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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1

       

       

       사건이 발생한 시점은 새벽에서 아침을 넘어가는 지점이다.

       요즘 들어 심상 수련이 잦아진 탓인지.

       

       그 영향으로 아침잠이 많아져 있었다.

       

       억지로 깨기는 좀 그런 터라.

       패우철에게 가능하면 늦게 깨워달라 말해놓기도 했기에.

       

       이날도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형님…. 형님.”

       

       들려오는 소리에 슬쩍 눈을 떴다. 

       슬슬 일어날 시간인가 싶어서.

       

       일으키는 몸이 무겁다.

       요즘 유독 그랬다.

       

       몸 상태가 이상한가 싶지만, 그다지 이상은 느껴지질 않는다.

       아무래도 정신적인 피로가 대부분을 차지한 모양.

       

       “…후.”

       

       한숨을 짙게 내쉬며 상체를 일으켰다.

       일어나기 싫어도 일어나야 했다.

       

       몸을 일으키고 겨우 눈을 뜨니.

       눈앞에 누군가가 보인다.

       

       패우철인가?

       그도 아니라면 다른 동거생인가.

       

       “…응?”

       

       놀랍게도 둘 다 아니었다.

       

       패우철이라면 저렇게 여리여리한 몸이 아닐 테니까.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고 상대를 쳐다봤다.

       

       창틀로 비추는 햇빛은 따사롭다. 아침을 가리키듯 틀을 통해 내리는 빛이.

       마치 온전하게 한 사람만을 비추는 것 같다.

       

       “…너.”

       

       두 무릎을 꿇고.

       

       다소곳한 자세로 날 맞이한 것은, 다름 아닌 위설아였다.

       

       은은하게 금빛이 감도는 갈색 머리칼과.

       반쯤 감은 것 같은 금안(金眼)이 눈에 들어온다.

       

       아니, 이게 아니지.

       지금은 위설아의 모습을 보며 감탄이나 할 때가 아니잖아.

       

       ‘얘가 왜 여기 있지?’

       

       혹시 꿈인가 싶지만, 그건 아니다.

       

       상황도 그렇다.

       

       패우철은 물론이고. 방에 모인 남정네들이 움직이던 동작을 멈추고.

       위설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동자가 죄다 흔들린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돌처럼 굳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뭔데.

       

       이게 무슨 상황인데?

       곧바로 날 깨운 패우철을 바라봤다.

       

       저 덩치 놈도 이 상황이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진 모양이지만.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일단 잽싸게 다가와 귓가에 말을 전한다.

       

       아직 전음을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닌 모양이었다.

       

       “무슨 일인데 이게.”

       “…갑자기 형님한테 볼일이 있다고 해서….”

       “네가 방문 열어줬어?”

       “형님께서 자고 있다고 말하니…. 그럼 안에서 기다리겠다고 누님이….”

       “그런다고 진짜 안으로 들여오냐? 여기 남자 놈들이 몇인데.”

       

       와중에 누님은 또 뭐야.

       위설아가 패우철보다 몇 살은 어릴 텐데.

       

       심지어 나도 패우철보다 어렸다.

       

       패우철이 약관은 넘지 않았었나?

       

       “…죄송합니다. 저도 갑작스러워서.”

       

       패우철이 머쓱 해하며 뒷머리를 긁적거리는 틈에.

       가만히 있던 위설아가 말에 끼어든다.

       

       “제가 억지 부린 거예요. 들어오고 싶다고. 패 공자께선 잘못이 없어요.”

       

       위설아의 입에서 패 공자라는 말이 나오니.

       패우철의 얼굴이 녹아내린다.

       

       좋단다.

       

       콱-!

       

       “끄윽!?”

       

       꼴이 마음에 안 들어 패우철의 종아리를 살짝 찼다.

       곧바로 커다란 몸이 고꾸라지며 제 종아릴 감싸 안았다.

       

       엄살은, 살살 쳤구만.

       

       “엄살이 심하네. 우리 우철이.”

       “…형님, 진짜 금 간 것 같은데요?”

       

       울상을 지으며 말하는 패우철은 무시했다.

       그런 패우철은 내버려 두고 다시 위설아를 쳐다봤다.

       

       “무슨 일이야?”

       “…공자님께 할 말이 있어서요.”

       

       할 말이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더니.’

       

       지난날 위설아와의 대화의 끝은.

       

       위설아 스스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시간을 달라고 했던 것이 끝이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던가.

       

       나는 위설아의 말을 듣고선 존중해주기로 했다.

       그렇게 며칠을 가만히 있었더니.

