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2

        

         

       의사는 매우 피로해 보였다. 동안으로 보일법한 앳되어 보이는 얼굴과 토끼를 연상시키는 무해해보이는 인상과는 다르게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짙게 자리해 있었고, 모진 세파에 찌들어버린 듯 염세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의사의 뒤편에는 하얀 간호복을 입은 여자가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인상이 흐릿했다. 예쁘다, 귀여워 보인다, 어려 보인다 같은 정보는 분명히 들어오는데 안개로 정보를 흐릿하게 감싸서 영상화가 되지 못하게 방해하는…. 그런 기이한 느낌이었다.

         

       『 SAE 』

         

       간호사의 명찰 역시 마찬가지였다. 앞부분은 분명히 읽을 수 있었으나, 뒷부분은 분명히 글자가 있는데도 제대로 읽히지 않는 느낌이었다.

         

       난독증에 걸린 사람이 이런 느낌을 받지 않을까?

         

       “일어나셨으니 시작해볼까요? 후….”

         

       의사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더니 물었다.

         

       “일단…자신의 이름은 기억납니까?”

       “네? 네, 당연하죠…. 사이고 리세에요….”

       “좋습니다. 나이도 기억나나요?”

       “네…. 21살이에요….”

       “21살…흠…네. 알겠습니다.”

         

       스윽.

         

       의사는 리세의 말을 듣더니 손에 들고 있던 차트에 무언가를 휘갈겨 썼다.

         

       “좋아요…. 그럼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기억은 뭐죠?”

       “네? 마지막이요? 그러니까…. 그러니까…신사에 공양물을 바치러 갔는데…어레? 더 기억이 나질 않아요….”

       “하아…. 거기부터입니까.”

         

       의사는 피곤하다는 듯 이마에 손을 갖다 대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곤 아주 깊고 길게 한숨을 쉬더니 리세에게 말했다.

         

       “사이고 리세 씨. 이 얘기도 벌써 5번째인 것 같긴 하지만….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리세 씨는 지금 Schizophrenia…아니, 통합실조증(Schizophrenia) 환자입니다.”

       “네?”

         

       통합실조증.

       다른 나라에서는 정신분열병, 정신분열증, 조현병 등으로 불리는 정신병.

         

       리세는 자신이 그런 중병에 걸렸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의사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의사는 지긋지긋하다는 듯 작게 한숨을 쉬더니 재차 설명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드리는 게 벌써 5번째입니다. 사이고 씨는 지금 통합실조증과 함께 기억상실 증후군(amnestic syndrome)에 걸렸어요. 그래서 제가 아무리 설명해드려도 어느 순간이 되면 다시 잊어버리시더군요….”

       “기억상실, 이요? 하지만….”

       “네. 기억이 또렷하시겠지요. 사이고 씨가 걸린 기억상실은 순행성 기억상실이라서 새로운 정보를 기억하기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과거 기억은 잘 떠올리시는 것 같지만…후우. 이게 참….”

       “순행성, 기억상실….”

         

       의사는 다시 한번 손에 들고 있는 차트에 무언가를 적었다. 그리곤 간호사에게 슬쩍 눈짓했다.

       의사의 신호를 받은 간호사는 노트 하나를 의사에게 건네주었고, 의사는 그걸 받은 뒤 살짝 열어보곤 말을 이었다.

         

       “참 고약한 상황입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사이고 씨의 과거 기억은 왜곡된 상태입니다.”

       “네? 왜곡이요?”

       “왜곡이 그럴듯해서 처음엔 우리도 사이고 씨를 망상장애(Delusional Disorder)로 진단했었어요. 그런데 시일이 지나갈수록 환각, 환청 증상과 함께 점점 망상의 정도가 비현실적으로 변하더군요. 거기다가 이걸 보시죠.”

         

       의사는 노트 일부분을 펼쳤다.

