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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

    “시루드, 너무 걱정마. 할아버지도 마나심축적증후군이신데 아직도 잘 살아계시잖니? 약을 잘 먹으면 될거야.”

    “…….”

    세레나는 말투에서 새어나오는 걱정을 억누르면서 시루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나감응력이 너무 뛰어난 탓에 서클을 제거하지 못하는 경우는, 트리핀드가문에선 전례가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가 정확히 똑같은 증상이었으니까.

    애초에 그 질환의 복지가 사회적으로 보장된 이유중 하나가 그의 업적이기도 하고.

    “걱정하는건 아냐. 그냥, 신경쓰이는게 있어서.”

    “뭘?”

    세레나는 말해보라는 듯이 물었다.

    그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사실은, 아까전에 마나폭주가 있었거든.”

    “뭐? 그게 정말이니? 지금은 괜찮고?”

    “괜찮아. 그것보다…….”

    시루드는 안아들어오는 세레나를 살짝 밀어내면서 말했다.

    “오늘 본 그 여자애가 내 가슴에 손을 대니까 괜찮아졌어.”

    “그래? 그 여자애가 그랬다고?”

    “응, 뭔가 안심되는 기분이었어. 갑자기 심장이 괜찮아졌거든. 그게 신경쓰여서.”

    “그래……?”

    세레나는 아버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가슴에 새겨진 서클을 진정시킬 수 있는건 네 어미의 기억뿐이었다……. 라고 했던가?

    감정을 다스리는것이 중요한 마나심축적증후군은, 자신만의 감정 컨트롤방법을 하나씩 갖고있다.

    그게 어려운 청소년기의 아이는 감정을 억지로 억누르는 정신 관련 약으로 다스릴 수밖에 없다. 시루드는 드물게도 아주 어린나이에 발생한 환자니까, 그 약에 대한 부작용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데…….

    “그렇구나.”

    그 해답은 어쩌면, 그 아이에게 있을지도.

    ‘예르나……. 라고 했던가? 되도록 빠른시일내에 약속을 잡아봐야겠는걸.’

    짝짝.

    박수소리가 들리자, 운전중이던 여성비서가 즉시 대답한다.

    “예, 세레나님.”

    “일정좀 정리해서 비워줘요. 최대한 빠른 시일내로.”

    “네. 몇시간이면 될까요?”

    “한 2시간정도로 부탁해요.”

    “예, 알겠습니다. 도착해서 바로 보고드리죠.”

    “수고해줘요.”

    ‘한번 다시 만나서 얘기를 해봐야겠네.’

    ——

    루크는 예르나가 운전하는 자동차에 나른하게 앉아있었다.

    “예르나, 이번엔 어디로 가는겐가?”

    “신분등록용 증명사진 찍으러, 아무래도 나온김에 찍어두는편이 좋을 것 같아서.”

    “아, 그렇군.”

    짧은 대화이후 이어지는 침묵.

    예르나가 힐끗 곁눈질로 보면 루크는 조수석에 앉아 멀뚱멀뚱 안전벨트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언제나 총기있던 눈빛은 살짝 풀려있었고, 꾸벅꾸벅 고개가 내려갔다 올라갔다를 반복했다.

    그 모습이 가리키는것은 단 하나의 사실.

    “루크, 졸리니?”

    오늘은 참 많은 일이 있었지, 자기보다 어린 아이랑 실컷 놀아준데다가, 병원에서 이것저것 검사도 엄청나게 받았다.

    어린이의 몸으론 힘들수밖에 없었으리라.

    “조금 피곤하기는 하구나.”

    확실히 타인의 서클을 강제로 안정화시키는 작업은 피로가 심했으니까.

    심지어 시루드의 심장에 불어넣었던 마나를 채 회수하지도 못하였으니, 피로감은 더 심했다.

    “흐음, 그럼 오늘은 이만 돌아갈까? 촬영은 내일 해도 괜찮아.”

    “아니. 내 신경은 쓰지 말거라. 괜찮으니까.”

    “그래? 그럼 잠깐 눈좀 붙이렴. 너무 피곤하게 나와도 문제니까.”

    “그래, 알겠다. 파이, 그대도 그만 날아다니고 자리에 앉게나.”

    -…….

    파이가 알겠다는 듯이 뽀르르 날아와서 루크의 무릎 위에 앉았다.

    ‘뭐, 정령이니 자리에 앉는다는 표현은 맞지 않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루크는 눈을 감았다.

    ——-

    위이잉,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다.

    “새삼스럽다고 생각은 하지만, 이건 볼때마다 참 의아한 문이로구나.”

