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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

     

    “다 됐습니다. 코 부분 안에 철사가 들어있습니다. 밀착시키는 걸 잊지 마세요.”

     

    “그만 만져대. 직접 한다니까.”

     

    마스크를 처음 써본 아셀라는 느낌이 이상했는지 몇 번씩이나 얼굴을 만지작댔다.

     

    막상 씌워놓고 보니 조금 크게 제작해버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어림짐작보다 아셀라의 얼굴은 더 조그맸다.

     

    “왜 마스크가 효과가 있냐면, 전염병 바이러스는 주로 비말을 통해 타인에게 옮기거든요. 이게 감염입니다. 병이 옮겨지는 이유는 병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도 생물이라 그런데….”

     

    “대충 알았어. 의학 지식은 설명해주지 말고 공자가 알고 있어.”

     

    “이해하기 힘드셔서요?”

     

    내 말에 아셀라가 자존심이 긁혔는지 재릿 미간을 찌푸렸다.

     

    “공자는 내 마법을 다 이해해?”

     

    “그럴 리가요. 비루한 제가 어찌 감히 황녀님의 창대한 경지를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나도 마찬가지야.”

     

    지금 말은 칭찬이었나.

     

    “기사들이 쓸 마스크도 충분해?”

     

    “아직 그만큼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황녀님의 마스크 여분은 있습니다. 최측근인 시녀, 호위기사만 우선 착용하게 하시죠. 그보다.”

     

    나는 품에서 병을 꺼냈다.

     

    안에서 하얀 알약이 가득 차 달그락거린다.

     

    “전염병을 위한 약제를 만들어왔습니다.”

     

    “정말이야?!”

     

    아셀라가 큰소리로 외치며 병을 양손으로 받아들었다.

     

    병 내용물을 찬찬히 살피는 아셀라.

    그녀가 격한 반응을 보이는 모습은 처음 봤기에 신선했다.

     

    “이걸 먹으면 전염병을 치료할 수 있어?”

     

    “감기는 불치병이기에 완치는 아닙니다. 다만 증상은 확실히 완화됩니다. 기사들 활동은 문제없습니다.”

     

    “이게 있으면 비무대회도.”

     

    아셀라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시녀장을 불러 약을 배포했다.

     

    “남용은 금지입니다. 하루에 두 알 이상 먹지 않도록 주의시켜주세요.”

     

    “알았어.”

     

    기사들이 아스피린을 한 알씩 입에 털어넣는다.

     

    다들 어색한 행동이라고는 생각해도 주군의 명령이니 거부 없이 즉시 행동한다.

     

    전부터 느꼈는데 아셀라의 파벌은 유독 충성심이 강하다.

     

    아스피린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기사들이 머지않아 금방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효과 좋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셀라는 긴장이 풀렸는지 승모근이 슬쩍 가라앉았다.

     

    “공자.”

     

    “예.”

     

    “나는 이번 비무대회에서 폐하께 내 존재를 각인시켜야만 해.”

     

    “그러시군요.”

     

    “폐하는 본디 욕심이 많으신 분이야. 지금이야 안정을 위해 적당히 1황자를 차기 황제로 내정하고 계시지만 그는 소심해서 황제가 될 그릇은 아니야.”

     

    아셀라는 뜬금없이 주절주절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식 중에서 강한 재능과 뛰어난 통솔력을 보여주는 자가 보이면 다시 젊을 때처럼 전쟁에 대한 불꽃을 피워올리겠지. 그럼 마음도 바뀔 거야.”

     

    “그렇군요.”

     

    “게오르크 2황자와 헤이케 1황녀도 그걸 알고 있어. 둘 다 비무대회에서 최선을 다해 자기 세력을 자랑할 거고 난 그들을 제쳐야만 해.”

     

    “하나 궁금했던 건데요.”

     

    나는 무심코 아셀라에게 질문했다.

     

    “황녀님은 왜 황제가 되고 싶으신 겁니까?”

     

    내 질문에 아셀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질문에 질문을 되돌려줬다.

     

    “그 대답이 네 충성에 영향을 미치니?”

     

    조금은 대답하기 싫어하는 눈치.

     

    나도 굳이 벌집을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전혀요.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황녀님께 충성합니다.”

     

    “그래.”

     

    아셀라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이유를 말해주진 않았다.

     

    “기사들을 치료한 건 특별한 공로로 인정하겠어. 공자, 어떤 대가를 원해?”

     

    “공중부양 쓸 수 있는 마법사요.”

     

    “나 쓸 수 있어. 그건 왜?”

     

    “아뇨, 농담입니다.”

     

    아셀라에게 내 출퇴근을 돕게 시켰다가는 이용료가 몇백 배로 나오겠지.

     

    “제 요구사항이 담긴 봉투는 잘 보관하고 계시죠?”

     

    “응. 보존마법을 걸어서 훼손되지 않게 보존하고 있어. 내가 기아스를 실행할 때가 아니면 아무도 열 수도 없고. 그걸 원해? 그 정도의 공은 아닌 것 같은데.”

