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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1

       혈혈단신으로 다수를 상대하는 것은 거대한 해일을 막겠다고 앞에 서는 것과 같다.

         

       제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어딘가 정신이 망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불가능한 일이란 뜻이다.

         

       요동치는 대지 속에서 혈교도들이 떼로 몰려와 그를 압박했다.

         

       앞, 뒤, 옆, 위.

         

       존재하는 모든 방향에서 칼과 창, 주먹과 손톱이 날아듦에도 그는 생채기 하나 입지 않았다.

         

       제아무리 하늘을 뒤덮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틈은 있는 법.

         

       일견 동시에 날아드는 공격에도 순서는 존재하고, 백우진의 눈에는 그것이 훤히 보였다.

         

       보는 게 어려운 거다.

         

       공격과 공격 사이의 순서를 결정짓는 미세한 틈을 보았다면 피하는 것은 단순해진다.

         

       작디작은 움직임으로 순서에 따라 몸을 움직이면 그뿐.

         

       커다란 위험에는 커다란 보상이 따르는 법.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순간 얻어지는 것은 상대를 죽일 완벽한 기회.

         

       슈카가각!

         

       손에 쥔 검이 한 줄기 빛처럼 주변을 수평으로 가르고 지나가자, 핏줄기가 솟구친다.

         

       섬광과도 같은 일격에 당한 혈교도들은 승리를 확신하는 표정 그대로 생을 마감했다.

         

       동료들의 죽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드는 혈교도들을 상대하며 드는 생각은 의외로 해볼 만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상대해야 할 수가 한참 남았지만, 지금까지는 그랬다.

         

       ‘인간이 아니라 달려드는 멧돼지를 베는 느낌이야.’

         

       전장에서 가장 압도적인 힘은 다름 아닌 공포다.

         

       공포가 새겨진 병사의 전투력은 급감하고, 그것은 옆에서 옆으로 전염되어 부대를 뒤덮는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순간, 승자와 패자는 불 보듯 뻔해진다.

         

       술과 고기, 달콤한 말과 보상으로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

         

       그들의 가슴에 치미는 공포라는 감정을 억누르고, 억제하기 위함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혈교도들은 아주 편리하다.

         

       한 줄기 목구멍으로 스미는 핏줄기에 취해 공포라는 감정을 거세당한 이들이기에.

         

       지금도 보라.

         

       화경에 다다른 고수의 압도적인 무위에 동료들이 수십 명씩 나가떨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주저 없이 달려들고 있지 않나.

         

       그러나 그러한 부대가 부럽냐고, 갖고 싶냐고 묻는다면 백우진은 단호히 답할 것이다.

         

       ‘줘도 안 가지지.’

         

       그딴 건 줘도 안 가진다고.

         

       이유인즉 공포란 전장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감정임과 동시에 가장 가까이해야 하는 감정이기도 하기 때문.

         

       공포의 다른 말은 생존에 대한 본능이다.

         

       무엇이 나를 죽게 할지, 또 위험에 빠지게 할지, 또 나를 살릴 수 있는지.

         

       전부 공포를 느껴야만 비로소 온전하게 작용하는 감각들이다.

         

       그런 공포를 억누르거나 억제하는 것도 아닌, 아예 없앴다는 것은 생존 본능마저 없어졌다는 말과 진배없기에.

         

       서걱!

         

       카각!

         

       퍼걱!

         

       그들은 동료들이 수없이 죽어 나감에도 맹진할 수 있고, 먼저 떠난 동료들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

         

       만약 그들에게 공포라는 감정이 털끝만큼이라도 남아 있었더라면 지금처럼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제 목을 내밀지는 않았을 테지.

         

       그리고 그러했다면 지금처럼 손쉬운 싸움이 되지도 않았을 테고 말이다.

         

       스걱!

         

       시체가 쌓여 간다.

         

       “크아아아!”

         

       퍼걱!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그의 뒤에서 단단하게 전열을 유지하고 있는 생도들의 가슴에 경외심이 피어나기 시작할 정도로 무수히 많이.

         

       “…대, 대단하다.”

       “설마 저 정도일 줄은…!”

         

       홀로 수백을 베어냈고, 지금도 계속해서 그 수를 늘려가고 있다.

         

       그러한 백우진을 보며 생도들은 무의 정수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상대를 전부 꿰뚫는 눈과 군더더기 하나 없는 움직임.

         

       무엇보다 그의 검 끝이 그려내는, 수려하고 호쾌한 궤적은 그야말로 무인의 이상(理想).

         

       자고로 검이란, 무기란 이렇게 다루어야 함을 알려주는 듯한 움직임이 지켜보고 있는 이들로 하여금 크고, 작은 깨달음들을 얻게 했다.

