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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

       꼬리칸이 뜯긴 채 주행하던 열차는 그 후로 꼬박 하루를 더 달린 뒤 목적지에 도착했다.

        44층의 하늘섬.

        주인없는 땅, 공역(空域)이라 불리우는 섬은 이제는 사라진 안달루시아라는 작은 왕국의 수도를 축소해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곳에 살던 사람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비어있는 건물과 유적에는 정령들이 깃들어 도전자의 역량을 시험했다.

       

        플랫폼에서 기다리고 있던 베르농 정보부장은 열차가 서는 즉시 테러를 모의한 꿀벌들의 잔당을 구금했다.

        생존자는 총 둘로 1층에서 체포된 셀루시아 가문의 베티 크로우와, 서열 38위 프란츠 가문의 토비 소롯이었다.

        기왕이면 나머지 셋도 생포해 조사할 수 있었다면 좋겠지만 이미 글레시아 학파에서 손을 쓴 뒤였다.

       

        그마저도 시엔의 공이 없었다면 순혈 마법사 앞에서 토비의 신상을 양도받는 것도 쉽지 않았으리라.

        니플헤이르 뿐 아니라 마탑의 어떤 가문도 자신들을 적대한 이들을 곱게 용서하는 성격은 아니니까.

       

        “괴물을 봤다느니 꿀벌이 귀여워 보인다느니…… 쯧, 기껏 생포한 놈 정신이 이래서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무것도 아냐. 어쨌거나 프란츠는 이걸로 끝이군.”

       

        일등석 통로에서 발견된 그는 패닉에 빠져 정상적으로 대화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공역에서 실종된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이런 짓을 벌인 듯한데, 그 끝은 매우 안 좋았다.

        둘 뿐인 남매가 모두 등반에 실패했으니 조만간 백가에 한 자리가 더 날 수도 있겠다.

       

        이상한 독백을 반복하던 그가 대학원생이 되기 위해 지하 1층으로 인도되는 것을 확인한 뒤, 베르농은 시엔의 옆에 서 있던 남자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번 작전에 조력자로 활동한 그는 얼마 전부터 하층에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신예였다.

       

        생긴 것도 멀끔하데다 실력도 좋은 걸 보니 정보부에서도 탐낼만한 인재였다.

        어른과 인사하는 데도 위치노트에서 눈을 떼지 않는 요즘 젊은이 특유의 버릇만 아니라면 더 평가가 좋았겠지만.

       

        “자네 덕에 열차를 멈추는 일 없이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네. 급행을 다시 출발시키는데 들어가는 자원이 막대한데다 자칫해서 공역의 결계가 닫히기라도 한다면 꽤 골치 아프거든.”

        “아닙니다. 우연이 겹치긴 했지만 그 자리에서 해야 하는 일을 했을 뿐인걸요.”

        “마법제와 대미궁에서의 활약도 인상깊었네. 아, 그러고 보니 해주학파라고 들었는데 혹시…….”

        “부장님.”

        “크흠! 그건 그렇고 여기 시엔과는 구면이라지?”

        “예, 입탑 동기였습니다.”

       

        아녜스 아이테르의 행방에 대해 물으려던 베르농은 정보 2과 최고 에이스의 눈초리를 받고 입을 다물었다.

        현재 그녀는 구내식당 무전취식과 3급 마수로 취급되는 유해조수에게 먹이주기 등 마탑 전체를 오가며 약 17개 가량의 경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수배 중이었다.

        물론 칠현자인 그녀를 붙잡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질문이었다.

       

        “아무튼 범인 검거에 기여했으니 행정부처를 통해 포상금이 지급될 걸세. 그 외에 따로 바라는 건 없나?”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정보부는 이번 테러의 배후로 누구를 의심하고 있습니까?”

        “으음, 그건 오해의 소지도 있으니 아직 함부로 왈가왈부할 시기가 아니로군. 다만…….”

       

        열차는 무사히 공역에 도착했으니 정보부는 사건에 대해 이쯤에서 적당히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니플헤이르를 공격할 만한 집단이라면 상대도 비슷한 수준의 덩치를 자랑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열차 내부에 은신처를 마련해둔 것, 여섯이나 되는 마법사들을 밀항시킨 것은 일반적인 마도 가문이 부릴 수 있는 잔재주가 아니었다.

        최소 백가의 고위서열, 아니면 다른 순혈 가문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렇군요.”

       

        클락은 느릿하게 고개를 주억이더니 위치노트를 덮었다.

        일반적인 마법사라면 이런 일에 연루되고도 목숨을 잃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하건만, 그의 눈빛에는 전혀 겁먹은 기색이 없었다.