    사람이 오면 알아서 열리는 문이라니.

    문지기도 없는데 문이 스스로 열려서는 사실상 문의 기능을 못하는게 아닌가?

    애초에, 유리로 문을 만든다는 발상도 요상하고 말이다.

    ‘이것은 아무래도 전시한다는 성격이 강한 느낌이군.’

    온통 유리로 지어진 건물은, 그 건물 자체가 거대한 전시장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자연스레 상품이 되겠지.

    그 안에 있는 사람에겐 그럴 의도가 없더라도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루크가 예르나를 따라 자리에 도착하자, 사진사가 웃으며 그녀들을 반겼다.

    “아이구, 손님. 무슨사진 찍으러 오셨습니까?”

    “증명사진이요. 아이걸로 하나.”

    “그렇군요! 잠깐 저기 앉아서 기다려주세요, 먼저오신 촬영이 있어서.”

    “알겠어요.”

    오늘따라 기다림이 잦네, 하고 속으로 투덜거린 예르나는 루크를 데리고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던 루크에게 예르나가 묻는다.

    “아직 피곤하니, 루?”

    “아, 생각보다 피곤하구나. 아무래도 조금 더 눈을 붙이고싶은데, 괜찮겠는가?”

    “물론이지, 여기, 머리 베고 누워.”

    예르나는 자신의 무릎을 톡톡 쳤다.

    머리 옆에 난 뿔 탓에 옆으로 어깨에 기대거나 할 수 가 없으니, 아예 누워버려야 제대로 누울 수 있는 것이다.

    평소라면 거절했을 루크도, 이번만은 고집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어려진 몸의 영향인가, 피곤을 참기가 힘들구나.’

    언제나 정해진 수면시간, 정해진 일과를 반복하던 루크에게 그것은 나름대로 신기한 감각이었다.

    ‘충동적’이라는건 원래 루크에겐 존재하지 않던 감각이었으니.

    “……실례하겠네, 예르나.”

    루크는 그렇게 예르나의 무릎을 베고 눈을 감았다.

    ——

    “루, 이제 일어나.”

    “으음……. 알겠다. 일어나지…….”

    부스스하게 눈을 뜨고 천천히 몸을 일으킨 루크,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잠에 취한 상태였다.

    “루, 정신좀 차려봐. 그렇게 피곤하니?”

    -루크, ………!

    루크가 헤롱헤롱한 상태인걸 보다못한 파이가 끼이익! 하는 소음을 냈다.

    그 귀를 찢어내는듯한 청각적테러에, 루크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아, 그래. 파이, 일어났다. 일어났으니까, 그만하게나.”

    덕분에 머리가 강제로 활성화되며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한 상태로 준비되었다.

    예르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허공에 손을 휘젓는 루크를 바라보고는, 얘가 아직도 잠이 덜깼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했다.

    “루. 잠꼬대까지 하네. 너무 졸리면 가서 세수라도 하고 오렴.”

    잠꼬대는 아니고 정령의 기상알림이 거슬렸을 뿐이지만, 크게 다른것도 없어보여서 루크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는게 좋겠어. 여기 세면실은 어디에 있는가?”

    사진사가 그 물음에 대답했다.

    “저쪽귀퉁이로 돌아서 바로, 란다.”

    “고맙군, 내 금방 다녀오겠네.”

    ———-

    촤악, 촤악.

    “휴우…….”

    수도꼭지를 잠그고 거울을 바라본다.

    그곳엔 역시나 백금발 머릿칼의 청록안과 금안, 영문모를 동물귀와 뿔이 달려있음에도 얼굴만은 귀여운 여자아이가 비쳤다.

    루크는 그런 자신의 얼굴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아직도 꿈을 꾸는게 아닌가 싶구나.’

    환생? 빙의? 아무래도 좋다. 

    그 둘은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으니까.

    어쩌면, 이 모든게 거대한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게 사실이다.

    너무나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아무리 세월이 지났다지만, 모두가 마법을 쓰는 세계라니. 그런 꿈같은 세상이…….

    “아니, 꿈일리는 없지.”

    루크는 고개를 저으며 그 가능성을 부정했다.

    이게 정말로 꿈이나 환상마법이라면, 너무나 정교하고 거대한 세계관이다.

    꿈이란 보통 지엽적인 사고를 통해 세계관 형성이 이뤄지기때문에 앞뒤가 맞지 않는 사건과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환상이라고해도 말이 되지 않는것은 마찬가지다.

    ‘이정도의 환상을 구축하려면 적어도 9서클이 필요하다. 게다가 10서클인 나를 환상에 가둔다는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고.’

