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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0

       

       

       

       

       

       320화. 프리즌 브레이크 ( 4 )

       

       

       

       

       

       몽롱하게 몰려오던 잠기운이 한 번에 확 가셨다. 찬물을 맞았어도 이것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그만큼 지금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 충격적이었다.

       

       나 손 덜덜 떨리는 것 좀 봐.

       

       “아니, 와 나, 진짜. 말이 안 나오네?”

       

       너무 화가 나면 말이 안 나온다고 하던데, 지금 내가 딱 그 상황이다.

       도대체 어쩌다가 탄탈로스가 이 지경이 난 거지?

       

       커다란 구멍이 숭숭 뚫린 벽, 끓어 넘치는 용암과 이를 피해 이리저리 도망치는 죄수들… 죄수를 붙잡겠다고 같이 달리는 용암 거인과 어째서인지 셋이나 되는 얼굴을 푹 가리고 있는 이시디움까지.

       

       “진짜 이게 무슨 일이냐고…”

       

       피자를 사 왔는데 집이 불타는 꼴을 본 기분이다.

       

       거울을 향해 손짓하여 보이는 시간대를 되감았다. 풍경이 역행하며 과거의 모습을 비추기 시작한다.

       

       “더, 더 뒤로. 그만. 지금 여기서부터.”

       

       여느 때처럼 잠잠하던 탄탈로스. 

       이변은 구석진 그늘에서 나타난 이물체로부터 시작했다.

       

       꾸물꾸물 땅을 기는 찰흙을 닮은 이상한 녀석이 균열을 열고 나타났다.

       단번에 녀석을 알아볼 수 있었다.

       

       “저번에 봤던 수치 0 그 녀석이잖아?”

       

       눈을 가늘게 뜨며 거울 속 풍경을 가속했다. 보이는 풍경은 그야말로 가관, 그 자체.

       

       이상한 촉수를 던져서 탄탈로스의 죄수들을 조종하지 않나, 그걸로 이시디움에게 대들더니 나중에는 용암 거인 하나를 잡아먹는 데 성공했고, 마지막에는 지옥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나는 그 부분에 눈을 의심했다.

       

       “어떻게 저 문을 안에서 열었지?”

       

       지옥문은 밖에서 열고 들어오라고 만든 문이지, 안에서 열고 나가는 용도가 아니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저 문은 일방통행으로 쓰는 문이란 말이다.

       그런데 지옥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고?

       

       그러고서 회색 괴물은 지옥문 앞에 있는 문지기한테 붙잡혔다. 패기롭게 지옥문을 박차고 나가더니 얼마 가지도 못했네.

       

       “……도대체 얘는 뭐지?”

       

       수치가 유일하게 0인 것도 그렇고, 일방통행인 문을 열고 나가는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녀석이지만, 선을 한참이나 넘어버렸다.

       

       “감히 시발 내 소중한 탄탈로스에 분탕을 쳐?”

       

       내가 탄탈로스 하우징에 몇 시간을 박았는지 알아?

       엿같은 지옥 하나 만들어 보겠다고 피 토하면서 차원을 만들었는데, 감히 이따위로 깽판을 쳐?

       

       뚜둑-

       

       찌뿌둥한 관절을 돌리며 몸을 풀었다.

       

       커다란 정신적 충격으로 잠시 이겨냈던 잠기운이 천천히 몰려왔지만, 지금의 나를 잠 따위로 막을 수 없다.

       

       “넌 뒤졌어.”

       

       탄탈로스 특별 구역에 전시해 주마.

       

       그리 마음먹으며 양손으로 강하게 허공을 붙잡은 다음, 흡! 하는 기합과 함께 쫙 찢었다.

       

       촤아아아악!!

       

       작게 균열이 열렸다. 내 손이 간신히 들어갈 수준일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 너무 크면 저쪽 세상이 힘들어하니까.

       

       “이 씹새끼, 얼굴이나 좀 보자…”

       

       실시간 통신이 되는 거울을 보며 균열 속으로 손을 쑥 밀어 넣었다.