       

       위설아가 직접 찾아왔다.

       

       거기까진 좋다.

       다 좋은데.

       

       문제는 왜 이런 아침 댓바람부터 찾아왔냐는 거지.

       

       “할 말이 뭔데?”

       

       말을 뱉고나서 후회했다.

       

       오랜만에 봐서 좋다고. 혈색이 참 좋아 보인다고.

       아침은 먹었냐고.

       

       그런 시답잖은 걸 얌전히 물으면 될 것을.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투는 퉁명스럽기 그지없다.

       

       이건 아마 죽을 때까지 고쳐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물은 말에.

       위설아의 고개가 살짝 올라간다.

       

       금빛 눈동자가 온전히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내 시종 노릇을 할 때 보이던 해맑던 시야는.

       

       조금은 남아있는 듯 보이지만.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게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스쳤다.

       

       아직 머리가 비몽사몽하다.

       다소 멍하다고 해야 하나.

       

       절정에 닿은 육신이니, 고작 잠을 못 잤다고 피로감에 휩싸일 것은 아닐 텐데.

       요즘들어 조금 이상했다.

       

       안 되겠다 싶어, 내기를 돌려 피로를 몰아내려는 틈에.

       

       위설아가 내게 말한다.

       

       “좋아해요.”

       “…에?”

       

       귓가에 들려온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멍청한 소리를 내버렸다.

       

       “방금 뭐라….”

       “좋아해요.”

       

       잘못 들었다는 듯.

       되물으려던 내 말을 무시하고.

       

       확인 사살을 하듯 한 번 더 내뱉는 말에.

       

       안개라도 낀 듯이 흐릿하던 머리에 무언가 쿵 하고 떨어지며 산개한다.

       

       “너….”

       

       말을 내뱉은 위설아는 덤덤한 표정이었다. 

       그걸 보면서 순간 몇 초는 벙쪄야했다.

       

       뭐라고 해야 하지?

       

       그런 생각으로 가득 차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입을 막은 투명한 벽을 부수고.

       

       겨우 질문을 내뱉는다.

       

       “갑자기 무슨 말이야?”

       

       말하는 와중에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고민을 끝냈어요.”

       “고민?”

       “네. 고민.”

       

       고민이 많다고.

       생각해봐야 한다며 시간을 내어달라더니.

       

       그러고 있다 내놓은 답이 이건가.

       

       뭐지 이게. 

       진짜 꿈이 아닐까? 그게 더 현실성이 있어 보였다.

       

       ‘뭔데…?’

       

       말을 내뱉는 위설아를 살핀다. 자세히 살피고 있으니 그제야 보였다.

       덤덤한 듯 표정을 짓고 있는 위설아의 귀가.

       

       벌겋게 붉어져 있음을 말이다.

       

       “…”

       

       그걸 보고서 다시 위설아와 눈을 맞췄다.

       

       “그….”

       

       뭐라도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아 속으로 말을 되뇌인다.

       

       짧은 몇 초간, 수만개의 대답을 떠올리다. 굳이 굳이 고른 말 한마디를 찾아.

       입 밖으로 내뱉으려는 찰나.

       

       “그렇게 됐으니….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내뱉기도 전에, 위설아가 대뜸 그리 말하고서.

       고개를 푹 숙인 다음 벌떡 일어난다.

       

       “으…응?”

       

       얼핏 보이는 귀가 훨씬 더 붉어져 있었다.

       

       내가 다급히 위설아를 부르려 하지만, 위설아는 재빨리 걸음을 옮기고선 냅다 뛰어나간다.

       얼마나 빠른지 부르지도 못했다.

       

       “뭔….”

       

       문밖으로 나가 통로를 뛰어가는 위설아의 발소리가 점점 줄어들고 나서야.

       대뜸 몰아친 상황을 조금씩 인지할 수 있었다. 

       

       ‘방금 뭐라고 한 거지?’

       

       좋아한다고 했던가.

       분명 그랬던 것 같은데.

       

       고장이라도 난 듯 버벅거리는 틈에.

       

       “형님.”

       

       패우철이 슬쩍 내게 말을 건다.

       

       “…어…어…왜?”

       

       머리뿐이 아니라 입까지 굳었는지 대답이 평소처럼 나오질 않았다.

       

       패우철은 뭔가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다시금 말을 뱉는다.

       

       “실례지만…. 형님.”

       “말해.”

       “…한 대만 때려도 되겠습니까?”

       “그러던…. 뭐 인마?”

       

       내가 인상을 팍 찌푸리니 패우철이 호다닥 뒤로 물러난다.