         

       그중에는 곧장 가부좌를 틀고 앉아 새로운 경지에 발을 디디려 하는 이들마저 생겨날 정도.

         

       이 위급한 상황에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옆에 동료가 있기에.

         

       무인이란 그런 족속들이다.

         

       깨달음 하나를 얻기 위해 목숨을 걸고 칼을 맞대는 것도 불사하는 하루살이.

         

       모두가 같은 마음이기에, 동시에 싹 튼 전우애가 자신을 지켜줄 것임을 알기에.

         

       그들은 스스럼없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깨달음을 청할 수 있다.

         

       그러나 모두가 백우진을 보며 경외를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백우진….”

       “백 공자…!”

         

       적어도 신룡조원들은 감히 그런 마음을 품을 수가 없었다.

         

       그저 시산혈해 속에서 꿋꿋이 노니는 백우진을 걱정하고, 염려할 뿐.

         

       제아무리 강인한 육체와 정신으로 무장하고 있다고 한들, 그 또한 인간이다.

         

       인간을 초월한다고 해도 결국 돌고 돌아선 인간이다.

         

       슬프면 눈물 흘리고, 찔리면 피를 흘리는 인간이란 말이다.

         

       “빌어먹을…!”

       “젠장!”

         

       그 한 사람의 인간이.

         

       수백의 목숨을 앗아갔다.

         

       비록 인간이기를 포기한, 짐승보다 못한 것이라도 해도.

         

       인간의 거죽을 쓴 생명을 무려 수백씩이나 베어 고혼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결단코 한 인간이 짊어질 수 있는 업(業)의 양은 아닐 것이니, 그들로서는 홀로 그 모든 것들을 짊어지는 백우진을 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당장에라도 그를 돕기 위해 난입하고 싶다.

         

       그러나 자신들은 전선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적인 존재들.

         

       백우진이 앞에서 모든 걸 감당하고 있다곤 하나, 언제 적들이 우회하여 이쪽을 향해 들이닥칠지 모르기에.

         

       결국 그를 돕기 위해선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전선 자체를 이끌고 나가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

         

       그러기 위해선 모두가 합심하여 발맞춰 나아가야 하는데,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고통스럽게 바라보는 와중에도 시체는 차곡차곡 쌓인다.

         

       그리고 여전히 죽여야 할 적은 넘쳐난다.

         

       백우진이 그들 모두를 죽이고도 온전할 수 있을까.

         

       아니, 아무리 그가 강하다고 한들 그렇게까지 버티는 것이 가능한가.

         

       온갖 상념에 빠져 신룡조원들의 얼굴이 거무죽죽하게 변해가는 사이.

         

       깨달음을 얻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던 이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 짧은 시간에 갈무리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이 제아무리 미쳤다고 한들, 혈교도만큼 미친 이들은 아니었기에.

         

       한층 강해진 이들에 의해 전열이 강화된다.

         

       수는 적지만, 처음과 비교하면 지금이 오히려 더 강할 정도.

         

       그때 누군가가 외쳤다.

         

       “이대로 지켜지기만 할 건가요?”

         

       피가 솟구치는 전쟁터와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옥구슬 같은 음성.

         

       조원들과 마찬가지로 전열에서 핵심적인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유화연이 당장에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처럼 눈시울을 붉힌 채 처절하게 호소했다.

         

       “고작 한 사람의 등 뒤에 숨기 위해 지금까지 고된 수련을 거듭했나요, 당신들은?!”

         

       울분에 차 힘껏 던진 말 한마디가 일파만파 퍼져 나가 모두를 뒤흔드는 거대한 해일로 변모하여 그들을 덮쳤다.

         

       전쟁에 앞서 백우진은 말했다.

         

       이 전쟁이 끝나면 자신들은 자랑스러운 정파의 무인으로 우뚝 서게 될 것이라고.

         

       그의 호언과 그녀의 울분이 한데 모여 새로운 의문을 자아냈다.

         

       ‘나는 지금 자랑스러운 정파의 무인인가?’

         

       지금처럼 한 사람의 등 뒤에 숨어 이 전쟁을 끝마치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수 있는가.

         

       과정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살아남았단 사실 하나만으로 어깨를 당당히 펼 수 있겠느냔 말이다.

         

       한 사내가 칼을 뽑아 들었다.

         

       “나, 나는 이렇게 살아남기 위해 수련한 것이 아니오.”

         

       한 여인도 칼을 뽑았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삶을 연명하느니, 정파의 무인답게 죽겠어요!”

         

       앞서 말했듯, 공포는 전염된다.

