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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1

     프란츠, 였던 것.

     그는 소드 마스터였다.

     실력은 분명 뛰어나고, 그림자로서 정점의 위치에 있으려면 그만큼 강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자기가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상대의 강함에 대하여 경시하는 경향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상대가 나이가 어리거나.

     상대가 자신보다 마나가 적어 보인가 싶다거나.

     혹은, 상대가 평소에 검을 단련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거나.

     ‘방심하면 죽는 거지.’

     마스터의 대결은 의외로 싱겁게 끝나는 경우가 많다.

     종이 한 장 차이의 대결이기도 하지만, 마스터 정도 되는 이들은 대부분 그 종이 한 장을 뚫고 적을 일격에 베어버릴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이들이다.

     수백 합을 겨루는 경우가 있다면, 그건 상대의 실력을 인정하는 경우.

     상대와의 검 대결에서 ‘이 대결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라는 생각을 자신도 모르게 하는 경우.

     이기기를 바라기보다는, 자신의 전력을 낼 수 있는 상대를 만났다는 것에 기뻐하며 어디까지 자신의 검이 통하는지 알고자 하는 경우.

     

     그런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죽기 마련.

     “후.”

     프란츠도 예외는 아니다.

     흡혈귀였다면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 뒹굴거리는 과정에서 머리가 움직이면서 ‘내, 내가!’라고 외치기라도 했겠지만, 프란츠는 흡혈귀가 아니었다.

     “그레이.”

     “아직은 안 됩니다.”

     아스타시아가 다가오려고 했지만, 나는 몸만 데굴데굴 굴러와 아래로 처박힌 프란츠의 몸을 향해 검을 겨눴다.

     “혹시 듀라한이라고 알고 있습니까?”

     “듀라한이요?”

     “예. 머리를 잃어버린 죽음의 기사. 혹은 머리가 떨어져나가, 머리를 들고 다녀야만 하는 언데드.”

     

     황금의 영령 중에서도 그런 자들이 있었다.

     아마도 참수형을 당했거나 그런 존재들이겠지만, 목 위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돌아다니던 이들이 있었다.

     “어떤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그러니 확실하게 죽었는지 확인해야죠.”

     나는 프란츠의 몸을 향해 다가갔다.

     세이레네 백작령의 레드카펫을 붉게 물들이며 피를 흘리는 것만 보면 과다출혈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그 전에 애초에 머리와 몸이 분리되었으니 죽었다고 보는 게 맞지만, 나는 그동안 황금의 영령을 상대하며 너무나도 기이한 것들을 많이 봐왔다.

     “…제로스하지 않기를.”

     제로스 바르셀처럼 갑자기 잘린 몸통에서 황금이 솟아나더니, 그게 새로운 머리로 돋아나 나를 향해 다시 공격하거나 그러지 않기를 바랄 뿐.

     ‘이런 게 황제의 스트레스가 아닐까.’

     비상식적인 마법과 기적.

     그걸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

     그 모든 것들이 황제가 노스트럼을 없애고 싶어 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그러나 이 프란츠는 그런 황제의 혐오감을 모른 채, 그런 권능을 자신의 것으로 이용하려고 했다.

     효율적인 수단은 그 기원이 어떻든 활용한다.

     황제의 지론이며, 프란츠는 이 지론을 누구보다도 잘 따르는 자였다.

     하지만 그게 하필이면 노스트럼의 기적이라거나, 테르시안 제국에 내려오는 흡혈귀의 그림자라거나 하는 것이 문제.

     테르시안 제국의 후계자가 되기에는 적합하다고 할 수 있어도, ‘합스베르크 제국’의 인간이 되기에는 여러모로 역부족인 존재였다.

     인간의 상식을 어긋난 기적을 이용하는 자.

     바로 지금과 같다.

     꿈틀, 꿈틀.

     

     “역시나.”

     잘린 피가 마치 생명을 가진 것처럼 실로 뻗어나가더니, 곧 머리와 몸통을 길게 이어지게 만든다.

     “흡혈귀…?”

     “흡혈귀인 건 아닙니다. 흡혈귀의 혜택을 손에 넣은 인간일 뿐이죠.”

     마스터급 인간.

     몸속에 흐르는 백은.

     그리고 지금까지 강해지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다른 이들로부터 착취한 온갖 혈액.

     

     “이건 인간이 아니라, 그냥 마수입니다.”

     야생 짐승 중에서 흡혈귀의 피를 마셔서 괴물이 된다거나, 그 몸에 너무나도 많은 흡혈귀 뼛가루를 품는 바람에 뒤틀려버린 존재일 뿐이다.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면, 어쩌면 다시 살아날지도 모르죠.”

