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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0

     황제는 흡혈귀를 싫어한다.

     

     정정.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싫어한다.

     회귀 전만 하더라도 바토리 소장, 이사벨라 황태자비, 에르윈 황후, 그리고 백금경 에이페리아까지 전부 숙청한 걸 보면 그의 성향을 알 수 있다.

     합스베르크 통일제국만 하더라도 그렇다.

     그곳에 흡혈귀는 없었다.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국가를 바랐던 사람이다.

     

     테르시안 제국이 제국이 아니었던 수백년 전부터 시작하여, 본격적으로 테르시안 제국을 지칭하기 시작한 100년 전의 시기에도, 합스베르크 제국이 되기까지 제국의 이면에는 이종족-엘프가 있었다.

     

     숲에 있는 하이엘프든, 아니면 숲에서 추방당하고 땅굴을 통해 도망친 블러디엘프-흡혈귀든.

     그 모든 것들을 지워버렸다.

     강력한 아군이 될 수 있었음에도, 인간의 나라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이 되자 즉시 전부 치워버렸다.

     황제는 인간만의 세상을 만들고자했다.

     그렇다면 질문.

     제국의 그 많은 흡혈귀들은 전부 어디로 사라졌을까?

     회귀 전에는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에 모두 죽었다.

     제국이 다른 나라들을 점령하고 지배했던 원동력, 흡혈귀 부대는 선대 황제가 합스베르크 황제에게 남겨준 유산이었다.

     이 흡혈귀 군인들을 이용해서 지브롤터를 넘어라.

     노스트럼을 지배하여, 하늘에 더 이상 황금의 태양이 떠있지 않게 만들어라.

     

     아마도 그런 유언을 남겼겠지만, 합스베르크 황제는 그 어떤 마법적 방법 없이 인간의 기술로 노스트럼을 멸망시켰다.

     이간계.

     지브롤터의 협력.

     아버지가 지브롤터 협곡의 관문을 열기로 사전에 협의한 순간, 더 이상 흡혈귀들의 도움 따위는 필요가 없었다.

     

     흡혈귀들은 지브롤터를 상대하기 위한 전력이었으니까.

     그 지브롤터가 제국의 편이 되었으니까.

     물론 흡혈귀가 약한 건 아니다.

     한 명 한 명이 최소한 하급 기사에 준하는 능력을 가진 이들.

     평범한 남성도 흡혈귀의 노예가 되면 하급 기사만큼의 전력이 되어버리더라.

     막말로 기사 2만에 준하는 전력인 흡혈귀 2만을 뚝딱 만들어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냥 냅다 잡아다가 강제로 흡혈귀의 피를 일정량 몸에 쑤셔박거나, 햇빛이 들지 않는 어둠 속에서 일정 시간 놔두면 자동으로 몸이 변이되니까.

     심지어 상위 흡혈귀의 명령에 무조건 따라야만 한다.

     피 좀 뿌리는 것만으로 영지 하나에서 2만의 기사를 뽑아낼 수 있는 셈.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태양이 떠오르기 전에 무조건 마도자동선 안으로 숨거나 땅굴에 숨어들어야 하고, 밤에만 이동하며 밖에서 싸울 수 있다는 단점?

     그래도 평범한 인간이 하급기사만큼의 전투력을 낼 수 있다는데, 그 정도 단점은 감수할 수 있지 않을까?

     노스트럼 점령군 흡혈귀화 계획은 회귀 전에는 일어나지 않았다.

     일부 그들의 방식을 바탕으로 강해진 이들-저주를 억지로 깬 멘테 경이라거나-은 있었으나, 흡혈귀 군대는 협곡을 넘어서기도 전에 전부 죽어서 백은이 되었다.

     즉, 병력으로서는 유용하다.

     하지만 황제의 개인적인 미학에는 어울리지 않는 자들이다.

     황제 입장에서는 언젠가는 죽여야 하는 제국의 암덩어리들.

     그렇다면, 그들을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하게 ‘사용’하는 방법은?

     어디까지나, 황제의 입장에서.

     “키아아아악!!”

