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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1

        

         

         

       

         

       고개를 위로 들었다.

         

       머나먼 어느 곳. 피의 구름이 소용돌이치며 오즈마 뒤로 몰려든 덕분에 멀리서 부유하고 있는 제단이 보였다.

         

       그 위로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검푸른 생물이 쇠사슬에 결박 당해 있었다.

         

         

       “거기 있었구나.”

       

         

       몹시 거대하다.

       

       그는 얼음 호수를 메운 냉기의 근원인 듯했다.

         

       그에게선 얼음 마력과 어둠 마력이 조화롭게 흐르고 있었다. 마족이란 증거였다.

         

       그는 쇠사슬에 묶인 수많은 팔을 움직이고, 전신에 가득한 수많은 눈을 번뜩였다. 그 눈 모두가 신비로운 빛을 발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눈이 셀 수 없이 많았기에 흡사 오즈마를 닮은 듯했다.

         

         

       ‘맞네. 사암의 시련에서 봤던….’

         

         

       노이즈로 둘러싸였던 존재.

         

       악신이 부활해 모든 세계의 멸망이 시작될 때, 대한민국 땅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괴물.

         

       시간조차 되돌리는 초월자.

         

         

       ‘저게 도로시가 말했던, 피 잔뜩 흘리고 떨어진 생물인가.’

       

         

       그 마족을 결박한 검붉은 쇠사슬은 악신 네피드의 마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스으으으.

       

         

       그 마족은 대량의 검푸른 냉기를 흘렸다. 그것들은 하나로 뭉쳐 작은 구체를 이루었고, 엄청난 속도로 공기를 가로질러 내게 이르렀다.

         

       서늘하고도 막강한 냉기가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쿠웅. 심장이 격하게 박동했다. 얼음 마력이 회복되면서 마력 회로가 몸부림쳤다.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감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나는 새로운 힘을 손에 넣었다.

         

         

       ─ 내 이름은 계명, 루시페르. 베로니카 아슬리우스와의 계약에 따라 그대에게 힘을 내리노니.

         

         

       목소리가 아니다. 머릿속에 마족, 계명의 루시페르의 의사가 전달된다.

         

         

       ─ 그것은 존재하는 것 무엇이든 얼릴 수 있는 힘, [얼음달]. 그대의 힘이 닿는 한, 그대가 얼리지 못할 것은 이제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냐.”

       

       

       무엇이든 얼릴 수 있는 힘.

         

       등급 측정 불가. 궁극의 얼음 마법, [얼음달].

         

       느껴진다. 예상했던 대로 베로니카가 사용했던 쓰임새는 이 얼음 마법의 한계가 아니었다.

         

       이 마법의 가능성을 좀 더 끌어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내 눈은 다시 오즈마를 향했다.

         

       [빙제]의 냉기가 내 전신에서 흘러나오고, 별 무리가 차갑게 일어섰다.

         

         

       “간다.”

         

         

       휘애애앵, 하는 기이한 바람 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하늘에 얼음 마력이 소용돌이치며 한곳으로 뭉치고, 사방으로 새하얀 별 무리가 일어나 격렬한 춤사위를 벌였다.

         

       탄생한 것은 별빛을 휘감은, 고고한 얼음의 상현달. 효과 범위는 이곳, 일대였다.

         

       내 뒤로 별빛을 휘감은 성스러운 연푸른빛 고리가 수 개 떠오른다. 도로시에게서 건네받은 초월자의 격이었다.

       

       

       화아아아!!

       

         

       나는 세 쌍의 냉기 날개를 뻗고 오즈마를 향해 날아들었다.

         

         

       콰아아아아앙!!!!

         

         

       나와 오즈마의 별빛 마법이 격돌하고, 내 냉기가 일대를 집어삼켰다.

         

       감각적으로 [얼음달]의 사용법을 알아챘다.

       

       시간을 얼렸다. 내 움직임에 방해가 될 만한 것들은 빙결하지 않았다.

       

       그대로 얼음 마력을 끌어올려 오즈마에게 5성급 [빙결 폭발]을 퍼부었다.

       

       

       콰아아아!!

       

       

       [ ───────!!]

       

         

       인간의 인지 능력으론 이해할 수 없는 비명을 내지르는 오즈마.