     

    “물론입니다. 황녀님께서 잊지 않아 주셨다면야 그걸로 충분합니다.”

     

    “내게 지불할 대가를 맡긴다는 뜻이구나.”

     

    “어….”

     

    아셀라면 터무니없는 걸 들고와서 내게 또 대가를 요구할지도 모르겠다.

     

    어디, 최근에 필요했던 것.

     

    ‘가장 맘에 안 드는 건 아셀라의 파벌이 작아서 무시당하는 분위기였지.’

     

    남쪽 병영에 산책이나 가볼까.

     

    “황녀님의 기사들을 잠깐 빌려주시는 일이면 되겠습니다.”

     

    “좋아, 그렇게 해.”

     

    “그럼 이제 혈압 측정하실까요.”

     

    “응, 가자.”

     

    아셀라는 기사들 걱정을 한시름 덜었는지 순순히 나를 따라 방으로 돌아갔다.

     

     

     

    ***

     

     

     

    다음날, 나는 아셀라의 기사들 스무 명을 데리고 월광궁 뒤뜰에 모였다.

     

    하나같이 아셀라를 닮아 장난기 없는 진지한 표정이다.

     

    “내가 지금 석상 전시장에 왔나? 거기 1번 석상, 아침 먹었어?”

     

    호명한 기사가 숨도 멈추고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진짜 석상 흉내를 내야 하는지 내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모양이다.

     

    농담이 안 통하네.

     

    “됐어, 쉬어.”

     

    딱딱한 분위기는 질색인데.

    아셀라가 평소에 어떻게 교육하는지 편린이 엿보인다.

     

    “전달받았겠지. 오늘 일과는 훈련 대신 나와 함께 행동한다. 황녀님 명령이야.”

     

    기사들은 여전히 목석이다.

     

    그러고 보면 황실 기사단에는 상급자가 허락하기 전까지 결코 입을 열면 안 된다는 원칙이 있었다.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지킬 필요는 없는데.

    교육수준이 높아도 너무 높다.

     

    “먼저 한 가지 확인하겠어. 이 자리의 기사들 전원, 카밀라 황비가 아닌 아셀라 황녀님께 충성하는 이들이 맞나? 아닌 이만 대답해.”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책임자는 누구야?”

     

    “접니다, 고트베르크 선생님.”

     

    한 기사가 손을 들었다.

     

    “단장 직책이야?”

     

    “월광궁 단장이긴 합니다만, 일반적으로 단장은 연대의 총대장 한 분을 가리킵니다. 월광궁 기사단은 소대로 편성되어 있기에 직급은 소대장입니다.”

     

    “그렇댄다. 자네 꽤 높으신 분이었어, 타냐 단장?”

     

    “놀리지 마세요. 황실에서는 저도 일개 기사인 걸 알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지방과 제도는 차이가 있으니까.

     

    “소대장, 자네가 황녀님께 충성하는 이유를 들려줘.”

     

    “황녀님이 가지신 품격에서 차기 황제가 되시리라 확신했습니다.”

     

    “음, 맞는 말이야. 여기는 눈썰미 좋은 이들만 모였군.”

     

    줄을 잘 선 친구들이다.

     

    “자네들은 차기 황제를 모시고 있어. 직속 기사단인 자네들도 그에 걸맞은 실력을 지녀야 해. 이해하지?”

     

    “예.”

     

    “밖에서 우리가 어떤 취급을 받고 지내는지는 알아?”

     

    “…부끄럽지만, 예. 알고 있습니다.”

     

    소대장이 주먹을 꽉 쥐었다.

    꽤나 분노가 짙게 담겨있었다.

     

    “때문에 이번 비무대회에서는 황녀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전력을 보여드릴 생각입니다. 선생님 덕분에 단원 전원 건강도 좋아졌으니….”

     

    “비무대회 전부터 보여줘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야. 남쪽 병영을 가 봤는데 시설이 굉장히 좋더라고.”

     

    나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우리도 그 정도는 써야 하지 않겠어?”

     

    내 제안에 소대장이 당혹스러워했다.

     

    “물론 그러면 좋겠습니다만, 부대가 다른 저희로서는….”

     

    “빌리러 가자고.”

     

    나는 동네 산책이나 나가자는 느낌으로 가볍게 권유했다.

     

     

     

    기사들과 함께 남쪽 병영으로 향한다.

     

    “어느 부대에서 오셨습… 헉, 고트베르크 선생님!”

     

    보초가 나를 보고는 기겁하며 물러섰다. 지난번과 같은 녀석이었다.

     

    “수고해. 왜 혼자 보초 서고 있어?”

     

    “아, 그게….”

     

    보초가 대답하다 말고 코를 훌쩍였다.

    그가 어리버리 타고 있으니 중대장도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선생님! 또 어쩐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별 건 아니고 훈련 시설 빌려 쓰려고. 남는 자리 있지?”

     

    “후, 훈련 시설 말입니까? 남쪽 병영은 저희 2연대가 사용하는 곳입니다만….”

