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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

       *

        

        

        하늘치는 환상계단이라도 있었지 공중전함엔 그런 것이 없다. 그리고 인간에겐 날개가 없다.

        

        따라서 하늘 위에 둥둥, 가만히 떠 있고 심지어 심야에 완전히 방심했다 하더라도 공중 전함에 침투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이들은 지금 그 공중 전함에 침투해서 함장을 겁박하고 사망자 없이 승무원 전원을 상대해야 했다.

        

        

        “해상에서 전함은 요새에 비유되곤 하지요. 공중 전함이라면 능히 천상의 요새라 할 수 있습니다.”

        

        

        오스왈드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니꼬운 말이긴 했다.

        

        

        “저 새끼 지가 진짜 엘프인줄 아나봐.”

        “진짜 엘프 맞는데요. 귀 안 보이시나.”

        “와, 영혼까지 귀쟁이 타락했네. 형님! 제게 묘안이 있습니다!”

        

        

        유진은 툴툴거리며 손을 번쩍 들었다. 이반이 턱짓하자 그는 자랑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저 귀쟁이가 [깃털 걸음] 쓰면 됩니다!”

        “저 마인드 소서리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 들을까요. 인간이라 학습능력 떨어지나?”

        “와 이 새끼 진짜 귀쟁이 다 됐네. 깃털 걸음도 못 쓰는 마법사를 뭘 믿고 파티를 짜요? 형님, 지금이라도 마법학부에서 아무나 데려오죠. 기왕이면 디스트럭션(파괴학파) 쪽으로다가.”

        “[정신분열]”

        

        

        보라색 마나가 오스왈드의 손끝에 휘몰아치자, 유진의 동공이 힘 없이 풀렸다.

        

        유진은 침을 뚝뚝 떨어트리며 고개를 숙였다.

        

        동아리실에 고요가 찾아왔다.

        

        쓸모 있군. 이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까지 기다리면 된다.”

        “저녁에 군함이 갑자기 상륙이라도 한대요?”

        “아니, 군함에 가야 할 놈들이 나타나거든.”

        

        

        크라실로프 왕정은 군함의 퇴거에 사흘의 기한을 주었다. 그것이 어제.

        

        그리고 어제 저녁, 엘리자베타는 하루 안에 퇴거하지 않으면 격추하겠노라 엄포를 놓았다.

        

        군함의 함장 입장에선 초조한 심정일 것이다. 이제 당장 내일이면 왕정 전체가 군사 행동을 벌일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엘리자베타가 오늘 안에 모종의 수작을 부리겠다고 여기겠지.

        

        그렇다면 함장은 반드시 오늘까지 왕세자와 접촉해야 했다. 상황을 반전시킬 유일한 수단이니까.

        

        대낮동안 움직이진 못할 것이다. 방첩사령부가 존재하는 이상 프리첸카야 전역은 엘리자베타의 시야 안에 있으니까.

        

        그렇다면 저녁, 적어도 해가 진 이후의 밤이다.

        

        

        “그… 왕세자 측이 군함에 접촉한다 쳐도, 저희가 어떻게 그 사이에 끼어 가죠?”

        “녀석들은 부양 주문이 걸린 마차를 사용할 거다.”

        “그러니까요. 마차에 자리 좀 내어 달라고 부탁이라도 하나요?”

        “아니.”

        

        

        의심스럽게 그를 바라보는 오스왈드, 여전히 겁에 질린 채로 눈치를 살피는 유리, 그리고 넋이 나가 있는 유진을 한번 훑어본 이반은, 유리를 향해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중 하나를 업어야 한다면 누굴 선택하겠나.”

        “네…?”

        “날 제외하고. 저 둘 중 누굴 업고 가겠나.”

        

        

        유리는 떨리는 눈으로 두 청년을 바라봤다. 하나는 금태양, 하나는 최면실눈캐였다.

        

        심지어 최면실눈캐는 방금 금태양에게 최면 주문까지 걺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까지 했다.

        

        유리는 입술을 꽉 물더니, 간신히 대답했다.

        

        

        “그, 유진…이요. 차라리….”

        “차라리…?”

        

        

        상처받은 표정으로 움찔거리는 오스왈드를 무시한 채로, 이반은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오스왈드를 업지.”

        “그런데 갑자기 업고 간다고요?”

        “그래. 우린 매달려서 간다.”

        

        

        상공 약 800여 미터. 지구의 일반적인 항공기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고도지만, 이 전근대 세상에선 사람이 도달하기에 불가능한 높이다.

        

        고도로 발달한 지구의 토목 기술로도 800m는 부르즈 할리파 수준. 즉, 사상 최고 높이의 건축물이나 도달할 수 있는 위치다.

        

        그 높이까지 부양 주문 걸린 다른 이동수단을 이용해 올라간다 치면 반드시 사전에 관측될 터.

        

        그러니까 시선을 피해 침투하기 위해선 왕세자파가 접촉을 위해 보낼 마차 밑에 숨어 가는 수 밖에 없다.