       아무래도 이게 기점이었을 거다.

       

       위설아의 행동이 다소 이상해진 것이.

       

       

       

       

       ******************

       

       

       

       

       아침 수련은 당연하게 빠지고.

       이론 교육을 들은 뒤.

       

       금방 점심이 찾아왔다.

       

       오후 수련에 뭔가 덕지덕지 껴있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그걸 위한 이른 점심인 모양이다.

       

       아무렴 좋지. 

       

       “오늘 점심 뭐냐.”

       “모르겠….”

       “그래, 그것도 이제 익숙하다.”

       

       어차피 안 외웠을 패우철에게 한 번씩 묻는 것이.

       약간의 일과가 되었다.

       

       내가 볼 때 뭐가 나오든 다 잘 처먹으니 안 외우는 게 분명했다.

       

       “고기라고 들었던 거 같은데.”

       “그럼 넌 못 먹겠네.”

       “옛말에 음식은 거르는 게 아니라고 했어.”

       

       패우철과 잡담하는 사이. 은근슬쩍 끼어있는 것은 잠룡이었다.

       며칠 전을 시작으로, 모른 척 잠룡이 끼어서 같이 밥을 먹기 시작했는데.

       

       구태여 안 말리고 있기는 하나.

       문제가 조금 있었다.

       

       “…제발 다른 사람들 시선 좀 신경 쓰면 안 되냐?”

       “그걸 네가 나한테 말할 줄 몰랐는데.”

       

       잠룡이 어이없다는 듯이 하는 말에. 

       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런 말을 구태여 꺼내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잠룡은 엄연히 도문 소속인 만큼.

       혹시 육류를 못 먹는 이들을 위한 배식이 따로 배치되어 있는데.

       

       이 새끼는 무슨, 당당하게 고기를 올리고 있냐고….

       

       “야…. 너네 사형제들이 너 죽일 듯이 보는데?”

       “형제들이라니, 모르는 친구들이야. 신경 쓰지 마. 나 외동이거든.”

       

       아닌데, 아무리 봐도 무당의 문인들 같은데?

       이럴 때마다 잠룡이 진짜 미친놈이 아닐까 싶었다.

       

       이러고 사는데 무당에서 왜 안 쫓아내는 거지?

       

       ‘…재능 때문인가?’

       

       진짜 그런가?

       하기야, 잠룡 수준의 재능이면 어디가서 데려올 수도 없는데.

       

       냅다 사고 친다고 쫓아내기는 아까울 수 있었다.

       

       “오! 닭고기.”

       

       저 봐라, 고기 나왔다고 신나 있는 거.

       저게 진짜 도인이 맞나 싶다.

       

       ‘…신 노야 말로는, 소림의 황아불영도 어릴 때 고기 구워 먹고 술 마셨다고 하기는 했지.’

       

       사실 겉으로 깨끗한 척 뒤에서 꼴값 떠는 인간들보다.

       이렇게 본능적으로 사는 잠룡이 더 깨끗할지 모를 일이다.

       

       “형님….”

       “왜.”

       “너무 많이 담으신 거 아닙니까? 다 못 드실 것 같은데.”

       “남으면 네가 먹겠지.”

       “그거 상당히 좋은 생각 같습니다.”

       

       내 말에 패우철이 싱글벙글 웃었다.

       

       이렇게 무리를 지어 다니니, 뒤에서 소곤거리는 소리도 들려오고는 했다.

       

       -정말 잠룡이 저 무리에 들어간 거야…?

       -철철양에? 무당의 잠룡까지 포섭당하다니. 어찌 그럴 수가…!

       -잠깐만. 철철양이라니, 철양철 아니었어?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이름이 안 중요해?

       -검룡도 요즘 진룡과 같이 다닌다고 하던데…. 설마?

       -육룡 중 삼룡을 아래로 거느린 광견 철지선은 그럼 대체….

       

       듣기만 해도 어지러운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와중에 광견 철지선에 대한 건 죽지를 않고 계속 살아있네.

       

       저러니 철지선이 화병에 걸리지.

       

       저 뒷소리를 듣고 있는 건 나뿐이 아닌지.

       잠룡은 가만히 배식을 받다가 피식 웃는다.

       

       “그럼 이제, 철양철혁인가.”

       “은근슬쩍 가져다 붙이네.”

       “뭐 어때. 대충 만든 건데 하나쯤 끼워줘도 되잖아.”

       

       와중에 대충 만든 거라고 하는 거 보니까.

       그때 내가 장난쳤다는 걸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역시 눈치는 더럽게 빨라요.

