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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1

    서드는 흐릿한 기억을 되짚어가며 오랜만에 메를린의 인형점을 찾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아무도’가 아니라, ‘아무것도’남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멀쩡한 듯 보이는 것은 단지 인형점의 겉모습 뿐, 그 안에 남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한때 자신의 스승이었던, 옛날의 그 차가운 눈빛을 지닌 인형 같은 인상의 여인도, 그런 그녀를 믿고 따르던 ‘인형’들도, 또는 그저 그녀가 취미삼아 만들던 ‘인형’들 까지.

    어느 것 하나 남은 것이 없었다.

     

    “……역시나, 무슨 일이 있었던 거군.”

     

    메를린이 인형점을 그만두었다고 했을 때부터 어느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녀는 ‘그’에게 버림받았다.

     

     

    그녀가 그런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도망쳐야 했을 것이다.

    자신을 처분하러 온 자들로부터…….

     

    ‘이러면 골치아파지는데.’

     

    그래도 한가지 다행인 점은, 메를린은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들은 ‘죽은 자의 소식’은 숨기지 않는 편이니까.

     

    만약 진짜 메를린이 죽었다면, 어떻게든 죽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 터다.

    사고사로 위장된 죽음이든, 범인을 알 수 없는 실종사건이든.

     

    이것은 자신들의 힘을 알리는 일종의 선포이며, 뒷세계 나름대로의 선고방식이기도 했다.

     

    마치, ‘그 분’께서 하셨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또 다른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녀를 찾아야 한단 말인가?’

     

    메를린은 분명 실력이 좋은 여자였다.

    만약 그녀가 마음먹고 제 몸을 숨기기로 했다면, 아마 웬만한 방법으로는 그녀를 찾아낼 작은 실마리조차 알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그들보다 한참이나 늦게 찾은 현장에는 당연히 어떤 단서도 남겨지지 않았으리라.

     

    단 한가지 차이점은, ‘그들’은 그녀를 잘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자신 또한 그녀를 잘 알지 못하는 것은 같으나, 적어도 그들보다는 잘 알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서드는 그렇게 어떤 단서도 보이지 않는 텅 빈 지하실을 걸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의…….

     

    -저벅, 저벅, 척…….

     

    그러다가, 그는 어는 한 곳에서 발을 멈춘다.

     

    “그래, 여긴가.”

     

    직감이 부르짖는 방향을 따라, 서드는 발을 살짝 들었다.

    그리고, 마력을 담았다.

     

    -쿠웅-!

     

    마력을 담아 강하게 내리찍은 발뒤꿈치에 의해 부숴진 타일.

    그 사이에서 조그만 상자 하나가 나왔다.

     

    서드는 그것을 조심스레 집어들어 먼지와 돌 부스러기들을 대충 털어낸 뒤, 열었다.

     

    그 안에는, 작은 사진과 낡은 열쇠가 담겨 있었다.

     

    -스윽.

     

    반으로 접힌 사진을 펼쳐 내용을 본 서드는 그대로 몇 초간 얼어붙는 것 같았다.

     

    표정을 잔뜩 찌푸린 어린아이가 무표정의 여인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

    그것은, 망가지고 사라진 수많은 기억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잊을 수 없는 기억 속의 장면이다.

     

    서드는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시선을 떨궜다.

     

    “……언제 이런 걸 숨겨두셨습니까. 메를린.”

     

    정령절에 이런 걸 보게 되면, 심장에 특히 나쁘다.

    무심코 뒤집어본 사진의 뒷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언젠가 돌아올 그 아이를 위해서.-

     

    “아.”

     

    서드는, 열쇠의 용도를 알 것 같았다.

     

    ——

     

    드디어, 아이들이 생일 다음으로 가장 기다리는 기념일인 정령절이 다가왔다.

     

    그렇다면 이런 날, 과연 루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사실, 루크라고 딱히 뭔가를 하고 있는 것은 없었다.

     

    정령절이라 아카데미에 가서 자신의 수상소식을 알릴 수도 없고, 상금도 이런저런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당장은 돈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아카데미도 쉬고, 아이들도 모두 나름대로 가족들과 정령절을 즐기는 것 같고, 그렇다고 상금이 있어서 쇼핑을 당장에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루크도 한가하게 쉬기로 마음먹었다.

     

    리치가 어떻게 살아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꾸밀 수 있었는가에 대한 연구, 자신의 하나뿐인 마력시를 보조하고  ‘마력을 볼 수 있는 안경’이나, 안정적인 돈벌이가 될 피로 회복의 차, 그리고 자신이 경시대회에서 작성한 답지의 내용을 조금 더 다듬는 등의 작업은, 일단 뒤로 미루고 대신, 아직 희미하게 남은 가을의 마나를 만끽하며 숲을 거닐기로.

     

    루크는 숲 속에서 크게 숨을 들이키며 중얼거렸다.

     

    “후아, 이렇게 한가한 것도 나름 좋구나.”

     

    생각해보면, 그동안 제대로 쉰 날이 없었다.

    일이 없어도 항상 바쁘게만 살았으니 말이다.

     

    그도 그럴게, 휴식은 곧 나태이고, 나태는 곧 죄악이니, 일이 없으면 만들어서 하는 것이 바로 루크의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뭐랄까.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그렇지 않은가, 그 루크도 항상 자신의 흥미 위주로 움직였다.

    아직까지는 자신도 그런 루크의 성격이 마음에 맞아 항상 바쁘게 살았으나, 최근까지 이것저것 생각하고 연구하고 싶은 것 들이 한꺼번에 와르르 몰려오는 바람에 지쳤다.

    물론 그 일을 벌인 것도 다른 그 누구가 아닌 바로 자신이지만…….