        

        문제가 있다면 마차 밑에 매달릴 체력이 되느냐는 것인데.

        

        오스왈드는 당연히 불가능해보이고, 유진은 영 미덥지가 않다. 애초에 검을 잘 쓴다 해봐야 사제가 아닌가.

        

        반면 유리는 기사학부 수석. 모르드를 제외하곤 신입생 중 실기 최강으로 꼽히는 학생이다. 사람 하나 들쳐 업고 10분 정도 매달리는 것쯤은 할 수 있겠지.

        

        

        “공중에 매달려서 함선에 침투해본 적이 있다는 듯 말씀하십니다?”

        “다행히 그 비슷한 짓을 해본 적이 있지.”

        “진짜 어떤 삶을 살아온 거지. 아, 딱히 궁금하진 않습니다.”

        

        

        이반은 오스왈드의 말을 무시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준비할 것들이 많았다.

        

        

        “따듯한 옷을 챙기고 충분히 무장한 뒤 마법학부 천체학 첨탑으로 오도록.”

        

        

        크라실로프는 여름을 제외한 모든 계절이 겨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은 겨울, 여름, 중간 겨울, 개 같은 겨울 순으로 이어지니까.

        

        한밤중에 마차에 매달려서 800미터 고도로 비행하기엔 퍽 추운 날씨라는 의미다. 빙의자들은 이반의 말뜻을 곱씹으며 몸을 떨었다.

        

        

       *

        

        

        저녁부터 첨탑 옥상에 엎드려 기다리던 이반과 빙의자들은, 해가 다 진 이후에야 찌뿌듯한 몸을 풀며 일어섰다.

        

        추위 탓에 손이 얼얼하게 굳어 있었다. 빙의자들이 한숨을 내쉬며 손과 발을 풀 때쯤, 한참이 더 지난 이후에야 비로소 이반이 고개를 들었다.

        

        사위에 어둠이 깔린 후, 거대한 함선의 그림자 탓에 더욱 어둑하게 보이는 거리 사이에서 작은 빛이 순간 점멸했다.

        

        

        “준비.”

        

        

        이반은 어깨를 한번 꺾어 풀고는 도끼를 꺼내 들었다. 그는 밧줄이 걸린 도끼를 빙글 돌린 뒤에 곧게 뻗어 거리를 가늠했다.

        

        두 자루의 도끼에 걸린 밧줄은 각각 유리와 이반의 허리에 묶여 있었다.

        

        유리가 유진을 업고 있는 것을 확인한 뒤에, 이반은 천천히 팔을 뒤로 젖혔다.

        

        

        “온다.”

        

        

        빙의자들은 긴장 속에서 침을 삼켰다. 이반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하늘 어딘가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마력이 흐른다. 이반의 근섬유를 타고 섬세하게 조율된 마력이.

        

        그의 등에 업혀 있던 오스왈드는 그 정교한 배열에 내심 감탄했다.

        

        

        “먼저 가라.”

        “네? 네…헥!!? 꺄아아아아악!!”

        

        

       -후우우우웅!!

        

        

        이반은 유리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도끼를 던졌다. 손도끼가 깨끗한 직선을 그리며 밤하늘 너머로 뻗어 나갔다.

        

        도끼 끝에 걸려 있던 밧줄이 한 차례 출렁이더니, 그 끝에 묶인 유리가 낚아 채이는 것처럼 날아가버렸다.

        

        순식간에 유리의 실루엣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꽉 잡아.”

        “저, 잠시만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잠깐, 잠깐 다시 생각해보는 게 좋을…!!”

        

        

       -후우우우웅!!!

        

        “으그어어어어으으으윽?!!!”

        

        

        오스왈드는 순식간에 멀어져가는 지면, 양 뺨을 후려치는 거친 바람에 거품을 물며 비명 질렀다.

        

        죽음의 공포, 삐익, 하고 울리는 이명. 하늘 위에 툭 떨어진 듯한 부유감…. 내가 미쳤지, 이딴 걸 계획이라고…! 오스왈드는 반사적으로 이반의 어깨를 꽉 움켜쥐며 울부짖었다.

        

        

        “으극…! 으으윽…!! 억…! 어…?”

        

        

        귓가를 후려치던 엄청난 소음이 뚝, 하고 멈췄다.

        

        오스왈드가 멍한 눈으로 주위를 살피자, 그의 바로 곁엔 창백하게 질린 유리와 유진이 보였다.

        

        그들은 마차 바퀴에 매달려 있었다.

        

        

        “어어…? 어어어…?”

        “와….”

        

        

        저 멀리에 그들이 뛰어올랐던 첨탑이 보였다. 이 거리를…? 손도끼를 던져서 넘었다고…? 그들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이반을 바라봤다.

        

        

        “근데 이럼 안 들킵니까?”

        “당연히 들키지.”

        

        

        당장 이반의 귀엔 마차 안의 소란이 들린다.

