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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0

    <320 – 우월감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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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장의 저택

    41F – 귀곡성의 층

    ━━━

     

    39층의 칼바람에 이어서 물리적인 파괴력을 동반하는 귀곡성이 몰아치는 층.

    싱은 앞서 얻은 평정심의 깨달음을 활용하여 균등한 힘으로 불시에 각기 다른 방향에서 들이치는 염동파를 받아쳤다.

     

    ‘훈련에는 확실히 도움이 된다. 이만한 시설을 훈련의 탑 외부에서 찾기란 극도로 어렵겠지.’

     

    아카데미의 훈련실조차도 이 정도의 효율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가상환경을 만들고 현실에서는 목숨을 담보로 하거나 적극적으로 몬스터를 수색한 뒤에야 치를 수 있는 전투를 즉시 치루는 것은 장점이다.

    그렇지만 아카데미의 훈련실에는 이런 특별한 환경에서의 성장을 상정하지 않았다.

     

    ‘아카데미의 훈련실은 지나치게 친절하지.’

     

    환상과의 정신적인 가상싸움에 불과하더라도 정신력이 일정비율 이하로 내려가면 훈련이 종료된다.

    죽음에 한없이 가까운 체험을 하도록 설정을 변경해도 진짜 죽음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치료시설은 가깝고 유사시에 도와줄 교관이나 다른 학생들도 잔뜩 있다.

     

    ‘이곳은 다르다. 죽는다면 몇 층 위의 오크노디조차도 내 위기를 파악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

     

    철저하게 계산해야 한다.

    앞으로 한 걸음을 더 내딛으면 출구까지 죽지 않고 달려갈 수 있을지.

    너무 늦지 않게 돌아가려면 지금이라도 현재 공략중인 층에서 퇴각해야 할지.

    1분의 시간을 더 버텨서 향상될 난이도가 내 목숨을 앗아가지는 않을지.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안목을 자연스럽게 기를 수 있다.

     

    ‘그렇기에 좀 더 아슬아슬한 타이밍까지 계산할 수 있어야 해.’

     

    평정심의 깨달음을 얻은 뒤, 싱의 전투력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완급조절 없이 세상을 향한 분노를 담아 그저 빠르고 강하게 휘두르기만 했던 살의 넘치는 검격에 힘의 분배가 생겼다.

    냉철한 이성을 놓치지 않고 휘두르는 검은 아무리 강한 살의를 품어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이성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그 끈을 단단히 움켜쥐고 따라가면 언제라도 이성을 되찾고 합리적인 대응을 할 수 있다.

    간격조절.

    완급조절.

    호흡조절.

    수많은 조절은 그를 강하게 만들었지만 역설적으로 싱은 그러한 조절 속에서 부족함을 실감했다.

     

    ‘49층의 벽이 너무 높다.’

     

    49층, 사자의 층.

    그곳에서는 41층부터 48층의 모든 요소가 동시에 발현된다.

    언데드와 관련된 테마가 총집합하는 층을 돌파하려면 각 층의 요소를 완벽히 꿰뚫어보고 극복하는 능력을 요구했다.

     

    -거짓을 말하지 않고 약속을 지키는 자에게 세계는 조금씩 신용을 줍니다. 내공, 마나, 신성력. 종류는 달라도 신용의 크기가 점점 커지죠.

    -세계와의 약속을 지키는 방법은 자신의 말을 지키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오크노디의 파파.

    그리고 재단의 이사장.

    제일 와이히엠하이는 말했다.

    강해지는 방법을.

    싱은 냉정하게 생각하고 결론을 내렸다.

    아카데미에 일찍 복귀하는 것보다 탑의 50층에 올라서는 것이 성장에 더 큰 도움이 된다.

    기한은 넉넉하다.

    방학이 끝나기 전에 돌아가는 것이야 충분히 가능하겠지.

    그것이 얼마나 큰 오만이었는지를 49층의 벽을 마주하고 실감했다.

     

    ‘적어도 모든 층에서 60분을 버틸 정도의 실력을 기르지 않으면 49층은 돌파할 수 없어.’

     

    매일 자신과의 싸움을 하듯이 도전시간을 늘리는 와중에도 싱이 놓쳐서는 안 되는 일과가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온 시간에 아카데미에서 얻은 마법시계가 띠리리리 알람을 울렸다.

