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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

       

       

       “하아암···.”

       

       “뭐야, 졸리냐?”

       

       “아, 아닙니다!”

       

       

       피곤하냐고 물어봤더니 신입이 당황한 듯 크게 대답했다.

       

       이 새끼 누가 가르쳤어?

       

       

       “야, 목소리 줄여. 여긴 비밀기지라고.”

       

       “네, 넵···.”

       

       

       황급히 입을 다문 신입의 모습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뭐, 너무 걱정하지 마. 여긴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 곳이니까. 여행 장소지만 인기는 없고, 코스에서도 한참 떨어져 있어. 사유지 표시판까지 달려있지. 누가 이런 곳에 오겠냐?”

       

       “그, 그런가요···?”

       

       “그래.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경계나 잘 서면 된다고.”

       

       

       아, 경계 귀찮아 죽겠다!

       

       신입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일부러 그렇게 외치며 넉살을 부려 풀밭에 드러누웠다.

       

       후배까지 이렇게 챙겨줘야 한다니.

       

       인생 참 불공평해.

       

       나 때는 말이야.

       

       선배님들한테 맞으면서 배웠다고.

       

       

       “저, 감사합니다. 선배님.”

       

       “엉? 뭐가?”

       

       “이런 곳은 익숙해지지 못할 것 같았거든요. 많이 도와주셨으니까요.”

       

       “뭘 또 그러냐. 어차피 우린 말단 빌런인데.”

       

       “그래도요. 감사합니다.”

       

       

       에휴.

       

       어쩌다 저런 놈이 빌런이 되었는지.

       

       착하게 살고 싶어도 상황이 따라주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 법.

       

       가끔 저렇게 순박한 녀석들을 볼 때면 기분이 착잡해졌다.

       

       도대체 얼마나 힘들었기에 저런 녀석들이 이런 길을 걷나 싶어서.

       

       인생 더럽게 짜증 난다고 속으로 생각하던 무렵.

       

       새까만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저는 선배가 정말 대단하다고···.”

       

       “조용히 해, 신입. 이상 사태다.”

       

       “네?”

       

       “저기, 보이냐? 사람이다. 준비해.”

       

       “아, 정말이다.”

       

       

       태평하기는.

       

       준비하라니까 감탄이나 하고 있네.

       

       답답한 마음에 신입의 등짝을 두드려주었다.

       

       그제야 황급히 무기를 챙기는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쉬려던 걸 억눌렀다.

       

       아직 신입이니까.

       

       천천히 다가오는 인영을 확인해보았다.

       

       ···여자군.

       

       길을 잃었나?

       

       싱글싱글 웃는 얼굴이 묘하게 불길했다.

       

       

       “여기는 사유지입니다. 돌아가 주세요.”

       

       “우후후, 그런가요?”

       

       “네. 어쩌다 이곳까지 오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길을 잃으셨다면 안내해드리죠.”

       

       

       친절하게 말을 건네며 눈으로 그녀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무기···없고.

       

       눈에 띄는 외상···없고.

       

       아카데미 교복을 입은 걸로 보아하니, 학생인가.

       

       외부 활동이라도 나와서 놀다가 길을 잃어버린 거겠지.

       

       쯧, 사람 귀찮게 하기는.

       

       여기서 사람을 죽여버린다면 일이 귀찮아진다.

       

       심지어 아카데미 학생이라니.

       

       실종 처리라도 된다면 수사가 시작되어 이곳의 위치를 들킬 수도 있다.

       

       여기서는 적당히 대응하고 돌려보내야···.

       

       

       “아뇨, 제대로 찾아온 것 같은데요. 위버멘쉬의 놀이터.”

       

       “···?!”

       

       “너무 늦으면 위험했는데. 잘 찾아온 것 같아서 기분이 아주 좋네요.”

       

       

       쥐고 있던 검을 휘둘러 눈앞의 여자를 공격했다.

       

       당연히 알고 있었다는 듯 그녀가 몸을 돌려 피했지만, 그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아카데미의 교복을 입은 여자.

       

       그런 여자가 조직의 이름을 안 채로 이곳에 홀로 찾아온다고?

       

       그럴 리가 없지.

       

       들켰다. 조직의 은신처가.

       

       

       “야, 신입! 빨리 비상벨을 울···커흑?!”

       

       “그렇게는 안 되겠어요. 도망치는 사람이 생기면 라이라에게 미안해지거든요. 살아남을 사람은 열다섯. 그렇게 정해졌답니다.”

