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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0

        

         

       토키타카가 등을 돌려 테라스로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지저분한 테이블이었다.

         

       야외 테라스에서 티타임을 즐기던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덩그러니 놓인 테이블 위에는 빈 찻잔과 스콘 부스러기만 남아 있었다. 게다가 잼을 어떻게 먹은 것인지 테이블 곳곳에 잼이 퍼져 있었다. 이곳저곳에 덕지덕지 묻은 데다가 바닥에까지 흩어져 있는 모습이, 잼을 바른 것이 아니라 잼에 스콘을 집어 던지면서 논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게 했다.

         

       ‘음식 던지기라니, 그 무슨.’

         

       토키타카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상에 피식 웃고 말았다.

         

       신사처럼 보이는 사람이 잼을 산더미처럼 퍼다 놓은 곳에 스콘을 던지며 노는 모습이라니.

         

       동심이라고 보기에는 한없이 기묘해 보이는 모습이 아닌가.

       특히나 나이가 꽤 들어 보였던 아까 남자의 모습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그건 동심이 아니라 치매라고 표현해야 맞으리라.

         

       ‘잠깐만. 그런데 그 남자가 나이 들어 보였던가?’

         

       토키타카는 문득 떠오르는 의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콘을 먹던 사람은 어떻게 생겼지?

       잼을 바를 때 어떻게 발랐었지?

       나이가 몇이었지?

       남자는 맞았나?

         

       의문은 꼬리를 이어가며 머릿속에 떠올랐다.

         

       분명 본 것 같은데.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라서, 사람을 잘 기억하는 게 특기인데.

         

       그런데 그 남자의 얼굴이 뚜렷하게 기억이 나질 않았다.

         

       어렴풋이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남자?

       그래. 남자인 것 같다.

         

       양복을 입은 것 같았고.

         

       피부는 하얀색이었던가?

       누렇게 뜨지 않았던가?

         

       스콘을 어떻게 먹었지?

       맛에 감탄할 때 표정은?

         

       토키타카는 머릿속을 가득 메우는 남자에 대한 의문에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왜 이런 게 떠오르는 거야.’

         

       중요한 일도 아니다.

       그냥 지나가다가 본, 일상의 풍경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그거에 관해서 왜 이렇게 깊이 생각해야 한단 말인가.

         

       토키타카는 생각을 저리 치워버리고 바람을 마저 쐬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생각을 멈추려고 할 때마다 육감이 생각을 멈추지 말라며 끊임없이 경고하였고, 그 때문에 그는 풍경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채 계속 생각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토키타카는 풍경을 즐기고 싶은 마음과 남자에 대해 고찰하고 싶은 마음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마음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고, 끊임없이 고뇌하면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도 못한 채 테라스의 난간을 앞에 둔 채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우두커니.

         

       그래.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저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면서.

       호수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냄새와 산에서 흘러나오는 코를 간질거리는 바람을 느끼면서 말이다.

         

       산에서는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가득 심겨 있었다.

       당연하게도 눈에 보일 정도로 커다란 꽃가루가 바람에 잔뜩 실려서 흘러나왔고, 그의 코를 사정없이 쑤시며 재채기를 유발하게 만들려 했다.

         

       ‘빌어먹을 꽃가루 같으니.’

         

       항상 이맘때만 되면 일본에 넘쳐나는 것이 바로 저 꽃가루들.

         

       편백나무 하나, 삼나무 하나에서 나오는 꽃가루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양이었다.

       사람 한 명을 세워놓고 그 아래에서 나무를 몇 번 흔들면, 떨어지는 꽃가루 때문에 밀가루 포대를 뒤집어쓰기라도 한 것처럼 하얗게 물들 정도다.

         

       그런 나무가 일본의 전 국토에, 산마다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 있으니 꽃가루가 범람할 수밖에.

         

       그 꽃가루는 눈보라를 연상케 할 정도로 온 하늘을 하얗게 물들이곤 한다.

