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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0

       어릴 적 나의 꿈은 교단에서 강의하다 쓰러지는 것이었다. 정년을 넘기고도 명예교수로 간간이 활동하다가, 책 몇 편 내고 죽어보는 것이 소원이라면 소원이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있는 곳은 병실이었다.

       

       고즈넉한 공간이다. 어둡고, 칙칙하며, 무료하다. 여기 계속 있다간 남아 있는 수명도 다 깎아 먹게 생겼다.

       

       똑똑.

       

       이런, 손님이 왔군.

       

       “들어오세요.”

       

       귀신이라도 찾아온 것처럼 문이 세심하게 열렸다. 나는 고개를 돌려 출입구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지금까지 만들어 왔던 인연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맨 앞에 서 있는 사람은 클라이스였다.

       

       “에테르 양.”

       

       연노랑빛 머리카락이 창문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에 나부꼈다. 클라이스는 치렁거리는 머리카락을 정돈하며 내게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는 하얀 꽃다발이 들려있었다.

       

       “이거, 문안 선물이에요.”

       “고맙습니다.”

       

       살다 살다 클라이스에게 선물을 받을 줄이야. 과거의 악연을 떠올려 보면 정말 관계가 많이 변했구나 싶었다.

       

       “예쁘네요. 저쪽에 꽂아 주실래요?”

       

       꽈악.

       

       클라이스가 입술을 깨문다.

       

       뒤이어 꽃다발 위로 이슬 몇 방울이 떨어졌다.

       

       “이제 겨우, 화해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클라이스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울지 않을 것 같았던 그 클라이스 하스펠트가.

       

       비록 흐느끼는 소리가 없다고는 하나, 마모되고 부식된 삶을 살아온 그 클라이스가 내 앞에서 얼굴을 붉히고 감정에 솔직한 모습을 보일 줄이야.

       

       “얼마 전에 들었어요. 에테르, 친구를 위해 여신님께 수명을 바쳤다고…. 당신의 고결함에 솔직히 놀랐어요. 저라면 그런 결단을 내리지 못했을 테니까요.”

       

       아니, 당연한 거 아닌가.

       

       로테는 자신을 희생해서 나를 지켜주었다. 그러니 나도 로테를 위해 남은 삶을 희생한 것이다.

       

       온전히 죽는 것도 아니다. 마왕을 쓰러뜨리고 지구로 귀환하면 모든 게 끝난다. 일상을 되찾을 것이다. 이곳 사람들과는 영영 만나지 못하게 되겠지만, 상관없다. 줄 만큼 주었고, 받을 만큼 받았다.

       

       그러니 단호하게 나아가자.

       

       “선생님, 후회는 없습니다.”

       

       나는 클라이스와 그 너머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제 결정에 미련을 가지지도,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되돌릴 수는 없으니까요.”

       “에테르 양…….”

       “그러니 우리, 웃으며 이별합시다. 정승처럼 악수하고 끝냅시다. 원래부터 비즈니스였던 것처럼.”

       

       그때였다.

       

       따악!

       

       이마 위로 딱밤이 작렬했다. 크게 아프진 않았지만, 워낙 갑작스러웠기에 나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눈을 멀뚱거렸다.

       

       “요 녀석이!”

       

       클라이스 뒤에 숨어있던 헤를라인 선생님이 손을 후후 불어가며 나를 꾸짖었다.

       

       “어른 앞에서 그리 폼 잡는 거 아니야.”

       “…선생님, 햇수로만 치면 제가 더 어른입니다.”

       

       아니, 애초에 나이 자릿수가 다르다. 헤를라인은 기껏해야 계란 한 판에 해당하는 나이고, 나는 거기에 1천 년 정도를 더하면 된다.

       

       어? 따지고 보면 이거 예의가 없는 거 아닌가?

       

       따악!

       

       “왜, 왜 때려요?”

       “으이구, 하는 짓은 아직도 어린애면서. 사람 대하는 게 그렇게 서투르면 어떡하니?”

