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320

       먼 과거 검선은 탐욕스러운 검사였다.

       

       그의 목표는 하나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베는 것.

       

       바람을 베고. 나뭇잎을 베고. 나뭇가지를 베고. 나무를 베고. 숲을 베고. 산을 베고.

       

       남들이 벨 수 없다 하던 것을 날카로운 검날로 양단한 후 검선이 목표로 한 것은 저 먼 하늘에 있는 것이었다.

       

       푸르른 하늘 한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아래를 내려다 보는 그것을 사람들은 태양이라 불렀다.

       

       그 당시의 검선이 아는 것 중에 제일 먼 곳에 있으며 가장 거대하고 위압적인 존재가 바로 그것이었으니.

       

       검선의 탐욕은 태양을 비추었다.

       

       그것을 베어 자신의 검을 역사에 새기길 바랐다.

       

       누군가는 턱도 없는 이야기라 그러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평생 꿈만 쫓다 죽을 것이라 비웃었고. 누군가는 미쳐버렸다며 혀를 찼지만.

       

       그럴 때마다 검선은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훗날 하늘에서 태양이 떨어진다면 자신의 선언을 기억해달라고.

       

       얼굴을 향해 쏘아지는 따스한 기운에 눈을 뜬 검선은 푸르른 하늘 위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는 태양을 보았다.

       

       허어. 저를 베는 데에 실패했구나.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결국 따지고 보면 난 저 태양에 다가선 적이 없으니까. 그저 밤을 흉내 냈을 따름이지.

       

       무지렁이 같았던 옛 시절이 그립구나.

       

       검 이외의 그 무엇도 알지를 못하여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도 하나여야만 했던 그 때가 그리워.

       

       만일 본인이 신선이 되지 않았더라면. 그 때문에 도술을 접할 일이 없었더라면. 그래서 예전처럼 검밖에 모르는 멍청이였던 상태에서 무작정 검을 휘둘렀다면.

       

       나는 지금쯤 저 태양에 조금이라도 닿았을까?

       

       그리 생각을 하던 검선은 모든 것이 그저 변명일 뿐이라는 사실에 닿고는 피식 웃어버렸다.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키려던 그는 무리라는 것을 깨닫고 흙바닥에 몸을 뉘였다.

       

       그리고서 옆으로 고갤 돌리자 박살이 나 잔해가 되어 있는 그의 검이 보였다.

       

       애정을 지닌 물건은 아니었다. 그에게 검이라는 것은 그저 소모품에 불과했으니까.

       

       다만 오늘따라 박살이 난 검이 자신 같아서 처량하게 보일 뿐이었다.

       

       저벅저벅.

       

       저 멀리서 흙바닥을 밟는 소리가 들려온다. 바란다면 자신의 자취를 완벽히 지울 수 있는 저 괴물 같은 무인이 일부러 소리를 내는 것은 자신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리는 것.

       

       “미안하지만 민가여. 일어날 수가 없어서 말이다. 노구에게 이런 전투는 견디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가. 육신의 한계를 벗어나 신선이 된 녀석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다고 검선이 한 마디를 하기 무섭게 타박이 돌아왔다.

       

       지극히 정론이었다. 등선한 신선에게 있어 육신은 정신의 연장선에 불과하니.

       

       “허나 그래도 힘든 것은 힘든 것이야.”

       

       꿈을 이루었다 생각했거늘 그것이 자기위안일 뿐이었음을 깨달았다.

       

       이 곳이 도착점이 아닌 달리기의 중간임을 깨우쳤다.

       

       아직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멀고도 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인으로써 기뻐해야 할 일임을 안다만 막막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단 말이지.

       

       “그래서 태양에 닿는 것을 포기하겠다고?”

       “그럴 리가 있나.”

       

       투덜거림을 너무 과대해석 하지 말아주었으면 하는구나.

       

       결국 본인의 근본은 탐욕스러운 검수다. 포기할 리가 있나. 목이 날아가지 않는 한은 계속해서 검을 휘두를 것이다.

       

       “그런 주제에 왜 앓는 소리를 하는 것이냐.”

       

       아하. 그도 그렇군.

       

       당했다 생각한 검선이 하늘을 바라보다 키득거리고 있으려니 그의 시야를 검은 머리칼이 가렸다.