       

       [얼음달]은 만월에 가까워질 수록 그 효과가 강해진다.

        

       나는 베로니카에 비해 [얼음달]의 크기를 상현달까지 키울 수 있었다. 덕분에 시간을 빙결한 뒤에도 5성급까지의 얼음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 ───────!!]

       

       

       내게 육신을.

       

       그러한 갈망이 담긴 외침이 내 머릿속을 울리고, 감정적으로 이해하게 했다.

       

       이제 맹약이 엎어졌으니 소용이 없을 텐데도, 오즈마는 이성을 잃은 짐승처럼 그리 울부짖었다.

       

       

       ‘내몰렸구나. 이성조차 마비될 만큼.’

       

       

       도로시로 인해 내게서 쫓겨나고, 내몰리자, 강렬한 미련과 갈망이 오즈마의 사고마저 집어삼킨 것일까.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차라라랑!!!

       

       

       오즈마는 나를 향해 거대한 팔을 휘두르며 대규모의 별빛 마법을 퍼부었다.

       

       별의 폭발에 버금가는 오즈마의 마법에 [한빙지옥]과 빙결의 원옥마수-디아칸으로 대항했다. 내 전력에 일제히 별빛 마력을 휘감고, 그 힘을 전부 오즈마에게 쏟아부었다.

         

       형형색색의 찬란한 별빛의 범람.

       

       아름다운 폭발이 일대를 수놓는다.

         

       아무리 초월자 도로시의 힘을 넘겨 받았어도 자칫하면 오즈마에게 죽으리란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난 죽을 수 없었다. 반드시 이겨야만 했다.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내지르고 오즈마의 공격을 견뎌내며, 쉴 새 없이 마력을 최대 출력으로 방출했다.

         

         

       ─ ‘부디 제 오즈의 마법사가 되어주세요.’

       

         

       도로시 게일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오즈의 마법사라.

       

       생각이 말끔히 정리되어 간다.

         

       답답했던 속이 시원하게 뚫리고, 애달픈 감정이 어떠한 결단을 꼿꼿이 일으켜 세웠다.

         

       나는 오즈의 마법사가 되겠다.

         

       도로시, 널 좋아하니까.

         

         

       휘우우우우!!

         

         

       오른손 위로 냉기 태양을 만들고 별의 힘으로 한계까지 응축시킨다.

         

       그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밀도의 냉기 덩어리가 되어 내 오른손에 쥐어졌다.

         

       그것은 무한에 가까운 중력으로 억눌러 만들어진 최악의 폭탄이나 다름없었다.

         

       [한빙지옥]의 법진이 나를 뒤따르고.

       

       나는 별빛 마법을 뚫어가며 다시 오즈마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 순간, 어째선지 내 무의식은 언제인가 들었던 누군가의 목소리와 진실을 수면 위로 건져 올리고 있었다.

       

       

       ‘이 기억은….’

       

       

       그간 오즈마가 내 안에서 제한하고 있던 기억임을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나는 그 기억을 떠올렸다.

       

       

       

         

         

         

       

         

       * * * * * * * * * *

         

         

         

       

       

         

         

       제목 : [잔혹동화 아카데미 RPG 메르헨의 마법 기사] 개발자 특별 인터뷰

       

       채널명 : 힉스

       구독자 466만 명

       

       조회 수 : 373,031,389회

       

       {댓글이 사용 중지되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메르헨 아카데미에 입학하신 당신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는 <메르헨의 마법 기사>를 개발한 이곳, ‘힉스’에서 개발 총괄을 맡은 알레츠라고 합니다.]

       

       [창조란 또 하나의 모방이라고 합니다.]

       

       [저희가 만들어 낸 <메르헨의 마법 기사> 또한 마찬가지죠.]

       

       [<메르헨의 마법 기사>는 픽션이며, 이안 페어리테일의 모험담은 거짓입니다.]

         

       [그는 단순하게 핵심적인 역할이기에 게임 속 주인공을 도맡은 것에 불과할 뿐이죠.]

       

       [그리고 <메르헨의 마법 기사>는 메시지입니다.]

         

       [배반자인 악신을 해치우기 위해, 창조주께서 만들어내신 또 하나의 세계를 모방하여 만들어진.]

         

       [저희가 내밀 수 있는 최선의 방책입니다.]