         

       『 오늘 외출을 나갔다. 나가자마자 태양이 나에게 인사를 했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태양이 하는 말에는 욕이 섞여 있어 피가 들끓고 뇌가 굳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걸어가는데 내 몸에서 땀이 흐르는데 해의 사주를 받은 독극물을 가진 개미의 짓이다. 흙더미 속에 금속이 내 행동을 의사에게 감시해서 보내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신이 나의 뒤에서 따라붙었지만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내 머리 위에 앉아서 의사를 대신 봐주는 것 같다. 신은 망을 봐주면서 간호사가 오는 것을 잘 감시해주었는데 간호사는 항상 주사로 나를 세뇌하려고 하고 있다. 신은 약물을 맞으면 웃음을 지르며 싫어한다. 새벽에 오는 간호사는 악마가 간호사 옷을 입고 변장을 했는데 주사기 속에 작은 칩이 숨어있어 맞으면 내 몸을 조종하고 뇌를 내 마음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데 그러면 코에서 피 냄새가 나고 입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빨리 해를 피해서 나무 그늘에 가서 개미를 보고 있으면 개미가 내 행동을 의사에게 전달해주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외출하는 것을 그만두고 돌아가야 한다. 의사가 내가 이걸 적는 것을 도청기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는 나를 사랑하지 않지만, 간호사보다는 나았다. 』

         

       “이, 이게 뭐예요?”

         

       리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한쪽 면에 빼곡하게 적혀있는 글자였다. 놀랍게도 노트는 리세의 필체로 쓰여있었는데, 그 내용이 지리멸렬하고 이해 못 할 문구로 가득 차 있어서 누가 보더라도 정신병 환자가 썼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리세는 놀란 얼굴로 의사를 쳐다보았고, 그는 새파랗게 변해버린 그녀의 얼굴을 보곤 노트를 덮었다.

         

       “리세 씨의 일기장입니다. 보시죠.”

         

       의사가 보여준 노트의 표지에는 『 일기장 』이라는 단어가 리세의 필체로 적혀있었다. 그리고 표지 아랫부분에는 『 사이고 리세 것. 절대 훔쳐보지 말 것. 』 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경고문구 옆에 아주 조그맣게 『 의사 제외 』라는 글도 있었다.

         

       “이게, 이게 제 일기장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의사는 일기장을 간호사에게 넘겼다.

         

       “대충 상황은 인지하셨을 테니까 설명을 마저 하겠습니다. 지금 사이고 씨는 통합실조증에 걸려있는 상태입니다. 저 일기장에서 보듯, 비현실적인 망상 증상이 보여요.”

       “그럴 리가….”

       “그런데 문제는, 사이고 씨의 뇌에서 문제가 보이질 않는다는 거예요.”

       “네?”

       “보통 통합실조증 환자분들은 도파민이 증가되어 있는 경향이 보이는데, 리세 씨는 멀쩡하더군요. 그뿐만 아니라 전두엽, 뇌피질, 기저핵, 측뇌실, 제삼뇌실…. 전부 정상이었습니다. 거기다가 기억상실 역시 마찬가지예요. 해마, 간뇌 모두 정상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의사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약도, 전기 충격 요법도 안 먹힌다는 이야기죠.”

         

       참 곤란한 일이죠?

         

       의사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리세는 의사의 말에 제대로 반응할 수 없었다. 상상도 못 했던 정보들로 인해 머리가 너무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팽글팽글 도는 것 같다.

         

       충격 때문에 뇌가 표백된 것처럼 하얗게 변했고, 멈춰버리기라도 한 듯 제대로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의사는 리세가 어떤 상태에 놓여있는지는 별 관심이 없는지 리세가 별로 알려고 하지 않은.

       아니, 결코 알고 싶지 않은 정보들을 입으로 뽑아내었다.

         

       “분명 증상을 보면 뇌에 영향이 나타나야 정상인데…. 그래서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한참 고민하다가 실력 있는 카운슬러를 찾아가 조언을 받았죠. 그리고 그분에게서 사이고 씨에게 유효할 것 같은 치료 방법을 들었습니다.”

         

       의사는 말했다.

         

       “지금 사이고 씨는 Trauma, 그러니까 심적 외상(Psychological trauma)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 암시를 걸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더군요. 즉, 스스로 세뇌를 한 것이라는 겁니다. 그렇기에 전통적인. 그래요. 우리 병원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전기 충격 요법과 약물보다는 디프로그래밍(deprograming)을 통해 자연스레 세뇌에서 벗어나고 현실을 인지하게 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리라 판단했고, 우리는 그 방법으로 사이고 씨를 낫게 할 겁니다.”

