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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수군거린다기보다는 떠드는 소리였다.

       

       내용을 들어 보면···.

       

       “크리스가 큰 일을 하기는 했지.”

       

       “맞아요. 저렇게 누워 있으실 분이 아닌데…”

       

       여자의 목소리였다.

       

       굉장히 안타까워하는 어조가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뉘앙스였다.

       

       “이럴 때가 아니지. 내 술 한 번 더 올려야겠네.”

       

       클로셀 영감의 목소리였다.

       

       조금 취했는지 목소리에 감정이 다분히 섞여 있었다.

       

       “그러고 있지 말고 얼른 일어나시게…”

       

       들을수록 점점 분위기가 이상한데?

       

       클로셀영감의 움직임이 세세하게 느껴졌다.

       

       지금 손에 쥔건 술이고.

       

       조르륵 –

       

       이건 잔이고.

       

       다음 행동이 이상했다.

       

       “….?”

       

       술잔을 왜 돌려?

       

       클로셀 영감이 몸을 수그리기 시작했다.

       

       어찌나 정성스러운지 경건함 마저 느껴지는 동작이었다.

       

       “….?”

       

       이 영감탱이가 미쳤나···.

       

       몸이 한 번 더 수그려지고 있었다.

       

       나는 누워 있던 자세 그대로 슬쩍 눈을 떴다.

       

       “….”

       

       움찔.

       

       “자네…?”

       

       스으윽 –

       

       몸을 일으켜서 주위를 둘러보니 가관이었다.

       

       내가 누워 있던 곳은 꽃 천지였고, 심지어는 앞에 제삿상까지 놓여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엘프들까지.

       

       “….상갓집이 따로 없네.”

       

       순간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

       

       “….”

       

       그리고 어마어마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

       

       “의식이 성공했다!!”

       

       “가지를 피운자가 일어났다!!”

       

       의식이 성공해···?

       

       신이 난 건 엘프들 뿐만이 아니었다.

       

       제삿상 근처로 옹기종기 모여 있던 엘프의 영혼까지 신이 나 있었다.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영혼들의 상태가 아주 좋았다.

       

       배가 불러 보였고, 표정에 만족감이 가득했다.

       

       파라몬 영감이 흡족한 얼굴로 나에게 걸어왔다.

       

       “이번에는 바로 눈을 뜨는군.”

       

       “….그러게요?”

       

       놀랍게도 저번과는 달리 눈이 아프지 않았다.

       

       한동안은 눈을 감고 지내야 할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나름대로 자네가 하던걸 따라 해 보았네. 다행히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야.”

       

       “…예?”

       

       꽤 그럴싸한 제삿상이기는 했다.

       

       음식의 배치도 깔끔하고 초의 위치도 완벽했다.

       

       방금 클로셀 영감이 한 걸 보면 절차도 나쁘지 않았다.

       

       덕분에 엘프의 영혼이 아주 편안했던 것 같지만.

       

       그런데 제사를 지낸다고 저주의 반동이 사라진다?

       

       금시초문이다.

       

       어리둥절하게 눈을 만지고 있으니 엘프의 영혼 하나가 미끄러져 왔다.

       

       스으윽 –

       

       무언가 전달 하려는 듯 눈 근처를 만지는 영혼.

       

       “…예?”

       

       영혼의 손가락이 엘프들을 가리켰다.

       

       “허…이게 효과가 있다고?”

       

       제사를 지내면서 무언가를 간절히 빌었던 모양이다.

       

       아마 그것이 나의 회복이었을 테고.

       

       “어르신들이 하신 건가요?”

       

       영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이렇다.

       

       엘프들이 제사를 지냈고, 그게 기가 막히게도 올바른 형식이었다.

       

       얼떨결에 제삿상을 받게 된 영혼들이 엘프들의 마음을 들은 것 같았다.

       

       저주에 대한 반동을 그들이 해소해 준 것일테고.

       

       “…조상신이 치성을 들어 준 셈인가?”

       

       얼떨결에 조상을 모시는 게 가능해?

       

       영혼이 손을 들어 세계수를 가리켰다.

       

       “허…”

       

       나무 위에는 많은 수의 영혼들이 앉아서 쉬고 있었다.

       

       큰 신가물이니, 저만큼 편안한 장소 역시 없을 것이다.

       

       “별일이 다 있네.”