       

       [만약, 악신을 막아 내지 못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없을 것입니다.]

       

       [악신을 쓰러뜨려 주십시오.]

       

       [그리고.]

       

       [부디 메르헨 아카데미를 무사히 졸업하시길 바랍니다.]

         

         

       

       

         

         

         

       * * * * * * * * * *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휘황찬란한 폭발이 오즈마를 몰아냈다.

       

       피의 구름과 오로라마저 집어삼키고 얼음 호수를 갈랐던 거대한 문마저 우르르 무너뜨렸다.

         

       그 눈부신 광채를 나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차라랑!

         

         

       돌연 나와 오즈마의 별빛 마력이 공명하고 새하얀 빛의 공간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극적으로 고요해졌다. [얼음달]의 효과를 쓰지 않았음에도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어?”

         

         

       이윽고, 이름조차 남겨지지 않은 어느 옛날 왕국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오즈마의 기억인가. 어쩐지 별빛 마력이 공명하는 느낌이 들더라니.’

       

       

       오즈마와 하나로서 살아오다, 그녀와 별빛 마력을 전력으로 부딪히니 서로의 기억이 얽히며 공명을 일으킨 것일까.

       

       

       ‘아무래도 이 녀석과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긴밀하게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었나 보네.’

       

       

       나는 생각을 정리했고, 오즈마의 기억을 눈에 담았다.

       

       왕에게 예뻐 보이려 애교를 부리는 한 어린 공주가 있었다. 수염을 한가득 기른 왕은 호탕하게 웃으며 공주를 껴안았다.

         

       그러나 어느 날 마왕 네피드가 나타나 세상을 위협했고, 공주는 별빛의 힘을 타고나 용사의 사명을 부여 받았다.

         

       공주에게 빛의 검이 쥐어졌다. 신의 축복이 그녀와 함께 하고 있었다.

         

       비록 두려웠으나, 공주는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왕의 지원을 받으며 여행길에 나섰고.

         

       강한 동료들을 모아 저주스러운 마족들을 해치워가며 마침내 마왕 네피드까지 봉인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해피 엔딩은 없었다.

         

       별빛 마력을 과도하게 사용해 버린 공주는 초월자가 되었고, 세상엔 대재앙이 들이닥쳤다.

         

       대재앙은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공주와 함께 모험했던 동료들도, 왕국도, 그리고 세상도.

         

       그렇기에 대재앙 때 소실된 기록들은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공주는 자기가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이 자기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찢어지도록 죄책감을 느끼며 피눈물을 쏟아야만 했다.

       

       

       “……?”

       

         

       문득 무릎을 껴안고 고개를 떨군 채 엉엉 울고 있는 여자아이가 눈에 보였다.

       

       그 아이는 멈추지 않는 눈물을 훔치길 반복하며 서럽게 흐느꼈다.

       

       이곳은 오즈마의 심층심리의 세계라도 되는 것일까. 자세히는 알 수 없겠으나, 서로 공명하여 기억을 볼 수 있는 것을 보아하니 그런 종류인 듯했다.

       

       그렇기에 눈앞에 있는 저 여자아이가, 오즈마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그녀의 본심임을 알아차리기란 어렵지 않았다.

         

       방금 전, 나는 오즈마의 생애를 보았다.

         

       저 아이가 이제까지 살아오며 품어왔던 감정을, 아픔을, 함께 느꼈다.

         

       천천히 오즈마에게 다가가고, 그 아이 앞에 멈춰섰다.

         

         

       “오즈마.”

         

         

       오즈마는 고개를 들어 슬픈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기억 속에서 보았던 어린 공주의 얼굴이었다. 의문이 담긴 얼굴은 눈물로 젖어 있었다.

       

       

       “여긴 어떻게…?”

       “인간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거지?”

       “…….”

       

       

       오즈마는 고개를 숙였다.

       

       

       “많이… 힘들었겠네.”

         

         

       내 한 마디에 오즈마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응…, 힘들었어…. 너무 힘들었어…. 혼자 죽지도 못하고, 너무 힘들었어….”

       “…응. 그랬겠네.”

         

         

       그 잔잔한 대답이 내가 오즈마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동정이었다.

         

         

       “하나만 물을게. 저번에 도로시가 초월자 돼가던 거, 왜 막은 거야?”