       

       그리고서 보인 것은 여인의 얼굴이었다.

       

       무심하고 무덤덤한 검은 색의 눈동자. 모든 것에서 초탈한 초인의 눈.

       

       “죽일 텐가?”

       

       그를 바라는 거라면 어쩔 수 없지. 상대방의 생사여탈권은 승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니까. 먼저 시비를 건 입장에서 자비를 청해서야 쓰겠나.

       

       “아니.”

       

       허나 민가는 부정의 대답을 내놓았다.

       

       “네 놈에겐 아직 본인의 손을 더럽힐 가치가 없다.”

       

       손을 더럽힐 가치가 없다라니.

       

       예상도 못한 대답에 검선의 입에서 또 다시 웃음이 새어나왔다.

       

       죽일 가치가 없는 상대라니. 설마 내가 저런 대답을 듣게 될 줄이야.

       

       “노구정도면 나름 상대할 맛이 나는 상대였다고 본다만. 본인만의 착각이었나?”

       “그래. 네 놈만의 착각이었다.”

       “거 무척이나 까탈스럽구나.”

       

       미식도 적당히 즐겨야 존중받는 게지. 이 정도로 입맛이 까다로우면 주변에서 질색을 할 터.

       

       “살려주겠다는데도 말이 많구나.”

       “그건 그렇지.”

       

       지금 본인은 분명 그대에게 자비를 구걸해야하는 입장이란 걸 모르진 않는다.

       

       “허나 궁금하지 않으냐. 본인으로도 만족하지 못한다면 대체 그대에게 죽일 가치가 있는 인물은 누구란 말인가.”

       

       작금에 이르러 본인은 고금제일은커녕 천하제일조차 칭하기 어려운 처지가 되었다만 한 가지는 명확하다.

       

       본인이 강자라는 것.

       

       천하를 둘러보았을 때 아래에서 살피기보다는 위에서 내려오는 쪽이 훨씬 더 빠르다는 것.

       

       그런 본인으로도 만족하지 못한다면 대체 누가 그댈 만족시킬 수 있단 소리더냐.

       

       검선이 그 눈을 노려보며 묻자 침음성과 함께 고민을 하던 민가가 허공에 손가락을 휘적거린 후 대답을 내놓았다.

       

       “내 목숨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자.”

       “흠? 그건 좀 이상하지 않나.”

       

       분명 본인은 그대의 목에 여러 번 검을 들이밀었을 터인데? 실제로 처음 만났을 적에는 그대의 목숨을 앗아가기까지 했거늘.

       

       절로 생겨나는 의문에 검선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 움직임은 이내 끄덕임으로 바뀌었다.

       

       “이 곳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깥의 이야기. 그대의 아득한 깨달음에 걸맞는 경지와 육신이 있는 장소.”

       

       떠오른 것을 이야기하자 민가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를 본 검선은 멍하니 그녀의 눈을 바라보다가, 이내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노력하다, 결국에 웃음을 참지 못해 폭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푸흐. 푸하하하하하!”

       

       어이가 없구나! 본인도 무인으로써 탐욕스럽다 생각했다만 이 자는 더 하군!

       

       아무리 드높은 곳에 있는 이일수록 바라는 게 많다고는 하지만 이건 정도를 넘었다!

       

       “불가능한 것을 바라는 구나! 그래서야 그대는 그 누구도 죽이지 못하리라!”

       “그것도 그것대로 나쁘지 않지.”

       

       피식하고 웃는 민가의 모습에 검선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더니 박살이 나 손잡이만이 남은 검을 집어 들어선 민가를 가리켰다.

       

       “좋다. 민가여. 그대는 하늘 위에 올라서 고고히 아래를 관찰하니 그야말로 태양이라 불러 마땅하다.”

       “그런가?”

       “그러니 내 언젠가 네 놈을 베고야 말겠다.”

       

       기다리고 있거라. 의욕을 내고 싶지 않아도 낼 수밖에 없게 만들어 줄 테니.

       

       그 소리를 들은 민가는 눈을 끔뻑거리다가 이내 웃음을 흘리더니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기다리고 있으마.”

       

       *

       

       엔리는 멍하니 두 무인의 격돌을 바라보았다.