     노스트럼과의 전쟁에서 소모품으로 쓰는 경우.

     “신났군.”

     송곳니를 들며 달려드는 흡혈귀 병사를 향해 검을 휘두른다.

     ‘황금의 언데드보다도 더 악질이야, 정말.’

     단숨에 목을 날려 제거한다.

     다행이라면 그 피가 끈적하기에 사방으로 튀지 않는다는 것.

     “아스타시아. 세이레네 백작령에는 처음 와보시죠?”

     “네.”

     아스타시아가 우울하게 거리를 훑는다.

     “소금기 때문에 건물 외벽을 하얀색으로 만들어야해서 ‘백악도시’라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본래라면 바다냄새가 물씬 풍기는 해양도시가 핏빛으로 물든 죽음의 도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 도시에 시신이 가득하다.

     노스트럼의 사람들이 아닌, 또다른 시신이.

     “으, 으아아아악!”

     흡혈귀 하나가 달려온다.

     눈빛에는 그러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가득하지만, 전신의 혈액은 근육을 움직이며 내 목을 향해 검을 휘두른다.

     서걱.

     가볍게 검을 피하며, 뒤로 칼을 휘두른다.

     순식간에 흡혈귀 병사는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다.

     흡혈귀의 대처 방법은 두 가지.

     목을 베거나.

     심장을 도려내거나.

     혹은 둘 다 해야 하거나.

     푸ㅡ욱.

     

     “안타깝네요. 죽어서도 몸에 내려진 명령을 따라야하는 이들이라니.”

     아스타시아가 뒤로 뻗은 검을 회수하며 내게로 따라붙었다.

     우리의 뒤로 흡혈귀였던 것들의 시신이 쭉 늘어져있으나, 우리는 별다른 수습없이 계속 대로를 걸었다.

     “세이레네 영지, 아마 핏물 빼려면 최소한 1년은 걸릴 겁니다.”

     “그 때 다시 오면 되는 걸까요?”

     “네. 보고싶어하시는 예전의 세이레네는 아니겠지만.”

     “괜찮아요. 뭘 보고 싶냐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랑 같이 보는가. 압니다.”

     “흥.”

     흡혈귀 병사를 베어넘기며 거리를 걸어온 결과, 우리는 가장 먼저 세이레네 백작성에 도착했다.

     “다른 기사들은….”

     “아마도 찾고 다닐 겁니다. 사라진 시민들을. 시신이 되어야 했을지도 모르는 이들을.”

     아스타시아가 우려한 것과 같이, 현재 세이레네에는 시신이 수상할 정도로 너무 적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죽었을까요, 아니면 살았을까요.”

     “그레이.”

     “저도 아직 확신할 수 없기에 이렇게 물어보는 겁니다. 제 개인적인 예상으로는…아마도 조금 끔찍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저보다는 덜할걸요.”

     아스타시아가 백작성 성문 한쪽에 손을 올린다.

     “노스트럼인들을 강제로 끌고 제국으로 간다음, 그들의 이마에 노예의 낙인을 찍는 거예요. 그리고 평생 가축보다 못한 취급을 하며 살게 만드는 거죠. 천민으로.”

     “저는 거기에 더 받아서, 강제로 흡혈귀로 만드는 것까지 더하겠습니다.”

     “…그레이가 이겼어요. 아니, 그건 좀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흡혈귀로 만들지는 않을 것 같은데….”

     “황제께서 아무래도 생각 이상으로 화가 많이 난 모양입니다. 흡혈귀에 대한 증오보다, 황금룡의 비상식적인 축복을 누리고 있는 노스트럼인들에 대한 증오가.”

     끼이익.

     “하지만 그것도 전부 희망이죠. 그들이 노예가 되었든 흡혈귀가 되었든, 적어도 ‘살아있을 것이다’라는 희망.”

     “…제발 그랬으면 좋겠는데.”

     “아마,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동시에 문고리를 잡고 당긴다.

     “황제의 명령을 따르는 이들이 어찌나 잔인한지.”

     “명령까지 내려왔으니, 거리낄 게 없는 거죠.”

     

     문을 연다.