         

         

       「앨리스 토벌전」이 벌어졌던 시기에 원왕들은 도로시의 폭주를 경계했다.

         

       그 폭주는 별빛 마력의 남용을 방아쇠 삼아 초월자가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내가 무저갱을 쓰러뜨리고 돌아오자, 폭주하던 도로시의 마력은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오즈마가 도운 것이 틀림없었다.

         

         

       “당연하잖아….”

         

         

       이어진 오즈마의 대답은 너무도 명쾌해서, 내 눈은 그만 크게 떠지고 말았다.

         

         

       “이 꼴이 되면 너무 서러우니까….”

         

         

       동정심이었다.

         

       자기와 같은 모습이 되려는 도로시에게 깊은 동정심을 느끼고 만 것이었다.

         

       그렇기에 자기와 같은 모습이 되지 말라고, 오즈마는 도로시의 마력을 잠재웠던 것.

         

         

       “난 너무 지쳤어…. 이제 그만할래.”

       “…응.”

       “나쁜 마음 품어서 미안해…. 너한텐 악감정 없었는데. 너도 이용 당했을 뿐인데…. 그것 말곤 내 화를 잠재울 수 있는 수단이 없었어. 네 육신을 뺏어서라도 인간이 되고 싶었어. 복수하고 싶었어. 날 이렇게 만든 스텔라가 죽도록 원망스러웠어….”

       “…….”

       “이젠 괜찮아…. 네가 날 이겼으니까. 다행이야, 정말로.”

         

         

       오즈마는 고개를 들어 다시 날 쳐다보더니, 아직 채 울음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겨우 웃어 보였다.

         

       그 아이의 형상은 어여쁜 별빛 가루가 되어 고요히 사라져갔다.

         

         

       “아이작, 날 끝내줘서 고마워…. 넌 꼭 행복해야 해.”

         

         

       마침내 오즈마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그녀의 중심을 이루던 아름다운 별의 핵이 덩그러니 남겨졌다.

         

       앞으로 걸어가 그것을 집어 올렸다. 그것은 오즈마의 힘이었다.

       

       나는 별빛 마력의 적합자가 아니기에 오즈마의 힘을 온전히 사용할 수 없겠지만, 별빛의 힘이 아닌 나머지는 내 것으로 삼을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나는 기뻐할 수 없었다.

         

       한동안 가만히 별의 핵을 바라보던 나는, 이윽고 그것을 꽉 쥐어 깨뜨려 오즈마의 힘을 흡수했다.

         

         

       “…끄윽!”

         

         

       순간 엄청난 격통이 몰려왔다.

         

       도로시의 힘을 품은 데다 오즈마의 힘까지 흡수하니 육체가 견디지 못했다.

         

       전신이 부서지는 감각에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신체를 맴돌던 별빛 마력이 격렬히 내 몸을 물어 뜯으며, 살이 터지고 붉은 피가 치솟았다.

         

       소리를 내지르며 버텼다. 포기하고 힘을 빼버리면 내 몸이 완전히 붕괴할 테니까.

       

       조금만, 조금만 버티면 된다. 이 힘이 진정될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아아악…!!”

       

       

       그대로 나는 현실로 되돌아왔다.

         

       오즈마와 마지막으로 맞부딪힌 강력한 마법의 격돌은 작은 블랙홀을 일으켰다.

         

       얼음 호수가 어그러지고 대량의 물이 순식간에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하자, 차가운 마력이 재빨리 달려들어 블랙홀을 잡아먹었다.

         

       찰나간 벌어진 일이었다.

         

       그 여파로 높게 치솟았던 얼음 호수의 물이 내려앉으며 강력한 파도가 일었고, 한동안 맑은 비가 쏟아져 내렸다.

         

       세 쌍의 날개를 뻗은 채 허공에서 그 비를 맞았다.

         

       디아칸이 있는 철문을 역소환하고, 아래로 내려와 날개를 거두었다.

         

         

       “아, 악…!! 끄아악!!”

         

         

       비명을 내지르며 호수에 엎어졌다. 전신이 부서져 가고 선혈이 비산했다.

       

       그러나 버텼다. 이따위 고통쯤은 얼마든지 버틸 수 있었다.