       

       아주 가끔.

       

       요즘은 보기가 더 힘들어졌지만 그런 말이 있다.

       

       ‘당산나무를 향해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

       

       정성을 갸륵하게 여긴 신령이 도움을 줄 때가 있긴 하다.

       

       세계수를 도와 준 보답이라고 보면 되려나?

       

       

       ***

       

       “자자, 각종 운세를 봐 드립니다!!”

       

       웅성웅성 –

       

       “돈을 벌고 싶다면, 여기로! 사랑이 필요하다면 역시 여기로!”

       

       돗자리를 피자마자 대박이 났다.

       

       엘프의 은인격이 되어버린 나는 어디를 가든 엘프들을 몰고 다녔다.

       

       도시를 구경하면 엘프들이 모여 들었고, 밥을 먹으면 항상 음식들이 한 두 가지씩 추가되어 나왔다.

       

       인기 무당이 된 것이다.

       

       덕분에 돗자리 주변에 모여든 엘프들도 그 수가 굉장했다.

       

       “흠흠, 그래 뭐가 궁금해서 오셨나요?”

       

       아름다운 엘프 하나가 내 앞에 앉았다.

       

       녹색의 눈동자에 오뚝한 코.

       

       가지런한 눈썹에 빨간 입술까지.

       

       관상학적으로 아주 예쁜 얼굴이었다.

       

       실제로 굉장히 예쁘기도 했다.

       

       “흐음…”

       

       엘프의 고민은 인간들과는 많이 달랐다.

       

       기본적으로 이 종족은 관상들이 끝내준다.

       

       하나같이 아름다운 대칭을 이루고 있고, 이마부터 턱 까지 어느하나 모난 부분이 없었다.

       

       조화 그 자체인 것이다.

       

       관상은 ‘생긴 대로 산다’ 에 초점을 둔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느낌 상 엘프들은 정말 생긴 대로 조화로웠다.

       

       문제는 조화롭기 때문인지 그 팔자조차 조화롭다는 것이다.

       

       이게 굉장히 까다로운 부분이다.

       

       “가지를 지키는 잎사귀가 되고 싶어요.”

       

       “흐음…”

       

       딸랑 –

       

       방울을 흔드니 점사가 나오기는 했다.

       

       그런데 그게 평소같지 않게 두루뭉술했다.

       

       “이대로 가면 무난하게 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정말요?”

       

       눈이 반짝거렸다.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는 데 기쁜 감정이야 당연한 거지만···.

       

       문제는···.

       

       이걸 문제라고 볼 수 있긴 한 걸까?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엘프가 자리를 비키고 또 아름다운 엘프가 자리에 앉았다.

       

       역시나 관상이 조화롭고 기운 역시 조화롭다.

       

       그리고 굉장히 예쁘다.

       

       살짝 어려 보이는 엘프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물어왔다.

       

       “저는 엘프의 숲을 예쁘게 가꾸고 싶어요.”

       

       무슨 점사가 나올지 뻔했다.

       

       딸랑 –

       

       방울을 흔드니 느낌이 딱 왔다.

       

       이 엘프도 원하는 걸 무난하게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사는 세월도 길고 팔자가 조화롭다 보니 뭐든 무난하다.

       

       아득하게 뛰어난 인물이 나오기는 쉽지 않겠지만···.

       

       어쨌든 아무나 와서 어떤 점사를 보든 그 결과가 비슷비슷하다.

       

       “자연과 가까운 종족이니 무난하게 이룰 수 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이래서는 점사를 봐주는 의미가 없다.

       

       불운을 피해가고 조금 더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점의 본질인데···.

       

       이미 행복할 사람들 행복할 거라고 알려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심지어 엘프들은 욕심도 없어서 많은 걸 바라지도 않는다.

       

       인간들이야 더 많은 돈, 더 큰 명예, 아름다운 여자 같은 것들을 바라지만 엘프들은 그런 게 없다는 것이다.

       

       “에라이…이게 뭐 하는 짓이야 도대체…”

       

       원한도 없고 욕심도 없다.

       

       바라는 것들이 다들 착하고 삿된 구석이 없었다.

       

       그냥 착하게 살고, 착하게 살아서 복이 있다.

       

       딱 이런 종족이었다.

       

       “어이가 없네 진짜…”

       

       그때 한 남자가 와서 내 앞에 앉았다.