     

    “황실 기사단 소속 기사면 어느 병영에서나 훈련 신청을 할 수 있잖아. 자네가 신청서 작성해줘.”

     

    “아니, 맞는 말씀이시긴 한데요….”

     

    중대장은 내 권력 남용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날벼락이 떨어진 기분이겠지.

     

    “이건 좀 너무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막무가내로 들어오시다니요.”

     

    “어차피 전염병 때문에 쉬는 기사도 많잖아. 훈련장이 꽉 찼을 리도 없고.”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황실 전체에 유행하는 전염병이잖습니까. 월광궁 기사들도 병상일 텐데 굳이 여기까지 와서 훈련할 이유가 있습니까.”

     

    “우리 기사들은 멀쩡해. 보여줘.”

     

    내 명령에 따라 월광궁 기사들이 즉시 절도있는 합을 선보였다.

     

    중대장은 생기 넘치는 그들의 눈빛을 보더니 입을 떡 벌렸다.

     

    “어어? 대체 어떻게?”

     

    “선생님께서 치료해주셨습니다.”

     

    타냐가 나서서 대답하니 중대장이 소리 없이 감탄했다.

     

    “선생님께서 말입니까? 허….”

     

    그가 고민하다가 마침내 길을 비켰다.

     

    “그렇게까지 나오시면 뭐, 들어가시죠. 어차피 오늘은 쓰지도 않습니다요.”

     

    덕분에 오늘 아셀라의 기사들은 고급 시설에서 훈련을 진행할 수 있었다.

     

    강도를 임의로 조정할 수 있게 인챈트가 된 가검이나 방어구가 잔뜩 준비되어 있었다. 각종 전투 환경을 가정한 훈련장까지.

     

    월광궁 기사들은 타냐가 상당한 실력자인 걸 알기에 그녀와 적극적으로 대련을 이어갔다.

     

    “허… 진짜 다 멀쩡하네.”

     

    중대장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우리 기사단을 바라봤다.

     

    “여긴 그렇게 상태 안 좋아?”

     

    “2연대는 거의 전멸입니다. 비무대회가 코앞인데 큰일입죠. 내의원 치유사님들이 종일 봐주시는데도 이 모양인데, 대체 선생님은 비결이 뭡니까?”

     

    “자네 같으면 맨입으로 알려주겠어?”

     

    “그러지 말고 좀 도와주십쇼. 저희도 같은 황실 기사단 아닙니까.”

     

    “너희가 뭐가 이쁘다고 내가 치료해줘? 아셀라 황녀님께 충성하는 놈들도 아닌데.”

     

    중대장이 턱을 긁적이다가 내게 작게 속삭였다.

     

    “저 그간 선생님이 알려주신 스트레칭 열심히 했습니다. 어때요, 이쁘지 않습니까.”

     

    “구역질 나게 징그럽다.”

     

    “그럼 저희 중대만이라도… 부하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괴롭습니다. 대신 비무대회 때 저희 중대가 아셀라 황녀님 기사단으로 출전하면 어떻습니까.”

     

    중대장이 꽤 재밌는 소리를 했다.

     

    “너 2황자파 소속이잖아.”

     

    “에이, 여기 그렇게 딱딱하게 구분 나누는 곳 아닙니다요. 실은 얼마 전부터 황자님이 비무대회 때문에 들들 볶고 있어서 지친 기사들이 많아요.”

     

    “몇 명이야?”

     

    “백이십입니다.”

     

    흠.

     

    아셀라의 기사단은 고작 스물.

     

    대회에서 활약하기에는 쪽수가 부족한 상태긴 하다.

     

    “중대장, 열심히 할 자신 있어?”

     

    “물론이죠. 저도 기사인데 설마 내뱉은 말을 뒤엎겠습니까요.”

     

    “있어 봐.”

     

    나는 금방 문서를 하나 작성했다.

     

    “지금 말한 내용 어기면 대충 모가지라는 계약서. 글자는 읽을 줄 알지?”

     

    “거 사람 너무 무시하시네. 황실 기사는 다 고등교육 받고 들어옵니다?”

     

    중대장이 흔쾌히 계약서에 사인했다.

     

    이로서 2연대의 1중대는 비무대회에서 아셀라의 휘하로 참가하게 됐다.

     

    젖먹던 힘까지 최선을 다하는 조건. 판단은 내가 한다.

     

    “그럼 이제 저희 기사들 치료해주십니까?”

     

    “쓴 음식은 잘 먹길 바란다.”

     

    나는 품속에서 아스피린 약병을 꺼냈다.

     

     

     

    ***

     

     

     

    3일 후.

     

    “선생님! 소개를 받고 찾아왔습니다만…!”

    “2연대 2중대장입니다, 전염병을 한 방에 치유, 아니. 치료하실 수 있으시다고!”

    “꼭 저희 부대도 부탁을!”

     

    내 사무실에 우락부락한 기사들이 잔뜩 들이닥쳤다.

     

    나는 입을 가리고 그들에게 말했다.

     

    “침 좀 튀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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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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