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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

       승천전의 본선 첫 경기를 앞두고, 스타디움으로 향하는 길. 

       

       가벼운 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저 뒤에서 두 어린 학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교복을 보니 고등부인가?

       

       “어어? 그 사람이다.”

       “누구?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알아?”

       “멍청하긴. 요즘 혜성처럼 등장한 그 D급을 모른다고?”

       

       ‘그 D급’을 언급하는 걸 보니, 내 승천전 예선전 영상을 본 모양이다.

       

       “난리도 아니야. 어떤 상대든지 일격에 보내버린다고.”

       “그래봤자. D급이잖아. 우리랑 붙어도 개박살 날 사람 아니야?”

       “혹시 모르지? 승천전 이후에 S급이나, 랭커가 될 수도 있어!”

       “웃기고 있네. 그럴일은 절대! 없다.”

       “…….”

       

       대놓고 이러쿵저러쿵하는 모습. 거기서 대화에 끼어드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굳이 그러진 않았다.

       

       괜히 승천전 도중에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도 있고, 조금 민망한 것도 있고. 

       

       ‘도대체 랭커들은 어떻게 사는거냐.’

       

       아무튼.

       

       이제 막 승천전 예선을 통과했을 뿐인데 쏟아지는 관심이 제법이다. 

       

       자연히 랭커들의 생활이 궁금해졌다. 일단 히어로 아카데미 내에선 어지간한 연예인 저리가라 할 정도니까.

       

       “여어.”

       

       거기다, 대놓고 내 얘기를 하는 것에 이어서 이렇게 아는 체하는 사람도 꽤나 늘었다. 나름 내적친밀감이 쌓인 모양인데, 내 입장도 조금은 생각해 줬으면 좋겠는데.

       

       “음?”

       

       헌데, 내 앞을 막아선 남자는 나도 아주 잘 아는 이였다. <신속>의 최영웅, 얼마 전에 나를 찾아와 선전포고와 함께 떠난 미친놈이다.

       

       “요즘 돌풍을 이끄는 주역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더군.”

       “무슨 볼일이야? 또 조사니 뭐니, 이상한 짓 하려고 왔나?”

       “아…… 그, 그거?”

       “……?”

       

       헌데 놈의 반응이 조금 이상하다.

       

       뭐라고 표현할까. 장난치다 혼난 어린애처럼 보인다고 하는 편이 좋을려나.

       

       “그, 약간의, 오해가 있던 것 같다.”

       “……?”

       

       망나니처럼 날뛰고 다니던 녀석이 오늘따라 참 얌전하다.

       

       혹시, <성녀>한테 무슨 소리를 들은 건가?

       

       ‘그런 것 같은데?’

       

       안젤리카와 최영웅은 모두 신성교단에 적을 올린 사람들이다. <신속>은 신앙생활과 거리가 퍽 멀어보이는 성격의 소유자지만, 현실이 그런 걸 어찌하겠나?

       

       “네놈… 아니. 널 조사하라는 <성녀>의 지시가 있었다. 나는 그걸 충실이 이행하려고 했었지.”

       “말이 왜이리 길어? 그래서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건데?”

       “으, 으음!”

       

       <신속>이 괜스레 헛기침과 함께 내 시선을 피한다.

       

       절로 속이 답답해졌다. 아니, 그래서 하려고 했던 말이 뭐냐고.

       

       “미, 미안하게 됐다.”

       “……?”

       

       <신속>의 입에서 끝내 사과가 나왔다. 그에 내 눈은 절로 휘둥그렇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

       

       <신속>이… 사과를? 이 개망나니가?

       

       분명 나도 모르는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내 집에서 함께 게임을 즐기던 성녀에게 털린 건가?

       

       “그랬나.”

       “뭐?”

       

       눈을 감은 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곧장 최영웅의 반문이 돌아왔지만, 나는 안타까움 가득한 시선으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억지로 사과하는 걸 보니 너무 뻔하잖아.”

       “무, 무슨 소리냐!”

       “너, <성녀>한테 한소리 들었냐?”

       “……!”

       

       그걸 도대체 어떻게 알았지?! 싶은 표정의 최영웅이 나를 돌아보았다.

       

       아니… 그걸 모르는게 더 이상한 거 아니야?

       

       “제, 젠장! 눈치 하나는 더럽게 빠른 놈이군.”

       “원래 그런 얘기 많이 듣고 자랐다.”

       “그래! <성녀>에게 쓴소리 좀 들었다. 허튼 짓 말고 너와 충돌하지 말라더군!”