       

       이전처럼 강한 압박이 손을 조여왔다.

       아직 힘을 소화하는 와중이었기에 조금 버거운 감이 있다.

       

       “끄으으읍…!”

       

       양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힘을 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힘이 불끈 솟아나며 균열이 아주 커다랗게 벌어지더니 압력이 약해졌다.

       

       “으, 후으… 갑자기 뭐였지?”

       

       나에게 이런 힘이?

       

       영문도 알 수 없이 솟구친 힘이 조금 찝찝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일단 균열 너머로 손을 밀어 넣었다.

       

       – 쿠구구구구

       

       거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쩍 갈라지더니 거대한 손 두 개가 강림한다.

       

       보이는 것보다 내 손이 조금 많이 커서 당황했다.

       

       “어, 음… 아니 조금 많이 크게 나오네?”

       

       – “꺄아아아아악! 위, 위대하신 분이시여!!”

       

       음…

       어디서 경악한 케넬름의 비명이 들리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나는 케넬름의 새된 비명을 애써 못 들은 척했다.

       

       “어디 보자. 여기쯤인가?”

       

       거울을 보며 손을 더듬더듬 헤맨다. 이게 보이는 풍경이랑 묘하게 딜레이가 있었구나?

       그렇게 잠시 고생하다가 마침내 암석 거인 감옥을 손으로 잡았다.

       

       “읏쌰.”

       

       곧바로 균열에서 손을 빼냈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살펴본 암석 거인 감옥은 잔뜩 갈라지고 부서져서 한계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 《으으…… 아아…》

       

       살짝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니 암석 거인의 몸 곳곳에 있던 균열이 사라져간다. 그제야 암석 거인의 입에서 편안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인제 그만 쉬어라.”

       

       《…..영…광…입니…다…》

       

       간신히 말을 마치고는 픽 쓰러져 잠든 녀석.

       왼손으로 다시 균열을 열어 암석 거인을 저쪽 세상의 땅에 조심스럽게 옮겼다.

       

       그리고, 내 오른손에는 회색 찰흙 괴물이 잔뜩 웅크린 모습으로 달달 떨고 있었다.

       

       “분충 새끼야. 너 이리 나와봐.”

       

       네가 그렇게 분탕질을 잘해?

       

       

       

       ***

       

       

       

       커다란 별빛의 손바닥 위에 놓인 회색 괴물이 바르작거리며 꿈틀거렸다.

       

       “키흑, 키… 히키이이익…”

       

       몸이 덜덜 떨린다. 온몸의 세포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눈앞의 존재를 감히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 압도적인 존재감이 폭력적으로 공간을 짓눌러온다.

       

       도대체, 도대체 저게 뭐지?

       

       회색 괴물은 혼란스러웠다.

       얼마 전, 멀지 않은 과거에 자신은 별빛의 거인을 눈앞에서 본 적이 있다.

       

       그때도 외형은 지금과 비슷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경외심을 강제로 우러르게 만드는 존재감은 없었단 말이다.

       

       “키, 흐엑… 도, 대체…”

       

       뭐가 달라진 거지?

       

       회색 괴물이 작은 머리로 열심히 생각했다.

       

       자신의 지적 능력이 올라가면서 과거에는 느끼지 못한 것을 느끼게 된 걸까?

       거인을 잡아먹기 위해 성장한 것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한 건가?

       

       《더러운 분충 녀석ㅡ》

       

       “키헤에엑!”

       

       거인의 말 한마디에 쿵, 하고 심장이 멎었다고 느꼈다. 

       

       “키르으으…. 키햐아아…”

       

       그의 차가운 시선이, 무자비한 손길이 항거할 수 없는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회색 괴물은 후회했다.

       과거의 자신을 미친 듯이 죽이고 싶었다.

       

       ‘저걸’ 잡아먹겠다고?

       감히?