     문을 열기 전부터 알싸하게 코를 찌르던 피냄새는 문을 열자마자 더 짙게 전신을 휘감는다.

     “역시나.”

     

     영주성 안에는 시체가 가득했다.

     마치 영주성이라는 곳에 시체를 잔뜩 모아두기라도 한듯, 백작성에는 백작가에서 일하는 가솔과 경비병 이외에도 영주성까지 끌려와서 살해당한 이들의 시신이 가득했다.

     붉은 레드카펫의 옆에만.

     가운데 깔린 레드카펫에는 그 어떤 시신도 없었다.

     

     마치 연회장과도 같다.

     수많은 시신들은 연회장을 방문한 손님이며, 우리는 그 피의 연회에 참가한 마지막 손님이다.

     

     그리고 이 연회를 주최한 자는 이 장소, 세이레네 백작령의 주인이 아니다.

     “환영한다, 그레이 지브롤터.”

     

     짝, 짝, 짝.

     백작성 정문, 정면에 X자로 칼질이 된 세이레네 백작의 초상화 앞에 한 명의 남자가 서 있다.

     “어서오너라. 우리 제국군의 최초 점령지, 세이레네에.”

     “…….”

     “내가 내 소개를 하지 않았나. 아니면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기억하지 못하는 척하며 나를 도발하려고 하는가?”

     “가물가물해서.”

     기억은 난다.

     “황제께서 낳은 아들이 죽은 이들까지 포함하면 족히 1000명은 될 텐데, 그 중 하나의 이름을 내가 기억할 수 있을 리가.”

     당장 지나가면서 마주치기도 했다.

     “프란시스. 제국 그림자부대의 수장.”

     “…….”

     “그레이, 그….”

     옆에서 아스타시아가 작게 내 허리를 쿡쿡 찌르며 속삭인다.

     “프린스예요.”

     “…그랬나?”

     “아마도요.”

     “…….”

     남자는 가볍게 고개를 뒤로 젖힌 뒤.

     “내가 네 목을 베는 순간, 그 귀에 대고 속삭여주지.”

     “내 귀에 대고 속삭일 수 있는 건 아스타시아 뿐인데.”

     “그렇다면 아스타시아를 빼앗는-”

     타ㅡㅡ앙.

     “…….”

     “이런, 아쉽군.”

     매국노 시절처럼 소형 머스킷을 들고 다니지 않아서 검을 뽑아 그대로 던졌는데, 유감스럽게도 검이 바로 입에 처박히지 않았다.

     “그냥 명치를 노릴 걸 그랬나.”

     “끅, 끄윽…!”

     남자는 볼을 붙잡으며 비틀거린다.

     손으로 붙잡은 볼 옆으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입술 끝을 시작으로 옆으로 쭉 이어진 검상(劍傷).

     황제를 죽이기 위해 휘둘렀던 검보다 더 강하게 휘둘렀던 걸지도 모르겠다.

     정확히는 내던졌지만.

     “어디 목숨이 여러 개 있나 싶어서 그딴 말을 지껄이나 싶었더니, 그냥 주제 파악을 못하는 개새끼였군.”

     인간이라는 증거.

     “이번에야말로….”

     “그레이.”

     뒤에서 아스타시아가 내 옷깃을 잡아당긴 순간.

     “…크흠. 환멸했습니까?”

     “아니요. 새로운 모습을 본 것 같아서 멋졌어요.”

     나는 나도 모르게 당황했지만, 다행히 아스타시아는 불쾌하다거나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저도 누가 그레이를 상대로 저런 소리를 지껄인다면, 그레이처럼 참지 않을 것 같으니까.”

     “살살하십시오.”

     “베지는 않아요. 베지는.”

     “이, 이…!”

     사아앗, 하는 빛이 터져나온다.

     품에서 뭔가 주섬주섬하며 바로 꺼내더니, 그대로 동그란 마석같은 걸 한손으로 움켜쥐더라.

     “하하.”

     그 빛의 정체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노스트럼을 모두 죽이겠다면서 이렇게 모두를 몰살한 자가 정작 죽을 것 같으니까 노스트럼의 마법을 사용한다는 건가?”