       

       이어서 헤를라인의 참교육이 시작됐다. 감정 표현 제대로 못 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렇게 해서 언제쯤이면 솔직해질 수 있겠느냐.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으면 가슴에 묻어두지 말고 같이 상담하면 훨씬 좋았다…. 그 외에도 온갖 잔소리가 머리 위로 폭포수처럼 떨어졌다.

       

       “…이렇게, 가면, 어떡하니.”

       

       헤를라인이 내 머리통을 잡고 부드럽게 안았다. 양감 넘치는 지방덩어리 두 개가 이마에 콕 닿았다. 나도 모르게 큼큼, 하고 헛기침을 내뱉었다. 목에서 피 맛이 났다.

       

       “미, 미안. 내가 너무 오두방정 떨었지?”

       “아뇨. 이 정도는 괜찮아요.”

       

       헤를라인은 조심스럽게 나를 놓았다. 그러고는, 잠깐.

       

       저게 뭐야.

       

       “웬 통기타를 가져오셨어요?”

       “취미로 치거든. 못난 제자 들려주려고 가져왔지.”

       

       의자에 걸터앉아 자리를 잡기 시작한 헤를라인.

       

       한쪽 다리를 꼰 채로 기타줄을 조율하는 모습이 잘 새겨진 비너스 조각상을 연상케 했다. 과연 틸레트 아카데미에서 두 송이 꽃 중에 하나로 불렸던 외모의 소유자였다.

       

       튜닝을 마친 헤를라인이 곧바로 한 곡을 뽑기 시작했다.

       

       경쾌하면서도 흐물흐물한 음이 묻어나오는 노래였다. 로즈마리의 연주 스타일이 위령에 가깝다면, 헤를라인이 연주하는 곡의 곡조는 송별과도 같았다.

       

       2분이 조금 안 되는 연주가 끝나고, 헤를라인은 다시 한번 나를 안았다.

       

       조금 전보다는 훨씬 부드럽게. 그러나 놓치지 않을 것처럼 촘촘하게.

       

       마치, 곧 떠날 사람을 떠나보낼 수 없다는 듯이.

       

       “저, 저….”

       

       헤를라인의 더블 체인 허그를 바라보던 클라이스가 머뭇거리며 입술을 달싹였다.

       

       “저도 한 번만 안아줘도 되나요?”

       “물론이죠, 선생님.”

       

       나는 두 팔을 활짝 벌리는 제스처를 취했다.

       

       “앗.”

       

       술에 취한 듯 얼떨떨한 표정을 짓던 클라이스가 정신을 차리고는 내게 풀썩 안겼다.

       

       이 사람과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누는 포옹이었다. 무언가 밋밋하면서도, 어색하다. 헤를라인에 비하면 자연스럽지도 소담하지도 않아 삐걱거리는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도, 무엇 때문일까.

       

       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스펠트, 당신과 화해하고 죽을 수 있어 다행입니다.”

       

       클라이스는 작게 흐느꼈다. 나에게만 들릴 정도로.

       

       어째 내 주변엔 이리 울보가 많은지.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선생님…. 선생님…!”

       “이 바보 멍청이 에테르! 왜 말 안 해줬어!”

       “흐윽, 흑, 흐으윽……!”

       

       케이크, 겨울 목도리, 고이 접은 편지지.

       

       어떤 형태로든 선물을 받을 때마다 병실은 눈물바다로 변했다.

       

       모두 웃고 있었다. 웃으면서 울고 있었다. 나를 좋은 마음으로 배웅하기 위해 애를 쓰면서도, 닥쳐오는 현실에 버티지 못하고 흐느끼는 것이다. 가끔 기침을 하거나 피가래를 뱉으면 격렬한 포옹을 잇달아 받아야만 했다.

       

       이 병원 호스피스 잘하네.

       

       “흐아아앙…….”

       “울음 좀 그쳐라 꼬맹아.”

       “꼬맹이 아니야….”