       

       《어디 보자… 음? 이건 뭐지? 엄청 작게 보이기는 하는데… 안에 뭔가 이상한 게 있네. 이게 도대체 뭔…》

       

       뜨겁게 이글거리는 시선이 자신의 몸을 샅샅이 꿰뚫어 본다.

       

       거역할 수 없다. 저항할 수 없다.

       거인의 손에 들린 개미, 어쩌면 그보다 작은 먼지가 된 기분이었다.

       

       키야아아아악ㅡ!

       

       “키아아아악!! 해, 핵이ㅡ!! 키흐아아아아!!”

       

       거인의 손가락이 자신을 가리키자, 꼼꼼하게 억눌러놨던 핵의 미약한 틈이 커다랗게 벌어졌다. 차마 막을 틈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

       그 틈을 따라 핵이 파르르 떨리며 당장이라도 거인의 손가락을 따라 뛰쳐나갈 것처럼 흔들렸다.

       

       핵은 자신의 심장이자 동력이며, 생명의 근원.

       이대로 있으면 아무것도 못 하고 죽는다는 걸 깨달은 회색 괴물이 최후의 발버둥을 결심했다.

       

       뚜둑, 뚜두두둑-!

       

       도망치자.

       다시 한번 균열을 열어서 도망치는 거다.

       

       “키햐아아악, 도, 도망쳐야…!”

       

       저 거인은 균열 너머로 쫓아 오지 못한다. 회색 괴물은 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휙!

       

       생명이 경각에 달했음에 각성을 한 것인지, 발악하듯 열은 균열은 평소보다 훨씬 컸다.

       

       지체할 틈 없이 균열 너머로 몸을 던진 회색 괴물. 어째서인지 별빛의 거인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키햐아악.. 사, 살았다… 살았다…!”

       

       마치 일부러 자신을 놔준 듯한 모습이었지만, 회색 괴물은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호랑이의 아가리에 머리까지 들어갔다가 가까스로 나온 심정이다.

       어떻게든 살았다는 것이 중요했고, 앞으로 다시는 저 거인의 눈에 띌 만한 행동을 하지 않는 게 중요했다.

       

       “다, 다시는.. 다시는 인간, 을.. 먹지 않겠ㅡ 키학?!”

       

       균열의 틈을 꾸물꾸물 헤엄치던 와중.

       뒤에서 다가온 억센 손길이 회색 괴물의 몸을 덥석 붙잡았다.

       

       항거할 수 없는 힘이 회색 괴물의 몸을 질질 끌어당겼다.

       

       “키햐아아아악!! 어, 째서어?!”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지난번 균열로 도망칠 때는 쫓아오지 못했는데!

       

       회색 괴물이 사력을 다해 차원의 틈을 붙잡으며 저항했지만, 급류에 휘말린 나뭇잎처럼 부질없이 끌려 나갈 뿐이었다.

       

       《이 가소로운 녀석.》

       

       작게 비웃은 별의 거인이 회색 괴물의 중심부를 향해 손가락을 가져갔다. 

       

       《나와라.》

       

       거인이 말하자, 그리되었다.

       

       “키….?! 허읍…!”

       

       어느새, 그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처럼.

       회색 괴물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작은 핵이 거인의 손에 위치했다.

       

       조금 탁한 회색빛을 발하는 유리구슬처럼 생긴 회색 괴물의 핵.

       

       거인이 핵을 이리저리 살피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건… 수치가 0? 도대체… 그럼 저 괴물은…》

       

       “켁, 하으윽…! 사, 살… 려….주…케헥!”

       

       바르작거리며 땅을 기는 회색 괴물의 몸이 점점 차갑게 식어간다. 핵은 회색 괴물의 심장이자 동력이며, 존재의 근원.

       

       강제로 핵을 추출당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음, 뭐지? 왜 얘는 숫자가 보이는…》

       

       거인이 회색 괴물을 보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케흐윽… 켁…”

       

       모르겠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단 하나도 이해할 수 없다.