         

       그는 꽃가루가 콧속에 쑤셔박히면서 나는 익숙한 냄새에 인상을 찌푸렸다가, 문득 의문 하나가 수면 아래에 가라앉았다가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잠깐만. 왜 갑자기 꽃가루를 생각했지?’

         

       위화감이 느껴진다.

       이상하다.

         

       분명 조금 전까지 그는 고민하고 있었다.

         

       풍경을 보고 싶은 마음과 야외 테라스에 있었던 남자에 대해 고찰하고 싶은 마음.

       이 두 가지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두 고민거리는 바닥에 처박히기라도 한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져버렸고, 그 대신에 꽃가루 알레르기도 없는데 꽃가루에 대한 고민이 갑자기 팍 떠오르면서 그의 머리를 가득 메웠다.

         

       이건.

       이상하다.

         

       누군가 생각을 조종하기라도 하는 것 같지 않은가.

         

       “젠장(くっそ)!”

         

       토키타카는 그제야 위기감을 느낄 수 있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이상하다.

       이곳은, 이상하다.

         

       그는 그제야 자신이 무언가에 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빌어먹을, 이딴 곳을 모임 장소로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무언가에 홀렸냐고?

       당연한 것 아닌가.

         

       액살의 집이라고 불릴 정도의 악명 높은 흉가다.

       그렇다면 당연히, 악령밖에 더 있겠는가!

         

       ‘도망쳐야 한다.’

         

       토키타카는 척추서부터 머리끝까지 순식간에 솟구치는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이를 꽉 악물고 몸을 돌려서 다시 실내로 들어갔다.

         

       그리고 평온을 가장하기 위해 얼굴 근육에 힘을 콱 준 채 걸어갔다.

         

       그가 들어왔던 그곳으로.

       줄을 서서 들어왔던 바로 그 문을 향해서.

         

       ‘절대로 뛰어서는 안 돼.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그는 당장이라도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면서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문과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그러고픈 마음을, 공포를 누르고 그는 천천히 움직였다.

         

       ‘자극하면 바로 내가 표적이 된다.’

         

       맹수에게 등을 보이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등을 보이게 되면 공격당하기에, 도망을 가고 싶다면 정면을 마주 본 채 뒷걸음을 쳐야 한다고.

         

       지금 토키타카가 하는 행동 역시 그와 비슷한 것이었다.

         

       평온을 가장하고,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행동하면서 자연스럽게 나가려고 한 것이다.

         

       ‘어차피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많아. 그러니까 나 하나쯤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을 거야. 이상한 반응을 보이지만 않으면 돼.’

         

       먹이는 많다.

       널린 것이 먹이다.

         

       이 액살의 집에 진짜 악령이 있다면 저 수많은 사람이 전부 미끼이자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음식일 터.

         

       그렇다면 주의를 끌지 않는다면 몸 하나 정도는 뺄 수 있었다.

         

       그러니 천천히.

       평온을 가장하며 움직여야 한다.

         

       그는 그렇게 속으로 쉴 새 없이 되뇌며 뚜벅뚜벅 걸어갔다.

         

       이상하게 보일까 봐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여유가 넘치는 것처럼 발걸음을 천천히 움직이고.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아까처럼 귀를 열고 은근슬쩍 주위를 훑으면서 말이다.

         

       ‘빌어먹을. 제기랄. 내가 이렇게 멍청했다니. 빌어먹을.’

         

       공포를 인지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가 진실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이렇게 이상했는데 이걸 눈치를 못 채고 있었다고?’

         

       그는 뒤늦게나마 이곳의 이상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별장 자체가 이렇게 이상했는데.’

         

       이상하다.

       별장 자체가, 이상했다.

         

       가장 먼저, 별장 전체가 낡아 보였다.

         

       들어올 때는 감탄을 일으켰던 별장 내부의 풍경이 전부 낡아 보였다.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게 닦여있었음에도, 낡아 보였다.