       

       

       어, 어느새···?!

       

       분명 무기는 없었는데!

       

       눈치채보니 목이 깊게 베여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허공에 떠 있는 핏방울이 내가 공격당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을 뿐.

       

       ···잠깐, 핏방울?

       

       

       “눈썰미가 좋으신 분이네요. 이미 늦었지만.”

       

       

       본능적으로 목을 손으로 부여잡았지만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이미 울컥거리며 피가 순식간에 빠져나가고 있었으니까.

       

       피가 모자란 건지, 머리가 멍해지고 시야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젠장, 무기가 없다고 너무 방심했다.

       

       실이다.

       

       가느다란 실이, 목을 스친 거야.

       

       그녀가 공격한 게 아니다.

       

       움직임은 없었어.

       

       내가 공격할 거라는 걸 알고, 그 경로에 실을 설치해 둔 거야.

       

       

       “끄, 흑···. 아카데미의 끄나풀인가···!”

       

       “으음, 곧 죽을 분께 이야기할 필요는 없죠?”

       

       “목적은 뭐냐···! 위버멘쉬가 들켰을 리가···!”

       

       

       살아남기는 글렀다.

       

       이 정도의 출혈이다. 분명 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죽어버리겠지.

       

       그렇다면 신입만이라도 살려야 해.

       

       베어진 목으로 말을 하려니 괴로웠지만, 억지로 말을 이어 나갔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만 했다.

       

       그 녀석은 여기서 죽으면 안 돼.

       

       순박한 녀석이다.

       

       분명, 시간이 지난다면 정신을 차리고 손을 씻을 수···.

       

       

       “아, 옆에 계신 분이라면 이미 늦었어요?”

       

       “···뭐?”

       

       “저기에 누워계시니까요. 그러니까 고생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신입이, 들판에 누워있었다.

       

       조금 전.

       

       신입을 안심시키기 위해 들판에 드러누웠던 것처럼.

       

       붉은 이불을 덮고, 땅을 침대 삼아 누워있었다.

       

       ···하하, 야.

       

       그렇게 불편하게 누워있으면 어떡하냐.

       

       그렇게 자면 목 돌아간다고.

       

       

       “저는 가볼게요? 남은 시간, 잘 보내시길.”

       

       

       저벅, 저벅.

       

       검붉은 악마가 발걸음을 옮겼다.

       

       흐릿해져 가는 시야.

       

       멍해지는 머리.

       

       어떻게든 발걸음을 옮겨 신입의 옆자리에 드러누웠다.

       

       

       “하···. 야, 신입. 언젠가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너는 아니었으면 했어.”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새끼, 빠져가지고.

       

       어디서 신입 주제에 선배가 깨어있는데 자고 있어?

       

       나 때는 말이야, 그랬다가는 온종일 두들겨 맞았다고.

       

       

       “신입아. ···인생 더럽게 짜증 난다. 그렇지?”

       

       

       역시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도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두 인형의 실이 끊어졌다.

       

       

       

       ***

       

       

       

       “침입자다! 비상! 비상! 다들 뭐해?! 빨리 저지하라고!”

       

       “보초 서던 놈들은 뭐 하고 있는 거야?!”

       

       “병신아! 이미 뒈졌겠지! 남 탓할 시간 있으면 빨리 싸우기나 해!”

       

       

       ···아아, 시끄럽네.

       

       다들 쭉정이들뿐.

       

       자신들이 파악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죽어 나가자 목소리만 키우고, 덤벼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래서야 열다섯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겠는데?

       

       아멜리아와 시우는 주인공과 히로인이다.

       

       이런 쭉정이들은 백 명을 보내도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아니, 애초에 이 녀석들.

       

       초인 맞아?

       

       왜 총을 들고 있어?

       

       

       “크학?!”

       

       “시, 실이다! 실을 쏘아내고 있어! 총, 총을 버려! 칼로 실을 절단해! 어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눈치챘구나.

       

       언제쯤 눈치채나 했네, 진짜.

       

       생각보다 수준이 너무 낮은데.

       

       열다섯으로는 부족하겠다. 서른 명은 있어야겠어.

       

       그 목소리에 총을 거두고 들고 있던 칼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쭉정이들.

       

       마력이 담겨있어 대부분은 잘리지도 않았지만, 몇몇 실이 끊어지는 느낌이 손을 타고 느껴졌다.

       

       ···오.

       

       조금은 쓸만한 녀석들이 있잖아.

       

       

       “음, 좋아요. 당신들은 통과.”