       

       프레이는 상대적으로 이 소식을 늦게 알았기에 나와 대화를 나눈 이후로 내 품에서 절대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래,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다.

       

       틸레트에 있었을 때 수인인 것을 몇 번이고 숨겨준 점, 그리고 요호족이 홍수로 인해 큰 위험을 겪었을 때 도와준 점이 이 꼬맹이와의 연을 더욱더 끈끈하게 만들었다.

       

       “프레이.”

       

       프레이가 눈물 콧물 진득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별 파티도 슬슬 마무리 짓자.”

       

       네 시간 넘게 여우 귀를 쓰다듬고 있으려니 슬슬 지친다. 마음이 아니라, 몸이.

       

       “싫어, 안 떨어질 거야.”

       

       프레이는 내 품으로 더욱더 깊게 파고들었다. 로테가 프레이를 떨어뜨리려고 꼬리를 슬쩍 잡아당겼지만 도리어 얼굴에 빗질만 당하고 물러났다.

       

       로테는 입에 묻은 털을 뱉어내며 나와 눈을 맞췄다.

       

       “…아, 됐다 됐어. 그냥 이대로 말할게.”

       

       송별회는 끝이다.

       

       이젠 미래를 논의할 시간이지.

       

       “로즈마리.”

       “네? 네! 언니….”

       “로테, 프레이하고는 이 이후로 싸우지 좀 마라. 보는 내가 다 힘들다.”

       “하지만 쟤가 언니를……!”

       “위령(慰靈).”

       

       격식을 바꾸었다. 본래 이름을 말하는 대신, 직함으로. 

       

       단순히 충고가 아닌, 명령임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너를 본관의 직속 후계로 삼겠다.”

       “……!”

       “부디, 남은 금안과 수인을 잘 끌어주길 바라.”

       “명, 명을 받들겠습니다, 각하.”

       

       다행이군. 저리도 충절이 깊은 아이라서.

       

       “아카샤.”

       “어, 언니.”

       

       벽에 기대고 있었던 아카샤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여길 나가자마자 종이를 만들어서 거기에 내가 부르는 이름들을 하나씩 적어. 그놈들이 하나씩 죽을 때마다 불에 태워 버리고.”

       

       나는 심호흡한 뒤 떠오르는 이름들을 하나씩 불렀다.

       

       구천지대계 6석, 캐슬 브라보.

       

       구천지대계 3석, 빌헬름 폰 슈델가이거.

       

       창천 파스모와, 그가 동시 소환할 수 있는 절멸급 마수 여섯 마리.

       

       “마지막으로, 마왕.”

       

       마왕 파르켈수스까지.

       

       “이런 게 왜 필요한 건데”

       “역사에, 남기기 위해서.”

       

       마왕군 세력이 흑주에 의해 하나씩 죽어 나가는 광경을 피난민들이 바로바로 알아야 내 위상이 높아진다. 그때 되면 물론 나는 없겠지만, 내 비호를 받았던 금안족들은 엘프국 정부인사들도 건드리기 쉽지 않게 될 것이다.

       

       왜냐. 카우렐리아는 민주주의 국가니까.

       

       “그런데 민천은? 민천은 어떻게 해?”

       “아, 민천 말이지.”

       

       나는 손가락으로 로즈마리와 레니냐를 한 번씩 짚었다.

       

       “로즈마리는 레니냐, 프레이를 데리고 전쟁이 끝나자마자 서부 구릉으로 향해. 그곳에서 민천을 만나서 다음 일을 논의해. 아, 맞다. 여기, 이거. 내 서신이야. 만나면 전해주도록 하고. 먼저 펼쳐보지는 마.”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품에 묻혀 있던 프레이도 여우 귀를 접었다 폈다 하며 긍정의 표시를 내비쳤다.

       

       “다음으로 클라이스 선생님과, 메리가 선생님.”

       “요게, 이제 선생님 이름을 막 부르네?”

       

       헤를라인 선생님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큭큭 웃었다.

