄하게 웃으며 가게 주인에게 소리쳤다.

        

       “안녕하세요! 수영하기 적합한 옷을 사려고 왔는데요!”

        

       모든 가게의 주인들이 그렇듯이 옷 가게 주인도 반색을 하며 에실리아에게 수영복을 소개하기 위해 나섰다. 이미 어떤 옷이 나올지 차마 말하기 힘든 불순한 상상을 통해 짐작하고 있던 제르피에드는 가게에 들어서자 마자 얼어붙은 듯이 서 있었다. 그런 그에게 주인이 웃으면서 물었다.

        

       “손님은요? 손님도 수영복 구매하러 오신 거 아닌가요?”

        

       제르피에드는 자신은 괜찮다고 말하려고 했으나, 에실리아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바람에 대강 둘러댈 수 밖에 없었다.

        

       “그냥…알아서 적당한 걸로 골라주시오.”

        

       불쌍한 제르피에드는 주인이 그녀를 수영복을 진열해 놓은 안쪽으로 데려가는 걸 보면서 망연자실하게 있어야 했다.

        

       에실리아는 자신의 계약자와 완전히 동일한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뭐라고 형용하기 힘든 -과연 이것이 옷이 맞는가 싶은- 그냥 천쪼가리가 아닌가 싶은 조각물을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분명히 그녀가 어렸을 때, 수도 외곽 하천에서 수영할 때 입은 옷은 평범한 펑퍼짐하고 얇은 드레스였다. 당연히 그런 것을 예상했던 그녀는 멍하니 얼굴을 붉히고 가만히 있었다.

        

       “어…음…이게…수영복인가요…?”

       “네, 그런데요?”

       “수영복은…원래 다 이런가요…?”

       “…그렇죠?”  

        

       하필이면 자신이 들어와 당당하게 수영복을 산다고 말했기에, 여기서 다시 돌아가기도 난감했다. 그녀는 눈물을 찔끔거리고 싶은 기분을 느끼며, 수영복을 보여 달라고 더듬거리며 말해야 했다.

        

       주인이 각각의 수영복을 보여주면서 무어라 설명하기는 했지만, 성녀의 잔뜩 붉어진 귀에는 부끄러움만 가득 찰 뿐, 제대로 설명이 들어오지 않았다. 하나같이 천쪼가리에 불과한 이 옷들은 지금껏 성녀가 배운 예법에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그…아, 알아서 추천 좀 해주시겠…어…요?”

        

       친절한 가게 주인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에실리아는 그런 가게 주인의 친절함에도 더욱 더 깊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물론 그것은 전적으로 가게 주인의 책임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문제였다.

        

       “저…이거…상의는 맞는데 하의는 너무 꽉 끼는데요…?”

       “어? 아, 죄송해요. 그, 손님 골반이 너무 커서…다른 걸 가져다 드릴게요.”

       “저…이것도 좀….”

       “어…이것도 꽉 끼네요? 잠시만요….”

       “이, 이것도…!”

       “자, 잠시만요…!”

        

       성녀는 정말 울고 싶어졌다.

        

       

       가게 주인이 네 번째 수영복 하의를 가져오고 나서야 성녀는 자신의 골반에 맞는 옷을 찾을 수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실제로 1900년대 산업 혁명이 발달해 본격적으로 수영복이 나오기 이전, 지금과 같은 수영복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예전에는 아예 다 벗거나 속옷만 입고 수영을 했다고 합니다.
    제 소설 세계관도 나름 중세의 형태가 기본적이니, 저런 모습의 수영복을 성녀님이 입는 것도 당연할지도…?
    비키니 수영복이나 속옷이나 형태적으로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지 않? 나요?

    오늘 수능 본 수험생 여러분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내일은 고생하신 수험생 분들을 위한 비키니 입은 성녀님을 준비해오겠습니다.
    부디 좋은 결과 나오셨길 빌며, 꼭 원하는 대학 가기를 간절히 기원하겠습니다.

    재수는 하지 마세요. 제가 재수 해서 대학 갔는데 너무 힘듭니다…
    우선 부모님한테 너무 죄송하고…한 번에 갈껄 돈 낭비, 시간 낭비라는 생각도 진짜 많이 듭니다…
    한 번에 원하는 대학 가셔서 실컷 웹소설 보고 술도 마시고 그러십시오.

    다음화 보기


           


The Death Knight Became The Saint’s Bodyguard

The Death Knight Became The Saint’s Bodyguard

데스나이트는 성녀의 호위기사가 되었다
Score 3.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trayed by her own Order*, the Saint begged the death knight to become her guard—the death knight who could destroy the world. *tl note: she was betrayed by the church, not her own doing. Author Notes: Contains Authentic fantasy, and wholesome love. I hope this brings you the reader a little bit of joy.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