        

        이 안에 있는 녀석들이 귀머거리도 아니고, 마차가 갑자기 출렁이며 4명 분의 무게가 늘어난 데다가 도끼에 정타로 틀어박히기까지 했는데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으니까.

        

        지금이야 마차 문을 열어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창문에서 바퀴 아래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문제 될 것이 없다 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다.

        

        갑판 위에 올라서는 순간 포위될 것이다. 알렉산드르 왕세자 본인이 타고 있진 않겠으나, 밀사가 타고 있는 마차를 급습했으니 당연히 공격 받을 예정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은밀한 침투 자체가 불가능한 계획이었단 뜻이다.

        

        그걸 깨달은 빙의자들이 아연한 눈으로 이반을 바라보았다.

        

        

        “그럼 이제 어떡해요?”

        “버텨라.”

        “엥?”

        

        

        이반은 밤하늘 어딘가를 똑바로 바라보며 천천히 마차에 박힌 도끼를 뽑았다.

        

        구름 아래로, 천천히 공중 전함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차의 착륙점을 인도하는 빛이 갑판 위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것까지 확인한 후에, 이반은 오스왈드를 마차 바퀴에 걸고 한 손으로 매달렸다.

        

        그리고, 뽑은 도끼를 다시 곧게 겨냥해서 고개를 슬쩍 틀었다.

        

        

        “에이, 설마. 우리 버려? 형님, 대한애국단 버려? 우정 없어?”

        

        

        유진이 더듬더듬 헛소리를 주워 섬기는 것을 무시하고, 팔을 뒤로 뻗으며 마력을 돌린다.

        

        애초에 은밀한 침투가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그렇다면 성동격서로 가는 것이 옳지 않겠나. 당연한 일이다. 절멸부대는 언제나 침투 직전에 적전 혼란을 유도하는 교리를 준수했으므로.

        

        버림패…까진 아니어도, 시선 분산용 디코이.

        

        거기에다 빙의자들 중 둘은 귀족, 하나는 군부의 고위 귀족이고 하나는 엘프다.

        

        공격 받는 한이 있어도 즉결처형이 될 대상은 아니란 뜻이며, 학생들만 나타난다면 치기 어린 장난 정도로 넘어갈 가능성도 충분했다.

        

        그러니까 ‘승무원 사살 금지’ 같은 말을 한 것이다. 사태가 생사결로 흐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금방 찾아가마.”

        “아니, 잠깐, 형님…? 형!!”

        

        

       -부우우우우웅!!!

        

        

        이반은 밤하늘 어딘가를 향해 도끼를 집어 던졌다. 강렬한 반동으로 마차가 한차례 흔들리고, 빙의자들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이미 그 자리엔 이반이 없었다. 그는 어느새 밤의 어둠 사이로 쏜살같이 날아가고 있었다.

        

        

        “미친 플라잉 산타클로스 같으니. 루돌프도 필요 없겠어.”

        “아하하하…. 이제 우리 어쩌죠?”

        “어쩌긴.”

        

        

        점점 다가오는 갑판을 바라보며 유진은 이를 악물었다.

        

        

        “퀘스트 깨야지.”

        

        

        이거 퀘스트 보상이 별볼일 없으면 진짜 상태창 이 새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인다.

        

        

       *

        

        

        이반은 군함의 흘수선 아래, 화포창에 도끼를 박아 넣어 매달리고 있었다.

        

        거친 바람이 귓가를 스쳤다. 발 아래에 느껴지는 부유감, 그리고 그 까마득한 밑으로 모래알처럼 점점이 박혀 있는 거리가 보인다.

        

        떨어지면 사망, 아니. 사지의 조각조차 흔적으로도 남지 않을 높이다.

        

        

        “흡.”

        

       -콰직!!

        

        

        그 높이에서 한 손으로 매달려서, 허리를 뒤틀어 반동을 주고 그대로 화포창을 때려 박는다.

        

       -콰직! 콰직! 콰직!

       -우드드드득!!

        

        당장이라도 떨어질 듯 위태롭게 흔들리면서, 무표정하게 꾸준히.

        

        묵묵히. 단단한 지반을 딛고 나무를 패듯이.

        

        곧, 목조 함포창이 허물어지며 사람 하나가 들어갈 수 있을 크기의 구멍이 뚫렸다.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실내 경고등이 미친듯이 점멸하고, 승무원들이 우르르 달려나가는 소음이 들렸다.

        

        시선 분산에 성공했군.

        

        이반은 무감각하게 끄덕이고는 화포창의 어두운 틈 사이로 몸을 던졌다.

       

        지금, 이제 이곳에.

        

        나무꾼이 도착했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우실아 님, 지나가는나비 님, 페실쨩 님, dbcos 님, 헤엄치는새 님, 냉동버터 님!!

    후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깨알팁)

    흘수선 : 만재선, 범선에 수면이 닿는 한계선을 의미. 보통 이 아래로 xx창(hold ; 화물창, 선창과 같은 일종의 적재 공간)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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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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