     

    [점심시간]

     

    20층의 식당으로 내려오자 오늘도 먼저 식당에 내려온 오크노디가 한 손에 포크를, 다른 손에 나이프를 들고 자리에 앉아있었다.

     

    “받아놓은 음식도 많으면서 매번 꼬박꼬박 점심은 챙기는군.”

    “공짜 식사는 놓치기 아쉬운 걸요!”

    “그렇기는 하지.”

     

    매 끼니마다 포인트를 내고 음식을 사먹으면서 느낀 포인트 압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운동량이 많기에 5p 뷔페정식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싱은 매일 무제한 이용권인 10p를 지불하며 매월 최소 300p의 고정식비지출이 있었다.

    크루즈선에서도 승선포인트의 지출이 있기는 했지만 그는 경매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런 건 거저먹는 것이나 다름없지.’

     

    식사는 이사장이 간간히 언급하던 세계와의 약속, 신용을 얻는 행위와도 연결된다.

    먹는 것에 까다롭지 않았던 싱도 다양한 식사를 접하면서 그 차이를 차츰 실감했다.

     

    입 안에서 펑펑 터지는 마계감자를 특별한 혼합식으로 성분을 약화시켜 톡톡 쏘는 맛을 즐기는 레어요리 <팝콘감자>.

    사물로 의태하는 미믹의 특성을 살려 야채처럼 생겼지만 실제로는 고기인 레어요리 <야채미믹고기>.

    먹는 재미도 즐기는 재미도 톡톡한 식사의 뒤에는 몸이 가벼워지거나 소진되었던 힘이 차오르는 등, 능력치의 변화가 분명히 느껴졌다.

     

    “바닥까지 힘을 쓰고 온다면 이런 변화는 더욱 실감이 나죠. 자신의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성실한 사람뿐입니다.”

     

    재단에서 보내는 시간은 생각만큼 끔찍하지도 않고 고통스럽지도 않았다.

    하루하루가 성장의 연속.

    싱은 솔직히 이 시간을 즐기기 시작했다.

    강해지는 자신을 매 순간 실감한다.

    복수를 향해 매일같이 한 걸음씩 가까워진다.

    한 달간의 수련을 거듭하는 사이에 어느덧 마냥 무섭게만 느껴졌던 이사장도 이제는 떨지 않고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기능에는 특별한 비밀이 있답니다. 같은 기능도 경험치를 어떤 식으로 얻느냐에 따라 상위기능이 달라지죠. 가령 검술이 그렇습니다. 싱, 당신의 검술 상위기능은 어떻게 발현되었습니까?”

    “동방검술이 발현되었다.”

    “오크노디?”

    “전 아직 개방 안했어요! 특성강화로 <소드댄싱>을 골랐거든요.”

    “후후. 그 또한 차이의 일종입니다. 더 높은 깨달음을 검술에 접목시키려는 자는 상위검술을 체득하고, 특별한 공능을 구현하려는 자는 특성이 강화되죠. 그러니 누군가를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익힌 기능을 조사하면 됩니다.”

     

    살아온 인생을, 살아갈 목표를 엿볼 수 있으니까요.

    이사장의 그런 말에 싱은 식사자리에서 처음으로 질문을 던졌다.

     

    “이사장. 당신의 검술상위기능은 무엇이지?”

     

    이사장은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비밀입니다.”

    “…”

     

    어떨 때는 세상의 비밀을 깨우친 현자처럼 굴지만 이럴 때는 오크노디 다름없는 아이처럼 보인다.

    어른 같기도 하고 아이 같기도 하며, 선인 같기도 하고 악인 같기도 한 남자.

    싱이 직접 보아온 이사장은 무어라 정의하기 힘든 사람이었다.

     

    “오크노디. 넌 49층을 이미 정복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지 않았나?”

    “쉿. 비밀이에요!”

    “왜 아카데미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거지?”

    “그야 식품도감작이 엄청난 속도로 채워지고 있는 걸요! 아카데미로 돌아가 봤자 겪을 이벤트는 다 거기서 거기인데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죠. 호감작은 크루즈선에서 벌써 다 했는걸요?”

    “방학이 되면 지고쿠의 해적놀음에도 어울리기로 약속하지 않았나?”

    “크루즈선에서 살려준 걸로 쌤쌤 치기로 했어요!”

     

    …뭐, 괜찮겠지.

    강해지고자 하는 열망은 똑같다.

    그 수단이 싱은 훈련의 탑이고 오크노디는 고등급 요리라는 차이만이 있을 뿐.