       

       “그래서, 마도부장관님. 저희는 뭘 어떻게 하면 되나요?”

       “…두 분은 어른이죠. 어른의 의무가 뭐일 것 같아요?”

       “뭐냐니, 그야…….”

       

       지키는 것.

       

       “제가 사라지고 나서도, 제 친구와 제자들을 잘 돌봐 주세요. 싸우는 일 생기면 중재해 주고, 기념할 일 있으면 모아서 밥 한 끼 먹여 주세요. 그 누구도 굶지 않고, 성내지 않고, 울지 않도록.”

       “어, 어……. 너 정말 어른스러워졌다.”

       “조금 전엔 어린애라면서요?”

       “이런 점은 아니야.”

       

       그러고 보니, 헤를라인 선생님과는 예전에 나눈 이야기가 있었지.

       

       – 하스펠트 교수님은 선생님의 친우분이시잖아요. 왜 저를 도와주신 거예요?

       

       – 그냥, 네가 불쌍해 보였어. 평민 시절의 나도 떠올랐고.

       

       –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다른 게 아니야. 틸레트 아카데미에 입학해서, 이 세상 사람들을 위한 업적을 만들어 줘. 그거면 충분해.

       

       “선생님, 그때 나누었던 대화 기억나세요?”

       “응? 아, 그래. 기억나지. 물론.”

       “선생님께서 부탁하신 대로, 마왕을 쓰러뜨릴 마도를 완성했어요. 이거면 된 건가요?”

       “차고 넘쳐, 바보 제자야.”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쿡쿡 웃었다.

       

       그러면…….

       

       이제 남은 건 한 사람인가.

       

       다른 사람과는 작별 인사를 얼추 마친 것 같다. 그리 판단한 내 시선이 바로 옆을 향했다. 그곳에는, 산뜻하고 정갈한 외모를 가진 붉은 단발의 소녀가 앉아있었다.

       

       “로테.”

       “……에테르.”

       “또, 또, 또. 또 울려고 한다.”

       “아, 안 울어. 이제 안 울 거야.”

       

       어찌나 눈물을 짜냈는지 눈가가 새빨갛게 부어오른 로테의 모습을 바라보니 심장이 다 아파온다.

       

       나는 말없이 로테의 손을 잡고 천천히 흔들었다.

       

       그동안 나누었던 추억이 주마등처럼 휙휙 지나갔다.

       

       “우린 입학시험 무렵에 처음 만나서, 여러 일을 겪었지. 공부도 같이하고, 연구도 같이하고, 밥을 먹거나 잠을 잘 때도 늘 함께였어.”

       “응, 기억해.”

       “흑사병에 걸렸을 때, 나는 네가 죽을까 봐 잠들 수 없었어. 그리고 그때 깨달았지. 아, 이런 게 친구구나.”

       “그것도 기억나.”

       “세상을 증오하던 마왕군의 최고 간부를, 이런 멍청한 소녀로 만들어버린 것도 너야. 그래, 너. 네가 없었더라면 아마 이런 결과는 없었겠지.”

       

       과거에도.

       

       앞으로도.

       

       영원히.

       

       내가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는 세계선은, 아마 이번 한 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다른 세계선에선 버멜이 없을지도 모르고, 예상외의 일로 인해 클라이스와 관계 복구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로테가 입학시험에서 질투를 느꼈더라면, 그래서 내게 박하게 대했더라면 진작 1학기가 끝나기 전에 틸레트 아카데미를 뛰쳐나왔을 테고, 그것도 세계 멸망의 단초가 되었을 것이다.

       

       경우의 수는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서, 이 세상은 잿가루 날리는 엔딩을 맞이한다. 분명 그럴 것이다.

       

       로테를 비롯한 모두가 그런 파멸을 막았다. 오늘에 이르러서야, 그리고 지금 세계선에 이르러서야.

       

       “고마워.”

       

       그러니까 감사를 전한다.

       

       “내 친구가 되어 주어서.”

       

       이젠 작별할 시간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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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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