       

       “근데 진짜 괜찮냐?”

       

       내 물음에 잠룡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린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이렇게 엮이고 있으면, 나중에 안 좋을 수도 있잖아.”

       “아.”

       

       나는 무당의 장문인이 얼마나 남들의 시선과 명성에 집착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물며 그런 장문인의 예쁨을 한몸에 받는 잠룡이다.

       

       이렇게 말썽꾸러기들과 다니는 걸 그가 과연 좋게 볼까?

       

       그것에 대한 물음이었으나.

       

       “상관없어. 재밌잖아?”

       

       잠룡은 태평하기만 했다. 역시, 이 놈도 절대 정상이 아니야.

       

       “그리고.”

       “응?”

       “조용히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축복이거든.”

       “식당에 사람 봐라. 조용히 먹을 수 있겠나.”

       

       조금 늦게 온 탓에 안 그래도 북적거리는데.

       조용하게는 개뿔.

       

       내 말에 잠룡은 픽 웃고는.

       다시 음식을 받아 넣는다.

       

       와중에 고기는 더 받아가네.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리를 찾는 건 항상 어렵지 않다.

       이런 쪽에선 재빠른 모용희아가 이미 식당 한편에 자리를 잡아 놨기 때문이다.

       

       모인 이들은 무려 사대세가중에 셋.

       

       남궁, 모용, 당문의 여식이 한 번에 모인 자리인 만큼.

       저곳으로 합석을 취하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심지어 합석하려고 해도.

       모용희아나 당소열의 날카로운 말 몇 마디면 꼬리를 내리고 사라지기 마련이다.

       

       가끔 팽아희가 나타나 당소열과 같이 밥을 먹긴 하는데.

       그마저도 가끔이었다.

       

       결국, 남은 자리는 슬쩍 나타난 내가 앉는 것으로 확정되어 있는데.

       

       “뭐 하시는 거예요?”

       “응?”

       

       언제나 그렇듯 자리에 앉으려던 찰나.

       모용희아의 차가운 목소리가 날아든다.

       

       “뭘?”

       “왜 마음대로 앉으시냐구요.”

       

       평소보다 서늘하다.

       안 그래도 차가운 애가 더 차갑게 되어 있었다.

       

       뭐지?

       

       “흥….”

       

       고개를 휙 돌리는 걸 보니, 내가 뭔가 잘못한…아.

       모용희아의 갑작스러운 태도에. 그제야 눈치챌 수 있었다.

       

       “미안, 내가 그때는 일이 좀 있어서.”

       

       저번에 모용희아와 할 이야기가 좀 있어 둘이 보자고 했을 무렵.

       

       내가 철지선의 부름에 모용희아와의 약속을 깼던 것 때문에.

       

       아무래도 화가 난 모양이었다.

       그러게, 그 뒤로 내가 안 찾아갔구나.

       

       …화날 만한데?

       

       “미안.”

       

       내가 다시 한번 사과를 보내니. 모용희아의 고개가 다시 이쪽을 향한다.

       

       “…다음엔 진짜 화낼 거예요.”

       

       사과 한 번에 다소 누그러진 모습이다.

       의외로 잘 풀어주네.

       

       전생엔 진짜 쥐잡듯이 잡혔는데.

       

       그 말에 한번더 사과를 보내고.

       앞에 빈자리에 앉으니.

       

       눈치를 보던 잠룡과 패우철도 자리에 앉는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 반쯤 졸고 있는 남궁비아의 옆에 앉았고.

       이에 잠룡이 내 옆에 앉으려 하자.

       

       남궁비아가 슬쩍 일어나며 손짓을 취한다. 

       잠룡을 향한 손짓이었다.

       

       “거기…자리…. 있어.”

       “…음?”

       “자리. 있어.”

       “아, 자리가 있다고. 미안하오.”

       

       남궁비아의 지적에 잠룡이 한 칸 옆으로 앉는다.

       자리? 누가 또 오나?

       

       “누가 또 오기로 했어?”

       “…응….”

       

       말을 내뱉고서 남궁비아는 다시 조는 표정으로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댄다.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밥 먹는 데 방해가 되지만.

       

       이걸 계속 반복하고 있으니, 이제는 별로 신경도 안 쓰게 됐다.

       

       자연스럽게 밥을 먹고 있는 틈에.

       앞에 있는 모용희아가 문득 잠룡에게 말을 걸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싱긋 웃으며 하는 말이지만.

       왠지 모르게 가시가 있었다.

