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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0

       세상을 아가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싸들이야 뭐 어떨지 모르겠는데, 당연히 사람은 사람을 대할 때 분류를 나누어 대한다.

        

       내 가족, 친구, 친구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럭저럭 친한 사람, 그냥 지인, 지인이라고 하기에는 얼굴만 알고 지내는 직장 동료 등등…… 이걸 나누는 것이 삭막하다고 하는 사람은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다. 이걸 나누어야 상대방과 불편하지 않게 지낼 수 있다.

        

       그냥 만나자마자 바로 친구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멀리서부터 차근차근 서로에 대해서 파악하고 다가가는 쪽이 후에 서로 불편해지지 않는 방법이니까.

        

       게다가 이렇게 분류를 나누어 두어야 상대방에게 도움을 줄 때, 혹은 내가 도움을 청해야 할 때 연락할 사람을 바로 떠올릴 수 있기도 하고.

        

       물론 학교에서는 다소 다른 이야기이긴 했다. 학교에서 서로의 득실을 따지는 것은 성적을 나눌 때뿐인데, 그 성적이라는 게 내가 공부를 잘 해야 하는 거지 상대방과 합의한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외에는 서로 손해와 이득을 계산해야 할 일이 없으니 누구랑 처음 얼굴을 봐도 그냥저냥 편하게 지낼 수 있다. 애초에 학교라는 곳은 그 근처에 사는 애들이 모이는 곳이고, 그러니 한 학군 내의 빈부격차가 극단적이지 않은 이상 그냥저냥 비슷한 아이들이 모인다. 나이도 비슷하니, 당연히 서로 그냥저냥 알고 지낼 수 있었고.

        

       문제는, 이쪽 세상의 아카데미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좋아요, 어차피 당신과 저는 서로 존댓말을 하는 사이였고, 저도 그 말투 때문에 벽을 느끼지는 않아요. 우리 둘은 서로 할 말 다 하는 사이니까.”

        

       샤를로트는 이마에 올렸던 손을 내려 허리에 올려두며 말했다.

        

       “그런데 당신을 잘 모르는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황녀라는 사람이 어느 순간 갑자기 어떤 사람들한테는 말을 놓고, 자신에게는 정중하게 존댓말을 쓴다면, 벽을 세우는 것처럼 느껴지잖아요.”

        

       상대가 친구들이라면 몰라도, 벽 세우는 건 맞는데. 나는 누구에게나 존댓말을 쓰던 때부터 그렇게 행동해왔다.

        

       “……그러니까, 상대가 너를 무서워한다고. 벽을 세울 거면 적당히 세워야지.”

        

       계속 못 알아먹은 표정을 한 나를 향해 앨리스가 타박하듯 말했다.

        

       “네 이미지를 생각해봐, 너 자신은 슬슬 잊고 있는 것 같은데, 너는 한때 온 제국 귀족의 두려움의 대상 중 하나였잖아. 지금은 그중에서 유일하게 바깥에 있는 존재고.”

        

       아, 그렇구나.

        

       아카데미와 학교가 비슷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아카데미=학교’는 아니었다.

        

       여기는 귀족들이 지내는 곳이었으니까. 게다가 아예 반이 나뉜 쪽으로 가면 평민들도 있었고.

        

       굳이 귀족과 평민의 관계까지 가지 않는다고 해도, 귀족 사이에서도 그 관계의 높고 낮음은 심하게 차이 났다.

        

       서로 앙숙인 관계도 있고, 사실상 주인과 가신인 관계도 있고…… 아무튼 그냥 학교와 비교하기에는 차이가 너무 심했다.

        

       “요즘 들어 긴장을 풀고 지내는 건 좋은데, 긴장을 풀었다고 너무 멍하게 지내지는 마. 그래도 기초적인 부분은 기억하고 살아야 할 거 아냐.”

        

       “…….”

        

       앨리스의 말은 너무나 이치에 맞는 이야기라서 할만한 대답이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야 간단하지.”

        

       내가 샤를로트에 물었더니, 클레어가 불쑥 끼어들었다.

        

       “다른 애들한테도 말을 놓아버리는 거야. 간단하잖아?”

        

       “…….”

        

       하지만 클레어의 그 말에 우리 셋은 침묵에 빠졌다.

        

       바로 조금 전까지 나를 타박하고 있던 앨리스나, 애초에 이 주제를 꺼낸 샤를로트도 ‘정말 그걸로 괜찮을까?’ 하는 분위기였다.

        

       자기들이 이야기를 꺼내기는 했지만, 정작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들으니 그게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것인지 확 체감된 모양이다.

        

       모든 아이에게 친근감을 가지고 반말하는 실비아 팬그리폰이라.

        

       ……그거 나도 상상이 안 가는데?

        

       “그런데 그거 외에는 또 방법이 없네.”

        

       한참을 고민하던 앨리스가 겨우 말을 꺼냈다.

        

       “그래요. 그렇다고 다시 모두에게 존댓말을 쓰던 시절로 돌아가라고 할 수는 없죠.”

        

       “응, 나도 그건 싫어.”

        

       샤를로트와 클레어도 거들었다.

        

       “그럼…… 저는 오늘부터 모두에게 같게 말을 놓으면 되는 걸까요?”

        

       “…….”