         

       한 사람의 공포가 옆에서 옆으로, 한 부대에서 두 부대로 옮겨가 모두를 병들게 한다.

         

       그리고 전장에는 또 다른 한 가지, 전염성 높은 감정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용기.

         

       작지만 활활 타오르는 한 사람의 불씨는 옆 사람의 마른 심지에 옮겨붙는다.

         

       그렇게 옆에서 옆으로 무한히 뻗어나가면 그들은 마침내 열쇠가 된다.

         

       승패를 장담하기 어려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단 하나의 열쇠.

         

       조원들은 깨달았다.

         

       지금이야말로 모두를 움직일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임을.

         

       ‘저 여자의 뜻대로 하는 건 내키지 않지만….’

         

       그 불씨를 지핀 것이 다름 아닌 유화연이라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별수 있나.

         

       백우진을 돕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쯤 아무것도 아니니.

         

       “싸웁시다!”

       “정파인의 기개를 놈들에게 똑똑히 보여줍시다!”

       “우오오오오!”

         

       기세가 들끓는다.

         

       당선영과 유화연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일견 기 싸움처럼 보이는 눈싸움에서 먼저 눈을 감은 것은 다름 아닌 당선영.

         

       이 불씨를 지핀 것은 자신이 아닌 그녀임을 알기에, 종지부를 찍는 것 또한 그녀에게로 넘기겠다 시인한 것이었다.

         

       그녀의 묵인 아래 유화연이 외쳤다.

         

       “나아가요!”

         

       아름답지만 더없이 단단한 음색이 그들의 보폭을 일치시켰다.

         

       의지를 새로이 다진 전열이 약진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발을 구를 때마다 땅이 다져지며 강렬한 기세가 피어오른다.

         

       쿠웅!

         

       쿠웅!

         

       거대한 북을 두드리는 듯한 발소리가 모두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무아지경에 이르러 정신없이 검을 내지르던 백우진이 정신을 차린 것은 그즈음이었다.

         

       고개를 돌리니 익숙한 얼굴들이 보인다.

         

       “…빨리도 온다.”

         

       이렇게 늦어서야 어떻게 손발을 맞출는지.

         

       백우진이 핀잔을 주자, 설수연이 다가가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영웅님, 잠시만요.”

         

       손에 쥔 면포로 피에 젖은 그의 얼굴을 정성스레 닦아내는 그녀의 눈에서는 투명한 물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왜 울고 그래.”

         

       그가 묻자, 설수연이 황급히 소매로 눈물을 닦아내더니 애써 웃는다.

         

       “아, 아니에요. 그냥…, 그냥…, 우, 우우….”

         

       참는 듯하더니 이내 폭발한다.

         

       “우에에엥!”

         

       백우진도, 주변에 있던 조원들도.

         

       별안간 터져나온 눈물에 모두가 당황 섞인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설수연이 그를 끌어안았다.

         

       “흐끅…! 히, 힘들었죠? 마, 많이 아파요? 어떡해…!”

         

       상처는 없다.

         

       온몸을 적시고 있는 피는 오직 적들의 것뿐.

         

       그럼에도 그녀는 아프냐고 묻고, 또 그가 아파하고 있음을 확신하듯 걱정하고 있다.

         

       설수연의 눈에 비치는 것은 외면이 아닌 내면.

         

       한순간 짊어지게 된 목숨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버둥거리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걱정할 것 없어.”

         

       무겁다.

         

       칼로 빼앗아 짊어진 생의 무게가.

         

       그러나 걱정할 만한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백우진은 확신하고 있다.

         

       그것으로 제 소중한 것들이 살아남았다면 그깟 무게쯤 버텨 적응하면 그뿐이니.

         

       점차 이겨내는 그의 내면을 보며 설수연이 황급히 눈물을 닦아냈다.

         

       “미, 미안해요. 이제 안 울게요.”

         

       그의 고통에 공감하며 울 때가 아니다.

         

       지금은 그가 짊어져야 할 무게는 나누어 들어줘야만 할 때.

         

       그녀가 마침내 기수식을 취함으로써 준비는 모두 끝났다.

         

       자신을 바라보며 굳은 결의를 내비치는 생도들을 향해 그가 외쳤다.

         

       “모두 살아라!”

       “예!”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농성이 시작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직 컨디션이 온전치 않아 병원에서 지어준 약을 먹고 있는데, 자꾸 잠이 와서 큰일이네요.

    얼른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되면 좋겠읍니다…

    모두들 저처럼 아프지 마시고, 건강 관리 유념하시어 건강하게 겨울 나시기 바랍니다.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셔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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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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