     힐링 마법이 깃들어있는 마석.

     “다, 닥쳐…!”

     발음이 조금 새기는 해도 바로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른 회복을 보인다.

     흡혈귀의 재생력보다도 더 뛰어난 마법.

     

     “합스베르크 황제라면 그런 노스트럼의 기적 따위, 사용하지 않을 것을.”

     “다, 닥쳐…! 네가 뭘 안다고!”

     “잘 알지.”

     누구보다도 잘 알아서 문제다.

     “너는 합스베르크 황제가 왜 이 전쟁을 일으켰는지 알고 있나?”

     “노스트럼을, 멸망시키기 위해서다!”

     

     황제의 사생아가 두 팔을 벌리며 주변을 가리킨다.

     “보라, 이 수많은 노스트럼을! 노스트럼은 여기 있는 죽은 자들과 같이 모두 죽을 것이다! 너 또한 마찬가지! 황제께서는 말씀하셨지! 너를 죽일 수 있다면 한 번 죽여보라고!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너는 죽을 것이다!”

     딱.

     “일어나라, 피의 노예들이여!”

     황제의 사생아가 손을 튕긴 순간, 주변에 가득했던 시신들이 하나둘 언데드처럼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윽….”

     아스타시아가 아랫입술을 깨문다.

     “분명 피가 흐르지 않고 있었을텐데…!”

     “가사상태에서 깨어난 거죠. 흡혈귀인 채로.”

     심장이 멈춰있다가 다시 깨어나며 몸을 일으키는 자들.

     “어, 으어어….”

     

     세이레네 백작령의 영지민들이 흡혈귀의 노예가 된 채, 좀비처럼 우리를 향해 다가온다.

     “살려, 주, 십시오, 지브롤, 터, 백작, 님….”

     “몸이, 말을, 듣지, 않습, 니다….”

     노스트럼의 백성들이 제국에 의해 흡혈귀가 되었다.

     “흠.”

     “흐흐흐, 흐하하하! 어디 한 번, 죽일 수 있겠나! 노스트럼의 백성들을ㅡ”

     서걱.

     “……어?”

     

     황제의 사생아가 놀란다.

     “뭐, 왜.”

     나는 사지가 잘린 흡혈귀-가 된 세이레네 영지민을 피 묻은 검으로 가리켰다.

     “이 사이에 제국군이 숨어있을 줄 누가 알고.”

     “아, 아닙, 으어어…!”

     “괜찮아, 괜찮아.”

     나는 흡혈귀가 된 영지민들을 향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일단 사지부터 자르고 무력화시킨 다음, 사상검증으로 살릴지 말지 결정할 테니까.”

     “으, 으어어….”

     “시간 없다. 얌전히 사지를 내어놓지 않고 시간 지체되면, 오히려 죽는 건 너희다?”

     나는 왼손을 높이 치켜든 다음, 모두가 볼 수 있게 내 손목에 채워진 제국산 손목시계를 가볍게 두드렸다.

     “해 뜨면 흡혈귀 불타서 소멸하는 거 알지?”

     “으, 크허….”

     “그러니까 살고 싶으면 얌전히 베이라고. 살아만 있으면, 뭐든지 살게 해줄 곳은 있으니까.”

     가령.

     “마침 잘 됐어.”

     이걸로.

     “농사를 지을 수 없다면, 밤낮으로 연구하면 될 테니까.”

     흡혈귀가 된 영지민들이 흠칫 놀란다.

     “바토리 소장에게 좋은 선물이 되겠군.”

     잠이 필요없는 흡혈귀들에게 노동을.

     

     나는 황제의 방식에 대하여, 전적으로 부정하는 건 아니다.

     “프란트. 남자 자식 중에서 가장 뛰어난 네가 왜 황제의 총애를 받지 못하는 줄 알고 있나?”

     

     그저 미래에 대한 한 가지, 방향성만이 틀릴 뿐.

     “그건 네가.”

     나는 프란츠를 향해, 씩 미소를 지었다.

     서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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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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