       게다가 서양과 일본 전통을 섞어서 만든 것 같은 실내장식은 어수선해 보이고 어질러져 있는 것처럼 보였고, 모든 것이 삐뚤삐뚤 어그러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자세하게 살펴보면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는다.

         

       ‘흉가를 보면 흠 잡을 데가 없는데도 어수선하고 낡고 더럽게 느껴진다더니. 제기랄.’

         

       게다가 곳곳에 걸려있는 그림도 그렇다.

         

       추상화나 현대미술처럼 보였던 그것들은 ‘예술’이라기보다는 어떤 주술적 문양처럼 보였다.

         

       게다가 저주라도 걸려있기라도 한 것인지, 몇 초만 응시해도 정신이 몽롱해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게다가 그것뿐만이 아니다.

         

       아까는 느끼지 못했지만, 공기 중에 이상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시트러스 계열의 짙은 향수 사이에 느껴지는 그 냄새는, 분명히 향을 닮아 있었다.

         

       절에서나 맡을법한.

       향 말이다.

         

       그 냄새를 맡고 있자면 정신이 고양되고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고,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고 편안함이 느껴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아냐. 착각이 아니야.’

         

       편안함. 평온함.

         

       당장이라도 소파나 의자에 앉아서 늘어지게 이 평화로움을 만끽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저택에서 느껴지는 왠지 모르는 서늘한 느낌은 기분 좋은 서늘함이 되었고,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나 뭉개진 웅성거림, 쿵쿵거리는 발소리는 백색 소음이 되어 정신을 평온하게 만드는 것이 되었다.

         

       와득.

         

       토키타카는 몸을 나태하게 만들고 정신을 몽롱하게 만드는 향에 저항하기 위해 혀를 씹었다.

         

       “—!”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엄습하고, 혀끝에서 얼얼한 느낌이 감돌았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제정신이 들고, 눈이 번쩍 뜨였다.

         

       ‘여기는, 위험하다.’

         

       혀와 입에 남은 얼얼한 고통의 잔상이 그에게 채찍질하며 소리쳤다.

         

       어서 이곳을 나가라고.

         

       토키타카는 미친 듯이 경종을 울리는 위기감에 저항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렇게 몇 걸음을 걸었을까?

         

       계단을 올라가는 두 사람이 보였다.

         

       아까 그가 저택에 들어왔을 때 본 두 사람이었다.

         

       둘은 서로를 마주 본 채 계단을 올라가는 몸짓을 하고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계단을 올라갔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그 동작 자체는 분명히 올라갈 때 하는 것이었는데, 한 번은 위의 계단을 밟았고, 한 번은 아래의 계단을 밟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끊임없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마치 에스컬레이터에서 느릿느릿 한 칸씩 올라서 제자리를 유지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그 상태로 ‘대화’를 나누었다.

       아주 일상적인 대화를 말이다.

         

       “이거 쑥스럽습니다. 하지만 이건 제 아들놈이 뛰어났다기보다는 그냥 재주 하나가 있어서 그런 것이지요. 진짜 대단한 것은 가쿠슈인 남자 중학교에서도 상위권을 한 번도 놓치지 않은 사장님 아드님이 아니겠습니까?”

         

       “하하. 그렇기는 하지요. 하지만 중고일관교라고 해도 뭐…. 교토 헤이세이 이능력 특성화 고등학교에 비해서는 빛이 바래지 않겠습니까?”

         

       “아, 사장님의 아드님도 좋은 학교에 들어갔다고 알고 있는데요. 중고일관교에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저 역시 아들놈 하나를 키우고 있지 않습니까? 그 때문인지 교육에 관련된 거라면 귀를 쫑긋 세우게 되더군요.”

         

       “하하하. 이거, 들으셨습니까? 그냥 주위에 살짝 자랑했을 뿐인데 사장님의 귀까지 들어가다니….”

         

       “이번에 아드님이 합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대화는.

       아까 했던 대화의 순서만을 뒤바꾼 그 대화는.

       토키타카의 온몸에 소름이 돋게 만드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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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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