       

       본인도 속이 답답하던 건지, 최영웅은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쳤다.

       

       저 태도는 뭔데? 나는 줄곧 놈에게 선빵을 맞은 사람이다. 누가보면 내가 학폭 가해자라도 되는 줄 알겠네?

       

       “해서, 이 자리를 빌어 선언한다!”

       

       잔뜩 붉어진 얼굴의 최영웅이 내게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선언? 무슨 선언? 제아무리 랭커라지만, 놈은 아카데미의 주류 문화에서 많이 벗어난 놈이다.

       

       <히사있>의 설정상… 바깥에서 개망나니 짓을 하다가 녀석의 부모님이 강제로 아카데미와 신성교단에 집어 넣은 걸로 알고 있는데.

       

       “<현상거절> 임혜성! 너를 내 라이벌로 인정하마!”

       “……?”

       

       뜬금 없는 소리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라이벌?”

       “그렇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주한 호적수인 네놈에게 엄숙이 선포하는 바이다.”

       

       오글거리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모습에 입꼬리가 움찔거렸다.

       

       어차피 능력을 쓰면 날 건들지도 못하는 놈이…… 라이벌이라고?

       

       “어이가 없다. 진짜로.”

       “으윽! 지금은 네놈에게 내 검이 닿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마. 하지만 열심히 수련해 다시 도전장을 내밀겠다!”

       

       이 자식 봐라?

       

       하는 말이 오글거리고, 대뜸 나를 찾아온 과거에 악다구니를 써대기에 첫인상이 영 좋지 않았던 <신속>이다.

       

       거기에 더해 ‘아카데미의 개망나니’라는 타이틀을 소유한 녀석이니, 절로 고운 시선을 할 수가 없었단 말이지.

       

       “패기는 좋네.”

       

       헌데 당당히 내 앞에 나타나 라이벌을 선포하고, 열심히 수련해서 언젠가 날 꺾겠다는 의지는 훌륭한 것이었다. 물론, 수련한다고 내게 검이 닿을 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간 너를 꺾을 것이다. 내 전력을 다해 네놈에게 부딪히겠어.”

       

       무슨 만화 주인공 같은 대사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할 수 있으면 해보던가. 그런 의지가 가득 담긴 행동이었다.

       

       “그럼 가본다. 곧 내가 참가할 경기가 있거든.”

       “알겠다.”

       

       최영웅의 짧은 대답 이후로, 나는 몸을 돌려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멈칫.

       

       그런데 잊고 있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신속>아.”

       “음? 왜 그러지?”

       “네 호적수가 없다는 말은 좀 웃기지 않냐? 너 저번에 무서워서 오줌 지렸잖아.”

       

       저번이라 함은, 송수아와 최영웅이 충돌 아닌 충돌했을 때를 말했다. 

       

       너무 불쌍하게 덜덜 떨고 있어서 여태 언급은 안 했지만, 이제 라이벌이니 숨길 필요도 없잖아?

       

       “그, 그걸. 어, 어어, 어떻게?”

       

       멍한 얼굴의 최영웅이 입을 쩍 벌렸다.

       

       설마 모를 줄 알았나? 당시엔 번개가 내리쳐도 비는 오지 않았다. 자연히 냄새나, 축축한 흙바닥을 보면 모를 수가 없었는데.

       

       “다음엔 기저귀 하나 보내주마.”

       “제, 제에에엔자아아앙!”

       

       절규하는 최영웅을 뒤로하고. 나는 걸음을 옮겼다.

       

       <신속>의 최영웅. 놈도 아카데미에 몇 없는 랭커지만, 이상하게 만만하단 말이지.

       

       * * *

       

       [ 최근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는 학생이 있습니다.]

       

       히어로 아카데미의 중앙지구.

       

       거대한 스타디움에서 개최된 ‘승천전’의 본선 초반부.

       

       [ 본선에 진출한 68명의 학생 중, D등급의 능력자가 있다는 걸 아십니까? ]

       

       어느덧 내 차례가 되었다. 천천히 스타디움 중앙의 거대간 결투장에 오르니, 수많은 시선들이 나를 향해 쏟아지는 것이 보였다.

       

       [ 그를 보고 누가 D등급 히어로라고 무시하겠습니까. ]

       

       “와아아아아아!”

       “현상거절! 현상거절! 현상거절! 현상거절!”

       “이번에도 한방이냐?”

       “네녀석에게 돈 걸었다. 보내버려!” 