        

       나의 질문에 다들 잠깐 침묵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에서 당연하다는 듯 웃는 사람은 클레어뿐이었고, 앨리스와 샤를로트는 뭔가 불길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어쩌라는 거냐고.

        

       *

        

       일단 나는 그 셋의 말을 모두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만, 그 ‘모두’라는 것을 바로 아카데미 전체에 확산해서 적용한 것은 아니다.

        

       일단은 주변부터. 그래야 충격이 조금 덜할 테니까.

        

       “그러니까, 샤를로트, 오늘부터 너한테는 말을 놓을게.”

        

       “제가 존댓말을 쓰니 당신도 똑같이 하겠다고 한 거 아니었나요? 뭐, 그래도 좋아요.”

        

       샤를로트는 새침하게 말하면서도 별다른 충격 없이 받아들였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샤를로트는 기쁘게 웃고 있었다.

        

       “물론 저는 지금까지처럼 이 말투를 쓸 거예요. 저는 말 그대로 ‘모두에게’ 이렇게 하니까.”

        

       “물론이야.”

        

       나는 샤를로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영 어색했다. 샤를로트는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고, 이건 한없이 진심이었지만, 뭔가 친해진 직장 동료한테 처음으로 말을 놓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실 직장 동료에게 말을 완전히 놓아본 적은 없어서 정말로 그런 느낌인지는 잘 모르고, 그냥 내가 그랬다면 그랬을 것 같다는 말이다.

        

       그래도 나쁘지는 않은 기분이었다.

        

       좋아, 그럼 다음 친구한테도 적용해볼까.

        

       마침 점심시간에 잠깐 바깥에 볼일이 있다고 나갔던 소피아가 반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소피아, 안녕?”

        

       “뭔가요?”

        

       내가 그렇게 인사하자마자, 반으로 들어오던 소피아는 문을 붙잡은 채로 딱딱하게 굳어서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교실로 들어오려던 발을 뒤로 움직여 다시 교실 밖으로 나가더니,

        

       “뭐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요? 혹시 저를 이용해서 뭔가 하실 생각인가요? 우리가 서로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했던 건 제 착각이었나요?”

        

       뭔가 모를 말을 마구 꺼내놓고 있었다.

        

       “…….”

        

       “그러니까, 처음부터 말을 놓았으면 좋았잖아요.”

        

       소피아의 반응을 본 내가 샤를로트 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샤를로트는 한숨을 푹 쉬었다.

        

       “음…… 타이밍을 놓쳤다고 해야 할까.”

        

       앨리스가 나를 위로하려는 듯 말했지만, 사실 별로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아냐, 소피아, 괜찮아. 일단 와서 앉아봐.”

        

       클레어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소피아는 주춤주춤 자기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책상은 그대로지만, 어째 의자를 옆으로 살짝 옮겨서 나와 거리를 더 둔 것 같은데.

        

       “그게, 언니가 이제 다른 사람들과 조금 더 가깝게 지내겠다고 해서. 모두에게 이런 식으로 말을 놓기로 했어.”

        

       “하지 마요.”

        

       소피아가 정색하며 나를 보고 말했다.

        

       “하지 마요, 그거.”

        

       그리고 한 번 더 강조했다.

        

       ……아니, 그렇게까지 말하면 조금 상처받는데.

        

       “조금 전에 심장마비 걸릴 뻔했다고요. 옆에 계신 분들이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면 저는 법국으로 바로 도망갔을 거예요.”

        

       법국은 여기서 한참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간다고 해도 벨부르 군대가 점령하고 있는데.

        

       소피아는 차라리 제국에 계속 있는 편이 신상에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나마 여러분이랑 꽤 오래 알고 지냈고, 옆에 계신 분들의 반응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저니까 이 정도인 거지, 분명 조금이라도 심장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대로 심장마비로 쓰러졌을지 몰라요.”

        

       내가 무슨 사신이라도 되냐고.

        

       “으음…… 왜 그럴까? 언니는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 아닌데.”

        

       클레어의 말에 앨리스, 샤를로트, 소피아의 얼굴이 동시에 그녀를 향해 돌아갔다. 다들 그게 말이냐는 소리를 하고 싶다는 표정이었지만, 상대가 클레어인 이상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달았는지, 다들 금세 다시 내 쪽을 보았다.

        

       “……음, 표정 때문인가?”

        

       앨리스가 턱에 손을 올리고 중얼거렸다.

        

       “확실히, 표정이 문제일지도 모르겠네요.”

        

       샤를로트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표정뿐만이 문제는 아니지만, 표정도 큰 이유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죠.”

        

       소피아가 보충하듯 그렇게 말했다.

        

       “내 표정이 왜?”

        

       내가 물어보자, 앨리스가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다년간의 수련으로 네 표정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지만, 다른 사람은 그렇지 못할 테니까. 네가 반말하건 존댓말을 하건, 그렇게 무표정에 평탄한 어조를 유지하면 상대도 무서울 거야.”

        

       “……그럼 웃으면서 인사하면 되는 건가?”

        

       “웃으면서 인사했다간 상대방의 심장이 한 번에 꽉 조여져서 뇌출혈이 일어날지 몰라요.”

        

       아니, 얘는 아까부터 뭐라는 거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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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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