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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1

       황금정의 천하 주루는 종업원들에게 월급을 거의 주지 않는다. 숙소와 세 끼 식사, 품위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생활비만 제공할 뿐이었다.

         

       그렇게 박한 대우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일하려는 사람들은 끊이질 않았다. 이곳에는 부유한 손님들이 많이 찾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어느 동네를 가든 술집 종업원의 주 수입은 팁이었다. 이곳 종업원들은 돈만 많이 준다면, 손님들의 말 상대, 술 상대에, 상대가 괜찮다 싶으면 밤 자리 상대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아나이스는 이곳에서 일을 시작할 때, 주문 응대 이상의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무리 형편이 좋지 않더라도 그녀에겐 귀족이자 대상회의 회장으로서의 자부심이 있었다. 고작 돈 몇 푼에 손님들에게 아양 떠는 짓은 죽어도 하기 싫었다.

         

       그러나 일을 시작한 지 2달째가 된 지금, 아나이스는 천하 주루의 어떤 종업원들보다도 많은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그럼 승점 계산에 들어가 볼까요?”

         

       천하 주루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지하 1층. 이곳은 호텔에서 가장 부유한 손님들만 출입할 수 있는 곳이었다.

         

       원래 천하 주루는 모든 방문객에게 개방되어 있었지만, 호텔 투숙객들, 그중에서 비싼 방의 손님들을 우선해서 입장시키는 규칙이 있었기 때문에 지하 1층은 자연스럽게 특실 이상의 손님들로만 가득 차게 되었다.

         

       현재 그곳에서 가장 소란스러운 테이블에 아나이스는 앉아 있었다.

         

       “백작님은 13점, 이사님은 16점, 그리고 여기 공자님은 37점. 제가 38점으로 승리했네요!”

         

       그녀의 선언에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서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반면에 테이블을 둘러싸고 게임을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은 그녀에게 환호와 갈채를 보냈다.

         

       “대단한걸, 아가씨!”

       “이야, 이번 판은 진짜 못 이기겠다 싶었는데…….”

         

       다들 숨 쉬는 것도 잊고 몰입했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승부였다.

         

       그들이 방금 플레이한 ‘원더 스테이지’ 게임은 원래 참가자들 각자가 승점을 겨루는 개인전이었다. 그런데 방금 판은 노골적으로 3명이 편을 먹고 아나이스를 공략하려 들었다.

         

       둘이 자신의 점수를 포기하는 대신 그녀를 견제하고, 한 명이 점수를 독식하는 방식으로 그녀를 이기려고 했었다.

         

       초반엔 확실히 그녀가 일방적으로 밀리는 모양새였다. 그녀가 짜려고 하는 모든 판이 방해꾼들에 의해 번번이 무산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나이스는 서서히 흐름을 자신 쪽으로 끌고 오더니, 막판에 가서는 필사적인 속도로 상대를 추적하여 대등한 지점까지 몰아붙였다. 그리고 끝내는 뒤집기에 성공하여 상대를 꺾어냈다.

         

       “마, 말도 안 돼…….”

       “우리 수가 다 읽히다니…….”

       “큭, 처음부터 우리 셋이 힘을 모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군.”

         

       이번 게임에 참가한 세 사람의 입에서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절반은 경탄의 의미에서, 나머지 절반은 아쉬움의 의미에서.

         

       “그럼 일어나 주시겠어요? 다음 분들이 기다리셔서요.”

         

       하얀색 셔츠에 검은색 조끼, 넥타이를 맨 그녀의 모습은 다른 종업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을 웃으며 쏘아보는 그녀의 표정에는 한 회사의 경영자를 보는 듯한 당당함과 자신감이 어려 있었다. 그녀와 겨뤘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뒤에서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그녀의 카리스마에 순간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다.

         

       아나이스는 몇 주 전부터 이곳 천하 주루에서 깍두기 역할을 하며 테이블을 전전하고 있었다. 깍두기란 테이블 게임에서 사람이 부족할 때, 임시로 껴서 하는 사람을 의미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등 교육을 받았거나 사람을 부리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웃음이나 파는 한낱 술집 종업원인 그녀가 자신들과 대등한 두뇌 게임을 펼칠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게임이 굴러갈 수 있도록 제 역할만 해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그녀는 참가하는 테이블마다 족족 승리를 거뒀다. 포커 같은 운이 작용하는 게임이었다면 어쩌다 한 번 그런 거라 여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깍두기가 필요한 게임은 대부분 전략적인 사고가 요구되는 것들이었다. 그녀는 거기서 다른 플레이어들을 압도하는 실력을 보여주었다.

         

       “믿기지 않는군. 정말 이 게임 처음 하는 것 맞나?”

       “허허, 카지노 딜러를 해도 될 것 같은데.”

       “인정 못 해! 한 판 더 하지! 팁은 달라는 대로 줄 테니까!”