    10서클이란 권한만으로 사실상 신과 동급인 존재.

    물질계에 도래한 필멸의 신이다.

    그런 존재에게 이렇게 거대한 환상을 시전하는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눈앞에서 동그란 눈을 뜨고있는 이 여자아이는 실제로 존재하고 벌어진 현상이라고 보는것이 맞겠지.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가.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는게 너무도 답답하구나.’

    루크는 그동안 기억력에 한계를 느낀적이 없었다.

    언제나, 기억을 떠올리고자 하면 그렇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최후의 기억을 떠올리면 언제나 무의미한 장면들이 뒤죽박죽으로 섞여나온다.

    숲과 하늘, 그리고 거대한 나무와 불……. 또한 빛에 감싸인 존재와 휘몰아치던 마나의 폭풍…….

    그 기억속에서의 몸이 느끼던 감각은 모두 달랐다.

    어째서일까 생각하면 강력한 두통과 함께 기억과 감각이 자신에게 묻는다.

    ‘너는 정말로 루크 이루시인가?’

    이제는 10서클도 없고, 인간조차 아닌 조그만 여자애. 자신을 루크 이루시를 증명할 수단은 이 시대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지인도, 물질도, 지위도, 능력도, 심지어 그 자신의 외모조차 모두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거기에 5000년의 세월까지 더해져 그는 이 세계의 완벽한 이방인이 되었다.

    여전히 그런 존재를, 루크 이루시라고 부를 수 있는가?

    하지만 그는 당연하다는듯이 말했다.

    “나는 루크 이루시다.”

    선언과도 같은 중얼거림에, 머리를 복잡하게하던 의심들이 사라졌다.

    내가 루크 이루시냐고?

    의심할 필요도 없이, 증명해보이면 된다. 

    다시 대마법사가 되어보임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머리를 싸매고 앉아있을 시기는 아주 오래전에 지났다.

    루크는 주먹을 쥐며 결연하게 다짐한다.

    다시 대마법사가 되자.

    그러면 그 누구도 감히 자신이 루크 이루시임을 의심하지 못하리라.

    -루크, 예르나……!

    심각한 표정을 짓는 루크에게, 파이가 루크의 눈 앞에서 흔들거리며 말했다.

    “아, 그래. 예르나가 기다리겠군. 어서 가지.”

    -루크,……?

    “파이, 걱정해주는건 고맙네만, 열은 없으니 이마에서 떨어지게.”

    ——–

    “…….”

    루크는 현재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곤 미약하게 떨고 있었다.

    그 행동의 의미는 분명하다.

    “루크, 아직도 부끄러워?”

    예르나가 너무나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왜 진작 말해주지 않았지? 내게 이런 수모를 겪게 해서 그대가 무슨 득을 취할게 있다고……!”

    루크는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 손짓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니!”

    루크는 그동안 사진을 찍으려면 손으로 V자를 만들어내는것이 필수적인 의식인줄로만 알았다.

    마법중에는 부정을 타지 않기 위해선 그런 의식이 꼭 필요한 경우도 있어서 완전히 오해를 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건 그냥 ‘귀여운 포즈’일 뿐이었다니.

    “나는 그게 반드시 필요한 것인줄 알았단 말일세!”

    ‘여태껏 모든 사진에 그런 손모양을 했는데, 그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단 말인가?’

    “흡…….”

    웃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입꼬리는 내려갈 생각을 않는다.

    예르나는 사진을 찍고나서 사진사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묻던 루크의 말이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다.

    ‘저기, 그 손짓은 왜 하지 말라고 한겐가? 사진을 찍으려면 꼭 필요한게 아니었던건가?’

    ‘이건 증명사진이니까 손이 나오면 안되지. 사진 찍을때마다 그런 손 할 필요도 없고.’

    ‘필요가 없다니, 무슨 뜻이지? 반드시 필요한게 아니란 말이더냐?’

    ‘그래, 귀엽긴하지만.’

    ‘무, 무슨……?’

    “푸흡.”

    “부탁하건대, 제발 그만 좀 웃게나!”

    “푸핫! 하하, 미안해, 웃음이 떠나질 않네!”

    “예르나……!”

    예르나는 아직도 부들거리는 루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귀여웠음 됐지, 사진사도 엄청 웃었고 말이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진을 찍을때마다 브이를 하던 이유는 이거였네요!

    여하튼 이렇게해서 찍힌 사진은 한때 표지였던 컬러 정면 삽화입니다!

    이제는 공지에서 볼 수 있지만요.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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