          

       그 후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서서히 별빛 마력이 잠잠해져 갔다.

       

       어느덧 내 전신은 완전히 피 칠갑이 된 채였다.

         

         

       “하아, 하아….”

         

         

       숨을 고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마지막까지 눈과 비공, 입에서 피가 흘러내리며 얼음 호수에 뚝뚝 떨어졌다.

         

       몸 안에서 도로시와 오즈마의 별빛 마력이 얌전하게 화합해 공전하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언제든 신체가 붕괴될 수 있겠지만, 명계를 빠져나갈 때까진 이 상태를 유지해야만 했다.

       

       나가려면 명왕을 상대해야 하고, 균열 앞에서 도로시의 힘까지 퍼부어야 하니까.

         

       호흡마저 고르니 짙은 정적이 드리웠다. 신체 곳곳이 터져 버린 탓에 고통스러웠지만, 견딜 만했다.

       

       슥슥. 얼굴에 가득한 피를 옷 소매로 닦던 중이었다.

         

         

       저벅.

         

       저벅.

         

         

       누군가가 얼음 호수를 밟으며 내게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뒤로 돌려 다가오는 이를 쳐다보았다.

         

       이곳이랑 어울리지 않는 검은 정장 차림의 여성.

       

       얼굴이 익숙했다.

         

         

       [안녕하십니까.]

         

         

       그녀는 내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인두겁임을 알았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얼굴에서 강한 위화감과 이질감이 느껴졌으니까.

         

         

       [게임사 힉스의 개발진, 알레츠입니다.]

       “아…, 너냐.”

         

         

       <메르헨의 마법 기사> 개발 총괄, 알레츠.

         

       아니, 별의 요정 스텔라였다.

       

       인터뷰 영상의 기억처럼 진실의 편린을 떠올리게 될 것이 뻔한 타이밍에 스텔라가 나타날 것은 예측 범위 내였다.

         

         

       [이런 모습으로 나타난 점은 양해를 구합니다. 당신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니까요.]

         

         

       가슴속이 끓어올랐다. 이 감정을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절로 발이 움직였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지면을 박찬 뒤였다.

       

       콱. 스텔라의 머리를 붙잡았다. 직후.

         

         

       콰아아아아!!!

         

         

       별빛 마력을 머금은 [빙결 폭발]을 사용했다.

         

       차가운 충격파가 정확히 스텔라의 머리를 깨부수고 일직선으로 퍼져나가고, 사방으로 별무리가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뻗어나갔다.

         

         

       푸아아아!!

         

         

       얼음 호수가 갈라지며 물이 양쪽으로 치솟았다.

         

         

       “무슨 낯짝으로 왔어?”

         

         

       그리 냉담하게 묻자, 머리가 터진 스텔라는 뒤로 물러섰다.

         

       별빛이 일어나며 스텔라의 머리가 재생되었다. 당연히 이 정도로 죽지 않을 줄 알았다.

       

       이 공격은 단순한 위협이었을 뿐.

         

       그녀는 정중하게 상체를 숙였다.

         

         

       [용서를 구합니다. 당신을 이용한 데다, 도와주지도 못한 점에 대해서.]

       “…….”

       [명계에선 제가 뭘 해드릴 수 없도록 절대적인 신법(神法)이 수립되어 있습니다. 그런 건 특히 저 같은 이들에게 무척 보수적이고 예민하게 작용하거든요. 자칫 죽을 수도 있습니다.]

         

         

       명왕이나 스텔라나. 준법 정신이 참으로 투철한 모양이었다.

         

       스텔라는 상체를 들었다.

       

       그녀의 눈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으나, 입꼬리는 비죽 올라가 있었다. 몹시 이질적인 미소였다.

         

         

       [그럼 한성호 씨, 저와 대화를 나누시지 않겠습니까?]

         

         

       소리 없이 깊은 숨을 내뱉으며 마력을 가라앉혔다.

         

       나는 모든 진실을 듣고 싶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참고) 동영상 부분은 154화에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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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AWBDLH, 아카데미 최약체는 마족 한정 먼치킨이 되었다
Score 8.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possessed the weakest character in my favorite game’s Hell Mode. I want to survive, but the way the main character is being controlled is atrocious. It can’t be helped. I have to stop the bad ending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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