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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0

       주변이 잠시 후면 뜨겁게 쏟아지게 될 생도들의 피를 열렬히 탐하며 군침을 흘려대는 소리들로 가득하다.

         

       자의든, 타의든.

         

       혈교도 대다수가 전쟁을 코앞에 두고 피 맛을 보았다.

         

       이유? 그거야 간단하지 않은가.

         

       맛보기다.

         

       같은 인간의 피를 탐하는, 인간으로선 도저히 제정신으로 할 수 없는 야만적인 행위에 동참하게 되었을 때 그 대신으로 얻는 확실한 보상을 알려준 것이다.

         

       바꿔 말하면 여기에 모인 이들 대다수가 인간이기를 포기했다는 뜻이기도 하지.

         

       “크아아앗!”

         

       명령을 기다리지 못하고 군침을 뚝뚝 흘려대던 혈교도 하나가 달려든다.

         

       인간을 먹잇감으로 바라보는 짙은 광기가 서린 두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백우진은 놈의 허리를 길게 갈라 상체와 하체를 둘로 나누어주었다.

         

       허공에서 둘로 나뉘어 힘없이 떨어진 두 덩어리의 사체로부터 사정없이 흩뿌려진 피가 주변 땅을 붉게 물들였다.

         

       구태여 깔끔하게 상대를 죽일 수 있음에도 허리를 벤 목적은 다름 아닌 거기에 있다.

         

       ‘피는 우리에게만 흐르는 게 아니거든.’

         

       백우진은 자신들의 피만을 맹목적으로 탐하는 이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붉고, 싱싱한 피는 자기들의 몸뿐만 아니라 네놈 동료들에게도 흐르고 있노라고.

         

       설마 아무리 그래도 동료를 노리겠냐고?

         

       ‘노리진 않겠지.’

         

       그래, 노리지는 않을 거다.

         

       어지간한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그런 눈에 띄는 짓을 할 리가.

         

       “키야앗!”

       “쿨럭…!?”

         

       방금 눈앞에서 설마 하던 일이 벌어졌다.

         

       어지간하지 않은 수준의,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이 양손으로 제 동료의 목을 조여 피를 짜내어 마신 것.

         

       그렇게 자제력을 잃고 동료를 탐한 놈은 평교도들을 이끄는 십장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이것으로 그들은 또 하나를 깨닫게 되었다.

         

       동료를 탐했다간 곧장 목숨을 잃고 만다는 것.

         

       그러나 백우진이 원하는 건 동료들끼리 목숨을 노리게 만드는 참혹한 배신의 현장이 아니다.

         

       그건 혈교도들을 지휘하는 우두머리가 훼까닥 돌아버려도 불가능한 일.

         

       다만, 그들의 결속력을 한없이 덧없고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옆에서 동료가 죽어 나가면 도와야겠다는 생각 대신 자신이 마실 수 있는 피 한 모금이 더 생긴다는 생각을 그들의 머릿속에 박아버린 것뿐.

         

       거리감이 가까워질수록 앞선 이들의 얼굴에서 땀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배수의 진을 친 것과 다름없다.

         

       앞에는 적들이, 등 뒤에는 낭떠러지 대신 지켜야만 하는 부상에 신음하는 동료들이.

         

       앞뒤로 조여드는, 무엇 하나 외면하기 쉽지 않은 강렬한 존재감이 그들을 더욱 긴장시킴과 동시에 감각을 날카롭게 갈아댄다.

         

       그때, 제법 경지가 높은 혈교도 중 하나가 뽑아 든 검으로 생도들을 가리키며 외쳤다.

         

       “눈앞의 애송이들을 모조리 죽여라! 피의 축제를 벌이자!”

       “크아아아아!”

       “캬아아-!”

         

       피를 갈망하는 상급자의 한마디가 굶주린 짐승들의 고삐를 전부 풀어버렸다.

         

       마침내 거대한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피와 땀, 거친 흙냄새로 아래에서 위까지 차곡차곡 쌓아 올린 불쾌함뿐인 바람.

         

       누구보다 한발 앞서 있는 백우진이 달려드는 혈교도를 단숨에 베어 넘기며 외쳤다.

         

       “적들을 죽이고, 동료를 지켜 정파 무인의 기상을 드높이자!”

       “와아아아아-!”

         

       일순간 침체되었던 분위기가 백우진의 한마디에 조금 되살아난다.

         

       그들의 가슴에 불을 지핀 것은 말과 함께 이루어진 행동 덕분이었다.

         

       간혹 그런 이들이 있다.

         

       적으로 두면 무섭고, 아군으로 두면 더없이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운 이.

         

       적어도 3년 차 생도들에게는 그러했다.

         

       마주 서서 상대할 때는 그보다 괴로운 일이 없는데, 막상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서게 되니 세상 무서울 게 없어진다.

         

       실제로는 자신들과 별 차이 나지 않을 그의 등이 저 멀리 보이는 산보다 커 보이는 건 전부 그러한 이유일 테지.

         

       “적들을 죽이고, 동료들을 지키자아!”

       “죽이고!”

       “지키자!”