       

       서로가 쌓아온 무와 무가 부딪히며 서로가 옳다고 외치는 풍경을.

       

       그녀는 지금 자신이 위험함을 알고 있었다.

       

       저 격돌이 결말을 맞이한 순간에 휘말리면 어찌될지 추측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리는 저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엔리는 여태까지 수많은 VR게임을 경험해 보았다.

       

       그 안에서 그녀는 수많은 역할을 수행했지.

       

       때로는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였고, 때로는 세기의 재능을 지닌 마법사였고, 때로는 마왕을 퇴치할 운명을 지닌 용사였고, 때로는 사랑과 희망의 상징인 마법소녀이기도 했다.

       

       그랬기에 엔리는 VR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척이나 관대했다.

       

       어지간한 일이 눈앞에서 펼쳐지더라도 VR이니까 그럴 수 있지. 하고서 웃어넘길 수 있을 정도로.

       

       허나 지금은 달랐다.

       

       무에 인생을 바친 두 사람의 격돌은.

       

       서로의 의지 중 무언가가 더 굳건한 지를 부딪히는 승부는.

       

       영혼을 불태우는 듯한 뜨거움을 선사해서.

       

       엔리의 마음속에 자그마한 불을 지폈다.

       

       나도 저기에 끼고 싶다는 마음을 말이다.

       

       방송화면 너머로 보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눈으로. 귀로. 피부로. 엔리가 지닌 모든 것으로 전해지는 저 뜨거움은 도저히 거부할래야 거부할 수 없는 열기였으니까.

       

       일순이었으나 영원과도 같았던 충돌이 끝난 순간 그를 중심으로 거대한 충격파가 일었다.

       

       엔리는 그 속에서 어떻게든 버티려고 해보았지만 무리였다.

       

       여파에 휘말린 발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을 느낀 엔리는 두 손으로 머리를 붙잡은 채 눈을 꼭 감았다.

       

       그 때였다. 그녀의 옷소매를 누군가가 붙잡았다.

       

       “민가 녀석. 아주 신이 났구나.”

       

       그 말과 함께 엔리의 발이 다시금 중력의 영향을 받게 되었지만 엔리는 눈을 뜨지 못했다.

       

       여전히 그녀의 귓가에는 굉음이 울리고 있었으니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주변의 소리가 잠잠해졌을 무렵에 눈을 뜬 엔리는 주변의 풍경을 살필 수 있었다.

       

       검술 하나로 신선의 경지에 이른 무인과 권의 극에 이른 무인의 격돌이 남긴 여파는 결코 가볍지 아니했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던 대나무 숲이 반파되다 못해 아예 공터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정도면 복구니 뭐니하는 단어를 입에 담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보단 이렇게 된 김에 건물이나 세우자는 건의를 하는 게 옳을 정도였다.

       

       “민가의 친구야. 멀쩡하더냐?”

       

       잡음이 이어지는 귓가에 새어 들어온 목소리에 고갤 돌린 엔리는 입술을 삐죽 내민 바루의 모습을 보고는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괜찮아요!”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바루가 지팡이를 휘둘러 무언가를 거두자 매캐한 흙먼지가 엔리의 콧가를 스친다.

       

       그제야 그녀는 실감할 수 있었다. 저 자그마하고 귀여운 여자아이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영문도 모른 채 검은 화면을 보게 되었을 거란 사실을 말이다.

       

       “이게 사람과 사람의 격돌이 불러낸 결과인가요…”

       

       무공이란 거.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거였구나.

       

       아피스에서 만났을 땐 아라 씨 이외의 사람에게 대단하단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말이야.

       

       나도 제대로 배운다면 이만한 수준에 이를 수 있을까?

       

       “민가의 친구야.”

       “엔리입니다. 바루님.”

       “그래. 엔리야. 그대의 발언에 오류가 있어 정정하자면 저건 사람과 사람의 격돌이 아니다.”

       “네? 그게 무슨.”

       “저 둘을 어찌 사람으로 규정할 수 있겠느냐. 말은 똑바로 해야지. 저는 신선과 천마의 격돌이니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루 피셜) 아라는 사람 아니야.

    ——–

    HW화이트님 5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바루 까까재단에 적립금이 쌓이고 있습니다!
    이게 언젠가 빛을 볼 날이 올까요?

    다음화 보기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