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21

       그래서 나더러 말을 놓으라는 것인가 말라는 것인가.

        

       어쨌거나 뉘앙스를 보면 말을 놓으라는 쪽에 더 가까운 것 같았다.

        

       샤를로트와 미아가 존댓말을 쓰는 것에는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다소 불합리함을 느꼈지만, 하긴 뭐 그 둘은 정말로 존댓말을 무너뜨린 적이 없기는 하니까. 

        

       미아라면 반말을 한 적이 있긴 했다.

        

       죽일 거야!

        

       ……라고, 나한테 소리친 적이 있었지.

        

       그 상황을 ‘일반적인 상황’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야 반말하는 것이 나름대로 친밀감을 보이는 행위였지만, 미아에게 그 상황은 너무 화가 나서 미쳐버릴 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이성을 잃은 상태를 ‘원래 상태’라고 가정하는 것은 사람을 데스 게임에 몰아넣고 ‘사람은 극한의 상황에서 본성이 나온다’라고 지껄이는 멍청한 데스 게임 주최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반말하는 캐릭터를 구축할 걸 그랬나?

        

       아●나미 레○라던가, 나●토 ○키라던가, 아무튼 그런 유명한 캐릭터들 있지 않은가. 말도 놓고, 쿨뷰티고. 가끔 인간적인 모습도 보이고.

        

       인제 와서 그런 생각을 해봐야 늦었지만.

        

       “안녕.”

        

       아무튼 스스로 말을 놓자고 생각했으니 시도는 계속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

        

       다음으로 나의 표적이 된 사람은 레나였다.

        

       자주 가는 무기점에 부품을 예약할 일이 있다며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나갔다가 들어오던 레나는, 나의 그 가벼운 인사를 듣고 잠깐 멍한 표정이 되었다.

        

       “그, 말을 놓는 건 좋은데, 너무 갑작스럽지 않아? 차라리 말을 놓으려면 아침부터 놓던가.”

        

       레나의 반응을 본 앨리스의 말이었다.

        

       “하지만 아침에 말을 놓건, 점심에 말을 놓건 결국 상대한테는 갑작스럽게 느껴질 텐데요.”

        

       “아니, 그래도 아침에 놓으면 열 몇 시간 동안 보지 않았다가 그런 게 되지만, 점심시간에 말을 놓으면 한 시간도 되지 않아서 갑자기 말을 놓는 게 되잖아.”

        

       으음, 그런가?

        

       하지만 그걸 지적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나는 반으로 돌아오던 레나에게 이미 반말로 말을 걸어버렸으니까.

        

       “…….”

        

       하지만 다행히도, 레나는 소피아만큼 기겁하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면 레나는 내 주변에서 가장 순수한 아이였다. 얼마나 순수하냐면, 아마 비슷하게 존댓말을 쓰는 미아나 로티보다 더 순수할 가능성이 컸다.

        

       소피아와 샤를로트야 뭐 순수하다는 말을 쓰면 안 되는 상대고.

        

       미아는 자기 아버지가 생전에 저질렀던 일을 아는 과정에서 굳이 몰라도 될 사실들을 어쩔 수 없이 알게 되었고, 로티는…… 연애 중이지 않은가. 로티와 제이크의 관계가 얼마나 진전되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장담하건대 이 시대에서는 ‘외설 행위’라고 불릴만한 행위를 분명히 하나 이상 저질렀으리라.

        

       레나가 그 모든 것을 아예 모른다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모든 것들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애를 고르라면 나는 레나를 고르겠다.

        

       특히 인간관계가 그래서, 레나는 다른 누군가에게 굳이 원한을 가지거나 하지 않았다.

        

       나와의 관계에서도 켕길 것이 없으니 상황만 파악하고 나면 소피아처럼 나를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말없이 우리 곁으로 와 자기 자리에 앉은 레나는 내 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말했다.

        

       “드디어, 굴레를 벗어버리기로 하셨습니까?”

        

       “…….”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아니, 그러니까 이 무게는 너무 진지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의 입마저 다물게 만들어버리는 그런 종류의 침묵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거대한 물음표.

        

       ‘지금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하는 의문이 담긴 침묵이었다.

        

       그리고 한순간 나는 그 침묵에 짓눌릴 뻔했다.

        

       사실 나도 그 생각을 똑같이 하긴 했다.

        

       얘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 본능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만약 이대로 레나가 뭔가 말하게 둔다면 아마 앞으로 엄청나게 후회하게 될 거라고.

        

       꾸욱.

        

       하지만 내가 일어나서 레나를 말리기도 전에, 내 팔을 꽉 잡는 이가 있었다.

        

       앨리스였다.

        

       앨리스는 내 쪽을 보면서 빙긋 웃어 보였다. 얼굴은 ‘빙긋’ 웃고 있었지만, 눈에는 흥미가 번들번들 묻어나왔다.

        

       “그게 무슨 이야기야?”

        

       그리고 레나에게 클레어가 물었다. 서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클레어는 앨리스만큼 대놓고 나를 골려주려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레나가 나에게 들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진심으로 궁금한 표정이었다.

        

       여기서 멈춰야 할까? 말로라도 레나의 말을 막아야 할까?