         

       백우진의 뜻을 이어받은 신룡조원들이 연달아 재창하자, 점차 분위기는 더욱 살아났다.

         

       이윽고 붉은 노도와 같이 몰려드는 적들을 한 마음, 한뜻으로 상대하기 시작했다.

         

       싹튼 전우애가 그들의 단합력을 끌어 올렸다.

         

       위험한 상대가 들이닥치면 협력하여 막아내고, 다른 한쪽이 에워싸 놈을 죽인다.

         

       퍼걱!

         

       “쿠헤엑!”

         

       고립된 혈교도를 도우러 올 동료 따위는 없다.

         

       안 그래도 습자지처럼 얇기 그지없던 그들의 전우애는 이미 불타 없어진 지 오래니까.

         

       그 차이가 많은 것들을 바꾸었다.

         

       원래라면 그들의 화력에 숨도 못 쉬고 뒤로 밀려나야 할 생도들이 끈끈한 단합력으로 혈교도들을 상대하며 아슬아슬한 동수를 이루고 있다.

         

       덕분에 혈교도들을 지휘하는 상급자들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눈이 반쯤 돌아간 혈교도들을 제어하려 했으나.

         

       “이 미친놈들…! 당장 동료들을 도우란…, 커헉!”

       “동료를 죽게 내버려 두는 놈은 내 엄벌에 처할, 크륽…?!”

         

       그럴 때마다 그들의 머리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어허, 어딜.”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백우진이 아니기에.

         

       그는 누구보다 더 바삐 움직여 가장 많은 혈교도들을 베어 넘겼다.

         

       목표는 하나.

         

       간신히 전선을 유지 중인 생도들에게 가면 안 될 것 같은 이들을 요격하는 것.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전선을 유지하는 시간을 더욱 길게 만들었다.

         

       ‘슬슬 한계야.’

         

       그러나 제아무리 백우진이 노력한다고 해도, 전선을 영원토록 유지할 수는 없다.

         

       기본적인 실력의 차이, 그리고 동료들이 죽어 나갈수록 강해짐과 동시에 정신을 차리고 경각심을 깨달아 가는 혈교도들이 점차 뭉치기 시작한 탓이었다.

         

       “크흑…!”

       “조금만 더 버텨!”

         

       그들이 점차 정신을 차릴 때마다 생도들이 위험에 처하는 순간들이 많아지고 있다.

         

       신룡조원들이 빠르게 대처해준 덕분에 큰 사고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얼마 안 있어 전선이 속절없이 밀려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빌어먹을.’

         

       백우진은 조금 지친 눈으로 전장을 살폈다.

         

       그토록 많은 이들을 죽였음에도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여전히 살아 숨 쉬며 피를 탐한다.

         

       오히려 시작할 때보다 더 늘어난 것처럼 보일 지경.

         

       “어디서 자꾸만 느는 거지?”

         

       의아했다.

         

       분명 혈수마녀에게 그들의 길을 거슬러 가면 존재할 구멍을 메워달라고 부탁해두었는데.

         

       ‘누이가 질 리는 없고….’

         

       당장 혈교주가 나타나지 않는 한 그녀의 패배는 있을 수 없는 일.

         

       그렇다는 건 그녀가 뚫린 구멍에 도달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또 다른 구멍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인데….

         

       “어느 쪽이든 더럽기는 마찬가지잖아.”

         

       가능하면 전자이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적어도 시간이 조금 더 걸릴지언정 구멍은 언제고 메워질 테니.

         

       만약 후자라면 그것만큼 힘 빠지는 일도 없을 터다.

         

       “이를 어쩐다….”

         

       퇴각은 꿈도 꿀 수 없다.

         

       뚫린 구멍으로 학관 내부는 이미 혈교도들에 의해 점령당한 것과 다름없는 상태.

         

       그나마 배수의 진을 염두에 두고 대연무장을 개조해둔 탓에 지금껏 전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거다.

         

       만에 하나 천운이 다해 이곳을 무사히 벗어날 수 있다고 해도, 얼마 가지 않아 적들에 빙 둘러싸여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은 자명한 상황.

         

       “…결국 하나뿐이네.”

         

       일순 생각이 든다.

         

       차라리 다른 이들의 말처럼 도주를 택했으면 어땠을까.

         

       학관을 벗어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만 하는 산맥에는 이미 혈교도들이 에워싸고 있다.

         

       그걸 알면서도 차라리 그들을 뚫어낼 생각을 했어야 하는가.

         

       “아니지, 아니야.”

         

       그랬다간 지금 동료의 등 뒤에서 신음하는 이들은 전부 죽었을 것이다.

         

       가까스로 전선을 유지하고 있는 이들 중에서도 대략 반은 죽지 않았을까.

         

       그리고 또….

         

       “…우리 조원 중에서도 사망자가 나왔을지도 모르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이다.

         

       쉴 새 없이 적이 몰려드는 상황에서 제아무리 백우진이라고 한들 조원들을 완벽하게 살리는 건 불가능하기에.

         

       아찔한 생각을 애써 털어내며 백우진이 목소리를 높였다.

         

       “부상자를 열외 시키고 전선을 더욱 뒤로 물린다!”