     

    ‘그렇기에 쉬는 것도 나의 선택이지.’

     

    꽤 명쾌한 대답이었다.

     

    하루 정도는 연구에서 손을 놓고 머리를 식힐 날도 필요한 법이 아닐까.

    어차피 연구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흐음.”

     

    루크는 그렇게 숨을 크게 들이쉬며 항상 이것저것 궁리하던 머리를 싹 비워냈다.

    뭔가 모든 생각을 내려놓으니 가슴이 한결 편안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특히, 케이트를 가지고 인형놀이를 하다가 ‘아, 아빠 역할은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라고 외치며 시끄럽게 하는 디아나도 없고, 배만 고프면 자신에게 이것저것 만들어 달라며 시도때도 없이 칭얼거리는 파이리스도 없었고, 항상 별 이유도 없이 마구 집안을 뛰어다니는 돌아다녀서 정신없게하는 아이들도 없다.

     

    -멈칫.

     

    “……가만.”

     

    이렇게 생각하니, 자신이 정신적으로 힘들게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같이 살게 된 두 꼬맹이에서 기인한 것 같다.

     

    “…….”

     

    그러고보니 파이리스와 디아나는 같이 살게 되면서부터 서로 너무 친하고 편해져서 사고를 치는 빈도수가 늘었다.

    한 명이던 것이 두 명이 되었으니 오죽할까.

     

    8살이 되는 디아나는 아직 정신적으로 어리지만, 몸은 어느정도 성장했기 때문에 적당한 파괴력을 낼 수 있어서 가장 무서운 시기다.

    감정 위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정령인 파이리스는 말할 것도 없다.

     

    원래 아이들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시끄러운 환경을 선호하지 않는 루크에게 두 아이들의 활발한 성격은 사실상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보니 요즘 들어 두 아이들이 가장 예뻐 보일때는, 사고 안치고 얌전히 TV를 보고 있을 때였다.

    오죽하면 루크에게 가장 두려운 날이, 그런 아이들의 족쇄나 다름없는 메루루가 방영되지 않는 날이겠는가?

    멀리서 볼 때는 그저 귀여운 아이도, 함께 살게 되면 아주 힘들어지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역시 어렵군.”

     

    혼내려면 혼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 문제다.

     

    어차피 아이들은 화를 내더라도 금세 까먹을 뿐더러, 화난 모습을 보여주면 눈치를 보면서 교활하게 예쁜 짓을 하는 걸 보면 더 화를 낼 수도 없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만약에 예르나와 다이튼 사이에서 아이라도 생기게 된다면……?

    루크는 갓난아이 하나가 이 집안에 들어오는 광경을 상상해 보고는 잠시 정신이 아득해지고 말았다.

     

    ‘……나중에 예르나가 아이를 갖게 되면, 내 반드시 얌전한 성격으로 키워내리라.’

     

    루크는 그렇게 다짐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걸음을 다시 옮겼다.

     

    지금은 그런 미래에 대한 걱정도 제쳐두고, 혼자서 하는 산책에 집중하고 싶었으니까.

     

    “예쁜 꽃도 많이 피었고 말이야.”

     

    ———–

     

    루크가 한창 아침 산책을 하고 있을 무렵, 다이튼은 루크의 발자국을 따라 산책경로를 추적하고 있었다.

     

    -자박, 자박.

     

    어느정도 걸어가니, 루크의 즐거운 듯한 콧노래소리가 들렸다.

    저 수풀 속에서 뭐가 그리 재미있는 걸까?

     

    “루크. 여기 있어? 너한테 뭐 물어볼 게 있는데.”

     

    -파스락.

     

    다이튼이 수풀을 헤쳐내자, 그 안에선 루크가 꽃을 따서 자신의 치마폭에 하나하나 담으며 앉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 다이튼은 궁금증을 담아 물었다.

     

      

    “너, 지금 뭐해?”

    “아, 다이튼.”

    그러자 루크는 환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보다시피 산책하다가 꽃을 좀 따고 있었다만. 이거 보게, 가을 막바지에만 피는 겨울맞이 꽃이야. 이렇게 많이 피어 있는 건 처음 보는구나!”

    “그런데 왜 치마에 담아? 돌아와서 바구니를 챙겨오지 않고.”

     

    다이튼은 루크의 그 모습이 정말로 이상했다.

    준비성이 철저한 루크라면 분명 산책을 나오기 전에 꽃을 담을 바구니를 챙겼을 테니까.

    그게 아니라 우연히 발견했다고 쳐도, 굳이 치마를 더럽힐 이유가 없다고 하면서 그냥 무시하거나 바구니를 가지러 갔을 것이다.

     

    “처음에는 꽃을 딸 생각이 없었거든. 그런데 굳이 바구니를 챙기러 다시 돌아가기도 귀찮아서 말이야.”

    “음.”

     

    다이튼은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귀찮은 건 어쩔 수 없지.

    생각해보니 그것도 루크다운 것 같아서 다이튼은 이어서 물었다.

    굳이 루크가 치마를 더럽히며 꽃을 딴 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며 말이다.

     

    “그럼 그 꽃으로는 뭘 만들 생각인데?”

     

    하지만 루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딱히 뭘 만들 생각은 없다만? 그냥 예뻐서 창문 앞에 두려고 한 것 뿐이야.”

     

    하지만 다이튼은 그 대답에 아연실색하며 루크의 이마를 짚었다.

    갑작스런 다이튼의 행동에 놀란 루크가 당황하며 물었다.

    “……왜 그러나?”

    “흐음, 열은 없는 것 같은데. 야, 너 혹시 어디 아픈데 있어?”

    왜 안하던 짓을 하고 있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육아스트레스(?)로 미쳐버린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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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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