       

       의식은 점점 몽롱해지고, 육체가 땅에서 점점 멀어지며 어딘가로 떨어지는 듯 부유감이 느껴진다.

       몸의 끝이 차가워진다.

       

       회색 괴물은 깨달았다.

       이것이 바로 죽음.

       

       그가 모든 먹잇감들에게 선사했던 것이며, 돌고 돌아 마침내 자신도 죽는 것이다.

       

       ㅡ그래.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모든 것을 포기한 회색 괴물이 가만히 몸을 누이며 죽음을 받아들였다.

       

       《…? 이 씹새가, 지금 편하게 죽을 생각을 하고 있네?》

       

       화악!

       

       거인이 가볍게 손짓하자, 회색 괴물의 몸이 순간 밝게 빛났다.

       

       얼음처럼 차갑게 식어가던 회색 괴물의 몸에 따뜻한 온기가 돌기 시작하고, 서서히 멀어지던 의식이 육체로 돌아온다.

       

       “크헤에엡! 케, 케헥! 쿠에엑! 사, 살았,다….?!”

       

       어째서 자신을 살린 거지?

       

       당황하여 거인을 올려다 본 회색 괴물의 눈빛에 작은 희망이 깃들었다. 설마 자신을 살려주려는 걸까? 

       전지전능한 힘의 절대자답게, 커다란 아량으로 자신에게 자비를 베푸는 걸까?

       

       《뭘 봐. 넌 탄탈로스 직행이야.》

       

       휙.

       

       거인이 밑으로 손가락질했다. 이에 거대한 균열이 열려 회색 괴물의 몸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크헤에에에엑!! 캬아아아아아악ㅡ!!”

       

       한참이나 떨어진다.

       바닥없는 구렁텅이에 떨어지는 착각마저 들 정도로.

       

       콰앙!

       

       “케르륵… 키에엑……”

       

       바닥에 떨어진 회색 괴물이 짓눌린 벌레처럼 바르작거렸다. 커다란 충격으로 온몸이 진탕됐다. 어디 하나 아프지 않은 곳이 없을 지경.

       

       그래도 살았다는 기쁨에 회색 괴물은 웃을 수 있었다.

       

       《오늘은 매우 기쁜 날이구나. 그대의 얼굴을 봤음에 오늘은 슬프지 않구나.》

       

       위에서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설마?

       그럴 리 없다.

       

       애써 현실을 부정하며 회색 괴물이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기뻐하라! 내 너에게 모든 고통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돌아온 그대여. 진정 위대하신 분의 눈에서 도망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느냐.》

       

       “……키히…”

       

       세 개의 얼굴, 부리부리하게 이글거리는 여섯 개의 눈동자와 사방으로 뻗어나간 여덟 개의 팔.

       

       심판자 이시디움의 세 얼굴이 회색 괴물을 보며 활짝 웃었다.

       

       《《《기쁜 날이로구나!》》》

       

       “……”

       

       핵이 없어져 모든 힘의 근원을 잃은 회색 괴물은, 진심으로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

       

       

       

       “분탕도 해결했고… 자, 이제 이걸 한번 볼까?”

       

       회색 괴물을 로켓 배송으로 보내버린 나는 손안에서 빛나는 작은 핵을 바라봤다.

       탁한 회색빛의 핵은 마치 유리구슬처럼 미묘한 빛을 발했다.

       

       “……어라?”

       

       한참이나 핵을 들여보다가 눈을 찌푸렸다.

       

       뭐지 이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즐거운 추석 연휴 보내시기 바랍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즐거운 6일의 연휴…!! 그야말로 전력을 다해 즐기고!! 사력을 다해 놀아야할 것 입니다…!! 캠핑도 좋은 휴식의 수단…!! 비록 제일 중요한 고기가 없다는 정말 비극적인 사건이지만… 어흐흑…!! 작가는 지금 숨어서 몰래몰래 핸드폰으로 글을 쓰는 중입니다…!! 친척들의 고로시를 피하기 위한… 생존의 무빙…!!!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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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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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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