    아무리 그래도 두 달간의 방학 중에 한 달 반이 지난 이상, 이제는 끝을 봐야 했다.

    2학기가 시작되기 전에는 돌아가야 할 테니까.

     

    ━━━

    이사장의 저택

    49F – 사자의 층

    ━━━

     

    용사 이슈타르조차도 끝내 넘지 못하고 돌아갔던 층.

    41층부터 48층의 테마가 총출동하는 언데드 테마파크와도 같은 층의 시련에서 싱은 가장 성가신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어떤 종류의 공격이든 허용하는 순간 저주가 쌓인다.

    허용하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날 때마다 45층 저주의 층과 같은 저주가 분당 1개씩 무작위로 쌓인다.

    물론 시작부터 극악무도한 저주가 걸리지는 않는다.

    <블라인드Blind>에 걸려 시야가 사라지기 전에는 먼저 <하급시야저주>로 눈이 침침해진다.

    단숨에 눈이 멀더라도 그 현상은 한쪽 눈에만 한정된다.

    다른 저주도 그렇다.

    <오른손 봉인>이 찾아오기 전에 <손떨림>부터 시작해서 착실하게 저주가 쌓이고 중첩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49층을 돌파하기 위해 돌파해야 하는 1000m, 고작 1km의 공간은 그리 수월하지 않다.

    내부를 꽉꽉 채운 기믹을 하나씩 돌파하다보면 시간은 점점 소모되고 끝내 자가진단을 하게 된다.

     

    여기까지다.

    지금 돌아가지 않으면 저주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무리하면 죽는다.

    운이 나빠도 죽는다.

    감수해야 할 위험이 너무 크다.

     

    몸이 가하는 경고를 도저히 무시할 수 없어서 끝내 이성의 고삐를 당기며 걸음을 돌리게 된다.

     

    ‘오늘은 아니야.’

     

    운이 나쁜 날이 있다면 반대로 운이 좋은 날도 있다.

    저주가 같은 분야에 겹치지 않고 전방위적인 하급저주에 그치는 날이 그랬다.

    오늘은 멀리 나가도 무리가 아니다.

    좀비강습 패턴도, 귀곡성 패턴도 등장방향이 겹쳐서 손쉽게 넘어섰다.

    깰 수 있다.

    본능적으로 그런 확신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최적의 날이 온다면 49층을 돌파할 가능성은 있어. 강점 하나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약점을 철저하게 배제해온 평균치가 높은 자에게만 허락되는 원 찬스. 그런 날이 찾아온 거야.’

     

    이슈타르는 종합적인 전투력면에서 싱을 월등히 능가한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무언가 한 가지, 49층을 넘기에는 결정적으로 부족한 측면이 있었다.

    39층에서 <평정심>의 부족으로 자신의 힘에 역으로 진로가 틀어 막혔던 싱이 그랬듯이.

     

    ‘이 순간만큼은 내가 용사보다 위에 섰다. 지극히 한정적인 순간의, 상당한 운이 따른 순간에 한해서지만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아.’

     

    나아간다면 이 우월감을 계속해서 간직할 수 있다.

    아카데미에 돌아가서도 이 사실을 자랑하듯이 내뱉으면 이슈타르는 열등감을 느낄 것이다.

    자신보다도 약한 자가 해낸 것을 그녀는 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에.

    한 달 먼저 아카데미로 복귀했던 짓을 어리석었다고 후회하겠지.

    반대로 싱은 한 달간의 특훈을 보람찼다며 추억으로 삼을 수 있다.

    그런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이 들지를 않았다.

     

    “왜 안 갔어요?”

     

    끝내 49층의 출발선으로 돌아온 싱.

    뒤에서 구경하던 오크노디가 땀을 닦을 수건을 내밀며 물었다.

    그 천진난만한 얼굴을 보고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싱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오크노디의 태연한 태도를 보면서.

     

    “너. 2학기가 시작되어도 아카데미로 곧바로 돌아갈 생각이 없지?”

     

    지금 그가 목표를 달성하고 떠난다면 오크노디는 혼자 남는다.

    자신이 한 달의 특훈으로 용사의 한 달을 앞질렀다는 우월감을 느끼는 것처럼, 오크노디는 훨씬 더 긴 시간을 보내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막연한 불안감을 느꼈던 것이다.

     

    “아앗. 들켰당.”

     

    오크노디의 마음이 아카데미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등교가 하기 싫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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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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