         

       천하 주루는 돈을 걸고 하는 도박을 금지했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주로 사교 레벨에서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그녀가 단순히 게임 실력만 뛰어났다면, 이렇게까지 인기를 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깍두기로 참여한 테이블의 사교 활동에 어우러질 수 있는 교양이 있었다.

         

       올해 마시기 좋은 포도주 산지가 어딘지, 앞으로 세계정세가 어떻게 흘러갈 건지, 유력 가문의 복잡한 집안 사정이 어떤지. 그녀는 테이블에 앉아 있는 손님들이 놀랄 정도의 박학다식함을 자랑했다. 마치 귀족 같은 유려한 화술은 그녀의 매력을 더 돋구어 주었다.

         

       “자, 다음 손님분들 앉아 주세요!”

         

       지하 1층의 가장 큰 테이블은 이제 그녀와 게임을 하기 위해 줄을 서야 하는 장소가 됐다.

         

       주루의 관리자들은 이 현상을 크게 반겼다. 덕분에 그녀가 앉아 있는 테이블의 회전율이 다른 곳에 비해 몇 배나 높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그녀의 테이블에 앉는 사람들은 그녀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과시 용도로 비싸거나 개성 있는 술을 시켰기 때문에 그녀가 맡은 테이블은 매상이 그 곱절로 뛰었다.

         

       “다음 손님들이 주문하신 술이에요.”

         

       아나이스는 바텐더에게 주문서를 넘기고는 재빨리 뒤편의 직원 전용 복도로 뛰어 들어갔다. 그녀는 항상 한 판의 게임이 끝나면 화장실을 다녀오곤 했다.

         

       “괜찮니?”

         

       첫날부터 아나이스를 잘 보살펴줬던 소모가 그녀의 안색을 살피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질문했다.

         

       이곳에서 게임 하는 손님들은 게임을 하는 데 당연히 술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테이블에 착석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술을 한 잔 시켰으며, 아나이스도 매 한 판 게임을 진행할 때마다 그들이 시켜주는 술을 같이 들이켜야 했다.

         

       특히, 방금 3명은 작정하고 그녀를 노리고 달려들었기에, 시켜준 술도 도수가 50도에 달하는 지독한 녀석이었다. 소모가 보기에 가녀린 여자의 몸으로는 게임에서 이기기는커녕 제대로 몸을 가누기도 힘든 수준의 술을 그녀는 받아마셨다.

         

       실제로 그녀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으며 호흡은 아주 거칠었다. 그녀는 다른 종업원들이 가져다준 물수건으로 이마를 닦았다.

         

       처음에는 제대로 된 밥값을 못한다며 그녀를 따돌렸던 종업원들도 이제는 다들 그녀를 경외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이렇게 매일 같이 십수 잔의 술을 마시면서도 당당히 부유한 상류층들을 쳐부수는 그녀가 그녀들에게 있어서 영웅처럼 보였다.

         

       “하아, 하아, 하아, 자, 잠시 혼자 있게 해주시겠어요?”

         

       그녀의 요청에 다른 사람들은 재빨리 화장실에서 나갔다. 다들 그녀가 한바탕 구역질이라도 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사실 아나이스는 술에 조금도 취하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보다 알코올 대사 능력이 더 뛰어난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방금 마신 독주도 그녀는 병째로 들이켜도 멀쩡할 자신이 있었다.

         

       “하아, 하아, 흐윽!”

         

       지금 그녀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나간 것을 확인한 그녀는 재빨리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입과 코를 덮었다. 그리고 고무 펌프를 손으로 쥐어짜 그곳에 공기를 불어 넣었다. 그러자 그녀의 가빴던 호흡이 서서히 편안해졌다.

         

       그렇게 호흡을 다시 정상으로 만든 그녀는 마스크를 벗었다. 그녀는 손에 든 호흡기를 보고 씁쓸한 미소를 쥐었다. 설마 이것을 다시 쓰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다.

         

       4개월 전, 정교회의 성정이 그녀의 가슴에 박혔을 때, 원더스타인이 새로 만들어준 그녀의 폐가 손상을 입었다. 데볼루트에 의해 만들어진 특성이 완전히 몸에 정착되기 위해서는 6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녀의 폐는 그전에 빛의 힘에 노출당해 망가지고 말았다.

         

       도주를 시작할 때만 해도 그것을 체감하지 못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다시 저 지긋지긋한 물건을 써야 할 정도로 그녀는 주기적으로 호흡에 곤란을 겪고 있었다.

         

       만약, 집사가 그녀가 당한 일을 듣고, 미리 호흡기를 챙겨오지 않았다면, 그녀는 몇 주 전에 토굴 속에서 질식사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녀는 강철 마스크를 품에 갈무리해 넣었다. 그녀가 추적자의 시선을 끌 위험을 감수하면서 적극적으로 돈과 정보를 모으기 위해 나선 것도 모두 이 때문이었다.