     나는 화염 마법이 깃든 마석을 꺼낸 다음, 아래로 마석을 뻗었다.

     화륵.

     프란츠의 몸에 불이 붙는다.

     마스터의 몸에 남은 마나 때문에 불이 그저 옷만 태울 뿐 몸을 마저 태우기는 쉽지 않지만, 적어도 마스터의 생존본능과 흡혈귀의 요소가 뒤섞여 재생되는 걸 지연시킬 수는 있을 터.

     “괜찮습니다. 시간은 우리 편이거든요.”

     슬슬, 어느덧 시간은 그 때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노스트럼, 세이레네 백작령의 백성들이여.”

     나는 우리가 처음 들어왔을 때 프란츠가 섰던 자리에 선 다음, 서로 눈치만 보며 좌우를 훑던 이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대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지금부터는 반론을 금지한다. 입을 여는 자, 죽을 것이다.”

     황제의 방식이지만, 죽인다는 협박만큼 확실한 통제가 또 없다.

     특히 실제로 죽일 수 있는 능력을 보이고, 그 의지를 보여준다면 더더욱.

     “혼란스럽겠지. 그러니 명료하게 말해주마. 너희는 제국의 특수병기에 의해 흡혈귀가 되었다.”

     복잡하게 엘프의 타락이라거나 그런 기원을 이야기하는 건 나중에 저들이 안정되고 난 이후의 이야기.

     “너희의 육신을 피로써 조종하는 상위의 존재는 사라졌다. 너희는 흡혈귀가 되었을 뿐, 이제 다시 자유의 몸이 되었다.”

     “아, 아아….”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은 이를 내가 바라보자, 그자는 바로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하나 더 말하지. 현재 시각, 새벽 5시 30분.”

     어느덧 시간이 흘러, 새벽에 가까워진 때.

     “흡혈귀는 태양을 바라보면 죽는다.”

     “…….”

     “햇빛을 받게 되면 몸이 타들어가면서 재만 남기게 되지.”

     하나둘, 입을 멍하니 벌리며 동요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들 알겠지?”

     흡혈귀가 된 이들이 입을 벌리기 직전.

     “쉿.”

     나는 검지만 내 입 위에 올렸다.

     “조용.”

     정적이 내려앉는다.

     당황한 세이레네의 영지민들이 서로를 훑더니, 곧 침을 꿀꺽 삼키며 입술을 오므렸다.

     “너희들이 살아남고자 한다면, 우선 햇빛이 들지 않는 곳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늦었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어?”

     “그건-”

     “아. 대답을 요구한 건 아니다. 답은 정해져 있고, 너희들은 지시대로 하면 그만이거든.”

     나는 영주성의 아래를 가리켰다.

     

     “내가 알기로 세이레네 백작은 성 아래에 지하감옥을 만들어둔 걸로 알고 있다. 분명 그중에는 햇빛이 들지 않는 곳이 있겠지.”

     “……!!”

     “뭐 해?”

     나는 홀의 좌우, 지하로 내려가는 방향의 복도를 가리켰다.

     “해가 뜨잖아. 살고 싶으면 뛰어. 어서.”

     “으, 으아아아아!!”

     흡혈귀가 된 세이레네 영지민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프란츠의 명령에 따라 나를 죽이려고 할 때보다도 더 격렬한 움직임이었다.

     “안 믿으면 죽는 수밖에.”

     믿지 않는 자, 햇빛을 보며 죽을 뿐.

     “그레이. 혹시 오는 동안 사지를 잘랐던 흡혈귀들도 전부….”

     “곧 올 겁니다.”

     구구구.

     밖에서 육중한 발소리가 들린다.

     “도련님!!”

     카를로스를 위시하여, 전신에 끈적한 피칠갑을 한 지브롤터의 기사들.

     “세이레네 백작령 내부, 전 지역을 제압했습니다!”

     “생존자는?”

     “…….”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없다는 얘기가 되겠지.”

     적도 살아있지 않고, 아군도 살아있지 않다.

     “괜찮다. 저들이 세이레네에서 남은 이들을 이 성에 남겨뒀고, 그들에게 살길을 마련해줬으니. 적들은?”

     “그게.”

     “몸통만 남은 살아있는 것들이 있겠지.”

     나는 암막 커튼이 펼쳐진 창밖을 가리켰다.

     “흡혈귀들은 태양빛을 받으면 불에 타서 재가 되어버리지. 아, 왜 그런지는 묻지 말게. 그런 건 전문가가 더 잘 알고 있거든.”

     “…저희는 그저, 그 원리를 이용해 조치만 하면 되겠군요.”