        

       하지만 그랬다가는 레나가 지금 하려는 이야기가 내게 엄청나게 부끄러운 이야기일 거라는 걸 다른 애들한테도 전부 들키고 만다.

        

       그리고 그렇게 막아냈다고 하더라도, 샤를로트나 앨리스가 그 먹잇감을 포기할 애들이 아니었다.

        

       빠르게 돌아가던 내 머리가, 순간 한 기억을 떠올렸다.

        

       방학하기 전, 레나의 방을 방문했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비밀을 공유해달라고 했다가 그 비밀이라는 게 내 생각보다 훨씬 무겁고 진중한 것이라서 기겁해 어떻게든 균형을 맞추려고 대충 꺼내놓았던 이야기였는데.

        

       “그것이…….”

        

       레나가 망설이며 나를 보았다.

        

       이제 결정해야 했다. 그냥 여기서 말끔하게 터뜨리고 끝낼지, 아니면 이번 한 번이라도 막아낼지.

        

       이번에 그냥 터뜨리면 다음에 다시 이런 이야기를 들을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교실이다. 다른 애들이 이 이야기를 들을지 모른다. 사실 이미 몇 명 정도는 흥미 없는 척 다른 곳을 보면서도 은근슬쩍 귀를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반면에, 여기서 막으면 반 애들은 듣지 못하겠지만 나중에 친구들 한 명 한 명이 죄다 물어서 그걸 여러 번 설명하는 사태가—최악의 경우 설명을 ‘듣는’ 사태가—일어날지 모른다.

        

       …….

        

       뭐, 좋아. 어차피 진짜라기보다는 반쯤 지어낸 이야기였으니 그냥 터뜨려버리자.

        

       컨셉이고 뭐고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잖아. 반 애들이 알고 나면 나를 보는 눈이 조금 달라질지 모르지만, 어차피 공포에 질려서 올려다보는 눈이건 조금 불쌍한 사람 보는 눈이건 상관없다.

        

       “아닙니다. 여기서 할만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레나는 내 생각보다도 훨씬 의리 있는 아이였다.

        

       주변에 이쪽을 향해 귀 기울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곧장 그렇게 대답했다.

        

       레나가 그렇게 말해버렸기에, 나는 말해도 좋다고 말할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

        

       내 주변에 있던 친구들의 시선이 모두 동시에 나에게 돌아왔다.

        

       ……음.

        

       이거 결국에는 날을 잡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인데.

        

       *

        

       매도 먼저 맞는 편이 낫다고, 나는 얼른 털어놓고 끝내기로 했다.

        

       의리 있는 레나 성격에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이야기할 것 같지는 않았고, 그래서 우리는 평소에 모이던 카페가 아닌 방에 모이기로 했다.

        

       기숙사 방은 1인실이긴 했지만, 그래도 학생 여럿이 들어가도 그럭저럭 있을 수 있었다. 물론 혼자 있을 때나 둘이 있을 때보다는 조금 좁아 보이긴 했지만.

        

       손님맞이용 테이블에 있는 의자는 네 개뿐이다.

        

       나, 레나, 앨리스, 샤를로트가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고 나니 다른 아이들은 자리가 없어서, 일단 책상에 있는 공부용 의자에 소피아가 앉고, 침대에 클레어와 로티, 미아가 앉았다.

        

       이렇게 모여앉고 나니 나, 친구가 꽤 많구나.

        

       아무리 기숙사 안에서 돌아다니는 것이 자유로워도 여학생 방에 남학생이 들어오는 것은 어렵다. 복장이라던가 애들 사고방식이 묘하게 현대적이라서 종종 잊곤 하지만 일단 여기는 산업혁명기에서 따온 세계관이니까. 현대에도 여자 기숙사에 남자가 들어가면 난리가 날 텐데, 이 시대라면 더하지.

        

       “그래서, 그 굴레라는 것이 무슨 이야기야?”

        

       모인 이들을 대표해서 입을 연 사람은 앨리스였다.

        

       앨리스의 질문을 들은 레나는 내 쪽을 보았다.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황녀님의 출신이 어디인지는 알고 계시겠지요.”

        

       여기 있는 모두가 한 번씩은 들어봤다. 내 입으로 직접 듣기도 했고, 소문으로 듣기도 했을 것이다.

        

       ‘황제의 아이들은 모두 비루한 출신을 가지고 있다’라는 소문.

        

       “그러니까…… 제가 말했던 굴레는 그것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

        

       침묵이 내려앉았다.

        

       음.

        

       레나는 내 비밀을 지켜줄 생각일까?

        

       

       사실 대단한 비밀이랄 것은 없다. 출신을 생각해보고, 그걸 역순으로 따라가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심지어 여기엔 나와 같은 곳 출신인 클레어도 있으니까. 내가 이야기를 아주 조금만 해도 클레어는 바로 알아들을 것이다.

       “제가…… 단 것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던가요.”

        

       “이야기를 직접 한 적은 없지만, 좋아하는 것이 대놓고 티가 나긴 했죠.”

        

       나의 말에 샤를로트가 대답했다.

        

       “그 이야기입니다. 제가 단것을 좋아하는 건, 제 출신 때문이기도 하다는, 그렇게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말을 한마디 한마디 풀어내면서 생각했다.

        

       어? 이거 잘만 하면 그렇게 쪽팔리지 않고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