       “세, 세뇌요?”

       “그렇습니다. 사이고 씨는 충격적인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이라는 가상의 존재를 창조해냈고, 스스로 속박되고 광신(狂信)하고 맹신(盲信)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상의 존재를 중심으로 과거를 왜곡하고 기억을 바꿨습니다.”

         

       의사는 그렇게 말을 이어가다 리세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사이고 씨. 지금 당신이 기억하고 있는 현실 대부분은, 실제와 다릅니다.”

       “그, 럴 리가 없어요….”

       “사이고 씨. 저를 믿어주십시오. 저를, 우리 병원 의료인을. 반드시 믿어주십시오. 저희는 사이고 씨의 완치를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반드시 병을 고쳐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탈세뇌(deprograming)의 과정이 괴롭고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사이고 씨 혼자 고통스러워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습니다. 함께 세뇌를 풀고, 함께 괴로워하며, 함께 병을 고치는 겁니다. 저는 사이고 씨를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아니야! 나는 미치지 않았어요!”

       “후우…. 시작하겠습니다. 준비하시죠.”

         

       의사가 말하자 뒤에 가만히 서 있던 간호사가 리세를 향해 다가왔다. 그녀는 연약해 보이는 외관에서 나왔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괴력으로 리세를 제압하고 구속복(Straitjacket)을 입힌 뒤 단단히 침대에 결박했다.

       중간중간 리세가 소리를 지르며 반항하려고 했으나 간호사는 팔이 여러 개라도 되는 듯 손쉽게 그녀를 제압하면서 구속복을 착용시켰고, 결국 리세는 몸이 단단히 묶여 옴짝달싹 못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거 풀어! 풀어줘요!”

       “자해나 폭력 행위를 막으려는 조치입니다.”

       “이게 무슨 짓이야아아아! 풀어! 풀라고!”

         

       갑자기 묶이게 된 리세는 위기감과 공포를 느끼며 몸을 뒤틀었지만 단단한 구속은 빠져나오기는커녕 침대조차 제대로 흔들리게 하지 못했다. 의사는 리세가 진정할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았다.

         

       곧 그녀가 제풀에 지쳐 숨을 헐떡이며 가만히 있게 되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

         

       “일단 가족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사이고 씨. 당신의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시죠?”

       “흐윽…이거 풀어줘요….”

       “그럴 순 없습니다.”

       “풀어줘…!”

       “치료에 협조적으로 나오신다면 금방 풀려날 수 있습니다.”

       “흐윽…. 흑….”

         

       리세는 뭐가 그리 서러운지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하지만 이내 현실을 받아들인 것인지 울먹이는 소리로 의사의 질문에 답했다.

         

       “아버지랑 저…이렇게 둘이에요. 흑…. 흡….”

       “사이고 켄지 씨. 맞습니까?”

       “네…. 흑….”

       “그렇다면 사이고 켄지 씨의 직업은 어떻게 되죠?”

       “신관…흡…신관이에요….”

         

       사삭.

         

       의사는 그녀의 말을 듣곤 차트에 무언가 기록했다.

         

       “그렇군요. 그럼 다음은 교우관계입니다. 학창시절부터 함께해온 절친이 있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네….”

       “몇 명이죠?”

       “4명이요….”

       “이름이 어떻게 되죠?”

       “무나카타 아이리…. 호죠 마히로…. 타카무라 시오리…. 니시카와 레나….”

       “그렇군요. 그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만난 날은 언제죠?”

       “일주일 전이요….”

       “친구들과 모여서 무엇을 했나요?”

       “다 같이 카페에 모여서 이야기했어요….”

         

       사삭.

         

       의사는 다시 한번 차트에 무언가를 휘갈겼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리세와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리세 씨. 잘 들으세요. 당신의 아버지, 사이고 켄지 씨는 신관이 아닙니다.”

       “네?”

       “그리고 당신의 절친은 전부 죽었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 플러스 전환이 됐습니다.
    너무 기쁩니다!

    여러분 덕분에 이렇게 플러스 전환을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영광을 독자 여러분께 돌립니다!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