         

       원래는 더 오래 몸을 숨기고 있다가 장기적인 방법을 모색할 생각이었는데, 몸 상태가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안 이상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자금과 정보를 모아 이곳을 빠져나가 원더스타인을 다시 만나야 했다. 그리고 다시 그에게 몸을 고쳐 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그럼 게임을 시작해볼까요?”

         

       그녀는 다시 테이블로 돌아와 게임을 재개했다.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던 도중 그녀는 황태자가 이곳을 방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칼슨 아저씨가 감지했다던 ‘불온한 움직임’도 황태자 일행이 이곳을 어슬렁거리는 동안은 쉽게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다. 탈출하기에는 적기였다.

         

       원더스타인의 서커스단도 이곳에서 멀지 않은 역에 있다는 소식을 며칠 전에 입수했다. 이제 움직여야 할 때였다.

         

         

       ***

         

         

       “그럼 승점 계산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원더스타인이 테이블 위의 카드들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점수를 합산했다.

         

       니카는 싱글벙글 웃는 그를 향해 그만두라고 외치고 싶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게임의 결과는 명백했다.

         

       “드미트리 씨가 22점, 미노바 씨가 24점, 니카 군이 28점, 제가 31점이군요.”

         

       니카는 허탈한 눈으로 테이블 위를 바라봤다. 자신이 졌다.

         

       “후후, 내기한 대로 간식은 그쪽이 사는 겁니다. 니카 ‘군’.”

       “이잇…….”

         

       그는 분한 표정을 지으며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 것은 아니었다. 제국 최고의 바둑 기사를 무릎 꿇리기까지 그는 바둑판 위에서 수천 번의 패배를 경험해야 했다.

         

       그가 가진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많은 자료의 축적이 필요했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완벽하게 통달한 뒤에는 누구에게도 바둑으로 진 적이 없었다.

         

       ‘원더 스테이지’는 바둑만큼 복잡하지 않았다. 대략 5판 정도면 충분히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하지만 지금은 100판을 한다고 해도, 그는 이 눈앞의 남자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할 수 없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응당 보여야 할 ‘호흡’이 그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혼은 당황스러워하는데, 정신은 고요하고, 얼굴은 즐거운 듯 웃고 있다. 이런 파장은 처음이었다. 니카는 상대가 인간인지조차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가 느낀 이상한 점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들은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고 게임을 플레이했다. 오직 사람이 내뿜는 의지의 파장을 느낄 수 있는 니카만이 그 이상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무, 무슨 속임수를 쓴 거죠!”

         

       아무리 세상에 통달한 척 굴어도 그는 아직 15살에 불과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만난 그는 쉽게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마치 어린애가 떼를 쓰는 듯한 말투.

       원더스타인의 입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걸렸다.

         

       그에겐 익숙한 광경이었다. 그가 온라인 게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에게 무참하게 깨진 이들이 그가 핵을 쓴 게 분명하다며 커뮤니티마다 돌아다니며 그를 음해했었다.

         

       해명 방송을 한 뒤에도 시비는 끊이질 않았다. 안구 인식으로 플레이하면, 누구나 그처럼 쉽게 실력을 뻥튀기할 수 있다는 식이었다.

         

       실제로 많은 스트리머가 안구 인식 장치를 구해 플레이를 시도했다. 그러나 그중에 기본적인 움직임을 익히는 데까지 도달한 사람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다들 몇 번 해보더니 도저히 못 하겠다고 포기했다.

         

       종국에는 해당 장비를 개발한 외국의 엔지니어들이 나와서 이것이 유의미하게 사람들의 반응속도를 개선하는 게 아님을 해명하기까지 했다.

         

       물론 그 이후로도 장비에 대한 시비는 멈추질 않았다. 그가 이 세계에 넘어오기 직전까지도 심심하면 악질 유저들이 저 문제를 걸고넘어졌다. 아예 스트리머 위키에는 ‘눈은 손보다 빠르다’ 항목으로 이 논쟁에 대해 항목까지 작성되어 있을 정도였다.

         

       원더스타인은 자신에게 따지고 드는 그녀의 모습이 반가운 동시에 괘씸했다.

       결과에 승복할 줄 모르는 애새끼 같으니라고.

         

       그와 눈을 마주친 니카는 순간 흠칫했다.

       분노, 평정, 웃음.

       또, 혼과 영과 육의 파장이 맞질 않았다.

         

       “그러면 한 판 더 할까요? 물론 좀 더 큰 걸 걸고요.”

         

       니카는 순간이지만 겁먹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내가 감히 누군 줄 알고.

       그는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요.”

         

       그렇게 숙소에 도착하기 전까지 니카는 3번의 패배를 더 맛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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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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