         

       전투 속행이 불가능한 이들이 하나둘씩 전열에서 빠져나와 뒤편으로 향한다.

         

       그들의 열외로 듬성듬성 빠진 이는 전선을 뒤로 물림으로써 더욱 촘촘하게 메운다.

         

       그러나 그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빠진 이를 메우기는 했으나, 절대적인 수가 감소한 것이기에.

         

       그러나 상관없다.

         

       전선을 뒤로 물려 전장을 조금이라도 더 좁히는 것이 그의 목적이니까.

         

       이대로 가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피가 흐르게 된다.

         

       그것도 적이 아닌 아군의 피가 훨씬 더 많이 흐를 테지.

         

       “생각만 해도 역겨워.”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몸서리치는 백우진.

         

       지친다.

         

       죽이는 것도, 죽음을 보는 것도.

         

       누군가 말했다.

         

       영웅과 학살자는 한 끗 차이라고.

         

       틀렸다.

         

       그 둘은 다르지 않다.

         

       영웅은 학살자다.

         

       다만, 그 뜻이 숭고했던 극소수가 가까스로 학살자 대신 영웅이라 불릴 뿐.

         

       “숭고함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어휴.”

         

       환멸이 난다.

         

       코를 막아도 어떻게든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인상을 찡그리게 만드는 비릿한 혈향에 온통 물들어가는 제 몸뚱어리에.

         

       썩을 대로 썩어버린 정신이 끊임없이 바란다.

         

       이제는 쉬고 싶다고.

         

       저기 눈먼 칼에 몸을 던져서라도 삶에 마침표를 찍고 싶노라고.

         

       그러면서도 그는 칼을 쥔 손아귀에 더욱 힘을 주었다.

         

       제 손에 흐르는 피가 더욱 짙어질수록 반대로 살아남는 이들의 수가 늘어남을 알고 있기에.

         

       영웅이라 불렸음에도, 그는 결단코 숭고한 인간이 아니다.

         

       제 손에 피를 묻히는 건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함 또한 아니다.

         

       그렇게 하면, 해야만,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자신으로 하여금 살아남은 이들 사이에 목숨처럼 아끼는 동료, 연인이 껴있을 확률이.

         

       단지 그뿐이다.

         

       그렇기에 백우진은 오늘도 같은 일을 행할 따름이다.

         

       한없이 밀려난 전선으로부터 정확하게 십이 보.

         

       동료들을 등지고 선 그의 전신에서 두 줄기의 거대한 기운이 똬리를 틀며 전신을 휘감는다.

         

       지면을 밟아 상대를 위에서 아래로 짓누름과 동시에 지맥을 터뜨려 주변을 거침없는 난장판으로 몰아넣는 천마신공의 보법, 천마군림보.

         

       백우진은 이와 비슷한 무공 하나를 알고 있다.

         

       검을 땅에 꽂아 넣어 지맥을 자극하여 주변을 뒤집어엎는 ‘지진’.

         

       결이 비슷한 두 무공을 한데 섞으면 과연 이 땅은 어떻게 변모할까.

         

       심상치 않은 기운의 소용돌이에 혈교도들이 주춤하는 사이, 또 하나의 무공이 탄생한다.

         

       아직은 볼품없고, 이름조차 없으나 후대에 이르러 평가를 달리하게 될 개세(蓋世)의 무공.

         

       「천지진진일보(天地震進一步).」

         

       하늘과 땅을 울리며 나아가는 한 걸음.

         

       쿠구구궁

         

       훗날 절대자의 걸음으로 묘사될 일보(一步)에.

         

       콰득! 콰득!

         

       콰콰콰콰!

         

       “엇…!”

       “어어어!”

         

       혈교도들이 딛고 선 땅거죽이 거침없이 뒤틀리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안녕하십니까, 독자님들.

    주말 사이에 지옥을 경험하고 돌아온 눈작입니다.

    심한 몸살을 앓았습니다.

    코는 꽉 막히고, 기침은 계속 나고, 목은 찢어질 듯이 아프고, 머리는 꽝꽝 울리고…

    이게 약간 겨울마다 연례 행사처럼 한 번씩 심한 감기에 걸리는데, 올해는 잠잠한 듯하기에 그냥 넘어가나 생각하니

    마치 사망 플래그라도 꽂은 것처럼 하필 가장 추운 날부터 서서히 아파오기 시작하더군요.

    주말 동안 집에 있는 종합 감기약으로 버티다가 월요일 낮에 병원에 가서 약 처방받고 먹으니 그나마 좀 살겠더군요.

    역시 아플 땐 병원을 가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조금 나아진 컨디션으로 저녁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서 원래는 더 일찍 연재가 되어야 했습니다만…

    감기약을 먹으니까 속절없이 잠이 밀려오는 바람에 의자에서 잠깐 자다가 일어나 이제야 한 편 완성하게 되었읍니다.

    컨디션 나아지는 대로 열심히 글 써서 밀린 부분 따라잡도록 해보겠습니다.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이번 휴식이 노벨피아 연재 시작 이후로 가장 오래 쉰 날이 아닐까 싶은데, 그동안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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