       

       그걸 잠룡도 느꼈는지 밥을 먹다 말고 헛기침을 내뱉는다.

       

       “…크흠. 목소리가 너무 다르지 않소?”

       “상대가 다르니 당연한 이야기지요.”

       “…아, 예. 뭐…오랜만에 뵙소 모용 소저. 인사가 좀 늦었소.”

       

       잠룡의 말에 모용희아가 차를 한 모금 삼킨다.

       뭐지 얘네? 전에 만난 적 있었나.

       

       “제가 찾아갔을 때는. 어느 쪽이든 갈 생각도 속할 생각도 없다 하셨던 것 같은데.”

       “…그. 참, 사람 일이란 게 알다가도 모를 일이 아니겠소?”

       

       아.

       

       ‘뭐, 관도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더니. 그건가?’

       

       신룡관 내에 퍼진 파벌 중. 가장 큰 것은 모용희아의 이야기다.

       

       문인은 문인끼리.

       상인은 상인끼리.

       

       뭐 대충 뒷배경이 비슷한 이들끼리 뭉치고 있다는데.

       온 지 며칠 안 됐을 무렵, 모용희아도 그렇게 사람을 모으고 있다고 하더니.

       

       잠룡에게도 갔었던 모양이다.

       잠룡은 그걸 안 하겠다 거절한 모양이고.

       

       어디에도 가지 않겠다 해놓고.

       이쪽에 대뜸 온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미안하오.”

       

       잠룡도 보기 드물게 사과를 취하자.

       모용희아는 들고 다니던 부채를 접고서 살짝 웃는다.

       

       “괜찮습니다. 오히려 구 공자님 쪽이라면 다행이겠지요.”

       “…하하.”

       “다른 곳으로 갔다면, 묻어버리려고 했는데….”

       “응? 뭐라고?”

       “농담이에요. 호호.”

       

       내가 볼 때 절대 농담 아니었다.

       지난날 들었던 모용희아의 말 중에 가장 진실에 가까웠으니까.

       

       잠룡도 위기감을 느꼈는지 식은땀이 살짝 맺힌 게 보인다.

       

       저 미친놈도 모용희아는 어지간히 무서운 모양이다.

       하긴, 전생에도 잠룡이 일방적으로 피해다니긴 했지.

       

       사고치고 걸렸다 싶으면 날 팔아넘기고 말이야.

       …떠올리니 빡치네.

       

       속에 불이라도 난 것 같아.

       남궁비아가 따라준 물을 한 모금 마시려는 찰나.

       

       드륵.

       

       옆에 누군가가 앉는다.

       

       남궁비아가 앉을 사람이 있다고 하더니.

       그 사람인가?

       

       누군가 싶어서 올려다보니.

       

       인기척과 함께 익숙한 꽃향기가 느껴진다.

       

       “어.”

       

       아침에 날 찾아왔던 위설아였다.

       

       찾아갈 때마다 같이 밥 안 먹으려고 하더니.

       오늘은 무슨 일이지.

       

       의문이 드는 와중에, 그녀가 가져온 음식을 살폈다.

       

       ‘밥을 무슨 산처럼 퍼왔대.’

       

       반찬들이 하나같이 양이 많다.

       내가 보고 있던 걸 위설아도 눈치챘는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위설아가 말한다.

       

       “…많이 먹는 게 좋다고 해서….”

       

       내가 계속 많이 먹으라 했던 것 때문에.

       많이 퍼왔다는 말이다.

       

       “시, 싫으면. 빼 올까요.”

       “빼긴 뭘 빼 와. 다 먹어야지.”

       “…네.”

       

       내 말에 안심한 듯이 위설아가 앉아서 밥을 먹기 시작한다.

       아까에 대한 이야기는 없을뿐더러.

       

       밥만 먹는다는 말이다.

       

       위설아가 벌써 까먹었나 싶지만. 

       아침보다 붉어진 귀가 그건 아니란 걸 증명하고 있었다.

       

       ‘…남궁비아가 부른 건가?’

       

       올 사람이 있다고 한 건 남궁비아였으니.

       

       아무래도 알고 있었던 모양인데.

       

       남궁비아는 눈을 감고 내 어깨에 기대자고 있을 뿐이었다.

       

       “…한 명 빠진 줄 알고 좋았는데. 쯧.”

       

       이 틈에 조용히 모용희아가 속삭인다.

       

       알게 모르게 불편한 식사 시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_ _ )

    늦어서 죄송합니다. ( _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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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FZ,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Under the Heavens, The Zenith's Childhood Friend,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struggling meaninglessly, he acknowledged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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