        문득, 베르농은 토비가 발견되었을 때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절대 주딱과 눈을 마주쳐서는 안 된다-. 며 필사적으로 땅바닥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

       

        명계의 문 사건의 조사 위원회는 공역의 한 가운데 있는 왕성에서 열렸다.

        초대 탑주가 소유권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그곳은 어떤 학파도 도전 조건을 찾지 못해 수백 년째 중립적인 공간이었다.

        수많은 마법사들이 돌아다니는 성내는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가득했다.

        토비와 베르농에게 들은 정보를 토대로 꿀벌들의 리더를 찾으려던 내게 비나가 손짓했다.

       

        “어딜 가나요 사감?”

        “예? 저는 회의에 못 들어가니 주위를 돌아보려 합니다.”

        “잊어버린 듯한데 이곳은 사감의 마법 실력에는 맞지 않는 위험한 곳이에요. 제가 나올 때까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말고 여기 가만히 있으세요.”

        “…….”

       

        그녀의 손가락은 딱딱하다 못해 시체도 불편해서 뒤척일 것 같은 돌 의자를 가리켰다.

        죽어도 싫다는 무언의 의사를 피력했으나 ‘그래서 뭐 어쩔건데?’라는 비나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이제는 장식이 많이 떨어져 제법 너덜너덜해진 얼음 케이크였다.

       

        “제가 너무 심심하면 회의 내내 이걸 물고 빨지도 모릅니다.”

        “안 돼요. 끝나면 사감이 좋아하는 얼음낚시 카페에 데려가 줄 테니 참으세요.”

       

        그런 거 좋아한 적 없어.

       

        추측컨대 비나는 내게 간섭을 받을 때마다 간지러움 비슷한 느낌을 받는 모양이었다.

        그 때문에 열차 내에서도 빈번하게 자리를 비우며 손을 씻고 오곤 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표정이면서 케이크에 손을 대기만 하면 입꼬리나 눈썹이 파르르 떨려왔다.

        심할 때는 멀쩡하게 걷다가 갑자기 다리가 풀려 주저앉는 바람에 다급히 간섭에서 손을 떼고 그녀를 부축하곤 했다.

       

        “공역을 떠나는 날까지 시간이 얼마 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회의 중에는 안 돼요. 원한다면 기한을 늘려 주겠어요.”

        “저는 밀린 숙제는 바로바로 해치우는 스타일입니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수업 때 제가 준비하라 한 자료는 매번, 매번…….”

       

        빠각!

       

        케이크에 실금이 하나 더 새겨지자 비나의 입이 즉시 다물어졌다.

        무릎을 모은 채 거친 숨을 내쉬더니, 입술을 잘근 씹으며 원망스런 눈초리로 이쪽을 올려다봤다.

       

        “제가 하지, 말라고, 했죠……!”

       

        폭포같은 머리카락이 팔뚝 위로 쏟아지자 검은 드레스가 감싸고 있는 아름다운 뒷모습의 곡선이 두드러졌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내게 몸을 기댄 모습을 보고 시선을 떼지 못할 정도였다.

       

        “그렇게 간지러우세요?”

        “간지러운 게 아닌…… 읏!”

       

        영창이나 수인은 커녕 의지만으로 열차를 분해시켜 버리는 마법사가 고작 내 손가락 하나에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에 피어나는 배덕감.

        신분, 위계, 마탑 내에서의 명성까지 어떤 면에서도 아득한 격차가 나는 그녀에게 감히 허락되지 않는 행위였다.

       

        그러나 이 정도 어리광은 부려도 될 것 같다는 묘한 확신이 들었다.

        애초에 모든 게 그녀가 대놓고 해주를 용인해 줬기에 가능한 상황이니까.

        본인이 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서인지 몰라도 지금도 구축한 술식을 해제하지 않는 게 그 증거였다.

       

        케이크에 금이 늘어갈수록 비나의 허리가 떨리는 정도도 심해졌다.

        얼음장 같던 볼에도 얕은 홍조가 피어나 있었다.

        이대로 잘만 하면 완전히 마법을 깨부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설마 다른 사람들도 이러는 건 아니겠지?’

       

        멋대로 약속을 어긴 대가로 마법을 주기로 약속한 시엔이 문득 떠올랐다.

        연금학파의 특징인지 그녀는 옛날부터 빚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었다.

        그러고 보면 헤어지기 전에 다음에 무도회에 같이 가자는 권유를 했었는데…….

       

        “지금 무슨 생각 하나요?”

        “네?”