       

       진행자의 진중한 목소리와 함께, 우레와 같은 함성이 스타디움 내부를 울렸다.

       

       ‘바글바글하네.’

       

       예선 때는 관중석 중간중간이 뻥 뚫려있는 게 보일 정도로 텅텅 비어있던 경기장이다.

       

       헌데 본선 첫경기를 나와보니 상황은 백팔십도 달라졌다. 어마어마한 인파와 뜨거운 열기에 괜스레 아드레날린이 샘솟는 기분이었다.

       

       [ 소개하겠습니다! 최근 뜨거운 감자인 능력자. <현상거절> 임혜성입니다! ]

       

       와아아아아-

       

       거대한 함성이 물결이 되어 스타디움 내부를 휘감는다. 아마, 승천전 본선에 D등급 능력자가 진출한 사실이 제법 대단하긴 한 모양이다. 이리 뜨거운 반응일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 그의 상대는…… S급 히어로의 아이돌이죠! <뇌전검> 양하나! ]

       

       우와아아아아아!

       

       나를 소개할 때는 우스울 정도로 엄청난 함성이 관중석에서 튀어나왔다.

       

       개중에는 기립박수를 하는 놈도 있었는데, 그걸 보니 괜스레 힘이 빠졌다.

       

       ‘첫 경기부터 힘드네. S급 히어로라니.’

       

       승천전의 룰은 간단하다. 예선전을 통해 68명의 히어로를 선발하고, 랜덤하게 배치된 그들이 본선에너 토너먼트 매치를 치룬다.

       

       자연히 이런 경우도 발생한다. D등급과 S등급의 대결? 아마 원작을 읽던 독자들은 김이 팍 샐 것이다.

       

       ‘거기다 양하나? 뭔 처음부터 거물이 나오고 난리야.’

       

       <뇌전검> 양하나는 ‘히사있’에 등장하는 조연 중 한 사람이다.

       

       특기는 화려하고 재빠른 검술, 타고난 능력은 손에 쥔 물체의 ‘절삭력 강화’다.

       

       애당초 <뇌전검>이라는 이명도 능력이 아닌 그녀의 검술 실력이 뒷받침 된 것. 그러니까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날로 먹는 능력빨 <신속>과 달리 이쪽은 진짜 노력파이자 재능파 검사인 셈이다.

       

       시나리오 후반부에선 재능을 진 각성해 ‘검성’으로 불리게 되는데, 그건 아주 나중의 얘기다.

       

       “잘 부탁드립니다.”

       

       사각 결투장 위에 올라서자 곧장 양하나가 내게 허리를 꾸벅 숙였다.

       

       등급이 높은 히어로들은 병적으로 프라이드가 높은 게 상식인데, 그런 모습을 보여주니 절로 기꺼운 마음이 들었다.

       

       ‘참 예절바른 녀석이네.’

       

       어딘가에 있을 망나니가 보았으면 좋을 장면이었다.

       

       “나도. 잘 부탁해.”

       

       고개를 끄덕인 나는 짧게 답했다.

       

       어차피 곧 피튀는 경쟁관계에 놓일 우리 둘이다. 괜스레 사담을 나누는 건 분명 쓸데없는 짓이겠지.

       

       [ 양 선수, 바닥에 표시된 자리에서 대기해 주십시오! 곧 결투를 시작하겠습니다! ]

       

       진행자의 안내에 따라 나는 걸음을 옮겼다.

       

       거무튀튀한 결투장 위에 새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곳이 보였다.

       

       ‘본선을 시작하니 결투장 소재도 달라졌네.’

       

       거기에 더해 수많은 방어계 히어로와 치유계 히어로들이 긴장된 얼굴로 결투장 주변에 대기하고 있었다.

       

       인류의 한계를 초월한 히어로의 전투인 만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모양이다.

       

       [ 그러엄! 결투! 시자아악! 하겠습니다! ]

       

       댕! 댕! 댕!

       

       시끄러운 종소리가 스타디움 내를 가득 채웠다.

       

       이것도 예선에선 없었던 서비스다. 그 시끄러운 종소리는 이상하리만큼 가슴을 뛰게 만드는 재주를 갖고있었다.

       

       “하앗!”

       

       타닷!

       

       먼저 움직인 건 양하나였다. 그녀는 검을 곧게 뻗으며 섬전 같이 내게 쇄도해왔다.

       

       그리고.

       

       푸욱!

       

       검이 무언가를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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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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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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