     카를로스 경이 바로 이해했다는 듯 자세를 바로잡았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모든 흡혈귀를 거리로 내던져. 어둠 속에서 뽑아낸 다음, 햇빛 아래로 끌고 나와. 그리고….”

     나는 커튼을 거두었다.

     “잿가루가 된다면, 그거 잘 모아두고.”

     어느덧, 창밖에는 동이 트기 시작했다.

     흡혈귀를 지켜주는 어둠의 장막이 사라지고, 지평선 너머에서 태양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화르륵.

     누군가 거리에 나뒹굴던 흡혈귀가 있었던 걸까.

     세이레네 백작령의 거리에서, 황금빛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흡혈귀를 태워버리는 태양빛 특유의 그 영롱한 색깔이.

     마치.

     골드드래곤이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이고.

     자신의 저주를 받은 일족과 그 후예는 자신이 다스리는 태양의 아래에서 살아가지 못하게 신벌을 내리는 것과도 같이.

     

     그렇게 흡혈귀들의 시간은 끝이 난다.

     제국의 흡혈귀 병사들은, 노스트럼 세이레네 백작령에 있던 이들을 전부 몰살시킨 제국군이 전부 재가 되어 바스라진다.

     “제국의 제1 병기, 흡혈귀 병사.”

     밤에는 강하지만, 낮에는 그저 어둠에 숨어지낼 수밖에 없는 존재들뿐.

     태양이 떠 있는 지금은, 노스트럼의 시간이다.

     지브롤터의 시간이기도 하고.

     그 시간의 아래에서.

     “……휴.”

     프란츠는 움직이지 않는다.

     “해치웠군.”

     나는 프란츠의 몸을 향해 다가가, 멈춰진 심장을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 * *

     점심.

     사방팔방에 흩어진 피를 수습할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한 채, 우리는 그나마 깨끗한 장소인 세이레네 백작령 응접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흡혈귀가 된 생존자의 수는 약 3천 명입니다.”

     “생각보다 많군.”

     “…예.”

     카를로스 경이 고개를 푹 숙인다.

     아무래도 세이레네 백작령에 있던 인구를 생각해 본다면, 3천 명이라는 숫자는 ‘고작 그것밖에 살아남지 못했나’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숫자였으니까.

     “어쩔 수 없겠어. 밤이 되면 생존자들을 전부 지브롤터로 옮긴다.”

     “예?”

     “마도자동선에 태워서 지브롤터 협곡 방면으로 보낸 다음, 협곡에 있는 터널에서 지내게 하는 수밖에.”

     “그건….”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지.”

     협곡은 골드 드래곤의 레어로 알려져 있으나, 자연법칙이 위배되는 건 오로지 제국 방향일 뿐이다.

     “역설적으로 성벽 아래가 제일 안전한 법 아니겠나. 마침 손톱에 힘도 들어가고 그러니, 본인들 스스로 자신들이 지낼 구덩이를 파내면 될 거야.”

     “그건….”

     “그게 아니라면, 햇빛 아래에서 살지 못하는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겠어?”

     “…….”

     “아니면 전부 죽여서 안식을 줘야 하는데, 그들이 과연 그렇게 할까?”

     일부, 그렇게 하겠다고 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아니라고 죽어야겠다고 하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할 터.

     “대부분은 살고 싶어 하는 법이지.”

     “저들은….”

     “통제하기 딱 좋은 사람이 하나 있어.”

     저벅, 저벅.

     “마침 도착했군.”

     양산을 쓴 채, 평소의 가운은 내던지고 검은 드레스를 입은 백발적안의 여인이 나타났다.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어머, 내가 있으면 안 될 곳이 있나?”

     햇빛을 등진 채, 검은 양산을 쓴 바토리 소장이 나타났다.

     “아니면 궁금한 걸까? 내가 지금 무슨 신분으로 서 있는 건지.”

     “황제의 오른팔. 제국의 그림자. 백은 제조자. 오로솔 아카데미 부학장. 연금학 교수. 마도공학 권위자. 마도 비행선 제작 책임자.”

     “어머나, 역할도 참 많네.”

     “…흡혈귀, 에르제베트.”

     히죽.

     “맞아.”

     “무, 무슨…. 태양 아래에서는, 재가 되는 게 흡혈귀가 아닙니까…?”

     “흡혈귀도 그냥 흡혈귀가 아니거든. 저주받은 일족이지만, 나름대로 체력은 있어서 말이야.”

     바토리가 양산 옆으로 왼손을 뻗자, 곧 태양빛에 노출된 왼손이 핏빛 안개처럼 흩어졌다.

     “그레이 지브롤터.”

     바토리 소장이 눈을 감았다 뜬다.

     “잠깐.”

     세로로 찢어진 눈동자로, 나를 빤히 바라본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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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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