       

        순간 집중이 흐트러져서인지 순식간에 혈색이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어딘가 급한 것처럼 단화의 밑창은 계속 바닥을 두드리고 있었지만 이전같은 유순함은 사라진 상태였다.

       

        “마법에 간섭하는 자는 역으로 간섭당할 수도 있다는 걸 모르나요?”

        “…….”

        “해주란 그런 거에요. 저 같은 마법사와 이렇게 깊게, 오랫동안 얽히면 사감의 머릿속 따윈 가볍게 훑어낼 수 있어요.”

       

        간섭기에 이런 약점이 존재했다니.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욱 조심히 써야겠다고 생각하던 내게 비나가 말했다.

        목소리에는 약간의 질투가 담겨 있었다.

       

        “생각이 바뀌었어요.”

        “정말입니까?”

        “사감은 앞으로 제가 회의를 끝낼 때까지 여……기에서 기다리세요. 흥.”

       

        검은 장갑을 낀 손이 가리킨 것은 돌 의자 바로 아래의 딱딱한 바닥이었다.

       

       

       

        *

       

        ====

        [밤이 되었습니다]

       

        분탕들은 고개를 들고 활동을 시작해 주세요

       

        — 오늘은 심심한데 파딱이나 죽이죠

        — 뭔가 요즘 조용해서 큰 이벤트 하나 있었으면 좋겠음

         ㄴ 최근에 게시판 하나 통째로 날아가지 않았나? 이 정도면 큰 이벤트같은데

        ====

        ====

        [그래서 조사위 결과는 나온 거임?]

       

        명계의 문 대미궁에 푼 게 누구인지 아는 사람 없나?

       

        — 흑마법사들 소행으로 가닥이 잡히는 거 같은데 좀처럼 나오는 건 없음

        — 오늘이 1일째니 좀 더 지켜봐야 할듯

        — 조사위도 걍 보여주기식 아니냐 어차피 백가 놈들 공역 소유권 쟁탈하려고 모인거면서

         ㄴ ㄴㄴ 듣기로는 칠현자 중 하나가 위에서 깨져서 이 갈고 모았다고 함 최소한 마족 전담 팀 꾸려지는 건 확실함

         ㄴ 칠현자에 위가 어딨어 ㅂㅅ아 

         ㄴ 너야말로 알못인 거 같은데 학파 당 한 명이라는 제한 때문에 내려놓은 사람도 있음

         ㄴ 너 해주야?

        ====

        ====

        44층에갇혀있어요살

        [44층에 갇혀 있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44층에 갇혀 있어요 아무나 제발 도와주세요 44층에 갇혀 있어요 아무나 제발 도와주세요 44층에 갇혀 있어요 아무나 제발 도와……

        ====

       

        첫날을 꼼짝없이 차가운 돌바닥에서 보낸 나는 계획을 바꾸기로 했다.

        회의가 끝난 후, 모두가 잠든 밤에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비나와 크리스티나가 자고 있을 방 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고 저택에서 몰래 빠져나왔다.

       

        불야성같은 도시의 불빛에 비해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 풍경이 대비되어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근데 이제 뭐 하지?’

       

        답답한 마음에 일단 나오긴 했으나 비나의 우려대로 내 마법 실력에 이곳은 어울리지 않는 사냥터였다.

        44층의 등반 조건은 공역에 존재하는 장소의 소유권을 최소 한 가지 얻어낼 것. 

        다만 조건이 천차만별이기에 한 번 발을 들였다가 결계가 닫힐 때까지 나오지 못하면 꼼짝없이 갇히게 된다.

        비나가 괜히 이곳저곳 찔러보고 다니지 말라고 경고한 게 아니었다.

       

        이 넓은 도시에서 나를 사칭한 마법사를 찾는 건 말도 안 되고 회의에 참가했던 이들은 대부분 안전한 장소에서 자는 중일 것이다.

        공역에 잠들어있는 재보나 자원에 미련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나중에 이곳에 왔을 때나 도전하면 될 터였다.

       

        ‘그냥 돌아갈까.’

       

        야밤에 기분전환 겸 산책이나 한 셈 치고 가서 자려던 나는 우연히 갤러리에 올라온 글 하나를 발견했다.

       

        ====

        [님들 저 지금 공역인데 개쩌는 거 찾은 거 같음]

       

        아까 남아서 회의실이랑 복도 청소하고 있다 발견한 건데 뜬금없이 지하로 향하는 통로가 있더라?

        존나 쓸데없이 생긴 돌 의자 바로 아래 있던데 이거 혹시 왕성 소유권 얻는 루트 아님?

        ====

       

        조금 전 내가 앉아있던 바로 그 장소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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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

[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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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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