       

       “흠흠…크리스님…?”

       

       나는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앞에 앉은 것이 한스였기 때문이다.

       

       “니가 여길 왜 앉아?”

       

       “저는 역시 점을 봐주시지 않는 겁니까…?”

       

       “동종업계는 안 봐.”

       

       한스가 시무룩한 얼굴로 일어나려다가 다시 앉았다.

       

       “저번에 보니 점이랑 관상은 다르다고 하시던데… 그거라도…?”

       

       “너는 관상이 필요가 없는데?”

       

       “예?”

       

       “넌 생긴 대로 사는 게 아니라 사는 대로 생겨진 놈이라…”

       

       “그게 무슨 말입니까?”

       

       말 그대로 얼굴의 상을 관상이라 부른다.

       

       이 관상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지만 다른 것이 변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스처럼 바른 삶을 위해 나아가는 참된 성직자들의 큰 특징이다.

       

       “너는 관상 말고 심상대로 사는 놈이야.”

       

       “…마음이요?”

       

       “그래. 얼굴 신경 쓰지말고 가서 마음이나 갈고 닦아.”

       

       “저번에는 생긴 대로 산다고…?”

       

       확실히 그런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었다.

       

       귀찮아서 대충 대답하며 넘기기는 했지만···.

       

       “생긴 것 말고, 마음에서 나온 표정을 인상이라 그래. 성직자가 인상이 좋아야지 관상이 좋아서 뭐 하게? 생긴 대로만 신을 모시게?”

       

       “아….”

       

       무언가를 생각하던 한스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일어났다.

       

       그래, 점사를 봐줬을 때 저렇게 바른길을 찾아가면 보람찬 일이다.

       

       한스의 경우는 점을 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한스가 5쿠퍼를 손에 쥐고 돈통에 넣으려고 다가왔다.

       

       “복채 필요 없어. 점도 안봤는데 무슨…”

       

       “아니…그게 아니라… 이거 꼭 넣어야 합니다.”

       

       “필요 없다니까?”

       

       한스가 우물쭈물 망설이며 고민하더니 결국 돈통에 돈을 집어넣었다.

       

       “저는 스승님처럼 되기는 싫습니다…그 액운이라는거 받기 싫어요.”

       

       “허…”

       

       구교살을 뚝 떼어 가더니 결국 구설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부르르 머리를 떠는 한스를 보니 클라인영감이 꽤 고통을 받은 듯 보인다.

       

       “그러게 복채를 떼 먹으면 재수가 없다니까…다음!”

       

       이번에 앉은 엘프는 의외의 인물이었다.

       

       “로메넬님…?”

       

       굉장히 예쁘다.

       

       한스의 얼굴을 보다가 로메넬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로메넬이 따스한 미소를 피우며 입을 열었다.

       

       “지금 세계수님의 육신에는 누가 머물고 계신가요?”

       

       

       ***

       

       텅 빈 눈동자들이 허공을 응시했다.

       

       손 발이 묶인 그들의 얼굴에는 표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정신이 나가버린 사람처럼 침을 흘리고 있는 자들도 있었다.

       

       “세계수와 연관된 거의 모든 자들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

       

       조용한 침묵이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지만, 그 어떤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그들의 가운데에 서 있던 남자에게서 서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쓸모없구나.”

       

       “….!”

       

       “허나, 이렇게 하면 그 쓸모가 생길 것이다.”

       

       허공을 휘젓는 손.

       

       그 손을 따라 막대한 마나가 휘몰아쳤다.

       

       부르르 –

       

       지켜보던 모든 네크로맨서들이 몸을 떨었다.

       

       그들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저 마법은 그들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마법이었으니까.

       

       “커헉…!”

       

       손발이 묶인 자들에게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몸이 쪼그라들며 살갗이 흘러내렸다.

       

       피부가 벗겨지며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 속에 있던 살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투둑 –

       

       툭 –

       

       그곳에 서 있는건 이제 인간이 아니었다.

       

       뼈만 남은 체로 서 있는 그들을 언데드라고 부르지 인간이라 부르지는 않으니.

       

       “알아서 쓰도록.”

       

       “….예, 알겠습니다.”

       

       “세계수에 문제가 생긴 것 같군. 확인해 봐야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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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I Became a Shaman in a Fantasy World

판타지 세계의 무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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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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