       

       “무슨 말을···!”

       

       

       순식간에 교복 상의가 터지듯 찢어지며 한올 한올 마력이 담긴 실들이 퍼져나가 빌런들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결과는, 뭐.

       

       말할 것도 없지.

       

       대성공···인가?

       

       

       “히, 히익···?!”

       

       “아, 이건 생각 못했네···. 으, 찝찝해.”

       

       

       아니, 대성공은 아니구나.

       

       실패라고 봐야겠네.

       

       수십 명의 빌런이 깍둑썰기 당하듯 온몸이 분해되었으니까.

       

       ···너무 잔인한데.

       

       좋아, 이건 봉인.

       

       먹었던 고기가 올라올 것 같잖아.

       

       냄새도 역하고, 보기에도 안 좋고.

       

       피를 잔뜩 뒤집어써서 기분도 나쁘고.

       

       이건 쓰지 말자.

       

       다행히 점찍어둔 사람들은 안 죽었네.

       

       일부러 약하게 한 보람이 있었어.

       

       ···아아, 후회된다.

       

       경비를 하고 있던 그 남자, 살려둘걸.

       

       처음 만난 거라 다들 그 정도 하는 실력인 줄 알았는데.

       

       설마 실을 눈치채는 것조차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생존자 명단에 넣어주는 거였어.

       

       

       “괴, 괴물···!”

       

       “으음···. 괴물이라니, 실례인데. 사람이라고 불러주시겠어요?”

       

       

       무례하긴.

       

       나는 괴물 따위가 아니다.

       

       너희들처럼 사리사욕을 위해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녀석들에 비하면 말이지.

       

       작가님이 너희들을 증식시키지 않았다면 나도 이렇게 죽이고 다닐 필요는 없었다고.

       

       괜히 찝찝해지게 말이야.

       

       

       “으음, 열셋···. 서른 명은 무리겠다. 저기, 앞으로 몇 명 남았어요?”

       

       “마, 말할 것 같냐, 이 악마야!”

       

       “아, 거참. 악마 아니라니까.”

       

       

       이를 어쩐담.

       

       ···뭐, 좋아.

       

       어쩔 수 없지. 미리 보내줄까.

       

       양쪽 반장갑을 모두 소모하여 남은 사람들에게 선물을 건네주었다.

       

       

       “자아, 앞으로 저희는 술래잡기를 할 거에요.”

       

       “차라리 죽여라! 너의 명령에는 따르지···.”

       

       “조용히 해. 내가 말하고 있잖아.”

       

       

       하아.

       

       왜 꼭 화를 내야 말을 듣는 걸까.

       

       편하게 가면 안 될까?

       

       분위기가 가라앉아버렸잖아.

       

       

       “자아, 조금 소란이 있었네요. 다시 이야기해도 괜찮을까요?”

       

       “으, 윽···.”

       

       “술래잡기의 내용은 간단해요! 여러분들은 산 중턱에 있는 산장에 있는 학생들을 습격하시면 된답니다!”

       

       “하, 학생을 습격하라고···?”

       

       “한 명이라도 죽인다면 살려드리죠.”

       

       

       너무 무서워하는 것 같아서 당근을 살살 흔들어주었다.

       

       으음, 역시.

       

       쓰레기 같은 눈빛이 더 쓰레기 같은 눈빛으로 변하는구만.

       

       의욕이 생긴 것 같아서 다행이야.

       

       힘내서 주인공 일행을 습격하라고.

       

       그래야 우리 히로인과 주인공이 성장하니까.

       

       딱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패주면 좋겠다.

       

       

       “자, 빨리 가세요. 늦으면 어떻게 되어도 몰라요?”

       

       “히, 히익?!”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기겁하면서 도망가면 조금 상처받는다고.

       

       그렇게 무서운 얼굴인가?

       

       아닌데. 거울 봤을 때는 분명히 예뻤는데···?

       

       

       “자아, 그럼 어디 간부님 얼굴 좀 뵈러 가볼까.”

       

       

       십이지라고 했던가.

       

       으음, 너무 많아서 어떤 놈일지 궁금하네.

       

       과연 무슨 동물일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 선작수 3등이랑 PD픽에 올라갔다는걸 알게되었어요

    다들 TS순애를 좋아하는게 분명해

    ***

    피곤하다아 님, 32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독자님들 덕에 저는 마음만큼은 항상 건강하답니다!

    바르나전투 님, 19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별 이유 없었군요···!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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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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